전 집사

뉴스일자: 2015년06월29일 09시10분

오늘따라 전 집사가 생각난다. 30년 전 독일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대학 박사원에서 공부할 때, 근처 하일브론(Heibron)이라는 도시의 미군주둔지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한 적이 있었다. 미군부인들이 성경공부를 위해 나를 초청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미군 상사의 부인이었던 전 집사가 나를 성경선생으로 초빙한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하일브론 미군가족이 사는 영내에서 자그마한 개척교회가 세워졌다. 4명의 여성도들로 시작한 개척이 교인이 급속하게 불어 몇 달 않되 삼십 명이 되었고, 미군남편들까지 합쳐 장년만 해도 육십 여명이 되었다. 첫 목회에 신이 난 나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어 보리라는 욕심에, 온갖 목회적 수단들을 다 동원하여 그럴듯한 교회를 세워 나갔다.
 
하나님의 은혜로 삼십 가정 전부가 구원을 체험했다. 작은 교회였지만 한국의 신학대학원생 세 사람의 학비를 보조했고, 또한 매달 생활비도 부쳤다. 그리고 무의탁 노인 열 가정을 선택해서 역시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 그리고 필리핀에 교회를 세웠고, 선교사님의 생활비를 책임졌다. 정말 가족과 같은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졌다. 휴가철이 되면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모든 교회식구들이 남편들과 아이들을 싣고 며칠씩 유럽여행을 함께 갔다. 당시 내 나이는 31세에 불과 했지만, 모든 교인들은 내게 절대적인 존경을 보냈다. 심지어 아내의 변화를 보고 그녀들의 남편들인 미군 병사나 장교들까지도 내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목회에 있어서 영원한 안정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 교회는 군대 사회였기 때문에 모든 외형적인 조직은 군대와 같았다. 특별히 미군들과 결혼한 우리 성도들이 지닌 갖가지 과거의 배경들이 오히려 그들 중에 가장 인생의 경험과 신앙적인 경험이 많은 언니를 중심으로 운집하게 했다. 바로 전 집사는 그들 중 가장 큰언니 구실을 하는 집사였다.
 
어느 날 여전히 성격들이 비뚤어 있고, 고집불통인 성도들을 나무라다 푸념을 내 놓는 나에게 전집사는 다가와 나를 위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우리들 대부분은 의정부나 텍사스골목 출신이에요. 저희들은 아무렇게 살다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지금 남편들을 만나 예수를 온 가정이 믿고 살고 있어요. 문제가 한없이 많지만 이만한 것도 주님의 은혜랍니다. 우리 친구들은 아직도 미군영지를 돌아다니며 죄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팔뚝을 내 보이며 수많이 담뱃불로 지져진 흔적들을 내게 보여준다. 그 날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유방암이 걸려 네 차례나 수술을 받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를 잊을 수 없다. 나의 모든 것을 돌보아 주었던 누님이었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에 가는 날 그녀는 내게 전화를 했다. “목사님, 하늘나라에서 만나요.” 그 이후로 나는 그녀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믿음 안에서 맺어진 동생들을 이해하며 내게 해준 착한 말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소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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