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철수](간증) 29.다시 목회자의 길을 가다.

뉴스일자: 2011년12월28일 13시17분

첫째가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일이 있기 전에 평택 외갓집을 처제와 함께 다녀왔는데 외갓집에서 놀다가 마루에서 툇마루로 떨어졌는데 그 때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심하게 부딪쳤던 것이다. 그 당시는 괜찮았는데 이틀 후에 서울 집으로 올라온 뒤에 그러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서울 집에서 놀다가 아이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면서 눈이 뒤집어지고 사지가 경직이 되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급히 가까운 곳에 있는 유명한 소아과로 달려갔더니 아이가 심상치 않으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119구급차를 이용하여 서울대 병원으로 갔던 것이다.

감사하게도 정상이 되었고 그 이후에 지금까지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이제는 어엿한 성년이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아이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 태어났고, 또한 사고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하여 아버지를 목회자의 길을 가게 하였고, 또한 서울대학교를 입학하여 졸업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여러모로 서울대와 깊은 연관이 있는 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의로 가지 아니하려 했던 목회자의 길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다시 가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의 생각으로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 때문에 가지 아니하려 했던 목회자의 길을 다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터질 때로 터진 상태였다. 돈도 없는 상태였다.

아이들은 연년생으로 태어났는데 아내가 나이가 많은 탓에 모유가 나오지를 아니해서 분유를 먹여야 했다. 그러니 생활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목회자의 길을 갔었더라면 고생도 덜 했을 터이고, 돈도 잃어버리지 않았을 터이고, 어린 딸도 고생을 시키지 아니했을 터인데, 어리석은 인생이라 깨닫지 못하고 제 고집대로 살다가 완전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원래는 기도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결혼 초기에 기도 많이 하는 분에게 예언기도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예언의 내용이 바로 목회자의 길로 가야 된다고 했었는데 사람의 예언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목회의 길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아내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임의로 그 사실을 부정하고 지냈던 것이었다.

청년 시절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열심히 출석했다. 청년부에서 성가대대원으로 활동하고 금요 철야기도회, 삼각산 철야 산상예배, 여름철에는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일주일 금식기도 성회를 참석하여 일주일 금식기도를 드리곤 했던 전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총각 때 서리집사가 되어 나름대로 충성하였고, 처음 고향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는 전도사님이 서울로 신학교에 공부를 하러 가시면 수요일 저녁 예배 시 가끔 설교도 했던 전력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미 지방에서 신학공부를 2년이나 했고, 서울에서 한 학기 신학 공부를 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이 그 길을 버리고 세상길로만 갔으니 하나님께서 그냥 놔두실 수가 없으시니까 최후 수단으로 큰 아이를 통해서 깨닫게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도 역시 사모의 길을 가야 될 사명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처녀시절부터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녔고, 금요철야기도,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대원으로, 전도대원으로 충성할 정도였으니 이미 목회의 길을 가야할 사명이 있었는데 그만 자신의 의지로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늦게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빨리 깨달았다면 고생을 덜 했을 터인데 사람은 무지해서 혼이 나야 만이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래도 늦게라도 주의 뜻을 깨닫게 된 것도 은혜인 것이다. 만약 계속해서 깨닫지 못하고 세상길로 나아갔다면 아마도 더 많은 시련의 고통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철수목사(익산봉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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