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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7일 01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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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 인의 소망
레위 인에게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살던 성읍을 떠났다…
 
송사보다 율법이 먼저 있었다. 훗날에 있을 송사에 대비한 잣대가 율법이었으므로 율법은 송사에 대한 예언이며 언약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둘 사이에 관련이 전혀 없다시피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려면 율법에 숨겨진 하나님의 소망, 배려, 변호를 찾아야만 되었다. 그 안에 정죄는 없었다.  
송사가 들어 오면 나는 서고에 들어가 벽에 가득 채워진 두루마리 중에서 해당 되는 율법이 적힌 두루마리를 꺼내어 펼치고 침상 끝에 걸터 앉았다. 그러기를 여러 날이 지날 때도 있었다. 응답은 주로 해가 뜨기 전에 들렸다. 문밖에는 송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처음 제사장이 되어서는 판결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서 몇 달을 문 밖으로 나오지 않은 적도 많았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의 짜증이 들렸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기도가 길어 지면 반대로 응답이 빨리 왔다. 그리고 어느덧 판결을 빨리 내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의 판결에 만족하지 않는 때도 많았다. 어떤 이들은 나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다른 제사장이 있는 성읍으로 송사를 옮겼다.
 
판결의 음성은 감동으로 나타났다. 깊은 감동에 젖어 며칠을 엎드려 기도 드리는 날이 점차 많아졌다. 감동에는 고통이 따르기도 했는데 물론 육체의 고통은 아니었다. 심령이 쓰라렸다. 그렇다고 상하지 않았다. 상하면 치유가 즉시 뒤따랐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리는 판단은 세상이 기대하는 판결과는 사뭇 달랐으므로 송사를 제기한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점차 율법에 대하여 부담을 가졌다. 율법은 그 움직임을 줄였고 동시에 율법의 이해 되지 않는 부분도 늘어갔다. 이러한 경향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처음 율법을 받아서 산을 내려 온 때부터 두드러졌다.
 
판결을 내리는 근거가 되는 율법에 하나님이 남기신 배려가 들어 있음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부정한 여인에 관한 송사를 맡고서였다. 의심의 율법이라고 불렸다.
 
송사가 열리기 전에 나는 많은 기도를 드렸다. 부정한 여인에 관한 율법은 모세가 전해 주었지만 의심의 율법이라고 불리는 이 율법에 의해서 실제로 송사가 열린 적은 없었다. 부정한 여인은 관례대로 돌로 치는 형벌이 내려졌으나 나는 굳이 율법에 적힌 절차에 의해서 판결을 내리겠다고 선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다른 성읍의 제사장들도 의아심을 갖고 왔다.
 
여인은 남편에게 들키지도 않았고 그 더러운 일에 증인도 없었다. 현장에서 잡힌 것도 아니었다. 남편의 의심에서 비롯 되었다.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과 사람과의 송사이니 제사장이 아니고 재판관에게 가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 되었으나 나는 굳이 이 송사를 맡았다.
여인에 관한 일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율법에 들어 있는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증명하고 싶었다.
 
율법에 쓰여진 대로 나는 소제와 쓴 물을 준비 시켰다.
소제는 에바의 십분 지 일 되는 보리 가루였으며 기름도 붓지 않고 유향도 섞지 않았다.
토기에 담은 물에 회당 바닥의 티끌을 손으로 쓸어 담아서 토기에 넣으면 쓴 물이 되었다.
두루마리에 저주의 말을 적고 토기에 담긴 쓴 물에 넣어 적셨다.
 
여인은 제단 앞에 나와 보리 가루로 만든 의심의 소제를 흔들며 죄악을 생각하고 난 후에 토기에 담긴 쓴 물을 마셨다.
여인이 부정하였으면 마신 물이 쓰게 되어 여인의 배가 부어 오르고 넓적다리가 떨어질 것이었다.
 
여인은 시킨 대로 쓴 물을 마셨다. 침묵이 회당을 감돌았다. 여러 식경이 지났다. 아무런 일도 여인에게 일어 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여인이 부정하였는지 아닌지는 여인 만이 알았다. 나는 여인의 표정도 쳐다 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였다.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에게 여인의 부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정을 판단하는 이 율법이 전해진 이래로 저주를 받아서 넓적다리가 떨어지는 일은 여인의 부정과 관계치 않고 절대 일어 나지 않았다. 
 
여인을 회당에 끌고 온 남자의 식구들과 그리고 성읍의 장로들도 불만이 쌓였다. 설사 부정의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 일지라도 토기의 물을 마셔도 배가 부어 오르지 조차 않았다. 여인 자신도 당황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의문을 가졌다.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따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송사를 제기한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돌로 치는 형벌을 판결하는 다른 성읍으로 갔다. 아니면 아예 멀리 애굽으로 송사를 옮겼다. 제사장들은 이에 당황하여 송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슬며시 이 율법을 시행하지 않는 방법으로 비켜갔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은 율법에 수도 없이 많았다.
여인에게 아무런 저주가 내리지 않았지만 이는 여인이 부정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에덴 동산에서 여인이 떠난 이후로 하나님은 여인을 세심히 보살펴 주셨다. 자신의 갈비대가 떨어져 나가는지 몰랐고, 하나님이 잠을 재워서 알 수 없었다는 항변을 다 받아 준다 하더라도 깨어 나서도 가슴의 허전함을 모를 정도로 둔한 남자는, 여인이 선악과를 먹은 이유를 이해 하지 못했다. 대신 하나님이 여인의 모든 사정을 이해하셨고 의심의 율법이 그 배려였다.
이것이 내가 굳이 부정한 여인의 송사를 재판관에게 맡기지 않고 내 자신이 떠 맡은 이유였다.                          
 
쓴 물을 마셔야 하는 의심의 법처럼 율법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배려를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배려가 반영 된 판결은 사람들의 기대나 예상과는 많이 어긋났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의 반발이 두드러졌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시도조차 꺼렸다.
 
하나님은 히브리 인들을 선택하셨지만 어떠한 권세나 능력을 주지 않았다. 주었더라도 이는 그 순간뿐이었다. 위기의 때가 지나면 받았던 능력은 곧 사라졌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되었음이 영원히 지속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음을 알고는 좌절해서 하나님 곁을 떠나기도 했다.
받은 권세를 이어 가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끝없이 듣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나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 대면하는 일을 극도로 피곤하게 여겼다. 이는 호렙산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거부하였다.
 
음성은 하나님이 지닌 가장 소중한 축복이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려 준 이유도 음성으로 들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음성 대신에 지닌 것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을 주셨다. 그것이 율법이었다. 율법은 아주 느슨한 법이었다. 법이라고까지 부르지 않아도 되었다. 법보다도 많이 낮은 단계인 규칙 정도였다.
 
인간이 율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해도 하나님은 인간이 율법을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고 싶었다. 그 보다 조금 더 진전이 있어서,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축복을 내리셨다. 그가 만약에 사소한, 아주 사소한 율법을 실제로 이행한다면 하나님은 창고의 열쇠를 던져 주셨다. 하지만 열쇠를 받은 자는 매우, 극히 적었다.
 
율법의 느슨한 면은 이방 신과 이를 추종하는 학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위협이 견디기 힘들어 제사장들과 회당 장들은 세상과 타협을 맺었다.
인간에게는 항상 극단 적인 자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율법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회당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안에서 잠근 한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는 율법주의자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워했으며 또한 이방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자, 율법에 의심을 가졌다.
의심은 점점 커져서, 우리 조상들이 네게브 사막 도시 가데스에 이르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대하여 확인 하려고 정탐꾼을 보내면서 절정에 달했다.
정탐꾼은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는 조직이었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열두 지파에서 보냈으니 정탐꾼도 열두 명이었다.
정탐꾼에게 주어진 임무는...
첫째, 어느 길로 올라 가야 좋은 지,
둘째, 어느 성읍으로 들어 가야 할 지에 대한 정탐이었다.
 
길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주겠다고 약속을 하신 땅이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일곱 개의 잘 닦여진 길이 있을 것으로 예상 되었다. 그래도 열두 지파가 한꺼번에 몰려 가면 혼잡이 일지 몰랐다. 그리고 일곱 개의 모든 길이 평탄 한 길이 틀림 없지만, 가장 험난하다고 여겨지는 길을 택해서 약간의 고생을 하게 되면 하나님 보기에 덜 송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읍도 약속 받았으므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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