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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7일 01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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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군인

애굽 땅에서 나온 지 두 해가 지났다. 그 해 두 번째 달의 첫째 날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계수할 것을 명령하셨다. 가족과 종족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남자는 계수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로부터 한 사람도 낙오 되지 않도록 각 지파의 두령들은 광야의 진영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자신들의 지파에 속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같은 지파끼리 구별 되어 계수 하기 위하여 지파 별로 지역을 정하여 다시 모여서 새로이 장막을 세웠다. 이러느라 시일이 소요 되었다.

모세가 가족별로도 계수를 해야 한다고 해서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로 분주 하였다. 많은 시일이 지나서야 지파는 지파끼리 가족은 가족끼리 모여서 진영을 이루었다.

자신이 속한 가족과 지파를 구별하여 두루마리에 이름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사람의 머리 수를 셈하였다. 대부분이 이름이 없었으므로 새로 이름을 지었다. 저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같은 이름이 많았다.

여러 날이 흘렀다. 병들었어도 싸울 만 한 남자는 이름을 기록하였다. 몸이 조금은 불구라 하여도 파수꾼 노릇은 가능하였으므로 이러한 자들의 이름도 기록 되었다. 이렇게 세밀히 구분 하느라 계수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두 몇 명인지 알기 위해서 지파와 가족이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모든 사람들이 정해진 번호를 가지게 되었다. 이름을 미쳐 새로 짖지 못 한 사람들도 번호는 지녔다. 광야를 지날 때면 번호 순서대로 대열을 만들었다. 그러면 오랜 동안 사막을 가로질러 가느라 지쳐서 뒤쳐지거나 대열에서 낙오 된 자를 찾기 쉬웠다.

하루의 낮과 해가 저무는 중간이 되면 걸어가면서 각 지파 별로 번호를 불렀다. 그럼으로써 없어진 번호를 알아내고는 행로에서 길을 잃어 골짜기에 빠진 된 자를 찾는 무리들이 사방으로 이들을 찾으러 다녔다.

드러나는 일들

세밀히 계수해야 하므로 가족과 지파를 구분 하니 자연히 지난 날 잊었던 친구와 가족을 되찾게 되었고, 남의 양떼를 가져간 자도 발견 했으며 숨어 다니던 자도 이름을 올리느라 드러났다. 그래서 많은 송사가 일었다. 용서와 화해도 있었다. 

계수 하는 덕분에 숨겨졌던 많은 일들이 밝혀졌다. 광야에서는 숨을 데도 숨길 데도 없었다. 애굽에서 살던 벽돌 집과 달리 광야의 초막 집에서는 감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애굽에서 벽돌 집 안에 숨겨 놓았던 것들을 광야에서는 남들이 보이는 데다 드러난 채 두었다. 계수 후에 저네 들이 걷는 장정만 육십여만 명이나 되는 것에도 놀랐지만 애굽에서 지내던 밀짚 섞은 벽돌 집안에 이토록 많은 것을 숨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벽돌 한 장마다 그들은 감춘 것을 기록을 하였다.

상전이 남종을 혼인 시켜 주어서 낳은 자녀가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우겼던 일과 형편이 가난하여 종으로 판 딸이 그 집 아들과 결혼을 하였음에도 며느리로써 대접을 하지 않는 주인의 이름도 벽돌에 새겼다.

사람을 죽이고 집을 떠난 자가 하나님의 명령이었음을 하소연하며 새긴 사연과, 돈을 꾸어주고 받을 변리를 일일이 기록 한 것도 있었다. 벽돌에 새겨진 사연 중 가장 으뜸은 가축에 관한 것이었다.

소에 받쳤으나 변제 받지 못한 일과 양떼를 맡겼는데 돌려받은 숫자가 차이가 난 경우였다. 맡은 자는 사자가 물어 갔다며 잘린 다리를 증거로 내놓았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칼로 잘라서 불에 구운 흔적이 역력 했다.

하나님을 따르려는 여인을 나무라는 남편의 이름도 있었다 이러하듯 애굽에 있을 적에는 바로 왕의 서슬에 눌려서 꺼내지도 못하던 일들이 광야에서는 물밀듯이 드러났으므로 송사는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내린 선포 중에서 처음 한 언급도 재판에 관한 것이었다.

토기

지파와 가족이 한 곳에 모인 후 계수가 시작 되었다. 육십여만 명의 이름이 두루마리에 적혔다. 이름으로 가득 채워진 두루마리는 흙으로 만든 커다란 토기 그릇에 담았다. 토기 겉면에는 안에 담긴 두루마리의 목록을 새겼다. 밀봉을 한 후에는 모세와 가까운 일정한 장소에 보관하였다.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어느 이름을 부르면 두루마리를 꺼내 불린 이름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토기는 그 수가 상당하였다. 이동을 하면 육십여만 개의 이름이 담긴 토기도 함께 수레에 싣고 다녔다.

대부분의 장정들의 이름이 기록 되었고 기록 된 자는 자부심을 가졌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전쟁에 나가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기다리던 전쟁은 없었다. 당시에 나이가 이십 세가 되지 못했거나 아니면 싸움터에 나갈 수 없어서 기록 되지 못한 자들은 저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계수가 끝난 후에 이십 세를 맞이 한 남자들은 저들도 두루마리에 이름을 기록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며 모세도 하나님에게 간구를 드렸으나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세월이 지나면서 죽는 자가 생겼다. 토기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서 죽은 자의 이름 위에 줄을 그었다. 두루마리에는 전쟁으로 죽은 자와 병으로 죽은 자, 나이 들어 죽은 자가 구별 되어 표시 되었다.

도망간 사람과 남을 위해서 희생한 자도 구별 되었다. 전쟁은 없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다쳐서 불구가 되어 전쟁터에 나갈 수 없어도 이름을 지웠다. 새로이 기록 되지는 않았다.

계수 된 자는 한 사람의 이름과 삶도 소홀히 취급 되지 않고 기록되었다. 기록된 이름이 전부 지워진 두루마리끼리는 별도로 토기에 모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레에 싣고 다녔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묻을 수 있었다. 비록 죽었을 지라도 죽은 자들의 목숨과 이름의 기록은 저들의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것이었다. 이름이 지워진 두루마리가 담긴 토기들의 수가 많아지자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진을 떠날 때마다 땅에 묻었다.

그래서 이동할 때 수레에 싣는 토기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덧 묻힌 토기의 수가 남아 있는 토기의 수보다 많아졌다. 사람들은 마침내 조그마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두루마리가 몇 개 남지 않게 된 시점에서부터는 아직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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