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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7월21일 12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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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를 듣자
얼마 전에 여성목사들의 모임인 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에서 정기총회를 했다. 7대회장으로 장경혜목사님이 선출되었는데 다음과 같이 인삿말을 했다.

“초대회장 김금옥 목사님은 교계에서 여성목회자가 받아 온 차별에 맞선 분이시고, 이미선 목사님은 협의회의 회원확장에 노력하였고 전희수 목사님은 미주한인여성목회자의 이름을 널리 알린 분” 이라고 말하면서 “그 가운데서 연합의 중요성을 배웠다. 동부에서 서부까지 여성목사들의 연합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본 여목협의회는 다양성, 포괄성, 개방성을 가진 협의회,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단체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양성있는 단체, 포괄적으로 개방성을 가지고 일하는 단체가 된다는 것은 더 없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협의회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의 뜻만이 아닌 다수의 의견을 추렴하여 다수가 동의하는 그중 가장 합당한 하나의 의견을 선택하는 것이다.

민주적인 협의회는 이런 모습 즉 다양성, 포괄성, 개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안수받은 여성목사들이 지역이나 연령, 교단 또는 신학적 배경의 다름에 관계없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서로 모여 토론하고 정부회장을 선출하고 임원들이 되어 회의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크고 작은 여러 다른 의견들이 수렴되고 의논되어질 때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협의회가 된다.

더구나 멀리서 말하는 것같이 들리는 작은 소리, 옆에서 말해도 너무 낮아 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까지도 들려지고 대변될 수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힘없는 약자의 작은 목소리나 소수의 의견들은 쉽게 무시되기 때문이고, 소수의 음성을 들을려고 하지 않거나 묵살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약자 또는 소수의 작은 음성일지라도 무시되어서도 안될 뿐 아니라 분명한 소리의 하나로 들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선출된 회장님이 소수의 음성도 중요하므로 존중한다고 말하니 고무적이다. 제가 속한 미국장로교단PC(USA)는 소수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경청하므로 이런 회의의 진행에 익숙한 본인은 회장의 이런 말이 신선하게 들린다.

제가 오늘 들려드리고 싶은 작은 음성이 있다. 오랫동안 자기 소리도 못내고 죽은 듯 잠잠했었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인 환청(幻聽, auditory hallucination)에 압도되어 자기 목소리를 낼수 없었다.

이분은 20대 중반의 한인 청년으로 언젠가부터 귀에 들리는 그 음성(환청 幻聽)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환청은 정신질환의 중요 증상으로 증상의 하나다. 일반사람들은 환청이 없다. 없어야 정상이다. 내과적문제가 있어 이명(耳鳴)이라고 부르는 귀에서 소리가 날 이유나 질병이 없는데 환청을 가진 환자들은 “누가 내 귀에 말을 한다”,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이것은 병의 증상이다.

즉 이 말의 의미는 아무도 주위에 없는데 가족이나 친구 또는 행인 등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한다”거나, “명령을 하고”, “욕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주장하는데 이 현상을 환청이라고 부른다. 의학적으로 문제없는데 환청이 있으면 정신분열병 같은 정신질환의 증상이다. 심각한 우울증에서도 음주를 했을 때도 알콜성 환청이나 환각증상이 나타난다.

이들 환청의 내용은 어떤 사람의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비난하는 내용의 소리, 무시하고 욕하는 등의 소리가 많다. 하나 또는 몇 사람이나 많은 사람들의 음성으로 들리기도 하고 작거나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 명령적인 큰 소리로 들리기도한다. 여자 또는 남자의 음성으로도 들리고 가까이는 귀에서, 집안의 어느 한 곳에서부터 들린다고 하거나 아니면 멀리 하늘에서 들려온다.

이런 목소리는 대개 “너는 나쁜 사람”, “바보”라고 욕을 하거나 “얕보는” 음성이던지 아니면 표현하기 불편한 “성적인 내용의” 욕을 하기도 하므로 본인에게는 아주 괴롭다. 환청의 내용이 도저히 거부할 수없이 명령적일 때 그 명령에 따라 죄를 범하기도 한다. 환자에게 환청은 무섭고 두려울 수 있으므로 치료를 받아야한다. 정싵질환은 어떤 특정인만 앓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종교나 민종, 어느 사회 계층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젊은이나 노인이나 다 앓는 병이다. 

환상 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환청은 주위에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누군가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고 환상을 아무도 없는데 어떤 모습을 보기도 하는 것으로 정신증상의  하나로 같이 오기도한다. 자신이 신 또는 예수님이라고 말하거나 자기에게 말했다고 말한다. 환청을 호소하면 곧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야함은 당연한 일이고 속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 청년은 오랜기간 환청으로 인한여 마음의 고통을 가진 채로 살아왔다. 소리는 청년에게 자신은 아닌데도 “너는 바보다”, “나쁘다”고 비난했다. 가족들이 문제가 심각한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정신과의사를 만났고 환청 등 정신증상을 없애는 항정신병 약을 먹게했다. 상담을 받고, 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등 정신과치료를 시작했다. 또한 교회에서 주일예배와 기도와 성경공부, 기독서적을 읽고 토론과 수많은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오랜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많이 나아졌는데 어느 순간에 더 이상 자신을 비난하던 소리 즉 환청이 들리지 않았다. 이 글은 환청의 고통을 겪어 낸 청년의 글이다. 그 청년이 글을 썼다. 영문의 글을 필자가 번역했다

<잃어버린 7년>

7년의 시간을 잃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통증,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네.

혼돈의 와중에서 나를 지탱하려고 노력하네.

자존심을 삼키고, 빨아드리네


7년을 잃었다

방안에서 홀로 그 터널의 저쪽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려고 노력하네

끈질간 괴롭힘으로 희망을 잃고 흐느끼네


7년을 잃었다

나와 소리는 끊임없이 서로 소리지르고 욕하며 싸웠네

어쩔수없이 소리와 같이 살았네

고통에도 불구하고 갈데도 없어서 그 소리와 같이 있었네

멈추지않는 소리에서 벗어나려는 내 희망이 보이기도,- 사라지기도 하네


7년을 잃었다

소리와 내가 홀로 남겨진 것같이 느껴졌네

어쨌건 조금은 소리를 이해했네

소리가 말하려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했네, 쉽지만은 않았네

소리없는 소리였네


7년을 잃었다.

시간이 흘러가는데 너무 빨랐네

날이가고 달이가도, 해가 지나도 관심을 두지않았네.


7년을 잃었다

자기의 음성을 낼 기회를 가지못한 소리가 불쌍해졌네

던져버릴 수 없었던 나를 붙잡는 과거로부터 상처받은

소리와 나는 어딘가 어떤 면에서 관련이 있었네

깊은 곳에서 소리는 하늘로 사라지고 있었네


7년을 잃었다.

시간이 되니 음성이 드디어 자신의 음성을 찾고 떠났네

7년을 잃었다. 잃어버린 그시간을 나는 돌이킬 수없네”


저는 이 청년이 언젠가 자기의 잃어버린 7년을 되찾을 것임을 확신한다. 이 청년은 자기는 잃어버린 시간, 7년을 되찾을 수없다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는데 그때 전도사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당신의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알고, 듣고, 보신 그 분, 당신이 마음 아프게 경험했던 그 고통, 거기서 회복시켜주실 주님이 그분입니다. 언젠가 그분은 당신의 잃어버린 모든 시간을 더 멋지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환청을 경험하지 못한 일반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유없이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음성이 들리고, 듣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남을 의심하지 않아야 하는데 의심하게 만들고, 나는 아닌데 소리가 끊임없이 당신이라고, 당신이 나쁘다, 바보라고 비난하는 소리, 명령하는 소리들 듣고 그 소리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NO” 를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환청은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다.

이 증상들은 약을 먹으면 사라진다. 한 정신적으로 아픈 인간을 그 고통에서 살려내는것이 우리들 주변의 사람들이 할 일이다. 이들에게서 얼굴을 돌려서는 안되고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다. 주님에게는 정신병자로 고통받는 이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이 눈에서 떼어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통받을 때 주님도 그들의 고통을 듣고보고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이 청년의 어머니는 울었다고 한다. 필자도 눈물이 났다. 이 청년의 고통과 외로움, 혼자서 환청과 싸울때의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홀로 외롭게 비난하는 소리 즉 환청과 대항하여 싸우는 모습이 내게 보였다. 환청이 이 청년에게 너는 나쁜다 라고 비난의 소리를 하니 이 청년은 “아니다, 나는 아니다” 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얼마나 처절한 내면의 싸움이었겠는가? 오랜 세월 후에 드디어 환청을 이겼다.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소리는 사라졌다.

7년 동안의 잃어버린 시간은 주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런 회복의 시간이 속히 오도록 그 청년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이 청년은 무서운 고통, 나를 비하하고 비난하고 욕하는 소리의 협박을 이겨냈다. 이 청년을 위하여, 또다른 이 청년과 같이 고통을 받는 누군가를 위하여 후원하고 기도해야 되지 않겠는가. (끝)

(원작)
Seven years Lost


                           By R. C,    July 2015


Seven years lost,

Pain in my heart, words I cannot express to anyone.

Trying to stay strong in the midst of the chaos in my life,

I swallow my pride and suck it in as much as I can.


Seven years lost,

Lonely in my room trying to ignore the voice down the other side of the tunnel,

Constant badgering and sobbing of hope lost.


Seven years lost,

It’s just me and the voice constantly arguing and yelling.

Yet I stay with the voice out of pity.

Out of spite of anguish I continue to stay because I have nowhere to go.

Going in and out of hoping to, stay away from the voice that won’t stop.


Seven years lost,

I feel left alone with the voice. The voice that is hard to comprehend sometimes,

Somehow I understand.

I try to understand the voice with reason. It’s never easy with the voice.

The voice without a voice.


Seven years lost,

Where does the time go, too fast for me.

Haven’t paid attention to the days, weeks, months and years, to the time.


Seven years lost.

I feel sorry for the voice because it never had a chance to speak up for itself,

Wounded from the past holding onto things that cannot be thrown away,

Somehow the voice and I relate in some way.

And yet deep down the voice is fading away into the heavens.


Seven years lost,

Time comes for the voice to finally have a voice, parted away.

Seven years lost, I cannot tak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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