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아 칼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

뉴스일자: 2014년08월15일 19시53분

세상에는 많은 정보가 있으며, 날마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새롭게 접하게 되는 정보를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를 비롯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남녀가 만나 새로운 가정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서로를 향한 정보는 참 중요합니다. 여자가 느껴보지 못한 남자들만의 세계가 있기에 정보를 통해 남자의 특성을 알고 있다면,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함께 사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수월할 것입니다.

남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존심이 있겠지만 여성이 다 알 수 없는 남성들만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운전을 할 때 길을 몰라도 잘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길을 잘못 들어서면 멈추고 묻거나, 되돌아 가야하는데 남자들은 일관되게 ‘곧 나올 거야’, ‘걱정 마’ 그러면서 멈추지 않고 첩첩 산중 오리무중에 몰릴 때까지 끝까지 가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때 여자들은 화가 나서 ‘멈춰서 물어보라’ 요구를 하지만 여자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이 다 알지 못하는 자존심입니다.

남성들 못지않게 여성들 또한 자존심이 있어서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다 알아 주어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혼자만의 기대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여성들은 화가 나 있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꾹 참고 또 혼자 무언가를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남성은 여성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있게 되고, 여성들은 화를 삭이며 서로간의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래서 정보는 중요합니다. 또한 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잦은 실수는 정보의 부재 그리고 다름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나와 다르기에 상대방이 틀렸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서로의 특성을 모른 채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면 같이 어울림의 공동체는 형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사람의 손가락에 새겨진 지문이 다르듯이 다르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서로의 다름 가운데 하모니를 이루어 풍요로움을 창출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 안에서 서로를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서로를 향해 틀렸다고 주장을 하며 마치 고슴도치처럼 각자가 외롭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민감하게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감함에 대해 잘 정의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고든 맥도날드입니다. 그의 책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에서 민감함이란 안을 들여다보는 기술로 정의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실려 있는 느낌까지도 알아차리는 것이며, 말로 표현하지 않는 내용과 침묵 그리고 표현되지 않는 신음이나 한숨도 듣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내면을 알아주고 침묵의 의미까지도 서로 알아 기도로 기다려주고 헤아려 줄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침묵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집은 가난했다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길을 지나다 완구점에 전시되어 있는 장난감을 보고 아버지에게 이것을 사 달라고 졸랐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미안해하시는 표정으로 서 계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때서야 아버지 지갑에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비지에게 ‘아버지, 집에 가요’ 말을 하고 집으로 향할 때 아버지와 자신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합니다.

집에 가는 동안 서로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은 채 손만 꼭 쥐고 갔지만 참 많은 대화를 했었답니다. 지금도 아버지와 침묵 가운데 걸었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사랑에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렇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를 볼 수 있는 민감함 가운데 용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책감, 상처, 외로움, 불안을 민감하게 보시고 다가오셔서 마음 속 깊은 부분을 만져주시며 그곳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치료받은 치료자로서 우리도 아픈 부위를 덧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말씀과 기도와 용납함으로 보듬어 가야 합니다. 서로 다름의 정보를 알고 민감하게 반응해 주고 용납해 더불어 사는 행복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차영아 목사(새계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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