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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7일 02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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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와 샤머니즘

샤머니즘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전도 대상자인 친구가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 문화를 말하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샤머니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일 신앙을 강조하는 개신교에도 샤머니즘의 정서가 들어 있다고 하는데요.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창세기의 설화가 바로 샤머니즘이라고 합니다. 샤머니즘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1, 샤머니즘에 대한 정의

샤머니즘(shamanism)은 신령과 접촉을 통하여 재앙(災殃)을 물리치고 인간의 온갖 소망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샤먼(무당)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주술 종교적(宗敎的) 현상을 말합니다. 샤머니즘은 한국 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민중의 생활 저변에 민중 신앙으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첫째, 한국의 샤머니즘에는 신앙 대상으로 신령(神靈)과 조상이 있습니다. 샤머니즘의 특징은 종교적 사제의 역할을 무당(巫堂)이 수행하고 있으며 교주가 없고 체계적인 교리나 조직을 갖추지 못한 원시형태의 종교입니다. 한국의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불교(佛敎)와 유교(儒敎)와 기독교(基督敎)가 한국에 전래되기 이 전 아득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한민족의 신앙적(信仰的)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것입니다.

둘째, 샤머니즘은 한국에만 있는 고유의 현상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만주,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권에 널리 펴져있습니다. 특히, 시베리아의 중앙아시아에서 우세한 보편적인 종교(宗敎)현상입니다. 따라서 샤머니즘은 그것을 수용한 지역이나 민족에 다라서 그 특성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셋째, 샤머니즘이라는 용어는 1704년 네덜란드 상인 이데스(E.Y.ldes)에 의해서 처음으로 유럽 학문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1692-1695년에 러시아 피터 대재의 사신 자격으로 모스크바에서 북경까지 여행하는 도중 바이칼 호수 북부에서 퉁구스족의 박수무당을 만나 그의 굿을 관찰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유럽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한한 광경을 보고 이 행사와 이름을 묻는 이데스의 물음에 퉁구스인은 샤먼이라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는 1704년 그것을 포함한 그의 여행기를 네덜란드어로 출판하였는데, 여기에서 샤머니즘이 학술용어가 된 것입니다. 샤먼은 샤머니즘으로 무속의 사제를 가리킵니다.

2, 한국에서의 샤머니즘

한국의 샤머니즘 무속은 헤아릴 수 없을 많은 신령(神鈴)(귀신)이 있습니다. 한국 민족의 역사 가운데 신령은 태어나거나 외국으로부터 받아들여졌고 다시 사려져 가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무당(巫堂)(샤먼)들은 대개 내림굿을 통해서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숙한 무당으로 성장해 가는 도중에 몸신으로 받아들면 신령에 따라 여러 무당 계급으로 나눕니다.

첫째, 보살 계급의 신령; 옥황천존, 일월성신, 산신, 사해용신, 삼신제석, 불사 신중 들이 있습니다.

둘째, 전래 계급의 신령; 중국에서 유래된 신령들이 이 범주에 드는데, 이 가운데 유명한 중국 도교(道敎)계통의 전쟁 신 관제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관성제군(關聖帝君), 소멸황제, 장군(將軍), 오천대사, 오호대장 등이 있습니다.

셋째, 박수 만신계급의 신령; 박수는 제 신령을 무선도 형태로 모시는데 비하여 만신은 저희 신령의 상징으로서 종이를 오려 만든 고비 전을 신당의 벽에 걸어 놓는데, 전체적으로 토착 신은 조상신(祖上神)의 성격을 가지고, 최영장군, 별상군왕, 태조대왕, 십이대신, 삼대신대감 등이 있습니다.

넷째, 뒷전무당 계급의 신령; 뒷전은 굿(㖌)의 마지막 거리로서 이 거리에서는 굿의 주 거리 동안 돌보아 주지 못했던 잡귀신(雜鬼神)을 끝으로 술과 안주와 음악 등으로써 풀어먹이는데, 이에 속한 신령은 위계 안에서 하위 신에 해당하고, 걸립말명, 맹인신장, 선황 사신 등이 있습니다.

다섯째. 넋 대신 계급의 신령;이들은 주로 초상에 관련된 궂은일을 도맡아 하여, 상가에 가서 죽음으로 야기된 부정을 치우고 관이 나가기 전에 관 앞에서 고인의 마지막 말을 그 가족에게 전해주고 장례가 끝난 다음 굿(㖌)을 하여 그 초상집을 깨끗하게 합니다. 이 계급의 무당은 신령은 무신도나 고비전이라고 부르는 종이 오린 형태로 모십니다.

3, 한국의 토착화된 샤머니즘

흔히 민족학자들은 샤머니즘을 한국 종교의 어머니다 창세기라고 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샤머니즘이 그 동안 갖가지 외래 종교의 사상을 배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의 샤머니즘은 불교, 유교, 도교의 강한 영향을 저항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외래의 것을 표면에 내세우고 샤머니즘 자신은 내면으로 숨어버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의 샤머니즘은 소멸되지 않고, 사람들의 내면에 살아있어 외래 종교까지 샤머니즘화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팔관회는 외형은 불교 법회였으나 내용은 전통적(傳統的)인 샤머니즘 이였으며 이와 같이 무속신앙은 한국의 종교적 비탕을 이루면서 오래 종교를 토착화 시켰습니다.

4, 샤머니즘에 대한 기독교의 자세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인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샤머니즘의 영향을 분석하고 이것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속신앙(巫俗信仰)은 신앙의 형태와 양식에서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 기복신앙과 개인 위주의 즉흥적(卽興的)인 신앙으로 기울어지게 합니다.

그 결과, 입신과 같은 개인적인 신비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광신주의 현상이 개신교에 만연하고, 성도들의 경우에는 질병(疾病)에 걸리는 것은 귀신(鬼神)의 소행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목회자들 가운데도 병 고치는 것을 기독교의 주된 임무로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우상숭배(偶像崇拜)를 금하고 미신타파를 부르짖은 영향으로 계속 급속히 감소 추세였던 무속인 들이 최근에 이르러서는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통문화와 무속을 동일시하는 듯 한 국가정책을 들 수 있으며 가장 큰 요인으로는 이 땅의 기독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성경에 기초한 순수한 기독교의 모습을 잃고 미신적(迷信的)이며 기복으로 변질하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현상입니다. 필자가 전국 2000여 교회 집회를 인도하는 동안 많은 성도들을 대해 볼 때 의심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 불교(佛敎)를 빙자한 무당(巫堂)들이 득세했으나 오늘은 한국 기독교(基督敎) 안에 예수 무당(巫堂)들이 은사 집회란 미명으로 점술과 같은 예언기도를 하고 기복적인 안수기도로 축복하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굿의 모방하는 형태는 한국 기독교가 정화해야 할 과제입니다.

외래 종교인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샤머니즘에 융화했습니다. 샤머니즘인 무속 문화 속에서 한국 기독교가 현재 양적으로 성장하여 1000만 명을 넘었으나 성도들의 의식이나 제도 등이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 땅에는 샤머니즘이 민간신앙으로 바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샤머니즘을 말살하기 위해서 상륙했던 기독교가 그의 역풍에 몰려 샤머니즘화로 되어가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샤머니즘은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역사적이며 동시에 시대적인 과제입니다.

우리들은 각성하여 미신적(迷信的)이며 무속적(巫俗的)인 신앙을 추방하고 성경 중심의 경건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부흥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정상적(正常的)으로 부흥되는 것이 주님 앞에 영광이 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 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

서재생목사/ 서울대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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