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갈망이란 소망을 두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목회자라 설교를 잘하고 싶습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바램이겠지만은 개척교회를 하며 몇 안모이는 성도들 앞에서 전하는 오늘 설교가 지금까지 최고의 설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잘하려고 한다고 설교가 잘 됩니까? 원래 잘 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오늘 설교에 대한 결과는 알 수 없어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설교에 목이 타고 속이 탑니다. 그런 갈망으로 30년 정도 목회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바디매오는 장님이었습니다.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 10:47) 남아 있는 것은 청각과 목소리 뿐이었습니다.
옆에서는 “거지야 조용히해”라는 방해꾼들의 목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더 크게 소리 지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그들이 죄 사함을 얻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예수”라는 말에 냅다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나는 볼수 있다는 오랜 기간 품은 갈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소망대로 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나이나 건강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질이나 명예가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대한 내 소망, 내 갈망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아버지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여~ ” 하고 바디매오처럼 나의 갈망을 소리쳐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면서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다면서요?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갈망의 목소리에서 불을 뿜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닌가요? 저 먼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아니라 오늘 이시간 나와 함께 하는 하나님, 하나님께 내려놓고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가 품은 영적 갈망을 통하여 바디매오의 기적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시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