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 두레마을에서..

뉴스일자: 2013년04월24일 08시23분

오늘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이곳 연변 두레마을로 왔다. 연변 두레마을은 연길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의란진 연화촌 깊은 산속이다. 두레마을이 넓기가 커서 130만평에 이른다. 이 땅을 50년간 중국정부로부터 임대하여 두레마을 공동체 마을을 세웠다. 깊은 산속 이곳에 두레마을을 세운 것은 이곳이 일제 강점기에 유서 깊은 항일 유적지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홍범도 장군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유격전을 펼쳤고 후에는 김좌진 장군부대가 한 때 이곳에서 활약하였는가 하면 후에는 김일성 빨치산 부대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 유격전을 펼쳤다. 김일성의 자서전격인 "세기를 넘어서.."란 책을 읽어보면 이곳 연화촌을 중심으로 빨치산 운동을 펼쳤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이곳이 성지(聖地)인 셈이다
 

그래서 10년 전 내가 이곳에 며칠 머물 때에 마침 북한의 차관급 관리가 이 마을을 찾아와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말인즉 이 골짜기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항일혁명운동을 펼치던 곳이니까 두레마을이 차지하고 있는 땅 중에서 10만평 가량을 할애하여 주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겠노라 하였다. 그때에 우리 두레마을에서는 북한 안에 두레마을같은 공동체 마을을 세웠으면 하고 기도하던 때이었던지라 그에게 제안하였다. "평양에서 묘향산 중간 어디쯤에 30만평 정도의 땅을 제공하여 주면 그곳에 묘향산 두레마을을 세우고 이곳에서 당신들이 원하는 장소 10만평을 제공하겠노라고 답하였다.
 

가서 의논하여 연락하겠노라 하고 헤어졌는데 얼마 후에 연락이 오기를 그렇게 하자는 통보가 왔었다. 그래서 내가 평양을 가서 묘향산까지 다녀 온 적이 있다. 잘 진행될 것 같았는데 남북관계가 틀어지면서 중단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하여도 몹시 아쉬운 일이다. 오늘 오후에 이곳에 도착한 후 등산화를 신고 골짜기 깊은 곳에 있는 옛날 독립군들이 신병훈련장으로 사용하던 장소를 다녀왔다. 지금은 콩밭으로 변하여 있지만 수십 년 전에는 나라를 찾겠다는 일념을 품은 조상들이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던 모습을 생각하니 감개가 깊었다. 훈련장에서 3Km 쯤 더 올라가면 독립군 무명용사들의 묘들이 있다. 묘들이라 하지만 그냥 돌무더기이다. 그간에 돌보는 이들이 없어 잡초더미에 가려져 눈에 뜨이지도 않는 돌무더기 묘지들을 두레마을 식구들이 찾아내어 가꾼 곳이다.
 

우리가 지금 당당한 독립국가를 이루어 기(氣)를 펴고 살고 있는 것은 이곳에 묻힌 선배들의 희생과 눈물, 공덕과 꿈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란 생각이 간절하다. 나는 이 골짜기를 찾을 때마다 조상들에 비하여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이 새로워지곤 한다.

김진홍 목사


www.KidokNews.net
www.CzoneUs.net


이 뉴스클리핑은 http://old.kidoknews.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