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쉴 수 없는 이민 생활 쉼이 필요하다

뉴스일자: 2014년07월30일 22시11분

이민자들의 피곤함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피곤해 어쩔줄 모른다. 이것이 단순한 정신적인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온갖 질병, 대표적인 예로 각종 신경성 질환과 심장병의 원인이 된다. 정신이 신체에 끼쳐서 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이미 의학적으로 증명되어 상식으로 되어있는 시대이다.  

미국으로 이민와서 사는 우리들의 직업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워야 하는 제한된 직종에 국한하고 업종의 구조적 문제로 누적된 우리 육체의 피곤함은 극심하다.  
 
육체적인 쉼의 중요성 
성경에도 엘리야가 낙담하여 있을 때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만져 주시면서 육체의 쉼을 주시어 엘리야를 회복하게 하신다.  역시 우리도 불가하다는 생각을 바꾸어  육체적 쉼을 가지려 노력하고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 보고 배우자나 자녀, 부모와의 대화와 관계 회복을 힘껏 시도해야 한다.

휴가라는 것은 자신에게 들어온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비운다는 의미가 있다. 휴가라는 것은 현재 하던 것을 미루어 놓고 뒤로 물러가 쉰다는 의미가 있다. 피곤할 수록 쉬는 시간을 가지는 용단이 필요하다.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피곤의 대부분은 정신적인  것, 더 나아가서는 영적인 것이다 
솔로몬은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전1:8)”라고 했다. 그는 하늘의 달과 별도 피곤하고, 수목도 피곤하고, 모든 동물과 물고기들도 피곤하다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조화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쉬어도 만족이 없다.

즉 하나님의 용서함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안정감이 있기가 쉽지 않다. 한국 사람들 가운데 약 25 퍼센트가 우울증 환자이거나  우울증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지 못한  인간에게 물질과 목적없이 좇던 명예는 급기야는 허무감을 느끼게 하며 여기에서 우울증은 시작된다.  
 
참 쉼은 영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의 발견에서 온다. 
아무리 잠을 자도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뒤지고 다녀도 인간의 피곤은 없어지지 않는다. 왜냐하 면 진정한 안식은 영적인 안정감에서 온다.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이런 인생의 결국은 고통과 허무의 연속이다. 이런 인생이 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해결책은 가장 깊은 마음의 한 구석에 있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다.

신학자 틸리히는 이것을 “궁극적 관심”이라고 표현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오는 가? 아니, 그보다 먼저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 행복이란 무엇이고 또 사랑이란 무엇인가? 한번 밖에 없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사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탄 기차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른다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이런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까지 우리 마음에는 참다운 쉼은 있을 수 없다. 진실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는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는 늘 불안이 도사리고 있고, 아무리 쉬어도 진정한 휴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휴식의 극치는 기도와 명상에서 온다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 쉬라”고 하셨다. 예수님도 언제나 조용한 곳을 찾으셨다. 마가복음 1:35에는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했고, 마태복음  14:23에는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혼자 산에 올라가시다" 라 했다.

요한복음 7:58에는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하였다. 예수님은 식사할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소란한 세상을 잠시 떠나 한적한 곳에서 쉬며 더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셨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 에스겔 1:24에 보면 "폈던 날개를 접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는 말씀이 나온다. 사실 우리는 푸드덕거리는 내 날개짓의 소란함 때문에 미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한적한 곳에서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듣는 영적인 시간을 가지어야 한다.

요한복음 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라 씌어 있다. 이는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참 휴식이다. 마태복음 11:28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궁극적 안식처다. 참된 휴식을 위하여 우리가 찾을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이순증 목사(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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