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장하는 양키즈반장 지터의 뒷모습

뉴스일자: 2014년10월15일 22시55분

저녁 7시가 되면 나는 양키즈채널 53번을 돌린다. TV에서 양키즈야구경기를 중계해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7시가 됐는데도 오늘 따라 당신은 양키즈채널을 안 열고 있군요”

"오늘이 양키스타디움에서 정규시즌 마지막경기이지만 결과는 이미 끝장나버렸어. 와일드카드마저 탈락해서 월드시리즈의 꿈이 일찌감치 깨져 버렸단 말이오“

“그럴수록 봐야지요. 지는 양키즈일수록 더욱 응원해주고 사랑해야지요”

말을 끝낸 아내가 양키즈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뭐람? 5만석 양키구장이 관중으로 가득했다. 농구황제 마이클조단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VIP석을 메우고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양키즈의 9명선수들의 패치번호가 이상했다. 왼쪽 소매와 모자에 똑같이 “2 데릭 지터”를 붙이고 있었다. 홍길동이 요술을 부려 모두가 홍길동이라더니 양키즈구장에서 뛰고 있는 9명의 양키선수들이 모두 “백넘버 2번 데릭지터”였다. 홍길동이가 뉴욕 양키구장에 나타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하! 오늘이 양키즈주장 지터가 20년간 정들었던 양키구장에서의 마지막경기 라구나. 그래서 팬들이 몰려오고 동료들은 지터의 등번호를 부착하고 뛰고 있구나”

퇴장하는 지터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리그최강 볼티모어 오리올스. 오리올스가 1회초에 2:0으로 이기고 있었다. 1회 말 양키즈공격. 노 아웃에 양키즈선두타자 1루 진주. 2번타자 지터가 등장했다. 기립한 5만관중은 "지터 지터“를 외쳐댔다. 지터가 박망이를 휘둘렀다. 딱! 소리를 내면서 기세 좋게 뻗어나가던 공은 팬스 상단을 맞추고 떨어졌다. 주자를 불러들인 당당2루타. 후속타에 힘입어 지터 홈인. 스코어는 2:2.

주장 지터의 분전에 힘입어 5:2 양키즈리드. 9회초 오리올스의 마지막공격.

“5:2로 승리하여 반장 지터의 은퇴를 멋지게 축하해 주는구나!”

마무리투수 로버트슨은 양키즈의 믿는 도끼였다. 그런데 너무 흥분 했던지 첫 타자를 퍼볼(Ball four)로 내보냈다. 다음 타자를 잡아 됐나 싶었는데 투런 홈런을 맞아 5:4. 이어서 오리올스의 백투백 솔로홈런. 순식간에 5:5 동점이 돼버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더니 로버트슨이 지터의 은퇴경기를 망쳐놨구나”

9회말 양키즈의 마지막공격. 원 아웃에 주자는 2루. 이때 지터가 등장했다.

‘20년 동안 이곳에서 원 없이 때리고 원 없이 달렸으니 마지막을 원없이 휘두르자’

딱! 소리가나면서 함성이 일어났다. 안타가 터진 것이다. 2루 주자가 홈인하면서 6:5로 양키즈가 승리. 그건 지터가 연기한 양키즈드라마였다. 이날 양키즈게임은 지터의 야구인생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그의 야구인생이 멋진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1974년 6월 26일 데릭지터는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PHD학위를 받은 흑인 카운슬러, 어머니는 아일리시계 독일이민자인 회계사였다. 어머니는 독일인답게 아들지터를 반듯하게 키웠다.

“나는 할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라.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어려서 미시건으로 이사간 지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양키즈에 입단한다. 전체순위 6위. 물론 마이너리그. 4년후 1995년 양키즈 메이저리그로 데뷔하여 20년후인 2014년에 양키즈에서 은퇴한다. 양키즈역사상 20년 이상을 양키즈선수로 뛴건 지터뿐이다. 12년간 양키즈 주장을 지냈다. 반장답게 성적도 모범생이다. 1996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상. 올스타15회. 올스타 MVP. 월드시리즈MVP. 월드시리즈우승5회. 3465안타. 1923득점. 평생타율310.

양키즈역사상 이렇게 화려한 기록은 없었다. 베이비루스 조디마지오 루게릭 미키맨틀처럼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양키즈에서 활약했지만 지터에는 못 미쳤다. 3465안타는 메이저리그 6위, 1923득점은 9위 기록이다. 금년 양키즈선수중에 타율 290이상을 넘는 선수가 한명도 없다. 지터의 평생타율 310은 대단한 기록이다.

지터의 승승장구가 순탄한것 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에이 로드리게스(시애틀) 가르시아라파스(보스턴)란 라이벌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이들은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3인의 천재 유격수”였다. 평생 600홈런을 친 로드리게스는 1995년에 40홈런 40도루 타율 358로 신인왕을 거머쥔다. 지터 다음해인 1997년 신인왕을 탄 가르시아라파스는 홈런 30개를 치는 강타자였다. 그런데 로드리게스는 약물복용으로, 가르시아라파스는 부상으로 중도하차한다.

성실하고 착한 지터에게는 우군이 많았다. 그중 양키즈 4인방(Core 4)으로 통하는 패티트(투수) 포사다(포수) 리베라(마무리투수). 4인 모두 비슷한 시기에 양키즈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양키즈의 전성기를 이끌다가 양키즈에서 은퇴했다. 4번의 월드시리즈를 제패한후 포사다는 17년후에, 리베라는 19년후에 양키즈를 떠난다. 패티트는 14년후에 떠났다가 2년후에 돌아와 2년을 채우고 떠났다. 지터는 2009년에 월드시리즈를 한번 더 제패한후 20년이 되는 금년에 퇴장한다.

지터는 양키즈를 넘어 전 미국야구팬들의 사랑을 받는 전국구스타였다. 상대팀 선수는 물론 팬들도 지터를 열광한다. 영원한 양키즈의 앙숙 래드삭스도 보스턴에서 지터의 은퇴식을 화려하게 치러줬다.

그러나 퇴장하는 지터의 뒷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 준 곳은 양키즈다. 스타들도 늙으면 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패티트도 리베라도 포사다도 은퇴해야했다. 40이 된 지터도 눈에 띄게 부진했다. 신출귀몰하던 숏스탑은 에러가 많았다. 타율은 250대로 내려갔다. 지터가 출전하면 승률이 5할대 아래로 떨어졌다. 지터를 빼고 하면 5할을 넘었다. 지터는 양키즈의 독이 된 것이다. 그래도 양키즈는 지터에게 끝까지 2번타자 유격수를 맡겼다. 퇴장하는 지터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준 것이다.

서산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처럼 사람은 퇴장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군 본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삼선개헌은 없고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그래놓고 18년을 눌러 앉아 뭉기적 거리다가 부하의 총을 맞고 강제퇴장당한 대통령이 있는 나라.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퇴장한 대통령을 서울로 끌어올려 자살하게 하는 나라. 퇴장하는 영원한 양키즈반장 지터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지터, 당신은 영원한 양키즈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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