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 황제가 된 목사

뉴스일자: 2014년10월22일 10시21분

 

“목사님이 돌섬통신으로 ‘나는 파킨스병 환자입니다’라고 고백하신지도 다섯달이 지났군요. 그래 파킨스병을 앓으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천만에! 파킨스황제가 된 기분입니다. 파킨스덕분에 황제대접을 받는답니다”


“파킨스황제라! 어감이 그럴듯합니다. 나포레옹황제 촬스황제 알랙산더황제 징키스칸황제처럼 명품반열에 드는 유명황제 이름 같군요. 남들은 파킨스병에 걸리면 기가 죽어 지내는데 목사님은 황제의 무소불위를 즐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후배목사의 전화입니다. 파킨스황제로 등극하게 된 전말기를 공개해야겠습니다.


황제는 왕중왕 세계 제일의 임금을 뜻합니다. 진시황 징키스칸 알랙산더 나폴레옹은 당대 세계최강국의 황제였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러운 남자들이지요.


첫째 나는 말과 걸음이 황제처럼 느려젔습니다. 요즘 사극드라마에 나오는 궁중대사는 말이 빠릅니다. 60년대만 해도 사극의 궁중대사는 느렸습니다. 어전회의에서 제일 느려터진 목소리는 황제입니다. 걷는 건 말 보다도 더 느려야합니다. 그래야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리지날 원형이 그랬으니까요.


파킨스이후 나는 손 입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말과 행보가 느려졌습니다. “여보”를 “여어어 보오오오“로 아주 길고 느리게 부릅니다. 옆에 붙어있는 화장실에 갈때도 청산에 구름이 지나가듯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빨리 걸으면 아내가 말립니다.


“당신은 파킨스환자예요. 내시처럼 종종거리며 빨리 걷다가 넘어지면 큰일 나요. 황제처럼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야 해요”


둘째 나는 황제처럼 먹습니다. 식단이 황제의 수라상저리가랍니다. 배추김치 무우김치 총각김치 가지냉채 호박전 고추볶음 오이소박 동치미로 우리식단은 비타민이 철철 넘칩니다.

모두가 돌섬의 손바닥농장에서 거둬들인 야채들이지요. 그런데 파킨스이후 수라상으로 격상됐습니다. 오리고기 닭가슴살 소고기 연어 참치가 교대로 올라옵니다. 원기회복용으로 올라온 수삼(水蔘)은 식사 때마다 고추장에 찍어먹구요. 거기에 심장에 좋다는 포도주까지 곁들여 팔진미 오후청은 저리가라입니다.


셋째 나는 황제처럼 대우를 받으며 호강을 누립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아내는 필사적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웃음짓고 범사에 감사하는 말만 골라서 합니다. 파킨스병이후 우리는 부부싸움을 한적이 없습니다. 매일 부부싸움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인데 말입니다.


아내는 내가 아무일도 못하게 합니다. 결혼이후 45년 동안 해오던 집안청소도 못하게 합니다. 농장일도 하면 안 됩니다. 손바닥만 조각밭이지만 40평짜리라서 일이 꽤 많은데 말입니다. 천하지존(天下至尊) 황제대접이지요. 나는 최초로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제처럼 기분이 뿌듯해졌습니다.


‘이참에 바닷가로 나가서 하늘과 바다에 황제등극을 선포하자’

나는 돌섬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나는 황제다. 나는 파킨스황제다”


자초지종을 듣던 후배가 능청스레 물었습니다.


“황제에 버금가는 부귀영화를 누리시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황제의 복락을 누리면서 편해지고 나니 목사님의 파킨스병이 얼른 고쳐지던가요?”


“웬걸! 병세가 더 나빠지더니 나는 폭군연산이 되어 병든 채 쫓겨날 위기에 봉착했답니다”


인간은 이상합니다. 편하면 착해 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게을러지면 빈둥거리면서 남 속여 먹을 궁리만 합니다. 부자가 되면 가난한 친구재산을 빼앗아 더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말 타면 견마(牽馬) 잡히고 싶다”


그래서 편안을 즐기는 황제들은 하나같이 폭군이 됩니다. 폭군이 되면 가장 가까운 충신이 들고일어나 죽여 버립니다. 네로황제 궁예왕 연산군이 그렇게 망했습니다. 박정희는 경제대국의 초석을 다져놓은 민족사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청와대 근처에 여러채의 아방궁(안가)을 지어놓고 독재말년을 즐기다가 가장 가까운 부하의 총을 맞고 숨졌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대접만 받다보니 나는 게을러졌습니다. 바람소리에도 신경질을 부리는 폭군이 돼갔습니다. 옳은 말도 맘에 안 들면 화를 냅니다. 병은 더 악화돼갔습니다. 사무친 병에 효자 없다고 합니다. 평생불치병에는 효자도 못 견디고 돌아서 버린다는 말입니다.

드디어 아내가 반기를 들었습니다. 어느날 차안에서 내가 공연히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착하게 나오던 아내가 인조반정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병신 육갑 떨고 자빠졌네”


나는 아내의 청천벽력(靑天霹靂)에 혼비백산(魂飛魄散)한 생쥐가 됐습니다. 쥐구멍에 숨어 생각해 보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 그거야. 쥐구멍에서 기어 나온 나는 밭으로 가서 호미를 들었습니다. 집안청소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사랑 인내 이해 노력에 힘썼습니다.


이제는 화장실에 갈 때 황제처럼 걷지 않습니다. 백조의 호수를 춤추는 아가씨처럼 뒤꿈치를 들고 앞발로 걷습니다. 사뿐 사뿐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발레연습을 합니다. 짧은 거리라도 운동요법을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고목처럼 무겁기만 했던 157파운드짜리 늙은 몸둥이가 병아리떼 종종종 가볍기만 합니다.


“아빠가 그러다가 백조의 호수에 출연하는 발레리나가 되겠어요. 아빠 우리 바닷가 비치로 가서 모래위에서 발레연습을 해요”


둘째딸 은범이와 모래사장으로 나갔습니다. 맨발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달리기도합니다. 가슴이 터질듯 숨이 차오를 때까지 춤추고 달립니다. 숨 차오르는 유산소운동이 파킨스치료에 더 없이 좋기 때문입니다. 은범이가 내손을 잡았습니다.


“아빠 어제밤 인터넷으로 연구해 봤어요. 약을 잘쓰고 단백질을 섭취하고 유산소운동을 열심히 하면 파킨스는 원래 죽을 나이에서 겨우 2년정도 일찍 죽는것 뿐이래요. 할머니가 101살을 살고 가셨으니 아빠가 99세까지 사는 건 문제없을 거예요” 



이 뉴스클리핑은 http://old.kidoknews.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