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님의 사람아!

뉴스일자: 2015년01월03일 12시59분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 11-16절       1. 4. 15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 동안 12제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다. 그 12사람 중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는 예수님의 4인방으로, ‘예수님의 종말론 특별강해’를 별도로 들을 정도로 가까운 측근이었고(막 13: 3) 그 중에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죽은 야이로 딸 살리는 기적사건 때(막 5: 37)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신비체험의 특별기도 때(막 9: 2)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고뇌의 기도를 하실 때(마 26: 37) 세 사람만 데려가실 정도로 예수께서 신뢰하신 최측근 3인방이었으며, 그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님의 측근 중 측근 2인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뿐 아니라, 3인방, 4인방 그리고 12제자 심지어 예수님께 훈련받아 전도여행을 떠났던 70문도(눅 10; 1)까지를 “예수의 사람들”,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한때 세계를 정복했던 영웅들 곁에 그림자처럼 그들을 추종했던 알렉산더의 사람들, 징기스칸의 사람들, 나폴레옹의 사람들이 있었고, 한국 근대정치사에는 박정희의 사람들, 전두환의 사람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사람들 그리고 박근혜의 사람들이 있으며, 재계의 거물 정주영과 이병철의 사람들이 있었듯이 오늘 날은 IT산업의 선두주자 삼성과 LG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대법관판사나 대학교수나 유명한 박사들에게도 그들의 사람들이 있고, 성공한 사업가에게도 그들의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조폭세계에도 그들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대형교회나 작은 교회 목사에게도 그들의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세상은 ‘그들의 사람들’을 중심해서 굴러간다.
 
3년 반 동안 예수님이 하신 하나님의 일도 ‘예수님의 사람들’로 굴러갔고, 지금도 ‘예수님의 사람들’로 교회사는 굴러간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을 부인한 베드로의 배반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4복음서에 기록된 ‘베드로의 예수 부인’(마 26: 57-58, 막 14: 53-54, 60-72, 요 18: 12-18, 25-27)중에 특별히 눅 22; 54-62의 기록은 한 마디로 “나는 예수사람이 아니다”였다. 
 
재판정 안에서 추위를 이기려고 무리지어 모닥불을 쬐고 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한 계집종(A certain servant-girl)이 사람들 틈에 몸을 숨기고 불을 쬐던 베드로의 얼굴이 환한 불빛에 비쳐지자 그를 지적하며 ‘이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던 자’ (This man was with Him too!)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놀란 베드로는 시치미를 떼고 ‘Woman, I do not know Him'(“여자여, 나는 그(예수)를 알지 못 한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베드로에게 “맞다, 너도 그 당이다”(You are one of them too!)라고 하자,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다”(Man, I am not)라며 강력하게 부인한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난 후, 초조와 불안에 떨며 안절부절 못하는 베드로의 거동을 계속해서 살펴보던 한 사람이 “이 사람 사투리가 갈릴리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이 사람이 참으로 예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장담 한다”고 하자 베드로는 정색을 하고 화를 내면서 “이 사람아,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도무지 알지 못 하겠다” (Man, I do not know what you are talking about)고 잡아뗀다. 그러자  새벽닭이 울었고 이때까지 묵묵히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던 예수님이 베드로를 쳐다보셨다. 
 
베드로가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가 아니다,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 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예수님은 베드로를 ‘내 사람이라’고 하시는데, 베드로는 ‘나는 예수사람이 아니라’고 세 번을 거절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을 오늘 우리 상황과 언어로 말한다면, 예수님은 “주일은 나의 날이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시는데,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안 됩니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안 됩니다, 오늘은 피곤해서 안 됩니다”며 핑계 대는 것과 같고, “새벽기도는 네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름길이라”고 하시는데,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바쁜 일이 있어서, 피곤해서 못 한다”며 거절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은 공산당이 총 들이대고 “예수 믿겠는가, 아니면 죽겠는가?”할 때, 그리고 대환난시대에 적그리스도가 “신앙을 포기하고 666표를 받겠는가? 아니면 끝까지 예수를 믿겠는가?”로 위협할 때 예수와 신앙을 부인하는 것만 예수부인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환경과 조건을 내세워 주일성수와 십일조 성수와 기도하는 것을 불순종하고 거절하며 핑계 대는 것도 예수부인이다. 베드로가 예수 부인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 ‘예수의 사람’이 된 것처럼 2015년을 믿음 안에서 ‘예수의 사람’으로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2015년, 청양(靑羊)의 해, 을미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계속해 사는 그래서 일생최대의 역사적인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1. 구약에 하나님의 사람들
 
구약시대 4000년에는 특별한 때에 특수한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해 쓰셨던 몇몇 사람만 하나님의 사람이 됐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으로 불렸던 사람은 12사람으로 ⑴ 모세(신 33: 1, 수 14: 6, 대상 23: 14, 대하 30: 16, 에스라 3: 2, 시 90등 6회)다.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 모세는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과 사람들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⑵ 삼손의 부모인 마노아 부부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사람(삿 13: 6, 8-22)으로써 그는 자기이름을 묻는 마노아에게 “내 이름은 기묘” (My name is Secret; 삿 13: 18)라고 했는데 기묘란 히브리어 필리는 Wonderful(“이해를 초월한 자”, “놀라운”, “불가사의한”, “경이적인”, “기묘”)이란 뜻으로 이사야 9: 6에서는 장차 세상에 태어나실 메시야의 이름을 기묘(奇妙)라고 했으니 마노아 부부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사람은 성육신 전 구약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다(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신의 현현”(Theophany)라고 한다) ⑶ 세 살 때, 성전지킴이로 시작해 평생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사람과 선지자와 사사로 이스라엘의 위상을 높이 세우고 자신의 명성을 높인 사무엘(Samuel, 삼상 9: 6)이다 ⑷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충고하여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과의 전쟁을 중지시켜서 동족상쟁을 막았던 스마야(Shemaiah; 왕상 12: 22, 대하 11; 2) 
 
⑸ 예리한 통찰력으로 여러 왕들의 잘못을 책망하여 국기(國基)를 세우고 선지학교들을 세워 타락한 백성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다가 산 채로 들림 받아 하늘로 승천한 대선지자 엘리야(Elijah; 왕상 17: 18, 24, 왕하 1; 9-10) ⑹ 엘리야의 갑절 영감을 받아 32번의 기적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유감없이 나타냈던 선지자며 성경에 11번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록된 엘리사(Elisha; 왕하 4: 7-9, 16, 21-27, 40-42, 5: 8, 14-20, 6: 6-15, 7: 2, 17-19, 8: 2-11, 13: 19) ⑺ 많은 시련과 실수를 딛고 일어서서 통일 이스라엘왕국 2대 왕이 돼, 이스라엘과 유다역사에 가장 뛰어난 최대성군이 된 다윗(David; 대하 8: 14, 느 12: 24, 36) ⑻ 레갑 족속이 조상의 가훈을 지켜서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을 확인시키고 축복하려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레갑족속 두령들을 하나님의 집에 있는 회의실(Chamber of the House of the Lord)로 데리고 들어가 만나게 했던 하나님의 사람 익다랴(Igdalijah, the man of God; 렘 34: 4-5, 한국성경엔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이라 번역됐지만 영어성경엔 ‘하나님의 사람 익다랴’의 아들 하난의 아들들이라 번역됐다) 
 
그리고 이 여덟 사람 외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아서 신분을 알 수 없는 Unknown(성경미상)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네(4) 명이 더 있는데 ① 하나님께서 어린아이 사무엘을 통해 제사장이며 사사인 엘리를 책망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보다 두 아들을 더 중히 여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경홀히 여기던 그의 죄를 책망하고 엘리 가문이 당할 저주를 선포한 이름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삼상 2; 27-36) ② 여호와께 번제분향을 드리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교만을 당당하게 맞서서 책망했던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왕상 13: 1, 왕하 23: 16) ③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아람 왕 벤하닷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을 예고해준 성명미상의 하나님의 사람(왕상 20: 28- 30) ④ 아마샤 왕이 세일 자손과의 소금 골짜기(염곡)전투에서 이기려고 많은 돈을 들여 십만의 이스라엘 군사를 용병으로 차용한 것을 책망하고 이스라엘용병을 돌려보내고 전쟁을 이기게 했던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대하 25: 7-9)이 있다.
 
이렇게 구약엔 이름이 밝혀진 하나님의 사람이 8명, 자기 이름을 숨겼던 익명(匿名)의 선지자,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성명미상의 하나님의 사람이 네 명, 도합 12명의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시대마다 그들을 통해 나타난 사역과 족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하나같이 눈이 부실 정도며 두 귀가 놀랄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낮에 태양광선을 많이 받으면 밤에 야광 등의 빛이나 야광시계의 숫자가 더 강하고 환하게 반사되며, 뜨거운 태양 볕을 많이 받은 바위일수록 따뜻함의 열기가 오래가듯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이라도 말씀과 기도와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일수록 그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향력이 천차만별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된 것도 놀라운 축복이지만 하나님께 더 크고 강하고 오래 동안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더 놀라운 축복이다. 
 
새로 시작되는 2015년 청양(靑羊)의 해, 을미년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던 모세, 기묘(奇妙), 사무엘, 스마야와 엘리야, 엘리사, 다윗, 익다랴 그리고 성명미상의 네(4)사람들처럼 우리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지난날 30년 20년 10년 동안에 받았던 모든 축복보다 10배 20배 30배의 능력과 축복을 받아 우리 일생일대에 최대족적을 남기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한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2. 신약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람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되는 일은 옛날 군주국가에서 왕의 간택을 받아 수백만의 처녀들 중에서 한 사람처녀가 왕비가 되는 일만큼 좁은 문이었고 오늘날 5000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으로 선택되는 일만큼 그리고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구약4000년 동안에, 아니 첫 번째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모세시대부터 계산해서 약 1500년 동안에 12명만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만큼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받아 등용되는 길은 좁고 좁은 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왕들보다 대제사장들보다 더 중요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았을 정도로 귀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성소휘장(주: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일년일차 지성소로 열고 들어가는 칸막이 휘장(출 26; 31-35, 27:21, 30: 6, 레 16: 2)은 높이 55큐빗, 너비 16큐빗으로 최고급 바벨론제의 린넨 천에 여러 모양의 수를 놓아 만들어 졌다)이 찢어지므로 1500년 동안 막혔던 성소와 지성소의 장벽이 무너지고(마 27: 51, 막 15: 38, 눅 23: 45, 히 10: 19-20, 엡 3; 12) 모든 성도의 신분이 택하신 족속과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변화돼, ‘만인제사장 시대가 된 것’처럼(벧전 2: 9, 계 1: 6) 신약 은혜시대엔 예수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성도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래서 본문 11절에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너 하나님의 사람아!” (You, man of God)라고 불렀다. 이것은 구약시대라면 상상도 못할 충격적인 호칭이며 대이변이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를 구주로 믿는 나와 여러분은 ‘믿거나 말거나’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다. 할렐루야!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주신 예수님께 영광과 존귀와 높임을 세세토록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빛이라도, 반딧불과 촛불의 밝기가 다르고, 촛불과 호롱불의 빛의 강도가 다르며, 호롱불과 전등불의 빛, 전등불 중에서도 작고 어둔 방을 밝히는 50와트 100와트 200와트 전등과 밤에 운동경기장을 환하게 밝히는 수천 와트 전열구의 빛이 다르며, 동시에 지구의 반 이상을 밝히는 달과 해까지도 그 밝음과 뜨거운 열기가 천지차이로 다르듯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각 사람의 영성과 인격과 그리고 말씀과 성령을 통한 영력(靈力)에 따라 그 영향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도 어떤 사람은 1년 5년 7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단한번의 축복기도로 응답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10일 금식, 30일 철야, 40일 작정기도로 매달려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데 어떤 사람은 단한번의 안수기도로 문제가 해결되고 병 고침을 받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사람의 영력의 차이’이다. 당신이 믿기 싫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이것은 엄연하게 존재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돼 특별한 영권(靈權)이 있고 강한 영력이 나타나며 특별한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능력 있는 하나님사람이 되는 비결
     
먹을 것 다 먹고, 잠잘 것 다 자며, 놀 것 다 놀고, 다닐 곳 다 다니며, 쉴 것 다 쉬는 사람 치고 빨래판 복근의 근육남이나 콜라병 같은 쭉쭉 빵빵 미인이 적고, 사업이 잘 되고 가게가 잘 되는 사람이 적으며, 영력과 영권이 있는 목사나 실력이 있는 목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 특별히 Spiritual Power(영적인 능력)가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피나는 경건 연습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 먹고, 다 자며, 다 놀고, 다 다니며, 다 쉬는 목사에겐 사도행전적인 기적들이 산출되는 영적인 능력이나 영적권세가 없다. 영적능력과 영적권세가 충만한 목사가 되려면 최소한 자신의 비밀 고유번호 1000-100-180이나 1000-200-240은 돼야한다. 천국번호인 1000과 성경 100독의 100과 200독의 200 그리고 기도시간 세 시간의 180분과 네 시간의 240분을 디지털숫자로 합쳐서 나열한 1000-100-180과 1000-200-240은 돼야한다는 말이다. 
 
바울사도는 본문을 통해서 영적인 아들인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의 5대 자격과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것과 따라야 할 것(딤전 6: 11-16)을 상세하게 가르쳤다. ⑴ 먼저, 하나님의 사람의 5대 자격(5 Qualifications of a Man of God)은 ① 성경을 알라(Know Scripture; 딤후 3: 15-17) 성경을 알되 많이 정확하게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고, 의학과 의술을 모르면 돌팔이의사로 사람을 죽이듯 성경을 모르는 목사는 영혼들을 지옥에 보낸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② Be perfect(“온전케 되라”; 딤후 3: 17, 온전케 된다는 아르티오스는 “말씀을 통해서 그 사역에 완전히 적합한 일군으로 변하라”는 뜻이다) ③ 모든 선한 일을 이루기위해서 온전케 되라(딤후 3: 17) 인격과 신앙과 신학이 온전케 되라는 말씀이다. 목사 이전에 사람이 돼라, 목사로써 신앙과 신학이 정립되는 실력을 갖추라는 말이다 ④ 성령의 감동을 받으라(Inspired by the Holy Spirit(딤후 3: 16-17, 느 9: 30, 렘 15: 19) ⑤ Jehovah making Himself known to Him(“야훼하나님으로 자신에게 자신을 알리게 하라”-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라; 민 20: 16, 겔 3: 17, 렘 15: 19) 하나님의 사람은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거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로채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써의 목사 부흥사 전도사 기도원원장은 자신의 고유번호 Code가 최소한 1000-100-180번이나 1000-200-240은 돼야 한다.
 
⑵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것과 따라야 할 것(딤전 6: 11-16)이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하는 것은 ⒜ 거짓 선생들의 전철을 밟지 말 것인데, 딤전 6: 3-5에 기록된 거짓 선생의 12가지 특성은 진리를 거역하고, 교만하며, 허세를 부리고, 진리를 모르며, 율법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 그것을 좋아하고, 언쟁이나 변론을 좋아하며, 당파를 짓고, 투기하며, 까다로운 성격을 갖고 있으며, 교훈과 교리에 대해 다투며, 악한 말을 하고, 악한 억측을 하며, 회의적이고 왜곡되고 헛된 변론을 하며, 부패한 마음 때문에 진리를 배척하고, 귀신의 사술과 교훈으로 가득 차 있으며,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한다. 이런 것들을 피해야 한다. ⒝ 탐심과 부요케 되려는 돈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6-10절)
 
둘째로, 하나님의 사람이 따라야 할 여덟(8)가지 덕목이다. ① 매사에 공의를 따르는 의(義, 디카이오쉬넨)의 사람이 돼야 한다. ②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경외심을 간직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경건(敬虔, 유세베이안, 벧후 1: 3, 약 1: 26, 27)을 좇으라. ③ 믿음(피스틴, 주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을 좇을 것이다. ④ 사랑(아가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가장 위대한 일, 무조건적인 사랑”(고전 13: 4-7)을 좇을 것이다 ⑤ “어떠한 불행이나 고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인내”(忍耐, 휘포모넨, 살전 1: 3, 5: 14)를 좇을 것이다 
 
⑥ “온순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안위를 제공하고 대인관계에서 늘 여유 있는 상태”인 온유(溫柔, 프라위파디안)를 쫓아야 한다(마 11: 29, 고후 10: 1) ⑦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싸우다”, 아고니주; “시합하다, 시합에 이기기 위해 힘쓰다”) 이것은 “믿음의 선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고난에서 절제하며 참을 것”을 의미한다(고전 9: 27) ⑧ Until the appearing of our Lord Jesus Christ(“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나타실 때까지”(“나타나심”, 에피파네이아스: “중요한 인물의 출현”이란 뜻으로 “그리스도의 현현”을 의미한다) 영생을 취할 것이다(“취하라”, 에필라부; “붙잡다”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까지 최후의 영생, 영원한 생명, 하나님과의 교제를 붙잡으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해야 할 것과 반드시 따라야 할 여러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비록 지금이 만인제사장시대요 늦은 비, 은혜시대여서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김목사가 나와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드리는 주의 종이 된 동역자들에게 감히 1000-100-180과 1000-200-240의 고유번호를 제안한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사는 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며 장차 올 환난시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시대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부끄러운 간증을 소개한다. 두 시간이나 세 시간을 기도하고 새벽예배를 드린 후, 다시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해온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70-80%정도는 기도를 하면서 ‘오늘은 기도를 조금 일찍 끝내고 집에 가서 단잠을 자리라’는 생각을 했다가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기도의 정상을 정복했던 짜릿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는 졸음을 물리치느라 강대상 위를 걸어 다니면서 기도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강단에서 이 의자 저 의자로 자리를 바꿔가며 앉아 기도를 하기도 하며, 어느 때는 강단을 내려와 교회장의자들을 만지면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솔직히 어느 때는 잠에 빠져 비몽사몽간에 잠꼬대를 하기도 하며, 어느 땐 졸며 잤다가 깨 잠잤던 시간을 채우고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때도 있었다(부끄럽지만 이것이 지금의 김 목사 모습이다)
 
그래도 김목사가 요만큼이라도 기도응답을 받고, 말씀의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건강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은 끊임없이 게을러지려는 마귀유혹과 잠의 유혹을 이기고 매일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열심히 말씀을 읽기 때문이라고 생각돼 감사하고 있다(60대 초반 2-3년 동안, 기억력과 집중력이 현저하게 감퇴되고 약해져 어려움을 겪어 은퇴까지 고려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나도 놀랄 정도로 모든 것이 양호하다) 그래서 을미년 2015년은 긍정적인 믿음으로 쪼그라든 세월의 주름살을 폈던 아브라함부부와 모세와 갈렙같은 축복을 받아 강하고 담대하게 역사의 무대 위를 질주해 갈 것이다. 2015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4. 하나님사람이 해야 할 사명과 조심할 것
 
바울은 디모데에게 본문을 전후해 8-10절에서는 부해지려는 돈의 욕심과 탐욕의 10가지 위험(10 Dangers of covetousness and riches)을 경고했고, 17-19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특별사명으로 특히 부자들에게 해야 할 아홉 가지 명령(9fold charge to rich men)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사람인 주의 종들은 부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첨하거나 비굴하지 말고 담대하게 ⑴ “마음을 높이지 말라”(Do not high minded, ‘높이다’의 휲셀로프로네인: “자랑하다”, “교만하다”란 뜻)고 가르치라는 말이다. 부자들이 가진 재물이나 권력으로 교만하게 행하지 말 것을 가르칠 것이라는 말씀이다 ⑵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Do not trust in riches)고 가르쳐라.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게 되는 정함이 없는(Uncertain, 아델로테티: “불확실성의”)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고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⑶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Trust in the Living God)고 가르쳐라. 인간이 의지하고 소망할 것은 정함이 없는 돈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⑷ Do good!(“선한 일을 하라”)고 가르칠 것이다 ⑸ Be rich in good works(18, “선한 사업에 부요하게 나눠주라”)고 가르쳐라 ⑹ Be ready to distribute goods to help others(“선행을 하고 이웃 돕는 일에 항상 준비돼 있을 것”) 언제라도 구제와 선행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을 가르치라는 말이다. ⑺ Be willing to communicate or fellowship with all men, even the poors(“모든 사람 심지어 가난한 사람과도 대화하며 교제 나눌 마음을 준비하라”) 가르칠 것이다 ⑻ 하늘나라에 보물을 저축하라(Lay up treasures in heaven, 19절)고 가르쳐라. 외경 토비드 4: 9의 “궁핍한 날을 대비하여 자신을 위해 좋은 보화를 쌓아두라”를 인용한 말씀이다 ⑼ Lay hold on eternal life(19, “참된 생명, 영생을 취하라”)고 가르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조심할 네 가지이다.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⑴ 내가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했다 ‘부탁한 것’의 파라데켄은 “디모데에게 위탁한 건전한 교리와 교훈”으로 그것들을 지키라는 말이다. ⑵ 망령된 것을 피하라고 했다. ‘망령된 것’의 베벨루스는 “신성을 더럽히는 모든 것”(레 10: 10, 딤후 2: 16)으로 그것들을 피하라는 말이다 ⑶ 허한 말을 피하라. ‘허(虛)한 말’(Empty chatter; “쓸데없는 말을 재잘재잘 지껄이는 것”, Vain babblings; “헛되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의 케노포니아스는 “공허한 말, 헛된 말”로 그런 것들을 피하라는 말이다 ⑷ 변론(辯論, 안티데세이스: “반대, 대조”)을 피하라고 했다. 변론은 당시 영지주의 이단자 마르시온이 주장한 이단사설로 정통신앙을 반대하는 변론을 가리킨다. 옛날이나 오늘 날이나 이단자들은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들과 변론하는 것을 피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건전한 교리와 교훈을 지켜야 하고, 망령된 것을 피해야 하며, 헛되고 쓸데없는 말을 멀리해야 하고, 각종 이단들과의 변론을 피할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하나님의 사람인가? 히브리어의 아브라카다브라는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가 입으로 말하는 대로 된다. 세계최고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세계최고의 부자가 된 빌 게이츠는 아침마다 거울 속에 자기를 보면서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난 할 수 있어”를 주문처럼 외웠다고 한다. 한국의 영화배우 김윤진은 1999년 무명시절, 매일 거울 앞에 서서 “나는 3년 안에 정상에 설 것이다”를 주문처럼 외우고 자기체면을 걸었다가 3년 뒤에 영화 ‘밀애’로 여우(女優)주연상을 받았고, 그 후 안면마비에 걸렸을 때도 그것을 극복하고 미국에서 ‘올해의 엔터테이너 상’을 받았는데, 그때도 자기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병마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말로 병을 이겨냈다고 한다. 3-4년째 해마다 지역신문에 Rising Star(뜨는 별)로 이름을 올리는 (나의)둘째 딸은 어렸을 때, 책상 앞이나 화장실 유리, 차 운전대에까지 눈에 잘 보이는 곳마다 긍정적인 성경구절을 써 붙이고 입버릇처럼 읽고 ‘집에 식모를 두고 살 것이라’ 노래를 부르더니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기적의 입버릇’이란 베스트셀러를 쓴 뇌(腦)과학자 사토 도미오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뇌는 의식보다 잠재의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의 말은 그 잠재의식을 자극한다. 따라서 긍정적인 상상이나 언어로도 잠재의식을 자극해 얼마든지 운동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고, 프랑스 심리학자 에밀 쿠에는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사람의 자율신경계에 자동으로 입력(入力)이 되고 인간의 몸은 입력된 그대로 실현하려 한다”고 하므로 사람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고 했다.
 
아브라카다브라, 그렇다.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고 주문처럼 말하는 최고의 방법은 기도(祈禱)이다. 매일 몇 시간씩 긍정적으로 말하며, ‘믿습니다!’를 고백하니 이것만큼 효과 있는 아브라카다브라가 또 어디 있는가? 그래서 ‘믿습니다’의 기도, 긍정적인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겐 기적들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통하여 기왕에 ‘하나님의 사람’이 된 우리 모두, 빛 중에 가장 밝고 환하고 큰 빛이 되고, 꽃 중에 작은 정원만을 향기롭게 하는 꽃보다는 온 나라를 향기로 채우는 꽃이 되며, 작은 방만 따스하게 하는 난로보다는 지구촌을 하나님사랑으로 따뜻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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