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냄새

뉴스일자: 2014년11월05일 12시01분

사회자가 물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사랑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과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의 마음 중 어느 쪽이 더 뜨거울까요?”
“그야 물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지요“
O표시가 그려진 막대기를 들면서 만장일치로 외쳐댔다.
TV를 보고 있던 나는 안타까웠다. 내가 만일 텔레비죤에 나갔더라면 나는 X표 막대기를 들고 반란군처럼 외쳤을 거다.
“아닙니다. 우리새끼들을 보면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이 더 뜨겁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우리 애들을 출세성공한 효도자녀로 생각하기 쉽다. 자녀들 덕분에 해마다 세계일주여행을 즐기는 팔자 좋은 부부로 말이다.
정 반대다. 자녀들을 출세시키려면 스파르타식으로 엄하게 키워야한다. 우리는 2녀 1남을 자유방목으로 키웠다. 딱 한번 매를 들어보고는 아니다 싶어 버렸다. 성적표를 보여 달란적이 없다. 용돈을 주어본적도 없다.
“돈은 둘째 설합속에 쌓아놓았다. 필요한대로 빼내어 쓰면 된다”
병아리 모이 주듯 했다. 고향의 어린시절 어머니는 안마당 뜰에 병아리모이를 수북하게 뿌려놓는다. 어미닭을 따라다니던 병아리들이 배가 고프면 종종걸음으로 찾아와 노오란 주둥이로 모이를 쪼아먹고 간다. 귀여운 내 새끼들을 병아리처럼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따로 속셈이 있었다. 하나쯤은 독수리새끼였으면 했다. 아버지의 소 판돈을 몰래 훔쳐 서울로 도망친 정주영같은 놈이 있었으면 했다. 슈퍼재벌이 된 정주영처럼 배짱있는 자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소도둑은커녕 좀도둑도 못됐다. 일전 한푼도 맘대로 빼내가지 못하는 병아리 삼남매였으니까.
애들은 돈과 권력과는 거리가 먼 예술계통이다. 큰딸은 그래픽 디자이너, 둘째딸은 알키택처를 전공했다. 장차 소설을 쓰겠다는 셋째인 아들녀석은 공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고.
우리부부는 자식사랑이라면 치를 떤다. 원하는 건 무엇이던지 들어줬다. 꾸중은 커녕 듣기 싫은 소리 한번 해본적이 없다. 그런데도 뭐가 부족한지 나가살던 둘째 은범이가 덜컥 우울증에 걸렸다. 은범이는 부모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자란 딸이다. 지난해 은범이는 우리부부가 사는 돌섬시영아파트로 들어왔다. 우울증은 환자와 보호자가 같이 고통당한다. 은범이의 우울증이 폭팔할 때마다 우리집은 원자탄이 떨어진 히로시마가되고 나가사끼가 된다. 나는 파킨스병을 앓고 있어서 고통이 갑절로 늘어났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자 묘한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은범이의 치료사가 되고 은범이는 내 치료사가 된 것이다. 파킨스를 앓고 있는 애비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애의 치료사가 됐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은 파킨스병을 앓고 있는 애비의 치료사가 되고. 은범이는 밤새워 영문인터넷을 뒤져 파킨스치료법을 연구한다. 자기병을 잊을 정도로 말이다. 신기하게도 지금 은범이의 우울증은 많이 좋아졌다. 나는 파킨스를 즐길정도(?)까지 되고.
1년 전 나는 돌섬친구들에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은범이 이야기를 보낸적이 있다. 돌섬통신 “돌섬을 찾아온 천사”. 은범이의 건강은 회복단계에 와있다. 나는 요즘 은범이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해서.
“은범아. 너는 어릴때부터 공부도 운동도 대장이었다. 매사 적극적이고 활달했지. 웃음소리는 물론 울음소리도 남달랐으니까.”
은범이가 네 살 때 이야기. 나는 한국에 있을때 괜찮은 부흥사였다. 그런데 부흥회를 인도하러 갈 때마다 애들 때문에 진통을 겪어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 큰딸 진명이는 밥을 안 먹겠다고 난리.
“아빠는 하루 한끼만 먹으면서 부흥회를 인도해요. 나도 아빠 돌아올 때까지 매일 한끼만 먹으면서 금식할래요”
돌 지난 아들 해범이는 눈만 멀뚱거렸다. 네살짜리 은범이는 요란했다.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아빠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집사님들이 달려들어 강제로 은범이를 떼어놓아 아빠를 가게했다. 아빠가 떠나자 은범이는 옷장속에 들어가 서럽게 울어댔다.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도 울기만 하고 안 나왔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곡성이 끊어졌다. 쥐죽은 듯 잠잠한게 이상하여 엄마가 살며시 옷장문을 열어봤다.
맙소사! 은범이가 코를 골며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지 뭔가? 재미있는 꿈을 꾸는지 입술을 냠냠대면서.
“호호호호”
엄마와 진명언니는 귀여워서 깔깔 웃었다. 신기한건 아빠가 부흥회를 갈적마다 자주 그랬다는 거다.
‘심통으로 그랬겠지!’
그런데 아동심리학에는 어른들이 이해 못하는 아름다운 비밀이 숨어있다고 한다. 난 얘기하다 말고 궁금증이 나서 물어봤다.
“35년 전 네가 옷장속에 들어가 울때는 네가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런줄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어렸을때도 남달랐어. 그때 왜 그랬니?”
은범이가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놨다.
“부흥회하러 가는 아빠를 따라가고 싶었어요. 아빠가 절 버리고 떠나자 너무 서러웠어요. 아빠 옷이라도 싫컷 만져보고 싶어 옷장속으로 들어갔지요. 아빠옷을 껴앉고 울고 울었어요. 그런데 땀과 먼지로 얼룩진 아빠옷에서 아빠냄새가 나는 거예요. 아빠냄새가 어찌나 좋던지! 나는 웃으면서 울었어요. 울면서 웃으면서 좋아하다가 그만 잠이 들어 버린 거예요. 잠이 들면 아빠를 만나는 꿈을 꾸곤 했지요”
38살이 된 은범이가 4살짜리 어린애처럼 웃고 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딸은 웃는데 애비는 울고 있었다. 나는 자녀들을 위해 꽤 울었지만 3시간까지 울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은범이는 아빠가 그리워 3시간을 울었단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마음 보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마음이 더 뜨겁기 때문이다.

(사진은 맨해튼을 뒤로하고 부르크린 브릿지를 걷고있는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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