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간 요나

본문 : 요나서 3장 1-10절
뉴스일자: 2014년10월18일 19시19분

옛날에 소년을 사랑한 나무가 있었다. 하루는 소년이 나무를 찾아와 말했다. “내가 행복하려면 열매가 필요해” 그러자 나무는 소년에게 열매를 내주었다. 성년이 된 소년이 다시 찾아와 “내가 살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무는 가지와 몸통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 소년이 나무에게 “힘들어, 이제 앉아서 쉬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나무는 하나 남은 등걸까지 내주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책의 줄거리다.

이렇게 무조건적이고 변함없는 나무의 사랑은 인생의 로망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들이 부모를 학대하며 공경하지 않는 요즘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면 이 아름다운 동화를 다시 고쳐 써야할 때가 됐음을 느낀다.

남편을 먼저 보낸 어머니가 있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외아들이 있었다. 하루는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와 말했다. “도시에서 살려면 돈이 필요해” 어머니는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끼고 모은 돈을 꼬박꼬박 아들에게 보내주었다. 성인이 돼 좋은 직장과 가정을 갖게 된 아들이 홀어머니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 집과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기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을 아들에게 내주었다. 그다음부터 아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가 가난과 병마에 시달린다고 호소했지만 아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아낌없이 주던 어머니는 아들을 상대로 부양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2012년 2월 서울가정법원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월 6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가정법원이 이렇게 판단한 세 가지 근거는 ① 어머니는 수입이나 재산이 없어 곤궁하고 ② 아들은 안정된 직업과 재산을 갖고 있으며 ③ 아들의 재산기반이 상속에서 비롯됐기 때문이었다. 한때 서로를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들은 이 법정다툼을 계기로 남보다 못한 원수사이가 됐는데 한국에서 이런 사건은 점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고도 자녀에게서 버림받는 상속빈곤층을 심층탐사해 보도한 중앙일보가 부양료 사건 226건을 분석했는데 10건 중 3건이 아낌없이 주던 ‘나무’들이 제기한 경우였다. 전체 부양료 청구소송도 10년 새 3배나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녀의 성공을 자기의 성취로 받아들여 퍼주기를 멈추지 않던 부모들이 자식 뒷바라지를 하다가 노후에 버림을 받아 길거리로 내쫓기거나 Nursing Home으로 보내지기도 하며, 함께 낯선 외국여행을 갔다가 부모를 버리고 돌아오는 현대판 고려장 사건까지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식들의 무관심과 무정함에 비관한 노부부가 의지할 곳이 없어서 동반 자살하는 사례까지 생기는 서글픈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이 오늘날 ‘리얼 코리아’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 말세에 나타나게 될 ‘타락으로 변화된 인간성의 22가지 징조’(Apostasy: Twenty two signs of Christ's coming: 딤후 3: 1-13)를 이렇게 고발했다. “네가 이것을 알라(Realize this)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In the last days perilous times(Difficult times; hard times; grievous times-고통 하는 때, 괴롭고 힘이 드는 때, 슬퍼하며 한탄스러운 때가 shall come-올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그렇다. 지금은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산과 지진, 홍수와 물난리, 지구온난화에 따르는 각종 자연재해 징조와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과 테러와 문명충돌의 정치 경제 군사 사상의 징조와 각종 이단사설이 난무하고 득세하여 성도들이 믿음을 떠나고 교회를 등지며 사랑과 열정이 점점 식어가는 신앙의 징조 그리고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악한 성품으로 바뀌어 가는 인간의 마음들까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말세의 징조들뿐이다. 이런 때에 바른 신앙을 지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나는 오늘 ‘올라간 요나’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한 번으로 끝나는 일방통행(One Way)인 삶을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여 오늘의 현실을 올바르게 살아가길 원하신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지향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현실에 충실 하는 것보다는 거듭나는 것을 어머니의 태로 돌아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착각하던 니고데모처럼 안존하고 위험부담이 없는 현실도피의 어머니의 자궁만을 추구하는 과거집착의 퇴보적 삶, 안일한 현재에만 멈추어 살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30년 20년 10년 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 사람이 그 동안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모르는 사람과 같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30년 전에 한국만 입력돼 있다. Up grade 시키지 않은 소프트웨어만 가지고 있어서 컴퓨터의 속도가 느리고 답답하듯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현대감각을 이해하지 못 한다.

요즘 한국의 신형차들은 100% Navigation이 장착돼 생산된다. 그리고 구형차 주인들도 거의 다 네비게이토를 부착한다. 그래서 차만 타면 “속력을 줄이십시오, 전방 100m 지점에 카메라가 있습니다, 여기는 80km 지점입니다(그런데도 속력을 줄이지 않으면...주행속도 위반으로 몰카에게 티켓을 받지 말라고 ‘팔-십, 팔-십, 팔십’...을 계속해 외친다) 그리고 길을 잘못 들었으니 50m를 가신 후 u-turn을 하십시오. 여기서부터 다시 길을 안내하겠습니다...”란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그렇지만 그렇게 성능이 좋은 기계라도 시간이 흘러가면 네비게이토를 업-그래이드 시켜야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 발전하기를 멈춘 사람, 과거와 현재 어제와 오늘에 멈춰 있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

얼마 전 한국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28대의 차들이 부딪치는 대형 추돌사고가 있었는데 그곳은 몇 년 전에 80중 추돌사고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이 자동차 추돌사고는 안개가 짙게 끼어 앞서가던 차가 멈추어 서 있다가 뒤에서 오던 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리다가 연쇄로 충돌해서 생긴 사고이다. 이렇게 내가 달려야 할 때, 멈추어 있으면 추돌사고가 생긴다. 그래서 사람이나 기계나 살아있는 생물은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발전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렇다. 물은 흘러야 맑은 물이 되고, 공기는 흘러야 시원한 바람이 되며, 기계는 돌아가야 물건이 생산되며, 사람도 움직여서 앞으로 가야 발전이 있다. 그래서 우리 신앙도 달리지 않고 멈춰있으면 사고들이 생긴다. 달려야 할 자동차가 멈추어 있으면 사고가 생기고 기계고장이 생기듯 믿음의 달음질, 충성의 달음질, 기도의 달음질, 감사의 달음질을 계속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1. 내려간 요나(3절)

 
본문 3절은 위로 올라가야 할 요나, 위에서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해 달려갔어야 할 요나가 욥바로 내려갔다(So he went down to Joppa: “그가 욥바로 내려갔더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너는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고 하셨는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욥바로 내려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은 다 내려가는 것이다.

지도위치상 필라델피아나 뉴욕이나 보스턴은 워싱턴보다 북쪽에 있어도 워싱턴 DC(디시)가 미국의 행정수도이기 때문에 남쪽에 있는 ‘애틀랜타로 내려갔다,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내려갔다’고 하듯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로, 뉴욕으로, 보스턴으로 내려갔다’고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절대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가는 것,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내 뜻대로 사는 것은 모두 내려가는 것이다.

요나의 내려감을 보자(3절을 보자)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는 욥바로 내려갔다. 그다음 항구도시 욥바 선착장에서 배로 내려갔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내려가는 일을 거침없이 행하던 요나는 마침내 15절에선 바다 속, 수억 톤 수압으로 짓눌린 지중해 검푸른 바다 물속으로 내려갔고, 마지막으로 17절에선 큰 물고기 뱃속으로 그리고 2: 6에서는 죽음의 현장, 음부까지 내려갔다.

이렇게 한 번 내려가기를 시작한 요나의 길은 깜짝할 사이에 죽음과 지옥음부에까지 내려갔다. 그렇다.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내려가기는 쉽다. 주일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한 달 두 달은 잠깐이고, 1년 2년 5년도 순식간이다. 새벽기도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한 달은 금방 지나가고, 곶감 빼먹듯 십일조 빼먹는 도적질 시작하면 감사 선교 구제 건축헌금 빼먹는 것도 금방이며, 성경읽기와 기도하기를 게으름 피우다보면 어느새 그것도 습관이 돼버린다.

이렇게 내려가는 것은 히말라야 눈사태에 휩쓸려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사나운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듯 아주 쉽다. 그러나 오늘 당신이 영적인 내려감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나님 얼굴을 피해가는 발걸음, 사명을 피해가는 발걸음, 은혜를 떠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거기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요나의 음부까지 내려감이 당신에게도 찾아올 것을 명심하고 내려감에서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2. 내려간 요나의 환경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다시스로 가는 선박여행의 시작은 평온하고 좋았다. 홀가분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는 마음이 꺼림직 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다 순조로웠다. 날씨도 쾌청하고 배도 안전했으며 배에 탄 사람들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분 좋은 출발, 순탄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배가 바다 가운데 들어갔을 때,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덮기 시작하고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찢어지는 무서운 천둥번개와 뇌성벽력과 사나운 국지성폭우가 억수처럼 바다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는 기웃 뚱 거리며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배 위에서 넘어지고 엎어지며 여기저기서 배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을 토하는 사람, 살아남기 위해 배의 기구들을 붙잡고 발버둥치는 사람,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로 광풍에 밀려가는 일엽편주는 아수라장이었다.

당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불순종의 길을 갈 때, 교회를 한번 두 번 빠지고 예배를 멀리할 때, 교회 갈 시간에 늦잠자고 친구들 만나며, 일하면서 돈이 잘 벌릴 때, 처음은 홀가분하며 기분도 좋을 것이다. 잠도 맘대로 잘 수 있고 주일날도 아침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이 늦잠도 맘대로 잘 수 있으며,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며 술친구들도 만나고 담배도 맘대로 피울 수 있으며,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 구제헌금하지 않아도 잔소리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열심히 신앙생활 할 때보다 오히려 하는 일도 더 잘되고 가정도 자녀도 사업도 평안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평안한 날이 것이 오래 계속될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사나운 풍랑 속에서 닻줄 풀어진 배가 어디로 가겠는가?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가 파열된 차가 어떤 일을 만나겠는가? 따뜻한 태양 볕과 밝은 빛이 없는 식물이 얼마나 살겠는가? 물 떠난 고기가 얼마나 견딜 것인가?

이제 내려간 요나가 만났던 환경을 알아보자(1:5를 보자)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거칠고 사나운 광풍에 떠밀려가는 배는 사람들을 살리고 파선을 막으며 바다에 침몰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배의 짐들을 바다에 던져 넣었다. 아까운 귀중품과 무역상품의 재산을 몽땅 바다에 던졌다. 그렇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내려가는 사람이 만날 상황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뛰어넘는 거친 풍랑과 예측불허의 위험과 끝없이 계속되는 물질의 손해이다.
 
거친 풍랑이 휘몰아친다.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회오리돌풍과 미친바람이 휘몰아친다. 걷잡을 수 없는 풍랑과 거센 파도가 정신없이 몰아친다(가정적으로 사업에, 자녀들에게, 육체와 마음에...) 물질의 손해를 보는 사건들이 줄줄이 생긴다. 돈은 벌리는 것 같은데 나가는 돈이 더 많다. 일거리는 많아 일은 열심히 하는데 돈을 떼이거나 엉뚱한 사고가 생겨서 남는 돈이 없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고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며 병원에 가야할 일이 생긴다. 구멍 뚫린 쌀자루에서 쌀이 줄줄 흘러나오듯 앞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뒤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다.

마침내 요나는 아무리 사공들이 노를 젓고 배를 가볍게 해도 형편이 좋아지지 않자  이 풍랑이 하나님을 믿는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일어난 것이라 고백하고, 자기를 물속에 던져 넣으면 풍랑과 파도가 멈출 것이라고 하므로 사람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져 넣었다.

요나는 자기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될 일을 어째서 사람들에게 던져 넣어 달라고 했을까? 자기 발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자살이기 때문이다. 자살하면 지옥에 가는데, 성경을 아는 계산 빠르고 머리 좋은 요나가 지옥에 갈 일을 하겠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바다에 던져 넣을 때 풍랑이 멈추면 전도가 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전도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풍랑이 있었다고 했으니 요나의 말대로 바다가 잠잠해진다면 얼마나 확실한 전도가 되겠는가? 그래서 자기를 바다에 던져 넣어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면 여러 가지 풍랑과 고난을 만난다.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으면, 자기 사명을 떠나면...그리고 그 마지막은 사망과 파멸뿐이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이 하나님을 떠나 모압으로 갔을 때, 그에게는 가정 파멸과 사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 애굽으로 가고, 그랄로 갔을 때, 아내를 빼앗기는 가정 풍랑이 왔고 많은 고난과 어려움들이 왔다.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 그랄 왕 아기스를 찾아갔을 때, 사람 잃고 재산 잃고 추종자들의 배반이 있었으며 위기를 당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은 강도 만나 있는 것 다 빼앗기고 강도들에게 매를 맞아 죽음의 위기를 당했다.

오늘 내려감의 환경에서 인생 풍랑을 당한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내려가다가 어려움을 만난 성도 여러분, 오늘 사명을 떠나가다가 풍랑을 만난 여러분, 내려감에서 돌이켜 올라감으로 마음을 바꾸는 역사가 이 예배에 있으시길 축원한다.

   3. 올라간 요나

사납고 거칠게 꿈틀대는 검푸른 바다로 던짐 당해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 요나는 물속에서 그를 기다렸던 거대한 고기에게 통째로 삼킨 후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지금도 지중해엔 사람을 통째로 삼킬 고래나 거대한 고기들이 출몰하는데 요나를 삼킨 거대한 고기는 바다 깊은 물속에서 수억 톤 바닷물의 수압과 뱃속의 음식물을 소화시키려는 용트림으로 몸부림쳤고, 고기 뱃속에 요나는 숨 쉬는 일마저 힘들어졌고 시시각각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자 목숨이 경각간에 달린 요나는 죽기 전에 회개라도 해야 하겠다고 느끼고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회개한다(요나서 2장은 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요나의 회개기도 내용이다)
  
요나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둡고 숨 쉬기 조차 어려운 물고기 뱃속에서 “내가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I will look again toward Thy holy temple)라고 외쳤다. 히브리사람들이 성전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했던 자기들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나는 이렇게 자신의 불순종을 회개하면서 결심하기를 “내가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다”(Which I have vowed, I will pay)고 고백했다.

1997년 IFM 경제대란 때, 교회마다 기도원마다 금식기도 성도들과 철야예배 성도들 그리고 주일예배 성도들이 넘쳐났고, 기도의 열기가 80년대 한국교회 부흥의 열기만큼 뜨거웠다고 한다. 갑자기 불어닥친 어려움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살다가 징계의 채찍을 맞고 돌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로, 부흥회로, 기도원으로 찾아와서 철야금식하면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이 병만 고쳐주신다면 생명 다해 주님께 순종하겠습니다”, “사업을 한번만 도와주시면 주일성수, 십일조성수, 선교 구제 잘 하겠습니다” 했던 것처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 다시는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불순종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한번만 살려주시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더 주세요. 한번만 저를 믿어주세요”...라며 울부짖으며 회개기도를 했다.

이렇게 회개하자, 하나님은 물고기에게 요나를 해변 모래사장에 토해놓으라고 명령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면 산다. 망하지 않는다. 또 다시 기회를 주신다. 이제 해변 모래사장에 누워있는 요나에게 두 번째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순종하여 니느웨로 달려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다.

둘레 96km(60마일) 직경 30km의 도성 니느웨, 조지아 주 애틀랜타와 같은 크기의 대도시, 워싱턴 디시를 둘러싸고 있는 495번 벨트 웨이 안의 있는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와 워싱턴 디시의 ⅔ 크기의 대도시 니느웨로 간 요나는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질 것이다”(Yet forty days and Nineveh will be overthrown)라고 외쳤다.

당시 수도 니느웨에서 앗수르를 통치한 왕은 주전 782-773년까지 재위한 살만에셀 4세나 그 후계자들이었던 주전 772년에서 755년까지의 왕인 아술단 3세 또는 주전 754년에서 745년까지의 왕이었던 아술 나라리 5세, 세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요나가 주전 793년에서 753년까지 활동한 선지자였으니 당시 니느웨의 왕은 살만에셀 4세나 아술단 3세였을 가능성이 많다.

40일 동안 ‘니느웨 멸망’이라는 요나의 심판설교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극심한 충격을 받아 공황상태(Panic)가 된다. 그리고 겁을 먹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으며 베옷을 입고 금식을 선포하고 사람과 짐승까지 금식을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왕도 요나를 만나 그의 설교를 들은 후, 왕의 조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은 채, 재에 앉아 회개한다. 이렇게 해서 60만 명이 요나의 40일 전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자 하나님은니느웨 심판계획을 취소하셨다. 그래서 요나의 전도는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사람 구원과 나라 구원의 대부흥회였다. 요나의 전도부흥회는 6천년 역사와 2천년 기독교 부흥역사에서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60만 명의 영혼들을 구원할 사명이 있었기에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요나를 구원하셨던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구원해야할 사람이 있기에 지금도 당신이 풍랑을 만나고, 물질의 손해를 보며 죽음의 문턱까지 가도록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통해 하셔야 할 일이 있기에, 당신을 통해 영광 받으실 일이 있기에, 김목사야, 거기 있지 말고 올라가라...이 집사야 올라가라....며 기상천외하고 불가사의한 방법을 동원하여 역사 하신다.

창 25장에서 출생한 후 50장에서 죽는 스물여섯 장의 야곱의 기록 중, 창 35장에서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므로 그를 이스라엘로 부르시면서 부터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야곱과 그 가족에게 시작됐음을 기억하라. 요셉이 이집트총리가 되는 사건도 야곱이 벧엘로 올라간 후의 사건이었다.

그렇다. 당신이 올라가는 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역사는 시작될 것이다. 야곱이 사명의 현장 벧엘로 올라가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됐고, 요나가 회개하여 사명의 현장으로 올라가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손길이 시작됐다!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면 당신도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로 올라가는가? 지금 내(당신이)가 올라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1) 하나님께로 올라가라(출 19: 3,  32: 30)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범죄 하므로 절체절명의 멸망위기를 당했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로 올라갔다. 하나님과 독대하려고 하나님께 올라갔다. 그렇다. 당신의 거룩한 사명을 위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자녀의 형통과 사업문제를 위해, 교회와 국가와 가정을 위해  하나님께 올라가 하나님과 독대하라! 어느 누구의 개입 없이 하나님과 Face to face, 단독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라. 그리고 그분과 기도로 대화하라...(요즘 나는 세 주간 동안 강행한 동남아 선교여행과 시차관계로 몸은 피곤하지만, 매일 5-6시간 하나님을 독대하며 기도하는 은혜를 주심-많은 응답에 감사하고 있다)

요나가 다시스로 내려가는 도망 길을 포기하고 니느웨로 올라가는 순종의 길을 선택했듯 하나님께 올라가는 일을 통해 기도응답을 받으며, 문제해결을 받으며, 축복의 길들이 열리기를 축원한다.

   2) 하나님의 산,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라.

무엇보다 오늘 우리가 올라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산(山)인 야훼하나님의 성전이다. 당신이 성전을 찾는 길, 성전을 올라가는 일만이 당신의 사는 길이요 가정이 사는 길이며 사업이 사는 길, 자녀를 살리는 길이다.

   ① 모세는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다(출 24: 13)
   ② 선지자 미가는 우리가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가자고 외쳤다(미 4: 2)
   ③ 한나는 매년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므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받았다(삼상 1:7)
   ④ 다윗은 하나님의 전에 올라갈 때에 기뻐했다(시 122:1)
   ⑤ 히스기야는 답답한 일을 만났을 때, 새벽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성전에 올라갔다(대하 29: 20) 나라가 적의 침입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를 당할 때 성전에 올라가므로(사 37:14)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다.
   ⑦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 올라갔다가 잃었던 아들 예수를 다시 찾았다(눅 2:41-51)
   ⑧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는 기적을 체험했다(행 3: 1)
          
그렇다. 오늘 김목사와 여러분이 올라가야 할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집 성전이다. 하나님을 멀리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야 당신의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다윗의 찬양대장 아삽은 시 73: 17에서 “(내가)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의 결국(악인의 운명)을 내가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마음에 풀리지 않던 신앙적 고민, 신학적 고민이 해결됐다는 말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집에 올라갈 때, 모든 마음의 고민이 풀어진다.

여러분이 새벽에 성전을 찾고, 주일예배와 수요일 예배에 성전을 찾는 것을 고역이라, 힘든 일이라 생각지 말라. 기쁜 일,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라.

1950년대에 런던 버스 운전기사와 안내원의 건강상태를 비교하는 것에서 운동이나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 밝혀졌다. 앉아서 편하게 일하는 운전기사는 버스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힘들게 일하는 안내원보다 심장병이 더 많았고 수명도 짧았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근거로 사람의 직업과 건강의 연관성을 연구하던 학자 랑거는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다.

호텔 종업원들은 힘들게 매일 방청소하는 육체적인 일을 하는데도 건강이나 수명이 주로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슷했다. 그래서 랑거는 건강이 좋지 않은 호텔종업원 84명을 모아 실험을 했다. 42명은 그냥 하던 대로 놔두고, 나머지 반인 42명에게는 일하기 전에 “당신들이 하는 청소일이 운동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주입시키고 일을 하게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했는데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두 그룹의 활동이나 음식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가 하는 일이 운동이라”고 생각한 두 번째 그룹은 몸무게가 2파운드가 빠졌고, 순수 근육비율이 많이 올라갔으며, 혈압도 10-15도가 떨어졌고 다른 그룹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과 같은 신체변화였다. 이렇게 달라진 생각이 같은 현실에서도 다른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아, 바로 이거다’(유레카, Eureka-“알았다”;I have found it!, “됐다!”;I've got it!)가 아니라 ‘어, 이거 이상하네’다“라고 했다.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하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를 억지로 참석하거나 매일 피곤한 새벽을 깨워 새벽기도 하는 것을 괴로운 중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은혜나 응답이나 건강의 축복이 없다. 그냥 힘들고 괴로운 중노동일 뿐이다. 그러나 수요예배, 철야예배, 새벽기도를 하나님 만나는 즐거운 시간, 행복한 시간, 응답받는 시간으로 알고 예배에 참석하며 새벽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겐 매일 매일이 ‘어, 이거 정말 이상하네!’의 축복과 기적의 시간이다.

날마다의 새벽을 하나님의 산, 하나님의 전을 올라가므로 하나님을 만나고 능력을 받으며 문제해결을 받는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3)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출 33:1, 신 1:21)

성경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순종하고 지킬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아 누릴 수 있는 국가의 안위와 가정의 평안, 육신의 질병치료에서 물질의 축복과 자녀의 잘됨, 부부의 행복과 자녀출산 그리고 만사형통과 개인의 문제해결 등 1260가지나 되는 문서화된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다. 하나님이 당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신 약속들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없어져도 변하지 않을 만고불변의 약속들이다. 그래서 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그 약속대로 축복을 받는다.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고 반드시 받아야 한다. 기복신앙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약속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대로 하나님을 순종하고 말씀을 실천했는데 복을 받지 못했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최근 수천 명이 출석하는 미국의 몇몇 대형교회가 ‘십일조를 여섯 달 동안 드렸는데도 복을 받지 못했다면, 그 동안 바친 십일조헌금을 되돌려 주겠다’는 광고를 내므로 빈축을 사고 있는데, 하나님의 축복은 그렇게 3개월 6개월 1년에 거두는 열매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은 어떤 교회가 결정할 일도 아니고, 어떤 목사가 시한을 정하고 주는 것도 아니다. 열매 중에는 봄에 심어 가을에 거두는 당년작 농산물도 있지만 3년 5년 후에 열매를 거두는 과일나무도 있다. 따라서 6개월의 시한을 정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시험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그래서 1년 2년에 복을 받는 성도도 있고 십일조 생활 3년이 넘어서 축복을 받는 성도도 있고 5년이 돼 복을 받는 성도도 있다.

47년 나의 짧은 목회 임상의 결론은 성도들이 십일조 생활 3년에서 5년이면 거의 축복을 다 받았고, 반대로 십일조 생활 10년 정도 안한 교인은 물질축복뿐 아니라 영적축복과도 거리가 먼 사람들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목사는 일부 인기영합(Populism)의 목사들의 주장처럼 ‘십일조 6개월, 십일조 1년에 축복을 받지 못하면 그 동안 봉헌한 십일조를 돌려 주겠다’는 비성경적이고 이기적이며 인간적인 감성적 약속보다는 ‘십일조는 물질축복의 바로미터(Barometer: “지표, 청우계”)라”고 자신 있게 선언한다. 성경대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성도에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당신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You shall be a delightful land)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All the nations will call you blessed)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말 3: 11-12)가 응답될 줄 믿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최상의 약속은 영원한 천국과 영생(Everlasting Life)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 39, 40, 44, 54)고 했다. 그렇다.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셨다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하늘로 승천하셨고, 하나님의 때에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오직 성도들에게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성경에 모든 약속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축복을 다 받아 누린다 해도 마지막 날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성공과 축복도 다 허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도 낙오자 없이 모두 반드시 영생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요나처럼 올라가야 할 곳은 영생의 땅 천국이다. 지금 당신 속엔 천국의 소망이 있는가?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는 천국의 열망이 불타고 있는가?
  4) 여호와를 앙망하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仰望)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疲困)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쳐 먹구름을 넘어 저 푸른 하늘창공으로 솟구쳐 올라감 같이 성도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새 힘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올라가는 일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새로운 힘(New strength)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부탁을 이뤄드리는 데 필요한 능력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공급받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나 자신을 이길 수도 없고, 유혹도 이길 수 없으며 사단마귀 용(龍)도 이길 수 없다.

마지막 대환난의 날에 지구촌에 일곱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쓰고, 열개의 뿔(Ten horns)이 달린 크고 붉은 적룡(A great red dragon: 계 12: 3)으로 나타날 사단마귀를 이길 수 없다. 대환난의 날, 후삼년 반에 나타날 적룡(赤龍)은 백룡 흑룡 청룡 황룡의 용들을 거느리고 지구촌에 나타나 시시한 목사는 물론 하늘의 별 같은 유명한 목사, 이름 날리는 목사, 큰 교회 목사, 성공한 목사들의 ⅓을 타락시킬 것이다. WCC와 종교혼합주의의 각종 이단사설에 빠지게 하여 타락시키고, 명예와 교만으로 타락시키며, 여자문제로 타락시킬 것이며, 게으름과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타락시킬 것이다. 이제 지구촌을 초토화시킬 용들의 날갯짓 소리와 불을 토하는 울부짖음과 지구파멸의 검은 폭풍구름이 서서히 지구촌을 덮고 있다. 하나님의 새 힘으로 사단마귀와 용들의 도전을 이기는 성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은 다시스로 내려간 요나처럼 내려가는 사람과는 어떤 일도 하실 수가 없다. 내려가는 사람에겐 어떤 일도 축복도 사명도 맡기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올라가는 사람만 사용하신다. 내려갔던 요나의 마지막은 죽음뿐이었다. 그러나 올라갔던 요나에겐 니느웨 60만 명을 구원하는 기적의 기회를 주셨다.

지금 당신은 올라가는 사람인가? 내려가는 사람인가? 지금 내 신앙의 현주소는 내려가고 있는가, 올라가고 있는가? 당신의 예배와 충성과 헌신과 봉사는 내려가는 하향곡선인가, 올라가는 상향곡선인가? 다시스로 내려가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니느웨로 올라가 사명을 완수한 것처럼 올라가므로 영광의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인생승리, 신앙승리, 사명완수가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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