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애굽에서 벽돌 집 안에 숨겨 놓았던 것들을 광야에서는 남들이 보이는 데다 드러난 채 두었다. 계수 후에 저네 들이 걷는 장정만 육십여만 명이나 되는 것에도 놀랐지만 애굽에서 지내던 밀짚 섞은 벽돌 집안에 이토록 많은 것을 숨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벽돌 한 장마다 그들은 감춘 것을 기록을 하였다.
상전이 남종을 혼인 시켜 주어서 낳은 자녀가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우겼던 일과 형편이 가난하여 종으로 판 딸이 그 집 아들과 결혼을 하였음에도 며느리로써 대접을 하지 않는 주인의 이름도 벽돌에 새겼다.
사람을 죽이고 집을 떠난 자가 하나님의 명령이었음을 하소연하며 새긴 사연과, 돈을 꾸어주고 받을 변리를 일일이 기록 한 것도 있었다. 벽돌에 새겨진 사연 중 가장 으뜸은 가축에 관한 것이었다.
소에 받쳤으나 변제 받지 못한 일과 양떼를 맡겼는데 돌려받은 숫자가 차이가 난 경우였다. 맡은 자는 사자가 물어 갔다며 잘린 다리를 증거로 내놓았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칼로 잘라서 불에 구운 흔적이 역력 했다.
하나님을 따르려는 여인을 나무라는 남편의 이름도 있었다 이러하듯 애굽에 있을 적에는 바로 왕의 서슬에 눌려서 꺼내지도 못하던 일들이 광야에서는 물밀듯이 드러났으므로 송사는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내린 선포 중에서 처음 한 언급도 재판에 관한 것이었다.
토기
지파와 가족이 한 곳에 모인 후 계수가 시작 되었다. 육십여만 명의 이름이 두루마리에 적혔다. 이름으로 가득 채워진 두루마리는 흙으로 만든 커다란 토기 그릇에 담았다. 토기 겉면에는 안에 담긴 두루마리의 목록을 새겼다. 밀봉을 한 후에는 모세와 가까운 일정한 장소에 보관하였다.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어느 이름을 부르면 두루마리를 꺼내 불린 이름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토기는 그 수가 상당하였다. 이동을 하면 육십여만 개의 이름이 담긴 토기도 함께 수레에 싣고 다녔다.
대부분의 장정들의 이름이 기록 되었고 기록 된 자는 자부심을 가졌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전쟁에 나가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기다리던 전쟁은 없었다. 당시에 나이가 이십 세가 되지 못했거나 아니면 싸움터에 나갈 수 없어서 기록 되지 못한 자들은 저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계수가 끝난 후에 이십 세를 맞이 한 남자들은 저들도 두루마리에 이름을 기록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며 모세도 하나님에게 간구를 드렸으나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세월이 지나면서 죽는 자가 생겼다. 토기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서 죽은 자의 이름 위에 줄을 그었다. 두루마리에는 전쟁으로 죽은 자와 병으로 죽은 자, 나이 들어 죽은 자가 구별 되어 표시 되었다.
도망간 사람과 남을 위해서 희생한 자도 구별 되었다. 전쟁은 없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다쳐서 불구가 되어 전쟁터에 나갈 수 없어도 이름을 지웠다. 새로이 기록 되지는 않았다.
계수 된 자는 한 사람의 이름과 삶도 소홀히 취급 되지 않고 기록되었다. 기록된 이름이 전부 지워진 두루마리끼리는 별도로 토기에 모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레에 싣고 다녔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묻을 수 있었다. 비록 죽었을 지라도 죽은 자들의 목숨과 이름의 기록은 저들의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것이었다. 이름이 지워진 두루마리가 담긴 토기들의 수가 많아지자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진을 떠날 때마다 땅에 묻었다.
그래서 이동할 때 수레에 싣는 토기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덧 묻힌 토기의 수가 남아 있는 토기의 수보다 많아졌다. 사람들은 마침내 조그마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두루마리가 몇 개 남지 않게 된 시점에서부터는 아직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