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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7일 01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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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성전을 덮은 구름이 위로 떠오르면 구름이 가는 방향을 따라 떠났다. 육십여만 명의 걷는 장정과 이들에게 딸린 식솔들이 사는 장막은 광야에 넓게 흩어져 세워졌다. 이들이 거처하는 장막을 거두는 데는 이삼 일이나 걸렸다. 그러느라 떠오른 구름을 놓치면 안되었다.

한 번 움직인 구름은 기다리지 않고 흘러갔다. 하나님의 성막을 이동하는 일을 맡은 레위인들은 구름을 놓쳐서 성막이 가야 할 길을 잃지 않으려고 서로 순번을 정하여 하루 종일 성전을 덮은 구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구름의 움직임을 주시하였다.

어느 날 구름이 가는 방향을 따라 히브리 인 무리가 이동하고 있을 때에 골짜기는 깊었고 산은 유난히 높았다. 하늘에는 많은 구름이 떠있었는데 불어오는 서풍은 세상 구름과 여호와의 구름을 뒤섞었다.

사단은 저 구름이 없으면 너희가 자유롭다 유혹하였다. 그 말에 설왕설래 하였고 이를 안건에 올리기 위해 총회를 여는 동안 구름은 섞여서 구별이 되지 않았다. 모세는 분을 내었지만 이미 늦었다.

레위 인들이 하늘에 떠있는 여호와의 구름에서 눈을 떼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구름이라고 해서 특별히 색이 다르거나 일정한 모습을 지니지 않았다. 형상이 있으면 우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순식간에 섞인 구름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구름을 찾기는 불가능 하였다.

대열의 이동은 즉시 멈추었다 그리고 걷는 장정만 육십여 만 명이나 되는 히브리 인들은 아이들까지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 여호와의 구름이 저것이라고 가리켰다.

그날 따라 회색의 짙은 구름이 하늘을 온통 덮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도 잠을 자려는 사람은 없었다. 날이 밝아도 찾지 못한다면 이는 커다란 재앙이었다. 광야에서 길을 아는 자는 오직 구름뿐이었다. 모두들 오랜 동안 구름만 따라 다녔으므로 저들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였다.

스스로 길을 찾는 습관도 버렸고 사막을 오가는 상인들이 지닌 그들 나름의 위치를 알아내는 법을 잊은 지 오래 되었다. 날이 밝아도 하늘은 여전히 짙은 구름으로 가득 찼다. 바람에 따라 구름은 움직이며 모양을 변해 갔지만 어느 것이 여호와의 구름인지 알 길이 없었다. 레위인을 제외 한 모든 사람들은 사막의 모래 위에 덧옷을 깔고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가끔 가다 어린 약대가 어미에게 보채느라 우는 소리뿐이었다. 레위인은 누구랄 것도 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흔하던 바람도 멈추자 구름들도 흘러가지 못했고 따라서 모양도 변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하루가 지났다. 광야에 엎드린 이들의 등에는 모래가 쌓였다. 한 낮이 되자 머리에 둘러 쓴 두건 자락이 흔들렸다. 바람이 조금씩 불었다. 그리고 어느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동풍이었다. 애굽에 있을 적부터 동풍에는 하나님의 무언가가 실려 왔음을 기억 하였다. 동풍이 불기 시작하자 하늘을 쳐다보던 레위인들 사이에서 웅성거렸다.

구름이 움직였다. 짙은 회색의 많은 구름들이 동풍에 움직이면서 그 사이에 틈도 보였다. 구름은 서서히 흩어지면서 서편 하늘, 지평선 너머 사라져 가기 시작하였다. 구름의 수는 점차 적어졌고 대신 하늘이 나타났다. 반 나절이 지나면서 하늘에 남아 있는 구름이 훨씬 줄었다. 그러자 모세와 레위인에게는 다른 걱정이 생겼다. 여호와의 구름이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으면 어떻하나 하는 염려였다.

구름들이 사라진 저쪽을 다시 바라보았지만 가지 않고 머뭇거리는 구름 조각은 소수였다. 이제 하늘에는 남은 구름이 몇 조각 되지 않았다. 구름들은 바람을 타고 모양을 바꿔 가면서 사라지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한 개의 구름만이 남았다. 바람이 천천히 부는지 구름의 움직임도 느렸다. 하지만 저 조각구름이 여호와의 구름인지는 아는 방법이 없었다. 무턱 대고 따라 갈 수 없었다.

모세는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있는 증거 궤에 다가갔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간절히 요청을 드렸다. 어린 양 중에서 일년이 채 안된 수양을 제물로 잡아 사방에 피를 뿌렸다. 그러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각 구름은 이제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는 저곳으로 사라지려고 하였다.

모세는 언약궤를 어깨에서 내려서 땅 위에 놓도록 고핫 자손에게 명령 하였다. 열 두 지파의 족장들과 귀인들과 장로들은 모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는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길을 안내하는 구름이 멈추어야 언약궤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고핫 자손들의 어깨에 맨 궤를 땅에 내려놓은 다음에 구름은 내려와 궤를 덮었다.

구름보다 먼저 언약궤를 멈춘 적은 여지껏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저 구름이 돌아 온다 해도 바람을 타고 온다면 이는 하나님의 구름이 아니었다. 언약궤 위로 내려 와야만 되었다.

등불등 사소한 성막 기구에 대하여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응징이 있었다.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이었다. 모세의 형인 제사장아론의 두 아들은 향을 피우기 위하여 불을 가져 왔으나 엉뚱한 불을 가져 오는 바람에 하나님의 불길에 쌓여 죽음을 당하였다.
증거궤는 하나님 성막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이 모세와 만나고 율법을 내려 주시는 곳이었다. 음성을 듣기 전에 언약궤를 마음대로 땅 위에 내려놓는 일은 하나님에게 반하는 일이었지만 저 구름이 과연 하나님의 구름인지 구별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사막에서 땅속의 물길을 아는 분은 하나님뿐이었다. 광야에서 구름을 놓쳐서 길을 잃으면 모두가 죽음을 각오해야 되었다.

모세의 명령을 따라 언약궤를 메고 있던 고핫 자손들은 어깨에서 언약궤를 내려 놓았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결정이었다. 모두들 두려웠다. 여인들은 조그마한 소리로 흐느꼈다. 지난 날의 애굽 생활을 그리워 했던 자신들이 한스러웠다. 다시 용서 해주신다면 다시는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하였다.

저 멀리 사라지는 구름을 애타게 바라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렀다. 구름이 움직임을 멈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 흐른 후에 조각구름이 서서히 다가 왔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다. 반 나절이 다시 지나서 구름은 이윽고 언약궤 위에 멈추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언약궤 위에 구름이 멈추었다고 그 구름이 여호와의 구름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구름은 마침내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언약궤를 덮었다.

물이 모여 이루어진 구름에게 건조하기 그지없는 광야는 두려움이었다. 머금은 비를 내리기 전에 건조한 사막의 바람이 구름을 말려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구름에게는 생명의 끝이었다. 그래서 많은 비를 지닌 두터운 구름이라도 광야 위를 지날 적에는 높이 떠서 지나갔다.

특히 네게브 사막은 광범위 하고 매우 건조하여서 그 위를 지나는 구름들은 쉽게 증발되어 살아남기 힘들었다. 동풍에는 종종 하나님의 명령이 실려 있었기에 구름은 이를 거역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사막을 향한 동풍이 불기 시작하면 구름들은 긴장 하였고 작은 구름들은 서로 모여서 한 뭉치가 되었다. 그러면 사막을 지나는 동안 완전히 마르지 않고 약간의 조각구름으로 남았고 에게해에 이르면 습한 공기로 다시 커다란 구름이 되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광야를 지나면서 조각구름이 되었어도 큰 구름이 보이면 그리고 가서 붙으려고 애썼다. 어떻든 네게브만 지나면 습한 공기로 다시 제대로 된 구름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동풍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이는 커다란 고역이 되었다. 이러한 염려 덕분에 네게브 사막 위의 구름은 시름으로 짙은 회색을 띠었다. 유대인들은 회색 구름은 많은 비를 머금었다고 반겼다.

반대로 건너편 해가지는 서편, 지중해의 구름들은 밝고 환한 색을 가졌다. 에게해 건너 아덴에는 숲이 우거져서 많은 물기를 하늘로 올렸고 그 곳의 구름들은 점점 커졌고 일부는 푸른 색으로 보였다. 이에 비하면 광야의 구름은 마르고 회색이었다. 그래도 하늘 높이 떠있기만 하면 그다지 커다란 염려는 없었다.

구름은 으례히 하늘 높이 떠 있어서 광야를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그늘이나 만들어 주면 된다고 믿었다. 하나님이 구름에게 땅으로 내려와 성전을 덮으라 하시니 동방의 구름들과 서편 에게해 건너 구름들은 이를 부러워하였다.

구름의 평안한 처소는 높은 하늘이었으나 성막을 덮느라고 땅에 내려앉으니 머금은 물기는 눈에 띠게 건조 되었고 구름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러자 좀 더 커다란 구름이 내려 왔으나 이도 곧 말랐다. 아주 커다란 구름이 내려 왔는데 이도 건조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름들은 당황하였다. 동편에서 부는 바람은 커다란 구름을 쉬지 않고 불어 보냈고 그제서야 조금 견뎠다. 그래도 견디기 힘들면 이른 아침이 되기도 전에 성막 위 하늘로 피하여 급히 올라갔고, 이를 본 사람들은 성전의 구름이 올라갔으니 이동을 해야 된다며 장막을 거두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동풍이 구름을 광야로 몰아가면서 이들 동방의 나라에는 구름을 보기 힘들었다.

기근이 들기 시작 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바람이 계속해서 구름을 몰아주었다. 이틀을 견디기도 하였고 한 달이든지 아니면 일 년을 견디기도 하며 성막을 지켰다.

높은 곳에 있다 낮은 곳으로 내려오니 구름에게는 걸리적 거리는 것이 많았다. 흙은 매우 거칠었다. 흙이 닿으면 상처가 생겼다. 구름에게 땅은 척박한 곳이었다. 광야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구름을 아예 적으로 삼았다. 구름을 말리려고 세찬 모래 바람으로 구름을 덮었다. 바람이 아니더라도 뜨거운 사막의 열기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제물로 받친 가축들의 피는 땅에 뿌려졌는데 마르면서 구름을 붉게 물들였다. 밤이 되면 제물을 태우느라 일으키는 불로 인하여 피 묻힌 구름은 더욱 붉게 보였다.

구름 속에 머금은 물이 증발 되어 가는 동안의 고난은 해산하는 여인만이 아는 고통이었다. 구름에게는 갈등이 일었다. 이러다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함께 마르는 것이나 아닌지 두려웠다.

그래서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구름에게 소망이 없기에 소망을 지니라고 부러 네게브 사막 위를 지나게 하는가 싶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광야는 끊임 없이 방해하였지만 구름은 땅으로 내려와 성전을 덮지 못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땅으로 내려와 하나님의 성막을 덮은 구름이 마르면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즉시 내려와 덮었다.

그러느라 많은 구름이 하늘에 떠있었다. 그들을 무엇인가 깊이 찔렀다. 고통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천둥소리라고 하였다. 찌르는 고통은 참기 힘들었지만 유대인은 구름을 쳐다보며 소망을 가지기에 견딜 수 있었다. 사람이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는 일은 극히 적었다. 쳐다보아야 잠시 뿐이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구름은 인간의 시선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찔리는 고난은 있었지만 반드시 아픔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무엇이었다. 구름에게 찔리는 고통이 일어나면 유대인들은 구름을 올려다 보며 무지개라고 불렀다. 구름은 저들 속에다 하나님이 감추신 비밀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리고 구름들은 스스로 이를 믿음이라고 불렀다.

히브리 인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른다 하였지만 구름에게는 저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래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있는 동안은 구름에게는 고난이었다. 반면에 구름이 성막을 덮고 있는 한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인간에게는 평안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름은 본디 높은 하늘에 있었으나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죄악으로 땅으로 내려 왔으니 이는 은혜와 구름에게는 고난이었고 인간에게는 복이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일이 제자리에 위치하면 인간에게는 고난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리해서라도 구름에게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수고를 끼쳤다. 이는 천지를 바꾸는 일이었으므로 여호와의 사자는 두려움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사이에 몸을 숨겼다.

하나님의 일이 땅으로 내려오면 인간에게는 복이 되었고 반면에 하나님에게는 고난이었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태어 나셨다.

히브리 인들이 저들의 조상을 잊지 않는 것처럼 구름도 자신들이 지난 날 광야에서 성막을 덮으며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특히 성막을 덮고 있으면, 광야의 지독한 건조함에 구름은 순식간에 마르며 죽음에 가까이 이르렀다. 단에서 제물로 뿌리는 일년 된 어린 양의 피가 구름에 묻으면서 잃어버린 물기를 대신했고 그렇게 해서 생명이 이어졌음을 깊이 새겼다.

 길 잃은 어린양의 흘린 피 냄새가 구름에게 올라오면 바람에게 부탁하여 그리로 구름을 보냈다. 다시 살리기에는 이미 늦기는 했어도 조그마한 조각구름 하나가 어린양의 주검이 있는 광야 위에서 항상 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유대 지방을 지나던 구름은 땅 위의 성전을 발견하고 놀랐다. 구름을 부르지 않은 하나님이 저를 잊었다고 생각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느라 일으킨 먼지 구름으로 가득 덮여서 성전이 어디에 있는 지 찾기 어려웠다.

유대지방에 이처럼 많은 먼지 구름이 인 것은 지난 날 애굽을 떠난 저들의 조상이 시내 광야를 헤매면서 모래 먼지를 일으킨 이후로 처음이었다. 동풍은 불지 않았으나 구름들은 긴장하였다.

그러기를 다시 여러 해가 지났다. 어느 날 먼지 구름 사이에서 비릿하지만 익숙한 냄새가 뜨거운 열기를 타고 올라왔다. 어린 양의 흘린 피 냄새였다. 그럴 리가 없었다. 피를 뿌리는 제사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느 회당에서도 더 이상 피를 뿌리지 않았다. 대신 금이나 은을 제단 위에 뿌렸다.

예수를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이 일으키던 먼지 구름도 더 이상 일지 않았다. 그러자 감추어졌던 성전이 뚜렷이 보였다. 예루살렘 북편의 조그마한 언덕이었다.

구름은 당황하였다. 오래 전에 광야에서 성전을 덮었듯이 구름은 땅으로 내려가 그가 있는 나무로 된 성전을 덮어야 되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바람을 찾았다. 이날 따라 모든 바람이 잠이 들었다. 구름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애는 탔지만 그들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다. 땅으로 내려와 성전을 덮으라는 음성도 없었지만 음성을 전해 줄 모세도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담은 율법이 있었지만 제사장들은 두루마리에 담아, 둘둘 말아서 벽장 깊숙이 율법을 가두고, 침묵 시켰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열 두 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는 세상 구름과 하나님의 구름이 섞이는 지 확인하려고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 그들이 정하지 못할 일이 있으면 하늘의 구름을 올려 보았다. 하나님의 구름을 찾으면 결정하였다. 이러한 관습은 자랑스럽게 전해졌다.

제자들은 언덕이 저 멀리 보이는 들판에 모였다. 예수님이 묶여있는 골고다 언덕에 가야 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려웠다. 그러한 공포는 처음이었다. 스승과 함께 있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좌절이 엄습했다.

제자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진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십자가에 고개를 숙이고 묶여 있는 모습이 지는 저녁 해 빛에 비추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바심이 일었다. 저러다 죽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었다.

제자들은 스승이 죽어가고 있는 언덕으로 못 가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들이 자랑하는 모세가 해답을 주었다.

광야에서 모세는 성막을 덮은 구름이 있어야 이동할 수 있다고 누차 말하였다. 물을 찾아 성급히 움직이기를 재촉하는 히브리 인들에게 모세는 항상 구름만을 주시하라고 꾸짖었었다.

 사방으로 멀리까지 우물 파는 자들을 보냈다. 땅 속의 물길을 찾았다는 보고를 받아도 그곳까지 움직이지 않고 구름이 길을 알려 줄 때까지 기다렸다. 구름이 움직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저들이 땅 속의 물길을 스스로 찾아 우물을 팠었다. 물은 쓴 맛을 냈다. 물을 마신 어른들은 구토를 하였고 아이들은 열병에 걸렸었다. 그들은 즉시 이름을 붙였다. 마라였다.

전해 내려오는 모세의 말은 유대인에게 종종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충실한 제자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구름이 언덕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도 없었다. 서둘러 움직이는 바람에 구름을 놓쳐서 모세에게 혼이 났던 저들의 조상들을 떠올렸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며 위로 삼았다. 구름이 십자가 위에 내려오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저 언덕까지 쉬지 않고 달려 갈 수 있었다. 지난 밤 대제사장의 정원에 들어가려고 허둥대다가 문을 지키는 여종에게 수모를 당한 얘기를 들었다.

친구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춥다고 불까지 쬔 일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오늘은 밤이 되도 겉옷을 입지 않았다. 이 정도의 추위는 참을 만 한 자신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느라고 들판에서 종종 새우잠을 잤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지 몰랐다. 그래도 꺼림직했다. 둘러앉은 제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언덕을 등지고 앉으려고 애썼다.

아주 약한 바람이지만 이를 타고 구름은 모였다. 하나님이 내려와 성막을 덮으라 하시면 지체 없이 내려갈 준비가 다 되었으나 어떠한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세워진 나무에 매달린 아들의 신음 소리만 들렸다. 구름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어도 내려가자고 재촉이었다.

구름이 많이 모이니 흰색은 회색이 되었고 짙은 회색이 된 후에는 마침내 검정 구름이 되었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지면을 적셨다. 구름이 땅에 있으면 안개라고 불렸다. 애당초 땅에서 올라왔다. 그래서 안개가 되었고 위로 올라가서 구름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구름은 높이 떠있기를 바랬다. 낮게 깔린 구름을 얕보았다. 그래서 땅에 있는 안개가 수치스러웠었다.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안개가 되었으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덮을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구름은 안개가 되는 것을 수치럽게 여긴 일이 부끄러웠다.

성막을 덮으면서 바싹 마르는 것이 두려웠던 일들이 새삼 떠올랐다. 건조한 구름은 구름이 아니니 땅으로 내려와 마른 구름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위로하는 세상구름이 부러웠었다.

성막을 덮느라고 죽음을 맞이하지 말고 서둘러 하늘로 떠오르라고 조언하는 지혜자들을 고마워하던 일이 수치스러웠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목마르다 하시는 소리를 들은 구름들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 머금었던 물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몇 방울의 물은 예수님 입술에 닿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이른 비가 내린다고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물을 떨어뜨린 구름은 즉시 말라갔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래도 구름들은 개의치 않았다. 땅으로 내려가 예수님을 덮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구름은 땅으로 내려가지는 못하지만 저들이 잘만 하면 머금은 피를 십자가 위로 떨어뜨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서로들 더욱 강하게 모여 껴안았다.

지난 날 광야 시절에 성전의 제단에서 사람들이 드린 번제와 희생물과 태우는 피는 성전을 덮은 구름은 물론이고 떠있는 구름에게도 가득 묻었다. 희었던 구름들은 이를 떨쳐내려고 몸부림치기도 했으나 한 번 묻으니 떨쳐지지 않았다.

피를 머금은 구름들은 여기 저기 떠돌아다녔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산당이 지어져 있는 높은 산이나 낮은 산 위를 지날 때는 서풍이 불어 구름이 지나 가는 길을 방해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높은 산을 명예라고 불렀고 낮은 산을 겸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산당이 지어져 있는 푸른 나무를 특히 좋아해서 나무는 평화, 가지는 지혜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저들이 머금은 피를 모아서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의 흘린 피를 대신하고 싶었다. 그러면 예수님이 기운을 차릴 수 있다는 생각에 구름들은 그 동안 머금었던 피를 힘껏 모았다. 오랜 세대가 지났지만 피가 완전히 마르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묻는 피에 짜증을 내었다. 그 많은 피를 태우고도 모자라 땅에 물같이 뿌리라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제 육시에서부터 모으기 시작 하였는데 제구시가 되니 모든 피가 모여졌다. 참으로 많은 피였다.

그 피에는 번제물로 바친 수송아지의 피와 속죄제, 화목제의 피가 있었다.

양이나 염소의 피는 제단의 북편을 지나는 구름에게 묻었다.

뿌린 피도 있었고 새의 피처럼 흘린 피도 섞였다.

제단의 사면에 뿌려진 피와 단의 곁에 뿌려진 피, 뿌리고도 남아서 단 밑에 흘린 피가 있었다. 그렇지 못하고 번제단 밑에 전부 쏟은 피도 있었다. 제사장의 속죄물이었다. 손가락에 찍은 피와 단의 뿔에 바른 피도 구름에 묻혔다.

머금었던 피를 드러내니 흰색의 구름은 점차 붉은 빛을 띠었고 검붉게 되었다. 아래 있는 제사장들과 회당장, 서기관들은 구름이 불 같다고 웅성거렸다. 검붉은 구름으로 해는 빛을 잃었고 하늘은 마침내 어두워졌다.

구름은 피로 가득 찼지만 땅 위에 세워진 십자가로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구름은 끼리끼리 뭉쳤다. 약간의 피가 빗물에 섞여 떨어졌다. 예수님 육체에는 묻히지 못했다. 대신, 예수의 죽음을 기다리며 예루살렘 성벽과 아니면 저들의 회당 지붕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제사장들의 오른 귓부리에 떨어졌다. 오른 손 엄지가락에도 떨어졌다. 샌들을 신은 자에게는 오른 발 엄지 발가락에 묻었다.

집의 지붕에서 함께 지켜보며 율법을 배우던 그들의 아들들에게도 육체의 같은 곳에 떨어진 피가 묻었다. 어느 회당의 낡은 지붕으로 떨어진 피는 단 주위를 적셨다.

그 순간 구름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외마디 소리를 들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잠자는 구름을 깨워주던 구름 속의 무지개도 놀라서 땅으로 미끄러졌다. 성소의 휘장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어 땅으로 떨어진 하나님의 무지개를 황급히 감추었다.

. 십자가는 본래 하늘에 있어야 하지만

땅에 내려 왔으니

믿지 않는 자들은

죄를 감추려고 내려 왔다 하고

믿는 자들은

회개를 변론하러 내려 왔다고 합니다.

율법은 본래 하늘에 있어야 하지만

땅으로 내려와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주려 회당을 덮었어도

믿는 자들조차 율법주의라고 놀리니

이는 율법에게 고난이 되었습니다.

뱀이 유혹하기를

율법을 놓아주면 율법도 평안하고

놓아준 너희도 평안하다 합니다

십자가에 박힌 못을 뽑으면

흐르는 피가 멈춘다 합니다

안개만 땅으로 올라오게 하심은

훗날 독생자 가리기 위해서였으나

구름은 본래 안개였어도

높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안개를 수치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은 땅으로 내려와 성전을 덮으라 하시니

이는 구름에게 고난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본래 하늘에 있었지만

나를 덮기 위하여 내려 왔을 지라도

믿음의 고난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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