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동화]뜨거운 이별

뉴스일자: 2012년07월14일 15시04분


여기는 심장센터 중환자실입니다. 심장수술을 막 끝낸 할머니, 아저씨, 누나, 동생들이 꼼짝도 않고 누워있습니다. 간호사님들은 인공호흡기와 심전도기를 통해 환자들의 심장 박동수와 중심 정맥압의 수치, 호흡 상태를 기록하느라 무척 바쁘십니다.

의사선생님은 또영이의 호흡기 수치를 보시더니 “안 되겠는 걸”하시며 간호사님을 부르십니다.

“방실 간호사, 수술방에 있는 인공호흡기 좀 갖다 줘요. 자가 호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 일단 ‘인호’로 바꿔 봐요.”

인호는 10년 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인공호흡기’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방실 간호사님이 방실방실 웃으며 지어준 애칭이기도 하구요. 이 병원에서 인호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뇌사상태’에 빠져든 환자들도 때로는 인호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간호사님들은 인호를 ‘구원의 기계’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그저 단순한 기계만은 아니거든요. 인호의 가장 큰 위력은 맑은 영을 가진 사람들과 은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호가 이 병원에 온 이후 지금까지 줄곧 죽음 직전의 환자들과 숨결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인호의 가슴에도 맑은 영혼이 스며들어 온 것이죠. 그 영혼이 맑으면 맑을수록 진실한 대화는 가능하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인호와 진정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차츰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인호는 입속 가득히 산소를 머금고 또영이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안녕? 또영! 다시 만나서 반갑다. 수술방에서는 미처 인사할 시간도 없었지? 내 이름은 인호야. 내가 한국에 온지 10년하고도 8개월이니까 나는 네 오빠뻘이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렴?”

또영이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또영아, 또영아! 네 심장은 어떻게 아프니?”

“......”

“또영아, 난 너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말좀 해 봐 응?”

“......”
반응이 없던 또영이는 샐쭉해진 표정으로 짧게 대꾸했습니다.

“응, 내 심장에는 큰 구멍이 세 개나 뚫어지고 폐동맥고혈압도 있대.”

“어쩌다 그리 됐냐? 넌 몇 년 살지도 않았는데?”

“글세, 나도 모르지. 우리 엄마는 나를 밴 열 달 내내 운동을 하셨대. 어떤 때는 뱃속의 나를 흔들어 준 것이 기분 좋았지만, 어떤 때는 무척 어지러워서 혼 난 적도 있었어. 그 때 큰 구멍이 하나쯤 뚫렸을 걸?”

또영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또 하나의 구멍은 언제 뚫린 거래?”

“우리 엄마는 우리 오빠를 뱃속에 데리고 있을 때는 커피 한 잔 안 마셨다는데, 나는 둘째 아이라고 몸가짐을 별로 조심하지 않으셨대. 어떤 때는 맥주도 마시고 개고기도 먹고, 심지어는 담배까지 피웠대. 그 때 또 하나의 구멍이 뻥 뚫렸는지 모르지.”

“그럼 나머지 구멍 하나느?”

"아이, 몰라! 내가 의사야? 왜 자꾸 나한테 물어?“

“또영아, 난 너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너하고 친하고도 싶고. 난 오랫동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어서 무척 외로웠거든....”

또영이는 마지 못해 인호의 물음에 대답합니다.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우리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외할머니도 심장이 안 좋으시대. 그래서 우리 엄마도 심장이 약해서 갑자기 ‘펑”하고 빵봉지 터지는 소리만 나도 깜짝 잘 놀라신대. 그 영향을 내가 받았는지도 모르지. 후유~!“

또영이는 연거푸 말하기가 힘들었는지 긴 한숨을 내쉽니다. 그럴때면 호흡기 수치의 작동이 급격히 비정상곡선을 그려냅니다.

“인호 오빠! 나 힘들어. 좀 쉬고 싶어.”

인호는 아픈 또영이를 너무 귀찮게 한 것 같아 또영이의 가슴에 세차게 시원한 공기를 불어넣어줍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내가 입김을 불어넣어 줬으니 곧 괜찮을 거야.”

인호는 잠시 쉬었다가 또영이에게 거듭 질문을 합니다.

“또영아, 미안한데 딱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어른들은 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혈압이 높을 수도 있지만, 너는 아직 아인데 왜 혈압이 높은거니?”

“어유 참! 오빠, 혹시 어떻게 된 거 아냐? 의사도 잘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짜증나게...”

“또영아, 화내지마. 난 맑은 영을 가진 네가 정말 좋아서 그래. 미안해!”

또영이는 자기를 좋아한다는 말에 금세 기운이 되살아납니다.

“그야 요즘은 공기도 안 좋고, 먹는 음식에도 농약을 잔뜩 바르니까 그렇겠지! 특히 우리 엄마는 깨끗이 씻지도 않은 포도를 아주 많이 먹었대. 게다가 나를 배서 쉬고 있는 시간이 심심하다고 임신한 김에 여기저기 차를 타고 다니셨다나...뱃속에서 자주 흔들린 탓인지... 여하튼 난 여기 이렇게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게 차라리 좋아.”

인호는 또영이가 엄마를 원망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물어 볼 수도 없어서 망설이다가 말문을 엽니다.

“또영아, 그럼, 너, 지금 눈도 안 뜨고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게 일부러 그러는 거네?”

“그건 절대 아냐! 가래가 너무 고여 숨쉬기가 힘든데다가 수술 상처까지 쑤셔 죽겠어. 그리고 악착같이 눈을 떠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

인호는 순간 아찔했습니다. 더욱 세차게 숨결을 불어 넣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는지...

“또영아 너,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니?”

“뭘 어떡해? 오빠는 기계니까 기계가 하는 일만 잘 하면 되지 뭐. 아무튼 지금은 이대로가 좋아. 이제 진짜 말시키지 마. 나 좀 쉬고 싶어. 제발 쉬게 해줘 응?”

창밖에는 정신없이 눈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인호의 마음은 저 눈발만큼이나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새 생명이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없다는 게 무엇보다 속상했습니다.
 
인호의 가장 큰 꿈이자 불가능한 꿈은 영혼만이 아닌 육체를 갖춘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또영이는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인호는 묵묵히 또영이의 가슴을 향해 공기만 실어 나릅니다. 인호의 발가벗은 가슴은 창밖의 눈발을 맞아 멍이라도 든 듯이 시리고 아팠습니다.

하루 두 번 정해진 면회시간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거운 걸음걸이로 가느다란 희망을 안고 환자에게로 다가갑니다. 또영이 할머니, 엄마, 아빠, 오빠도 함께 오셨습니다.

또영이 엄마는 어제 면회 왔을 때와 별반 변화 없는 또영이의 얼굴을 보시더니 뺨을 비비시면서 굵은 눈물을 떨구십니다. 할머니도 따라 우시면서 “아유, 불쌍한 내 새끼 우짜면 좋을꼬.”하십니다.

또영이 아빠는 그윽한 눈망울로 그저 내려다볼 뿐입니다. 또영이 오빠는 어린이가 들어오면 안 되는 중환자실에 들어온 것이 재미있는지 “또영아”한 번 부르고는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바쁩니다.

“또준아, 자 이리와서 또영이 손 잡고 기도하자. 우리 또영이 빨리 눈 뜨게 해 달라고.”

또영이 가족은 한데 어우러져 또영이 손을 꼭 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또영이 빨리 낫게 해 주세요. 우리 또영이 나으면 내 안 쓰는 로봇 다 줄 거예요...”

싱긋 웃으며 또준이는 샛눈을 뜹니다. 또영이는 오빠의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산소측정기를 걸고 있는 엄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립니다.

인호는 면회 온 또영이 가족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영이와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또영이를 사랑하는 듯합니다.

어제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쌓인 채 은비늘처럼 반짝입니다. 또영이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발가락만 꼼지락거립니다. 인호는 또영이의 의식을 회복시키기라도 하듯이 더 세차게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순간 또영이는 얼른 눈을 떴다 감았습니다. 눈을 뜬 또영이의 모습을 얼핏 본 인호는 깜짝 놀랐습니다. 몇 해 전에 만났던 얼굴입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한 인호는 또영이에게 다시 한 번 세찬 입김을 불어 넣어봅니다.

“또영아, 또영아, 다시 눈 좀 떠 봐. 또영아, 또영아, 아직도 많이 아파?”

인호는 더욱 정성껏 입김을 붑니다. 또영이는 눈을 뜨는 대신 눈물을 주르르 흘립니다. 이때 마침 간호사님이 오시더니 “아유, 또영이, 많이 아픈가 보구나. 쯧쯧 울지마”하시면서 눈물을 닦아주고 호흡기 수치를 기록하십니다.

인호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또 묻습니다.

“또영아, 또영아, 오래 전에 우리 만나 사이 같지 않니? 너, 나 모르겠어? 언제 봤지? 참, 이상하네...”

또영이는 또다시 눈물을 흘립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파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인호 오빠! 우리가 전에 만났던 게 아니라 오빠가 나를 닮은 아이를 본 걸 거야. 세상에는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이 있대. 우리들은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병을 가지고 태어났거든. ‘다운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코가 납작하고 혓바닥은 길고....바로 이런 나의 모습이 우리 엄마를 실망시킨 거래.“

인호는 알아듣기가 힘들었습니다. 단지 또영이가 가족을 닮지 않은 것은 병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어때서? 생김새가 전부냐?”

“우리는 얼굴만 못 생긴 게 아니라 머리도 무척 나쁘대. 잘 걷지도 못하고 잘 말하지도 못한 대. 게다가 심장에 구멍은 여기저기 뚫렸으니 누가 좋아하겠어. 우리 엄마도 날 안 좋아하는데. 난 오빠와 여기 이대로 있는 게 좋아.”

또영이는 기운없이 말했습니다.

꿀꺽! 군침을 삼킨 인호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냐, 네 엄마는 너를 무척 사랑하셔. 난 알아. 내 말을 믿어.”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엄마 뱃속에 들었던 내가 더 잘 알지. 내가 이 병원에 오기 전까지 우리 엄마는 내가 몹시 아플 때도 약도 안 주고 병원도 안 데려갔어. 그런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나에게 수술도 안 해주려했어. 돈이 없어서가 아냐. 의사선생님이 일 년밖에 못 산다고 하니까 나를 그냥 데리고 있다가 하늘나라로 보내려 했던 거야. 그래서 심장이 갑갑하고 콕콕 쑤실 때도 약도 안 줬어. 지어다 놓은 약이 있는데도 일부러 안 준 거라구. 오빤 그걸 알기나 해? 그래도 그런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 오빠는 순 엉터리야.”

또영이는 붉어진 얼굴빛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하염없이 눈물만 흐립니다.

인호는 말문이 컥컥 막혔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입김을 불어넣었는데도 또영이가 왜 눈을 안 뜨려했는지 왜 눈물만 줄지어 흘렸는지 그 아픔, 그 외로움을 또렷이 만질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덧 창밖의 눈은 부서질 대로 부서지고 해맑은 아침 햇살만이 병실을 가득히 비춰줍니다. 회진을 돌던 의사선생님은 호흡기 수치를 보시더니 입만 쫑긋 내밀으시며 고개를 갸우뚱하십니다.
 
간호사님은 또영이의 콧구멍 속으로 붉고 가는 줄을 집어넣어 허파에 가득 고인 가래를 뽑습니다. 또영이는 캑캑거리며 자지러집니다. 어느 틈에 오셨는지 또영이 엄마는 콧물을 훌쩍이시며 또영이의 풀어진 손바닥을 꼭 쥐고 계십니다. 인호는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영이와 또영이 엄마를 바라았습니다.

이때 또영이를 찾아 온 낯 선 손님이 보입니다. 붉은 색 가운 위에 초록색 면회복을 덧입으신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은 세례를 베푸시고 또영이 엄마와 함께 또영이 가슴을 안고 정성껏 기도를 하십니다.
 
그 순간 또영이의 눈꺼풀도 깜빡였습니다. 인호도 온 힘을 다하여 또영이의 가슴 깊숙이 응어리진 슬픔의 덩어리를 자꾸자꾸 밀어냈습니다. 또영이는 칵칵 기침을 하면서 한 움큼의 가래를 쏟아 놓고 시원한 울음을 웁니다. 비로소 자가 호흡을 되 찾은 것입니다. 이제 또영이는 인호의 도움 없이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밖에서 서성거리시던 또영이 할머니는 또 한 분의 목사님을 모시고 또영이 아빠와 오빠를 데리고 들어오십니다. 풍채 좋으신 목사님은 또영이의 얼굴에 또 한 차례의 세례물을 흩뿌리십니다. 잔잔하게 숨을 몰아쉬던 또영이는 화들짝 눈을 떴습니다. 이를 지켜 본 엄마, 아빠, 할머니의 눈빛은 신선한 기쁨으로 출렁입니다.

“어머, 우리 또영이 눈 떴네! 또준아, 동생 좀 봐.”

“또영아~.”

또준이는 장난 섞인 목소리로 또영이를 부릅니다.

방실이 간호사님도 달려왔습니다.

“어머, 또영아! 아이, 기특도 하지. 의지의 한국인이네. 자, 엄마, 아빠, 잘 봐라. 오랫동안 못 봤지?”

하시며 또영이의 뺨을 토닥여줍니다.

인호도 가벼운 흥분으로 부푼 가슴을 또영이에게 보내려는 순간에 “이제 이 호흡기는 그만 떼도 되겠네”하시며 간호사님이 인호를 만지작 거리십니다. 인호는 또영이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러나 또영이를 위해서는 어떤 식의 외로움도 견뎌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한 순간 인호의 입김은 착잡한 마음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인호는 마지막으로 또영이에게 사랑 가득한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습니다. 또영이도 인호와의 이별이 안타까워 긴 한숨을 몰아쉽니다.

<크리스찬 동화작가 이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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