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군인(2)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5월 15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신재홍칼럼
2011년12월27일 01시43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마지막 군인(2)

바벨탑

애굽이 하나의 나라였지만 히브리 인들은 라암셋 말고도 여러 작은 도시에 퍼져 지냈고 사백여 년이나 흘렀으므로 언어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들이 애굽을 떠나 광야에 모두 모였을 때 언어 때문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바벨탑이 무너지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끼리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 어느 세대에서도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부족이 이처럼 한 곳에 모인 적은 일찌기 없었다.

사백여 년 동안 흩어져 살았어도 히브리 인은 하나의 민족이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의 언어였다. 자연히 이들도 하나의 공통된 글을 사용하였고 관습도 일치 되어갔다. 다른 방언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러자 지난 날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였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새로운 바벨탑을 쌓을 궁리에 몰두 하였다. 그들의 조상은 벽돌로 탑을 쌓았어도 무너졌으나 이제는 애굽에서 밀짚 섞은 벽돌을 만드는 법을 알았으니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탑을 쌓을 자신에 넘쳤다. 가나안으로 정탐꾼을 보내기로 한 결정은 바벨탑을 만들 좋은 핑계가 되었다. 탑이 완성된 때는 정탐꾼이 가나안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가나안으로 보낸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데스바네아로 돌아 온 후에 모든 것이 급변하였다. 에스겔 골짜기에서 돌아온 열두명의 정탐꾼은 모세 앞에서는 감히 다른 얘기를 꺼내지 못하였지만 각 지파로 돌아가서 그들의 총회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내었다.

가나안에는 모세가 말 한대로 젖과 꿀이 흘렀다. 모세의 요청으로 그 곳에서 가져온 포도는 알이 굵고 즙이 많았다. 애굽에서 보았던 포도와 같았다. 하지만 그 포도를 가져 오기 위해서 이들은 아낙 자손의 밭을 밤에 몰래 숨어들었다.

모세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어서 포도밭에 들어갔지만 커다란 키의 아낙 자손을 보고는 숨이 막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는 이미 자기들이 경작할 땅은 한 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산지에는 헷인과 여부스인, 아모리인이 가득 있었고 해변과 요단강에는 가나안인의 배들로 가득 찼다.

심지어 비어 있을 것으로 예상 된 남쪽의 거친 광대한 모래 사막 조차도 아말렉인의 장막이 줄지어 세워졌다. 사백 년 동안 가나안을 떠나 애굽에 사는 동안에 여러 부족들이 이미 다 차지하였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양을 치던 세대는 이미 지나 갔음을 깨달았다. 정탐꾼은 거대한 장부인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으니 가나안은 포기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떠나기 전에 모세는 이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면 일곱 족속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주의를 주었다.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의 이름을 일일이 떠나는 정탐꾼의 약대 안장에 새겼다. 그리고 이들이 저희 보다 수가 많고 힘이 있다고 알렸을 때부터 정탐꾼은 원망을 가졌다. 그러므로 아낙 자손이 있어서 가나안에 들어 가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였다.

정탐꾼들이 각기 지파로 돌아가서 전하는 보고를 듣고 지파의 두령과 귀인들과 장로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다른 지파의 총회에서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 이들은 결단의 시기가 의외로 빨리 다가 왔음에 당황하였다. 연락하는 자들이 탄 약대는 밤새도록 서신을 전하느라 한 밤중에도 먼지를 일으키며 지파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총회가 열리는 장막의 밖에서는 가나안에 대해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안에서 들리는 탄식 소리에 가슴을 졸였다. 이 날 밤처럼 모든 지파가 하나의 결론에 쉽게 도달 한 적은 여태껏 없었다. 저의 조상들이 바벨탑을 세우는 데는 그래도 많은 시일이 걸렸으나 이들이 지난 날 하나님이 무너뜨린 탑을 다시 세우는 데는 한 밤이면 충분하였다. 그리고 모세를 대신할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는 한 마디의 결론으로 바벨탑을 완성하였다.

이 쌓는 것은 신에 대한 보이는 적극적인 도전이고, 평면으로 넓게 땅을 소유하는 일은 소극적인 복종이었다.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소극적인 것보다는 이들은 적극적인 길을 선택하였다.

의견을 모은 각 지파의 장들은 다음 날 모세에게 갔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이들은 모세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밖에 서서 모든 히브리 인 들이 모세와 저들이 벌이는 논쟁을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모세의 변명을 모두가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세가 말을 마칠 때마다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고 어쨌든 정탐꾼들의 보고가 밤사이에 퍼진 소문대로 사실임을 알게 되자 절망에 울부짖었다. 모세가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림으로써 저들은 자신이 이겼음을 알았다. 모세는 저들의 함성에 못 이겨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으므로 여느 때와 같이 무릎을 꿇고 엎드렸을 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다.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지리라 하신 한 마디에 저들의 바벨탑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함으로써 한 개의 벽돌도 남기지 아니하고 부수어 뜨렸다.

계수 된 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던지 여파는 매우 컸다. 모든 무리가 커다란 소동에 휩쌓였다. 일부는 장로에게 달려갔으며 두루마리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강요 하였다.

이런 일이 있으면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밤에 몰래 다른 곳으로 떠났다. 도망한 자의 경우 남아 있는 가족이 도망 간 자를 대신하였다. 애굽으로 아주 떠난 자도 있었고 아니면 이 광야만을 떠나서 멀리서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며 날을 보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저의 이름을 두루마리에서 지우기를 바라는 자는 자원 하여 이름을 올려 주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교체 되었다. 계수가 끝난 후 나이가 이십 세가 넘어 기록되지 않은 자 중에서는 이름을 지우기 원하는 자를 대신 하려는 이도 있었다.

그 대가로 양떼를 주고받았다. 두루마리의 기록을 지우지는 않았다. 모세가 두루마리가 담긴 봉인된 토기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단지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어차피 애굽에 있을 때부터 이름 없이 지내 왔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열두 지파의 두령과 장로와 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세 없이 총회를 십 수 차례 열었다. 난상토론이 이어졌고 고함이 밖에까지 들렸다. 하나님의 분노가 모세를 통하여 전해진 후 그리고 좌절과 당황함의 날이 지나고 흥분이 점차 가라앉았다.

히브리 인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은 모여서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번 되뇌였다. 이는 헛점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들다웠다. 그리고 말씀을 수도 없이 소리 내며 묵상할수록 차분해졌다. 마침내 그들 모두에게 부여된 번호에는 끝 번호가 있음을 떠올렸다. 이전까지는 마지막 번호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제시 된 여러 가지 계략 중에 두 가지를 택하였다.

너희 시체가 광야에 엎드려지리라는 한 마디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번호나 이름이 그리 중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체가 광야에 엎어지리라 하신 이후로는 매우 중요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낙오 되어 광야에서 시체가 남아 있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번호는 잃은 사람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사람들을 풀어서 광야로 보내서 쓰러진 시체를 발견하면 가져 오도록 하였다. 이후로 이들은 죽은 자의 시체는 반드시 장막 안으로 가져 왔다. 실수로 길을 잃어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한 자라도 그 시체를 찾아내어 가져 왔다. 이방의 나라에서 죽음을 당했어도 가나안으로 주검을 옮겼다. 광야에 엎드려진 시체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허사가 될 것을 바래서였다.

두 번째 계략대로 마지막 번호를 가진 사람을 광야 밖으로 내보내기로 정하였다. 끝 번호가 없다는 것은 계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면 계수를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봉인 된 토기를 열어 두루마리에 적힌 마지막 번호의 남자를 찾아내었다.

어느 날 밤에 총회가 열리는 장막으로 그를 조심스레 불러 들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들려주었다. 걷는 장정만 육십여 만 명이나 되는 이들의 운명이 걸린 결정을 무시할 만한 권세를 그에게 주지 않아야 되었다.

그래서 비록 장막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총회가 열리는 장막 안에 들어선 그에게 웅장함과 둘러싼 두령과 장로들, 귀인들이 입은 화려한 옷에 짓눌려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장막의 문을 지키는 자는 들어서려는 그에게 너는 양치는 자가 아니냐 하며 위협하였다. 젊었던 그는 애굽에 있을 때에도 이런 화려한 장식과 대낮 같이 밝혀 주는 많은 촛불을 본적이 없었다. 장막 안이 밤에도 이처럼 밝을 수 있음에 놀랐다.

그가 본 가장 밝은 빛은 가축을 치러 나가서 광야에서 밤을 지새울 때 떨어지는 별똥이 전부였다. 저들은 양떼의 냄새가 배어 있는 그의 겉옷을 벗기고 새로운 것으로 입혔다. 그리고 처음 보는 패물들이 담겨있는 상자도 약대에 실었다. 저들이 걸친 채색 겉옷의 위엄에 눌려 감히 아무런 대꾸도 못 하였다. 저들이 주는 패물이 실린 약대에 올라타고 광야 밖을 향하여 길을 떠난 때는 한 밤중이었다.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계수 된 자는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며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신 말씀은 모두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계수 된 60여 만 명이 한 날 한시에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줄로 믿었다. 그래서 이름이 기록 된 장정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그들을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나이든 사람들만이 가축을 몰고 광야로 나갔다. 죽기를 기다리며 장막에 누워 있었으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병든 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병들어 죽었고 졸다가 사막에서 길을 잃은 자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나이가 다 차서 죽을 자는 그렇게 죽어 갔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광야를 헤매었지만 하나님이 이끄는 전쟁이 아니고는 전쟁으로 죽은 자는 없었다.

광야 밖에서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 많은 병사들이 죽어 가고 나라가 없어지고 부족이 사라졌고 살아남은 자는 노예로 잡혀 갔으나 이러한 불행은 이들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광야 길이 고난이라고 핑계거리가 되었으나 실상은 안전 지대였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또 다시 세월이 지났다. 전쟁도 없었고 퍼지는 온역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들 모여서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수군거렸다. 나이든 노인들이 계속해서 며칠씩 들판에 나가 밤잠을 설치며 양떼를 돌보는 일은 불가능 하였다. 그래서 장정들은 다시 목축 일을 시작 하였고 곧 이어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어쨌거나 한 동안 어수선하였고 부르짖음이 그치지 않았다.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찾느라 야단법석이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방법에 따라 길을 달리 하였다. 많은 이들이 자의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서원을 하였다. 그래서 나실 인이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율법을 실행 하였다.

일정 수의 젊은이는 모세가 이끌고 가다 진을 치고 머무는 고을 마다 그곳에 남아서 여호와의 성전의 자취를 지켰다. 다음 곳으로 옮기고 난 후면 성전이 있던 자리에 이방인들이 몰려와서 서로 차지하려고 아우성이었다. 여호와의 남아 있을지 모르는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남아 있는 자리에는 제물을 바치고 나서 뿌린 피로 가득하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쉽게 성전이었던 자리를 찾았다. 모두가 여호와의 지시대로 새로운 곳을 향하여 떠난 후 남기로 정한 젊은이들은 히브리 인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이방인들과 전쟁을 치렀다. 치열한 전쟁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았으므로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적은 숫자였으므로 모두가 전사했다. 한 명도 포로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들이 남아 있던 고을 이름은 여호와의 명령으로 모두가 기록됨으로써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셨다. 이 기록은 여호와의 전쟁기라고 불렸다.

기브롯 핫다아를 비롯하여 하세롯, 림몬베레스, 립나. 세벨 산을 지나 다핫, 데라, 밋가 에시온게벨, 가데스를 거쳐 호르산까지 이르렀다. 곳곳에서 진을 친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다. 주시는 율법은 점점 쌓여 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장정들은 죽음을 맞이했고 두루마리에 기록된 이름은 지워졌다.

전쟁이나 고된 노역이나 위험한 작업에는 이들이 자원하여 먼저 나섰다. 모두들 일체감을 지녔으므로 이름이 기록 되지 않은 다음 세대의 젊은이 들이 나섰으나 저들은 자기들이 하도록 내버려 달라고 간청 하였다. 기록된 자 중에서 병든 자라 하더라도 치유의 기적을 보았다. 어려움을 호소하면 응답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히브리 인 사이에서는 두루마리에 기록 된 세대와 그 다음의 세대로 구별이 되었다.

새로운 세대는 전쟁을 모르고 자랐다. 광야 밖에서는 사십 년 동안에 수 많은 전쟁이 있어서 큰 나라의 모든 젊은이가 몰살당하는 일이 끝없이 이어져 왔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시내 사이에서 이들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드신 이유는 광야 밖의 세상의 전쟁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하나님 보호 아래 있으므로 해서 무지 하게 약해졌고 사십여 년 동안에 두세 세대가 교체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계수에 기록 된 군인 들은 이방인 들이 보기에 아주 나약 했다. 그렇지 않은 자 중에 남은 자는 모세와 여호수아 뿐이었다.

애굽에서 벗어난 이후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가 보기에 부모들이 가졌던 부지런함은 쓰잘데 없이 이곳 저곳 갔던 길 다시 가고 왔던 길 다시 오는, 그러느라 바쁜 분주함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이 지정 하시는 곳으로만 가면 되었으니 다음 날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염려 하지 않았다. 모세는 이들이 진정함이 없다고 끌끌 대었지만 대신 이들은 모든 것이 확실한 세대였다. 이들이 싫어하는 얘기는 부모들이 가끔 꺼내는 애굽에서의 생활이었다.

앞선 세대의 사람들은 애굽에서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 마늘 먹은 것을 그리워하였다. 광야이지만 가끔은 상인들이 지나 가기 마련이어서 그들이 가져온 파와 마늘을 만져 보았지만 그 지독한 냄새에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 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나에 묻힌 은은 한 향기와 파 마늘의 독한 냄새와는 비교 할 수 없었다. 애굽의 세대는 오히려 만나에는 진한 냄새가 없다고 불평하였다.

나는 어린 시절을 애굽에서 보냈다. 애굽인들은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웃은 친절 하였다. 내가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 식솔들과 함께 애굽을 떠났다. 그리고 청년 시절을 광야에서 보냈다. 물론 나의 이름도 두루마리에 적혔다. 사람들은 계수 되기 위하여 이름이 필요했다.

나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없었다. 사막을 가로 질러 가는 어느 상인이 가나안 남쪽에는 거대한 사막 네게브가 있는데 네게브 사막의 남쪽의 끝자락에 있는 고을의 이름을 알려준 기억이 났다. 그래서 가데스바네아라고 이름을 지었다.

발음하기도 좋은 이름이었다. 이름을 가지게 되니 괜히 우쭐거리고 싶었다. 하나님도 이름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이 적힌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당한다고 소문이 흉흉하게 떠돌았다. 곧 이어 지파의 두령들이 소문이 사실임을 선포 하였다. 두루마리에 기록 될 적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 인줄 알았으나 이것은 사망의 기록이 되었다고 한탄들을 하였다.

하지만 모세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도를 받았다. 여호와는 이름에 많은 권한을 주어 왔다. 이제는 이름이 운명을 결정지었다.

가데스바네아라는 이름에는 죽을 권한 밖에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결정하셨으니 다시는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웬지 그러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젊었던 당시 나는 다른 사람과 마찬 가지로 삶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죽기에는 너무 젊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처럼 밤중에 애굽으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죽으면 하나님을 만날지 모르니 반드시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도망하는 데 가담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최후의 선고나 다름없는 말에 당황하였으나 시일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하나님께 가고자 하는 길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꼈으나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런 채로 사십여 년이 흘렀다 두루마리가 한 개만 남게 되자 별도로 조그마한 토기에 넣었다. 이 토기는 항상 모세의 장막 안에 보관 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매일 모세가 두루마리를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하였다.

두루마리에 이름이 적힌 병사 중 살아 있는 병사가 이제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내가 살아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 한 후로 절망 보다는 오히려 희망이 일었다. 참으로 신기 하였다.

파수를 보느라고 언덕에 올라가서 날이 새기까지 드넓은 광야와 검은 하늘을 바라 보면서 가슴이 뿌듯 함을 느꼈다. 여호와에 대하여 생각 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젊었을 때 여호와를 그냥 지나 친 사실이 후회가 되었다.

나 만이 아니고 많은 히브리 인들은 여호와를 조상 중의 하나로 여겼으므로 굳이 따로히 생각치 않아 왔다. 나는 나이가 있으므로 밖의 일은 적었고 그래서 파수를 보는 일 외에는 늘 장막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마음에 새김으로써 날을 보냈다. 죽음도 간간히 떠올랐다. 전쟁을 하면서도 의식한 적은 없었다. 살 만큼 살았으니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끔 지파의 장막을 찾았다. 저녁에는 장막 안팎에서 모세에게 전해 들은 율법을 낭독 되었고 이를 들으려고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는데 한 번에 모든 것을 주지 않으셨다. 한 마디 한마디씩 주셨다. 때로는 한 문장이 되기도 하였고 조금 길 때도 있었다. 한 곳에 일 년이 넘도록 머물렀는데 이는 주시는 율법의 말씀이 끝날 때까지 머무른 경우였다. 언제 율법이 마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세는 매일 회막 안에 들어 가서 기도를 드렸다. 말씀이 없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대부분의 날에는 말씀이 없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열 개의 율법을 받는 데도 사십일이나 걸렸었다.

특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려 주신 말씀이 있는 날에는 장막의 바깥에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를 보고 저녁에 장막으로 모세에게 전해진 율법을 들으려고 모였다. 율법은 어려웠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인의 부정을 알아내는 데 쓴 물을 먹는다고 진실 여부를 알 것 같지 않았다.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제 삼일 까지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버리라는 율법을 들으면 버려질 고기가 아까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율법을 들은 날은 파수를 보면서 그 율법을 마음 속으로 되풀이 새겼다. 산 위에서 망을 보며 아래 있는 양치는 자들과 그리고 잎을 뜯는 가축들을 내려 보는 일도 이제는 지겹지가 않았다.

어떤 때는 주시는 율법의 찌름이 마치 칼로 도려 내는 것 같은 아픔을 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저 멀리 지평선에 있는 어느 곳을 주시하게 되었다. 사막에서는 한 낮에는 뜨거움의 열기가 올라와 저 멀리가 보이지 않지만 그 이상 뜨거워지면 지평선 너머에 있는 성읍이 지면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에 반사 되어 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살아 있는 군인들은 하나씩 세상을 떠났다. 무리도 이동을 계속 이어갔다. 림몬베레스, 릿사, 세벨산, 모세롯, 신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진행하여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십년 오월 일일에는 호르산에 이르렀고, 아바림 산을 지나서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 진을 이루었다.

어느 날 아침에 파수를 보러 언덕을 향하여 떠나려는 데 지파의 백부장이 급히 다가 왔다. 그리고 이제 나 하나만 남았다고 알려 주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파수를 보러 산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보냈다.

히브리 인들이 세운 진은 모압 평지를 제압하고도 남았다. 그 길이는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한 눈에 진영 전체를 보는 것은 힘들었다. 내가 파수를 보는 비스가 산에서 내려다 보면 이스라엘의 제 4지대가 보였다. 진영을 네 개로 구분하지는 않았는데 어째서 제4지대라고 부르는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모압 왕 발락이 이곳에 올라와 정탐하고 돌아 간 산 봉우리였고 그 이전에 모세도 이 곳에 올라와 멀리 보이는 가나안 땅을 보았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저는 들어 가지 못한다고 말씀을 들은 곳이었다. 그래서 비스가 산 봉우리는 중요한 곳이 되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 산 봉우리에 올라와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어떠한 앞날의 일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는 말도 들렸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모세는 하나님께 아름다운 땅 레바논 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비스가 산으로 올라가 그 땅을 보라 하셨고 그래서 산으로 올라가 가나안을 보았는데 그때 본 것이 이스라엘의 제4지대였다. 그것은 아주 먼 훗날 어느 조그마한 언덕에서 벌어질 일이었다. 그 환상을 본 이후 모세는 더 이상 하나님께 간청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내게 다시 말하지 말라 하시면서도 민망해 하셨다.

비스가 산 위에서 파수를 보면 가까이로는 모압의 평지가 보이지만 산 너머 멀리에는 우리가 가려고 하지만 아직은 들어 갈 수 없는 가나안 땅이 펼쳐졌다. 마지막 군인이 된 내가 죽은 후에야 다가 갈 수 있었다. 그러한 상념은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 율법을 묵상 하였다.

산 위에 올라서니 한 낮이 되어서 인지 그 날 따라 유난히 뜨거웠다. 사막에서 흔히 부는 모레 바람도 없는 이러한 날에는 어김 없이 지평선 너머의 있는 어떠한 언덕이 사막의 모래 열기에 반사 되어서 공중에 나타났다. 그 날의 언덕은 여태껏 보았던 언덕과는 달랐다. 한참을 자세히 눈 여겨 보았다. 언덕에는 전에는 못 보았던 나무가 세워져 있었다.

죄인들을 처형하기 위해서 세운 나무였다. 그리고 어느 사람이 양 손에 못이 박힌 채 달려 있었다.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의 몸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피가 상하여 나는 역겨운 냄새가 나의 얼굴을 덮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공포와 안타까움이 동시에 몰려 왔다. 가슴이 요동쳤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땅에 주저앉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오랜 동안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사막의 열기 때문에 보인 환상이지만 나에게는 뚜렷이 나타났다.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자 모래가 일어서 맑았던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리고 반사 된 환영도 사라졌다. 얼굴을 덮었던 냄새도 없어졌다.

곧이어 나의 눈이 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뜨거움 이었다. 처음에는 햇볕 아래 너무 오래 서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심장이 익어서 나는 냄새 같았다, 마침내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분노의 죽음이라고 여겼다.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뾰족한 것들이 찔렀다. 환상 가운데에서 나를 찌르는 것은 내가 그 동안 마음 속에 되새겼으나 그 뜻을 알 수 없어서 의아해 하던 율법이란 것을 알았다. 그 고통은 아주 심했으나 동시에 평안함도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그러고 보니 하나님이 참으로 많은 율법을 주셨다. 하지만 그 많은 율법 중에서 나에게 따로 주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그 동안 그러한 것을 알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은 여러 번 들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사람에게도 들려 주셨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특별 한 이에게만 일어 나지 나에게도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바라지 않았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율법을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비로소 생겼다

마지막 군인

40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 나의 죽음을 기다리셨다.

603550 은 나의 군번이 되었다.

그날 밤에 파수꾼의 순번이 되어서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조그마한 언덕에서 망을 보았다. 골짜기와 평지 여기 저기에는 양떼와 가축을 치러 나온 목자들이 밤을 새느라 피워 놓은 모닥불이 꺼져 가는 깊은 밤이었다. 산 아래서 누가 올라 왔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오느라 숨이 찼는지 쉬엄쉬엄 올라왔다. 모세였다.

밤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머리카락이 희였다. 나는 모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히브리 인들이 세운 장막은 넓게 퍼져있어서 한 편에서 다른 끝으로 가자면 걸어서 사흘은 족히 걸렸다.

모세는 성전의 회막문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지켜보거나 사람들의 송사를 판단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 했고 그의 장막 앞에는 만나려는 사람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를 만나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모세는 저를 찾는 사람은 한 밤중이라도 만나 주었다. 참으로 성실한 노인네였다.

나도 듣기만 한 모세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그의 장막까지는 약대를 타고도 거의 한 나절이 되어야 다다르는 거리였으므로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에 대한 평판은 사람마다 달랐지만 가데스바네아에서 그도 가나안에 들어 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선포가 있은 이후 그를 비난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를 부러 만났건 아니면 우연히 만나게 되었건 간에 한번 그를 본 사람은 그가 사람을 끄는 구석이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

나는 언젠가 모세를 만나는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광야에 진을 치고 있는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였다. 정확히 얘기를 하자면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굳이 말하면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일이었다. 나는 감히 이를 언약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내색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다가온 노인네는 내 옆에 지팡이를 땅에 내려놓고 힘이 드는지 땅에 앉았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나도 그 옆에 앉았다. 내심 더 가까이 앉고 싶었다. 나는 그가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사막에서 바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숨을 내쉬며 언덕 아래의 잠자는 양떼들을 내려다 보는 동안 나는 손을 가만히 뻗어 그의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건드렸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대담하게 손바닥으로 지팡이를 문질러 보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좀더 쉬웠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호와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가 자랑하는 조상인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면서 하나님의 체온을 느꼈다고 자랑 하였다.

이 지팡이에서 만져지는 따스함이 단지 뜨거운 사막의 열기 때문만은 아니길 바랬다. 홍해를 가르느라고 손에 쥐었던 지팡이였다. 감람나무임을 나는 쉽게 알았다.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의 죽음을 기다리고 계셨다. 무려 사십여 년이 다되어 갔다. 아니 이미 더 지났는지 모른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목자이며 전쟁에는 나가서 싸워야 하는 군인에 불과한 나를 모세가 찾아 온 이유는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셈이 시작 되었다. 남은 자가 손가락으로 셀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곧 모두에게 알려졌고 부족장들은 남은 자들을 항상 눈 여겨 보았다. 이후로 남은 자가 하나씩 수명을 다 할 때 마다 모세가 직접 그 장막을 찾아 가서 장례 절차를 지켜보았다. 가족들은 그의 방문을 고마워했다. 모세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 한 책이 눈에 뜨였고 가족들과 장례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두루마리가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나를 찾아 온 모세의 손에 들려 있는 두루마리가 눈에 띄였다. 그 안에 적혀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는데 이제는 오직 하나의 이름만이 남았다. 가데스 바네아. 나의 이름이었다. 이름 옆에는 두 줄로 그어진 번호에 새로운 번호가 적혀 있었다. 603550. 본래 나의 번호는 아니었지만 마지막 번호를 가진 자가 사라졌으므로 나의 번호가 되었다. 하나님의 계수가 마무리 되려면 마지막 번호가 지워져야 한다고 설명을 하였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가데스바네아라는 나의 이름만 남길 수 있으면 상관 없다고 대답하였다. 모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죽을 권한을 부여 하신 이름이었다.

모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마지막 군인이 죽은 후에야 모두가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으나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위로 하였다. 저가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오랜 동안 물었으나 그에 대한 응답은 없었다고 하였다.

지난 날 사람들이 죽어서 두루마리의 이름에 줄을 그을 때마다, 그리고 남은 자가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요구도 없었으며, 그들도 전쟁으로 죽은 자는 없었고 사냥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발을 잘못 디뎌서 죽은 사람과 자신의 실수로 죽은 자들 외에는 모두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이제 단 한 사람만이 남았으니 저로써도 많은 기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나이가 제법 많은 것으로 알았으나 그의 목소리는 사람을 이끄는 그 무엇이 있었다. 숨이 차서 천천히 얘기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 할 여유를 주었다. 그와 나는 침묵에 빠졌다.

그는 마지막 남은 전사인 나의 의중을 알고 싶다고 솔직히 물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번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죽은 다음에 하나님이 하실 첫 말씀이 히브리 인 무리에게는 앞날을 결정지으므로 매우 중요 하다는 얘기와 내가 죽음을 늦추어 주기를 원하면 회막 안에 들어가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날 나는 모세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세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이든 지도자면 누구나 같게 되는 노련함이나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범함이나 자상함을 지니지 않았다. 세상의 것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모세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었다. 모세도 자신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던 일을 말 해 주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율법을 마음으로 받았었다. 그때도 굉장히 뜨거워서 온몸이 타서 이제는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겠다고 하셨을 때 이를 받겠다고 한 자신이 준비도 없었음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여호와께 뒤늦게 거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냥 견딜 만 하였는데 날이 지나고, 받은 율법이 세 개 네 개로 늘어가자 이제는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뜨거움이 쌓여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이미 받은 율법도 놓쳐서 다 깨지는 일이 겁났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회개 하였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덥석 율법을 받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 하지 못 하였음을 고백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회개의 대가로 저의 생명을 드리겠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도 모세가 율법을 받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모세의 옆에 있는 돌 판에다 율법을 새겨 놓으셨다고 그때 있었던 일을 설명 하였다. 율법을 더 많이 받으려면 나름대로 준비해야 함을 들려주었다.

나는 모세처럼 돌 판에다 받고 싶지는 않았다. 율법을 받은 돌 판을 들고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모세와 같은 대우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율법을 날로 받고 싶었다. 모세의 말을 듣는 중에도 낮에 본 나무에 매달려 있는 그가 자꾸 떠올랐다. 그러면서 두려움도 점차 사라져갔다. 나는 담대하게 말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일은 없지만 만일 사냥이나 혹은 전쟁에서 이방인에게 죽음을 당하느니 하나님에게 생명을 드리고 싶었다. 때가 되면 나이가 들어 수명을 다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나의 의지가 죽음을 결정 할 수 있을 때 여호와께 바치고 싶었다.

모세는 나의 말을 듣고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기를 한참이 지났다. 나는 그가 나의 뜻을 받아 들여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도 하나님에게 생명을 바치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에 잠겼던 모세는 마침내 알았다는 듯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모세는 나의 의견을 극구 말렸다. 호렙산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내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굴을 보려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는 율법에 어긋난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나님 면전에서 죽는 일은 오히려 받은 율법은 어김없이 실행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잡은 그의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밤 하늘에 별똥별이 선을 그으며 사막의 지평선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뒤 모습이 힘들어 보였다. 그날 나는 언덕 위에서 파수를 보면서 밤이 새도록 울었다. 그리고 나의 소망을 들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의 장례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끝났다. 하지만 어째서 그의 주검이 회막 안에서 발견이 되었는지 의문이었다. 어느 장로가 모세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만이 고여 있었다.

베로 짠 천으로 시신을 덮었다. 모세는 천을 들어 마지막 군인의 얼굴을 보았다. 두 손은 가지런히 가슴에 포개져 얹혀져 있었다. 그리고 오른 손을 꼬옥 쥔 채로 놓여 있었다. 아마 두려움 때문이었을지 몰랐다. 모세는 묻기 전에 그의 손이라도 펴주려고 손을 벌렸다. 그의 손바닥에는 탄 흔적이 있었다.

고핫 자손이 성막을 이동 할 때 실수로 증거궤에 손을 대면 궤의 겉에 입힌 금에 새긴 모양이 손을 태우며 깊이 남았다. 많은 고통도 함께 따랐다. 그래서 증거궤에 손을 댄 자는 이를 숨기지 못하였다. 그도 언약궤에 손을 대었음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손바닥을 태우며 남긴 형상은 모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나는 짧고 하나는 그 보다는 긴 나무가 서로 엇갈려 있는 형상이었다

애굽에서 나올 적에는 603550 명이었고 가나안 들어 가기 전에 두 번째 계수에서는 601730명이 되었으니 1830 명이 줄었다. 시므온 부족은 37100명이 줄었고 납달리 부족은 8000명이 줄었다 하지만 유다 족속은 1900명이 오히려 늘었고 잇사갈은 9900명 그리고 므나셋 족속은 무려 20500 명이나 인구가 늘어서 가나안에 들어갔다.

시므온 부족이 많이 줄었지만 이도 광야 생활에서 특별히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분노를 전하던 날 여호와께 범죄함을 깨닫고 산지로 올라가 아모리 족속과 싸울 적에 앞장 섰으므로 희생이 가장 많았다. 이때는 모세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니 전쟁을 금하였다.

므나셋 족속은 오히려 인구가 늘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용감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마지막 후방 전선에서 싸웠으므로 희생이 적었고 쳐들어 오는 아모리 족속을 그나마 호르마에서 막을 수 있었다.

처음 계수 된 육십여만 명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다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하지만 사십여 년 동안의 일이니 하루에 43 명 죽은 셈이었다. 이러한 숫자는 육십만여 명이 각자 수명을 다하고 죽거나 아니면 사냥을 가서 사자에게 물리거나 혹은 자신의 부주의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음을 당하는 숫자에 불과했다. 단지 손을 뻗어 죽을 생명을 연장 해줄 수는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가운데 치유의 은사가 있었다. 한 명도 이방인의 군대에 노예로 끌러 가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에 많은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물론이고
믿는 자들 중에서도 그러하였다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신재홍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51429089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신재홍칼럼
다음기사 : 구름 (2011-12-27 01:44:52)
이전기사 : 마지막 군인 (2011-12-27 01:43:14)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