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애칼럼]<‘하나님 스타일’과 ‘강남 스타일’의 짬뽕인 롯의 처를 생각하며>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와서
뉴스일자: 2012년08월18일 16시05분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Matthew 6:33)
 
은혜와 진리교회 단장님 덕분에 아니 그들의 배후를 옹위해주는 하나님 덕분에 모처럼 감동있는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해서 그 감동이 더했으리라.

 아브라함과 사라의 단아한 부부관계, 아브라함과 롯의 질서있는 화평관계, 롯과 그의 처의 혈기어린 부부애 등을 짧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아래서 비교적 잘 표현해 주어서 언뜻 우리부부관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브람 부부처럼 하나님 스타일도 못되고, 그렇다고 최근 유행하는 싸이의 노래에 나오는 ‘강남 스타일’도 못 된다. 굳이 경계를 정하자면 롯의 처의 입장과 비슷한 하나님 스타일과 강남 스타일의 짬봉이라고나 할까?! 그 어름에서 엉거주춤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문제는 경계선급의 사람들이 항상 problem maker라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또한 이 부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소돔과 고모라를 싹슬이 하게 한 요인도 경계선급에 속했던 롯의 처같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점도 없지 않으리라 본다.

롯의 처! 그녀는 누구인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살길 원했던 여자인가?
싸이 식대로 표현하면 그녀는 강남스타일이다.

따사로운 남편의 후광아래서 적당히 품격을 유지할 줄 알고, 때로는 하나님 스타일에 동조하다 수틀리면 원초적 본능대로 반전을 꾀하는 그런 여자라고 본다.

남편 롯의 믿음에 적당히 영향 받고 감화 받아 언뜻 보면 하나님 스타일로 사는 사람 같지만 본성은 늘 세상을 향한 욕망의 물꼬를 터놓고 있는 여자, 본성을 천성(天性)으로 고품격화 시키기에는 뭔가 2%가 부족한 여자, 남편의 영성을 높여주기보다 오히려 그 영성을 흐릿하게 만드는 포도원의 여우 같은 여자, 하나님도 어찌하기 힘들어 급기야 소금기둥으로 화석화시켜 자자손손 후대에 교훈을 주고자 하는 샘플로 삼은 성경 속의 유일한 여자.

 그런데 지금 세상은 2000년 전의 세상과 달라서 이런 사람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한다. 이 노래덕분에 한류 열풍이 더해지는 것은 좋지만 급기야 태풍으로 낙착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된다.
 
잠시 싸이의 노래집에 있는 가사를 좀 들여다 보자.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있는여자//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 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Psy 싸이 6甲에서

대개의 유행가가사가 그렇듯이 부르기 쉬운 3.4조 리듬의 평이한 반복을 통해 강한 중독성을 심어주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른 템포로 진행하는 그렇고 그런 가사일뿐이다.

후하게 평하면 따뜻한 인간미에 요부 같은 기질이 있는 지적 창녀 스타일을 흠모하는 노래랄까, 세상의 대다수 남자들이 선망하는 그런 이미지를 담고 있는 여자다.

그런데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말춤과 잡스럽고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에, 여가수의 섹시한 눈빛과 포즈는 순간적으로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재미를 준다. 가히 키치적(kitsch)이라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아이콘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 노래는 어린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검은 사람부터 하얀 사람에 이르기까지 필부필부들이 잠시 열광하고 흥얼대고 한바탕 웃기에는 아주 재밌는 바이러스적 소모품이다.

한바탕 놀이기구를 흠뻑 타고내린 느낌이랄까. 약간의 선정적인 무드를 자극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통쾌함이 있다. 그래서 많은 패러디의 가사들이 인터넷을 누비고 있다. 나 역시 이에 일조하여 ‘하나님 스타일’을 한 번 만들어 봤다.
 
낮에는 예수 향기 풍기는 여자/ 성경 한 절 곱씹는 격조있는 여자/밤이 오면 심장에 두손 모으는 여자/ 그런 일관성 있는 여자//나는 성벽 같은 당당한 사나이/ 낮에는 너같은 향기나는 그런 사나이/성경 한 절 실행하는 언행일치 사나이/밤이 오면 네 심장에 두 손 포개는 그런 사나이//어여쁘고 자랑스러워//

 강남 스타일과 하나님 스타일! 도저히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인 것 같다. 가까워지는 순간 우리는 롯처럼 화석화된 짬뽕에 불과해질 테니까…
 
전자는 땅을 향하고 후자는 하늘을 향한다. 하늘의 작품인 우리 인간은 그 사이에 샌드위치되어 있다. 성(영)과 속(육)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 할 게 아니라 성과 속이라는 빵에 잘 버무러진 맛있는 빵고물로 우리 삶을 거듭거듭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게 바로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17:32)”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는 이유이다.

롯의 처, 그녀가 세상에 미련을 두기까지에는 그만한 인과관계가 있다. 세속적이기 전에 합리적이다.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혔다기보다는 육신을 갖고 사는 인간의 한계를 자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결국 퍼센테치의 문제다.

내가 49: 51로 육(肉)에 가까워지면 나는 육의 사람에 그칠 것이고, 그 반대이면 영(靈)의 사람으로 분류될 것이다. 관건은 균형감각이다. 단 1~2%의 차이가 인생의 대협곡을 지날 때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우리는, 적어도 크리스찬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 그럴싸한 사람들에게, 롯의 처같은 믿음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Remember Lot’s wife!”을 외친 것이다.

우리의 죄성은 늘 우리를 강남 스타일로 유혹한다. 화끈하게 한번 질러 보고 싶은 유혹도 받을 때가 있다. 고개를 좌로 하느냐 우로 하느냐 순간의 차이가 일생을 좌우한다.

그래서 늘 우리는 기도로써 경건의 옷을 입지 않고는 배겨날 방도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하나님 동네에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강남 스타일을 사회 현상의 하나로 흘끗 쳐다보기는 하되 거기에 주저앉아서는 안 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미 쓸려버린 지 오래지만 이름만 탈바꿈한 새 소돔과 고모라가 세상곳곳에 흩어져 있지 않은가?

오늘은 ‘강남 스타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내일은 더 강도 높은 ‘강남 제비 스타일’로 유혹할지 누가 알랴. 우리는 영. 혼. 육의 조화를 이루되 영이 가장 앞장서도록 우리의 머리를, 가슴을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자.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단비를 흠뻑 맞아들이자. 짬뽕 스타일이 아닌 하나님 스타일의 삶을 위하여… 




이주애(동화작가)  

이 뉴스클리핑은 http://old.kidoknews.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