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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7일 01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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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8)

언약궤를 히브리인들로 부터 고립 시키는 계략은  블레셋 제사장과 복술자의 교묘한 술책처럼 보였으나 그 뒤에는 사단이 있었다.

하나님은 여지껏 원하는 장소에 머문적이 없었다. 벧세메스도 싫어 하는 장소였으나 여호수아의 밭 터에 놓인 커다란 돌이 마음에 들었다.

백성들이 궤를 돌 위에 모셔 놓았다. 돌 위에 놓여서  남 동쪽을 내려다 보니 지평선 너머에 조그마한 언덕 위의 끝머리가 보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느 정도 위로를 받았다. 하나님의 궤가 돌 위에 놓이고 오래 머물 조짐이 보이자 사단은 조바심이 났다. 오랜 세대가 지나서, 지평선 너머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오른 아들을 보고 하나님의 마음이 변해서 아들을 묶은 줄을 풀어 손발을 자유롭게 하면 이는 사단에게는 커다란 낭패였다.

언덕이 보이지 않는 다른 곳이 필요했다. 궤가 벧세메스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골몰하던 사단은 히브리 부족의 커다란 약점인 걱정과 염려와 이를 다스리는 번뇌를 떠 올렸다. 금 독종과 금 쥐 정도면 히브리 인들에게 호기심과 번뇌를 심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참으로 교묘했다. 금, 특히 정금은 순종하는 믿음을 나타냈다. 이물질이 안 섞인 순수한 믿음이었다. 블레셋이 금으로 만든 제물을 바치자 이를 본 벧세메스 사람들은 감탄했다. 자신들 보다 더 깨끗한 믿음을 지녔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애굽의 박사들은 블레셋도 마침내 여호와에게 굴복했다며 끌끌 혀를 찼다. 지성으로 가득 찬 헬라인들조차 극히 일부만 금으로 만든 제물의 흉계를 알아 챘을 뿐이었다.

히브리 부족의 제사장들 중에서도 블레셋의 제물이 꺼림직하다고 말을 꺼냈으나, 대세를  막기에는 부족하였다. 더군다나 금이 상징하는 온전한 믿음을 거부할 자는 없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이라고 해서 어떠한 모양이라도 다 받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좋아 하시는 믿음의 모양이 따로 있었다. 이를 분별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믿음의 경계였다.

지난 날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 정탐군 사건으로  사십여 년 동안 광야를 헤맬 때에, 모든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해서 기울어 졌다고 여호와 전쟁기에 기록 된 모압의 경계로 걷는 장정만 육십여 만명 되는 부족을 이끌고 간  이유였다.

경계의 한 편은 강한 나라 모압이었고 다른 한편은 두려운 아모리 부족이 사는 나라였다.  당시에 경계를 따라 숨을 죽이고 지나갔다. 몇년이 걸렸다.

어느 편이든 한쪽으로 한 발작이라도 더 내밀다 들키면  이들의 행군을 지켜 보던  모압이나 아모리 족속의 군대가 칼이나 창으로 찔렀다. 그러면서 믿음의 경계를 판단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들었다.

금으로 만들었어도 흉칙한 독종이나 쥐의 모습은 하나님이 증오 하시는 믿음의 모양새였다. 하지만 순수한 믿음이라고 여긴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를 즐거이 받아 들이고 말았다.

금 독종과 쥐의 형상을 보고나서  요동치는 믿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벧세메스 백성은 언약궤를 열고야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백성은 총회를 열고 언약궤를 내 보내기로 정했다.

벧세메스를 떠나는 궤의 뒷 모습을 보고 아들의 죽음이 확정 되었음을 알고 사단은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들의 죽음을 허락 하시고 부활 시키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으로 발길을 돌렸다. 궤가 이십여 년을 머문 아비나답의 집은 골짜기가 아니었다. 그는 산에 살았다.

금 독종과 쥐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이긴 전설 적인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이 저들이 신인 여호와의 명령을 거스려서 신의 손에 죽음을 당하게 만들었으므로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후부터 히브리 부족과 전쟁하려는 나라들은 금 독종이나 쥐가 없으면 대신 좋은 우양과 약대, 그리고 나귀를 길렀다. 그리고 전투에서 지더라도 히브리 부족이 가져 갈 수 있도록 한 켠에 안전하게 남겼다.

아말렉 왕 아각도 당연히 좋은 우양과,약대, 나귀를 따로 마련해 두었다. 진멸 시키라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군대를 끌고 내려오는 사울 왕을 막을 길이 없었다. 전쟁에서 참패해서 멀리 애굽 변경까지 몰렸다. 모든 군사가 참수를 당하고 아각만 잡혀 끌려왔다.

사울의 진영에 가득 찬, 자신이 일부러 남긴 좋은 가축들을 보고 아말렉의 아각 왕은 금 독종과 쥐의 경우처럼 좋은 가축은 사울 왕을 곤경에 몰아 넣을 것이니 흐뭇했다.  결국에는 자신이 히브리 부족을 이겼음을 알았다. 잃은 군대는 다시 모으면 그 뿐이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울 왕 앞으로 끌려간 아각은 그 옆에 함께 한 선지자 사무엘을 보자, 그에게 조차 자신의 제물이 인정 받았다고 여겼다. 아각은 자신이 전쟁에서 이겼음을 확신하고 사망의 괴로움이 지나갔다..하며 소리 질렀다.

사무엘은 당황하는 사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호와 앞에서 칼로 아각 왕을 찍어 쪼갰다.

아말렉의 가축을 진멸 시키는 일은 블레셋의 금 독종과 금 쥐를 녹여 없애는 일과 같이 중요한 임무였다.  아말렉을 침공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축을 죽이지 않고 끌고 온 사울을 질타하였다.

진멸은 하나님 만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이었다. 세상의 왕들은 진멸 시키라는 명령을 절대로 내리지 않았다. 진멸 시켜서 약탈물이 남지 않으면 백성은 서슴치 않고 왕을 떠났으므로 노획물이 없는 승리는 승리가 아니었다. 백성을 두려워 않는 왕을 백성은 경멸하였다. 제사장 조차 여호와를 떠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진멸 시키라는 율법이었다.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세가지였는데..

빼앗긴 언약궤와, 진멸, 그리고 세번 째는 죽음에 대한 권한이었다. 사무엘은 세번 째 권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히브리 부족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사무엘의 꾸중을 듣는 사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요리사가 마지막으로 사무엘을 만난 곳은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서였다. 사무엘의 은밀한 전갈을 받고 이새의 집으로 갔다.

지난 날과 마찬가지로 사무엘이 준비한 암 소의 넓적 다리로 요리사는  왕의 즉위식에 사용 될 음식을 만들었다. 떡과 포도주도 함께 차렸다. 이새는 여덟 아들을 두었다. 첫 아들이 들어 오자 사무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앞에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를 옆에서 듣던 요리사는 놀라서 사무엘을 쳐다 보았다. 사무엘의 말은 뜻밖이었다. 흰 머리가 그를 더욱 늙게 보였다.

사무엘도 순간 아차 싶었던지 요리사에게 쑥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지난 날 사울이 사무엘이 있던 성으로 오기 전날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내일 이맘 때에 베냐민 사람을 네게 보내리라 하였다. 다음 날 산당을 오가면서도 그는 지나 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이 말씀 하신 사람이 이 사람인지, 혹 저 사람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판단은 하나님의 몫이었다.

성문 아래를 지나 가려는 때에 들어 오는 젊은이가 눈에 띄었는데, 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라...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야 비로서 사무엘은 사울을 제대로 바라 보고 판단을 내렸다. 준수하고 키는 모든 백성 보다 어깨 위는 더 높았다. 하나님에 대한 사무엘의 완벽한 순종이었다.

나이 들어 사무엘은 순종이 무뎌졌음을 깨달았다. 그가 하나님 보다 먼저 엘리압을 판단하였다.

하나님의 꾸짖음이 들렸다.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마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

오금이 저렸다. 자신이 입은 제사장 제복인 에봇이 부끄러웠다. 제사를 드릴 제물의 피가 묻지 않은 깨끗하기 그지 없었다. 요리사도 사무엘도 눈물을 훔쳤다.

양 치던 막내 아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리고 왕의 즉위식의 마지막 절차인 음식을 택하는 때가 되었다. 사무엘과 요리사는 숨을 죽였다.

소년 다윗은 서슴치 않고 포도주가 담긴 부대를 손에 잡았다. 그제서야 사무엘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무엘과 요리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두루마리의 기록은 여기까지였다. 쿡은 지금 온 유대 땅을 들썩이게 만든 나사렛 예수님을 떠 올렸다. 그 분은 왕이셨다. 왕이 되는 즉위식의 마지막 절차는 요리사 자신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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