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라와 바락의 듀엣 찬양 (삿 5:1-9) - 기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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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7월06일 09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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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와 바락의 듀엣 찬양 (삿 5:1-9)
           드보라와 바락의 듀엣 찬양   삿 5: 1-9절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이 있었다. 평소에 아버지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입학선물로 자동차를 사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약속을 믿고 열심히 공부해 타주 대학에 입학이 된 아들이 고속버스로 집을 떠나는데, 아버지는 자동차 대신 낡은 책 한 권을 주면서 ‘이 책은 내가 옛날에 대학에 입학할 때, 할아버지가 주셨던 선물’이라면서, ‘네가 힘들 때, 이 책을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빈손으로 떠나보냈다. 아들의 실망감은 컸다.

학교에 들어가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녀야하고, 친구들의 차를 빌려 타야하는 처지가 된 아들은 화가 나기도하고, 아버지에 대한 불신감과 배신감으로,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책을 책꽂이에 끼어 넣은 채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끔씩 아버지가 안부 전화를 해도, 마지못해 전화를 받아 시큰둥하게 대하며, ‘내가 준 책을 읽어봤느냐’ 물으면 ‘학교 공부가 바빠 읽을 시간이 없다. 시간이 나면 읽어 보겠다’며, 아버지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전화를 끊기가 일수였다. 

그래서 방학이 되도, 남들은 모두 고향집으로 돌아갔지만, 아들은 학교 근처에서 아르바이트직장을 구해 일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고, 아버지가 보기 싫어 4년 내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일 년에 한두 차례 부모님이 학교를 찾아와 아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돌아가는 형편이 됐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불평과 원망은 컸다. 그렇게 4년이 지나 아들 졸업식이 돼, 식구들이 아들 졸업식에 참석을 했다. 4년 동안 자동차 없이 고생하며 공부를 끝낸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반가운 척은 했지만, 그 동안 했던 고생 때문에 아버지를 슬슬 피한다.

졸업식을 다 마치고 가족이 모두 식당에 모여 아들 졸업축하 파티를 할 때였다. 아버지가 ‘그 동안 수고 많이 했다’며 칭찬을 하자 4년 동안 참았던 설움이 폭발한 아들은 울먹이면서 ‘아버지는 대학입학 선물로 차를 사주신다더니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 4년 동안에 자동차 없이 내가 얼마나 고생 한줄 아시느냐? 나는 오늘 이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계획대로 살 것’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폭탄선언을 한다. 조용히 아들의 말을 듣던 아버지는 ‘내가 너에게 준책을 읽어보았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타주대학으로 떠나는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은 자동차였지, 낡아빠진 책이 아니었다’며 격분하여 대답한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지금이라도 그 책을 열어보라’며 아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은 짐 가방에서 4년 전에 아버지가 준책을 꺼냈다. 그리고 책을 열었다. 그러자 책갈피 안에 4년 전에 자동차를 살 수 있는 금액과 일 년치 정도의 기름 값의 수표가 ‘아들아, 사랑한다’는 작은 쪽지편지와 함께 끼어있는 것을 발견됐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타주에서 힘들고 어렵고 고달플 때, 아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고 힘을 얻어 외지생활을 잘 극복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책 속의 수표로 차도 사고 어렵지 않게 생활할 것을 기대해서 주었던 것인데, 아들은 차는 사주지 않고 헌책을 주는 것에 화를 내고 책꽂이에 넣어둔 채 ‘학교생활도 바쁜데 언제 저런 책을 보는가...시간 나면 읽어보리라’ 생각하고(가끔은 호기심에 읽어보고 싶었지만, 배신감 때문에 덮어뒀다) 4년 동안 차일피일 미루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했었지만 아들은 불순종하여 4년 동안 차 없는 고생을 바가지로 한 것이다. 수표를 꺼내든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했던 지난날들을 부끄러워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렇다. 순종은 즉시 해야 복을 받는다!
 
본문은 초대사사 옷니엘에서 마지막 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까지 약 45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16명의 사사(士師, Judges)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사였던 드보라(Deborah)와 바락(Barak)이 철병거 900승과 막강한 군사무기로 당시 천하무적을 자랑하며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학대하던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건곤일척의 전쟁에서 가나안 군대를 격퇴하고 두 사람이 전쟁승리의 감격을 듀엣으로 부른 찬양내용이다.

드보라와 바락의 듀엣 찬양은 성경에 나오는 8개의 유명한 감사 찬양(8 songs of praise in Scripture: ①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모세의 찬양(Song of Moses; 출 15: 1-19) ② 이스라엘의 브엘 우물가 찬양(Song of Israel; 민 21: 17-18) ③ 죽음을 앞둔 모세의 마지막 노래(Song of Moses; 신 32: 1-43) ④ 드보라와 바락의 이중주합창; Song of Deborah and Barak; 삿 5: 1-31) ⑤ 기도응답을 감사하는 한나의 테필라 찬양(Song of Hannah; 삼상 2: 1-10)

⑥ 자기의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받음을 노래한 다윗의 찬양(Song of David; 삼하 22: 1-51, 시 18: 1-50) ⑦ 장차 천국에서 부를 구원받은 성도의 새 찬양(Song of the redeemed; 계 5: 8-10) ⑧ 대환난성도의 승리찬양(Song of tribulation saints; 계 15: 3-4) 시편과 다른 성경에도 많은 감사 찬양이 있지만 이 여덟 곡의 찬양은 특별한 찬양이라 할 수 있다-There are many other songs of praise in the book of Psalms and other books, which see in the Scripture) 중 하나이다. 이 만큼 드보라와 바락의 듀엣 찬양은 성경에 기록된 다른 7개 찬양 과 함께 은혜의 간증과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비중이 큰 찬양이다. 본문을 통해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배워본다.
  
1. 바락이 받은 사사의 소명

사사(士師, Judge)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솨파트는 “심판하다”, “판결을 선고하다”, “재판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로 이스라엘이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을 정복한 후부터 사울이 초대왕이 되므로 왕정체제가 성립되기까지 약 450년간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을 베풀며, 대적들의 위협에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는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대적들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할 때마다 필요에 따라 단회적으로 사사들을 세우시고 제사장직분처럼 세습되지 않게 하셨는데, 7대 사사 아비멜렉(삿 8: 33-9: 57)은 기드온의 아들로 스스로 사사가 돼 악을 행한 사사였고, 여선지 드보라는 유일한 여자 사사였으며, 10대 사사 입다(삿 11: 1-12:7)는 보잘것없는 천출, 기생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연구하고 역사를 잘 알았다가(삿 11: 12-28) 나라를 구출한 축복의 사사가 됐다.

바락이 사사가 된 것은 여선지자 드보라가 백성들을 재판하던 중, 사람을 보내 바락에게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셨다. 너는 납달리와 스불론 자손 1만 명을 모집해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여호와께서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들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고 전해준 말을 듣고였다. 처음에 그 말을 전해 듣고 겁을 먹은 바락은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는 가지 않겠다”(If you will go with me, then I will go, but if you will not go with me, I will not go; 삿 4: 8)며 겁쟁이같이 통보한다. 그러자 여선지자 드보라는 사람을 보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겠다”(I will surely go with you)고 대답하므로 용기를 얻은 졸장부 바락이 구국전쟁에 선봉장이 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사사가 된다. 바락으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기회였다.

이렇게 바락은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우연하게 사사가 됐지만 일단 사사가 된 그에게 하나님은 사사 직분을 감당할 능력을 주셨다. 그렇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은 직접 하나님이 불러서(God's Calling)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권면이나 초청을 통해 하나님의 종이 될 수도 있는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다. 여선지 드보라의 권면으로 사사가 된 바락처럼, 우리 생활 속에서 주의 종이나 친구나 이웃의 초청과 권면을 거절치 않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드보라와 바락의 이중주 찬양

사사기 5장은 드보라와 바락의 듀엣 찬양이다. 드보라 바락의 이중주 듀엣찬양은 여덟 가지 목적으로 불렀는데(8 fold purposes of Deborah's song) 그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이다 ⑴ 가나안에게 패배하여 20년 동안 압박과 학대를 받은 데서 최근에 가나안을 격파하고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한 찬양이었다(To thank God for the recent victory over the Canaanites and the deliverance of Israel from defeat and oppression for 20 years; 3절, 5: 1-8) ⑵ 이스라엘 공동의 적을 향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헌신했던 몇몇 지파의 사람들과 지도자들의 용기와 열심을 축하하기 위한 찬양이었다(To celebrate the zeal and bravery of the rulers and people of certain tribes who had faith in God and had volunteered their services against a common foe; 5: 9-15, 18-19)

⑶ 하나님백성으로의 대의를 배반하고 자기안일과 무책임에 빠져 수수방관한 채 집에만 숨어있던 몇몇 지파의 불신앙과 미온적인 태도를 책망하기 위해 부른 노래였다(To censure the unbelief and lukewarmness of certain tribes who stayed at home, betraying the public cause of people of God; 5: 15-17) ⑷ 균형이 잡히지 않은 지상의 두 적대세력 사이에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신 것을 높이기 위해 부른 찬양이다(To honor God for His supernatural part in the uneven struggle between two earthly foe; 5: 20-22)

⑸ 확실하게 전쟁승리가 결정된 상황에서도 수수방관하여 망설이며 전리품 취하기를 거절한 자들을 저주하기 위해서 부른 찬양이다(To curse those who refused to take part in the spoil after victory was assured; 5: 23) ⑹ 적장 시스라를 죽이기 위해 담대하고 용감하게 행동했던 여인을 축복하기 위한 찬양이었다(To bless the woman who was bold enough to slay Sisera; 5: 24-27) ⑺ 적장 시스라 어미의 실망과 고통고뇌를 보여주기 위한 찬양이었다(To show the disappointment and anguish of the mother of Sisera; 5: 28-30) ⑻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축복이, 대적과 원수들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기 위한 찬양이었다(To pronounce a blessing upon the people of God and a curse upon their enemies; 5: 31) 이렇게 드보라 바락의 듀엣 찬양은 목적이 분명했다. 이제 이 여덟 가지 찬양의 목적 중에서 세 가지 영적교훈을 알아본다.

   ⒈ 전쟁의 원인

6-8절을 보자.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이스라엘의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블레셋 족속과 하솔 왕 야빈의 압제 때에 이스라엘이 고통당하던 때를 회고하는 노래다.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군사 600명을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었고(삿 3: 31) 야엘은 이스라엘의 압제자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쳐 죽인 여인이다(삿 4: 17-22) 삼갈 이후 잠간 동안은 평안했었지만, 시스라가 살해되기까지 나머지 세월은 이스라엘의 큰 길에는 행인들이 없었고, 사람들이 없는 작은 뒷길로 숨어 다닐 정도로 황폐했었으며,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도 없었고 법질서도 마비돼 있었으며, 이스라엘엔 강력한 지도자들이 없었기에 노상에서 약탈행위가 빈번히 자행됐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리가 새 신들을 택했기 때문에’(They chose new gods)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스라엘에게 이방인의 압제와 전쟁의 참화가 임하게 된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조상들도 알지 못하는 새 신(신 32: 17)인 가나안 이방신과 우상을 받아드리고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쟁이 성문에 미칠 정도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어도 이스라엘에겐 적을 막거나 공격할 무기가 없었다.

오늘 당신(當身)이 가정적으로 어려움과 위기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지며, 영적으로 무능하여 사단마귀와 귀신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인 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버리고 새 신(New God)들인 컴퓨터 귀신, 인터넷 귀신, 오락과 게임과 문자 귀신에게 붙잡혀 시간을 뺏기고 살기 때문이다.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사욕에 순종하며 죄의 병기로 드리기 때문이다. 주일성수를 멀리하고, 성경 읽을 시간과 새벽을 깨울 시간은 없고 밤늦도록 컴퓨터에 매달려 사는 사람에게 강한 영력이 나타날 수가 없다, 문제해결의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고, 병 고침의 축복이 임할 수 없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빼앗고 있는 새 신, 당신의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⒉ ‘깰 지어다...노래할 지어다’

12절을 본다.

 “깰 지어다, 깰 지어다, 드보라여! 깰 지어다, 깰 지어다,
너는 노래할 지어다. 일어날 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 지어다”

여선지 드보라는 자신을 향해서 네 번이나 ‘깰 지어다’(Awake; “잠에서 깨어라, 눈을 뜨고 있어라, 대비하고 있어라!”)를 부르짖으며 자신에게 영적으로 깨어있을 것을 격려하고 다짐했고, Sing a song(“너는 노래할 지어다”)라며 하나님의 구원역사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 그 놀라움과 영광을 힘 있게 찬송할 것을 격려 다짐했으며, 바락에게는 생포한 전쟁포로를 끌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백성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라고 독려했다. 그렇다.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일이다. 영적으로 졸거나 잠자고 있는 사람에겐 어떤 기적도 없다.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기적을 날마다 시간마다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⒊ 헌신의 결과

드보라는 백성들이 헌신한 결과를 1-5절에서와 13-22절에서 노래하기를 백성들이 즐겁게 헌신하므로, 여호와께서 나오시고 진행하셔서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으며, 산들까지 진동하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 같은 대적들을 치시려고 강림하셨으며, 이스라엘 열두지파에서 많은 군인들이 모여 4만 명의 군사가 됐다고 했다. 그렇다. 앞장서서 진군하는 좋은 지도자의 영향은 크다. 나약한 여인 드보라가 ‘깰 지어다, 깰 지어다...노래할 지어다’를 소리치며 담대하게 진군해 가자 1만으로 시작된 군대는 12지파 청년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면서 4만 명의 군대가 됐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0년 2차 대전 당시, 영국군 33만 5천 명은 프랑스 서안 단케르크에서 독일군에게 완전 포위됐었다. 영국군이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고, 독일군은 전 병력을 다 동원해 영국군을 섬멸할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독 안에 갇힌 쥐 같이 다급해진 영국군 장교들은 본국으로 급히 SOS구원 요청을 보냈지만 본국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이렇게 운명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파멸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올 때, 당시 영국 여왕이었던 케리는 마침내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 전 국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진퇴양난에 빠진 우리 아버지와 아들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간절한 기도뿐입니다”

여왕의 호소는 전 영국교회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교회와 기도원과 가정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기도로 매달리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간절하고 힘 있는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려 울부짖는 기도의 물결이 전국을 덮었다. 본국 국민들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군인들도 기도를 그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적과 맞섰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밤새도록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를 내려 독일 군대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두심으로써 영국군이 무사히 도버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에게도 사사 드보라처럼 앞장서서 “깰 지어다, 깰 지어다, 노래할 지어다”를 독려하는 기도의 일군이 필요하다. 카누경쟁의 승리는 선수들을 독려하는 구령(口令)자에 달렸듯 우리 교회도 앞장서서 구령하고 열심을 내는 헌신의 일군이 필요하다. 앞장서서 전도하는 일군이 필요하다. 팔짱낀 채 수수방관하는 미지근한 신앙에서 드보라처럼 앞장서는 성도, 바락처럼 순종하고 달려가는 성도들이 나와 승리와 축복과 기적을 쟁취하는 역사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4. 축복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

드보라와 바락의 듀엣 찬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축복받는 사람들을 칭송한 것과 저주받은 사람들을 비난한 것이다. 먼저 드보라와 바락 두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들을 칭송했는데, 축복받은 사람들은 14절 기록대로 ⑴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다. 그들은 원수 아말렉 족속 거주 지역(삿 12: 15)에 살던 사람들이었지만 용기를 내 전쟁에 참전하므로 축복받은 사람들이 됐다 ⑵ 베냐민 지파 사람들로 여러 지파에 섞여서 개인적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

⑶ 요단 서편에 살던 므낫세 지파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참전한 마길의 군대지휘관들 ⑷ 이 전쟁에서 군사를 초모하는 서기관 역할을 했던 스불론 지파 장군들, 그리고 15절 상반절대로 ⑸ 바락에게 마음을 주고 충성을 다 바쳤던 자기 지파를 인솔해 참전했던 잇사갈의 방백들이다. 그다음 18절대로 ⑹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는 거족적으로 시스라 군을 맞아 일사각오로 싸우므로 축복받은 지파가 된다.

마지막으로 24-27절의 내용대로 ⑺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다. 야엘은 자기 남편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가나안 적장 시스라와 절친한 사이였고, 자기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삿 4: 11)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도와 시스라를 죽이므로 전쟁을 이기게 했다.

전쟁에 패하여 혈혈단신 구사일생으로 도피해서 자기 집을 찾아온 시스라가 마실 물을 요구하자 가장된 친절을 베풀어 최고급 밀크를 대접해 그를 안심시키고, 그가 깊은 잠이 들자 쇠망치로 장막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놀이 살쩍(His temple)에 박아 머리를 뚫어 죽인 이 사건은 상식적 윤리로는 용납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사람으로 할 수 없는 몰염치한 일이다. 생각해보라. 남편의 친구요 평상시 좋은 관계였던 그를 무자비하게 죽인다니, 그리고 그것이 축복의 이유라니, 말이 되는가?

그러나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수행한 전쟁은 거룩한 전쟁(Holy War)이고, 야엘은 이 거룩한 전쟁에서 원수의 대장을 죽인 큰 역할을 감당했기에 여걸(女傑)로 칭송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날마다 영적전쟁을 하는 성도들도 사단의 세력과 싸울 때, 죄악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의미에서 날마다 야엘처럼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거룩한 전쟁’을 해야 축복받는 성도가 된다. 야엘처럼 지혜롭고, 강하고 담대하게 마귀의 궤계를 물리쳐 축복의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그다음, 저주받은 자들을 알아본다. 삿 5장에서 저주받은 자들은 ⑴ 15하-16절의 르우벤 지파이다. 르우벤 지파는 드보라와 바락과 다른 지파로부터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고 큰 결심만 할뿐 움직이질 않아서 저주를 받는다. ‘큰 결심’(Great thoughts of heart, 히크레 레브)는 “도전은 받았지만 많은 토론만 있고 참여치 않은 것”을 의미한다. 말씀을 듣고 ‘나도 그렇게 해야지, 언젠가는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며 강한 도전은 받고 결심은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겐 하나님이 어느 정도 기회를 주고 기다리지만 기회가 지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나는 2012년 1월 13일까지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몇 년 동안 하루 75페이지 성경을 읽으면서 자족해 왔었다. 그러다가 28명의 성도가 21일을 금식하는 기도원(그 중에 몇 성도는 40일 금식까지 했다) 신년 집회를 인도하던 중, 어느 성도가 입신의 축복으로 천국계시(입신 중에 천국에 있는 방벽마다 성경구절이 장식된 나의 다이아몬드 집을 봄)를 본 후, “가서 내 종(엘리야목사)에게 지금까지 성경을 많이 읽은 것을 기뻐한다(그래서 천국 집 방벽들이 말씀으로 장식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보다 더 많이 읽고 특별히 계시록을 많이 읽으면, 이제까지 깨닫지 못한 많은 비밀을 알려줄 것이라 전해라”는 메시지를 듣고, 그날부터 새롭게 결심하고 매일 구약 100페이지 신약 75페이지 계시록 일일일독을 3년 반 동안 해왔다(부흥회나 외국선교를 나갔을 때나 집에 손님이 찾아와 여러 날 머물거나 행사들이 있을 땐...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주의 은혜로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다가 금년(2015년) 부활절부터 다시 새롭게 결심하고 매 9일에 성경 일독과 계시록 일일일독을 하고 있다. 이것은 자랑하려는 맘으로 하는 간증이 아니다. 어떤 좋은 결심이 서면 바로 순종하자는 말씀을 나누고 싶어서 하는 간증이다(그리고 내 나이가 개인적으로 시간이 많지 않고 할 일은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⑵ 17절의 길르앗과 단과 아셀 족속이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살던 땅 전체를 가리키는데, 드보라는 길르앗이 전쟁을 돕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나라가 백척간두위기에 처해 있는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활을 즐기는 것을 책망했고, 욥바에서(수 19: 46) 무역사업을 즐기던 단 지파를 책망했으며, 지중해 연안에 살고 있어서 야빈의 압제가 가장 심했던 스블론과 납달리 지역에 연접해 있으면서도, 자기 동족들의 전투에 무관심하며 자기생업에만 열중했던 아셀 지파를 책망하며 저주한 노래이다.

⑶ 마지막으로 23절의 메로스의 저주이다. 메로스는 전쟁이 극심한 기손 강 근처지역으로 추정되는데, 그들은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이 전쟁에 당연히 참전해 이스라엘을 도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 ‘나 몰라라’하므로 저주를 받았는데, 그들을 저주한 분은 놀랍게도 여호와의 사자,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저주였다.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이스라엘 어느 한 지파의 원수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함께 극복해야하는 언약공동체의 적이었다. 이스라엘은 혈연으로 뭉쳐진 민족공동체이고(출 1; 1-7) 하나님의 언약으로 뭉쳐진 언약공동체(출 19: 5-6)다. 그래서 가나안과의 전쟁은 어느 지파는 전쟁에 나가 목숨 걸고 싸워야하고 어느 지파는 집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되는 전쟁이 아니었다. 12지파 모두가 목숨을 걸고 대적해 싸워야 하는 민족전쟁, 국가전쟁이었다. 그래서 전쟁에 출전해 용감하게 싸워 ‘하나님께 즐겁게 헌신한 지파’는 축복을 받았고, 말로만 전쟁을 하며 머리나 굴리고 계산이나 하며, 강 건너 불 보듯 수수방관하고 자기 안일만 찾았던 지파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다. 김목사 교회도 아니고, 이집사, 박장로 교회도 아니다. 예수님이 피 값으로 세우신 예수님의 몸이면서 주기도문 성도들 모두의 교회다. 그래서 교회적으로 전도를 하든, 선교를 하든, 건축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지, 한 사람이나 몇 사람만 참여할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룩한 일은 마음의 결심과 생각으로 끝나선 안 된다. 손해가 오고 어려움이 와도 순종해야 한다. 고난이 오고 역경이 와도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축복과 기적을 경험하는 축복의 성도가 된다.

1978년 어느 날, 젊은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차력무술사범으로 미국에 왔다가 도장을 닫고 그로서리를 하다가 권총강도에게 네발의 총을 맞은 후 기적적으로 살아나 현재 조그만 세탁소를 하고 있는 부부였다. 남편은 내게 ‘목사님께 기도 받으면 불면증도 고침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안수기도를 부탁해 기도를 해줬는데, 다음 날 부부가 다시 찾아왔다. ‘제가 총에 맞아 피투성이가 돼 쓰러질 때, 가게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 장면을 본 아내가 충격을 받고 불면증으로 5-6년을 고생했는데(그 동안 하루 평균 1시간에서 두 시간을 잤다) 어제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치료를 받은 것을 보니(자신도 차력으로 다른 사람의 웬만한 병은 다 고쳐주는데 부인의 불면증은 고치질 못했는데 안수기도를 받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9시간 이상을 잤다고 한다) ’목사님 안수기도만 받으면 무슨 소원이든 이뤄질 것 같아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를 부자가 되게 안수기도를 해달라는 것이다. 다소 황당한 부탁이지만 다른 교회를 한두 번 나간 정도라 신앙이 없는 부부여서 이해했다.

안수기도를 해주기 전, 나는 그에게 ‘작은 부자는 사람이 만들고, 큰 부자는 하나님이 만드는데 어떤 부자가 되길 원하느냐’ 물었더니 ‘큰 부자가 되길 원한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큰 부자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러려면, ⑴ 반드시 주일성수를 해라 ⑵ 십일조성수를 해라(당시 그는 십일조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⑶ 주의 종을 잘 섬겨라. 목사가 당신 집이나 가게로 심방을 가면, ① 제일 먼저 가게에서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바치고 ② 목사님께 심방감사를 드리며 ③ 예배 후엔 제일 좋은 음식을 대접하라, 고 가르쳤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해서, 부부가 우리 교회를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 동안에 시련도 많았지만-십일조와 목사 대접하다가 수입이 적어서 살던 아파트에서 주거환경이 훨씬 나쁘고 싼 아파트로 옮겼다-그렇게 8개월이 지났을 때, 하루 매상이 250-280불이던 세탁소 매상이 750-900불이 되고, 1년이 지나자 하루매상1200-1300불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물론 내가 가르쳐준 세 가지를 철저하게 순종했다. 1년 2개월쯤 되자 ‘장사 잘되는 가게’로 소문이 나고, 복덕방에서 ‘가게를 팔라’고 연락이 오기 시작해, 1년 반 만에 가게를 팔고 더 큰 세탁소를 구입했다(2년 전에 4만 불에 산 가게를 14만 불에 팔면서 30만 불짜리 세탁소를 구입했다) 그때도 ‘부자 축복 3원칙’은 잘 지켜졌는데, 그렇게 순종생활을 잘하자 새 가게를 산지 3년 만에 50만 불짜리 세탁소를 하나를 더 구입하고, 45만 불짜리 Single Home도 구입해 ‘부자축복 3원칙 신앙생활’ 5-6년 만에 백만장자가 됐다.

1980년 내가 동부로 떠난 후, 집사부부는 다른 교회로 옮겼는데, 사업이 잘 돼 돈을 많이 벌자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여, 교회도 멀리하고 십일조생활도 해이해졌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세탁소에 권총강도가 들어와 많은 돈을 뺏기고 목숨을 건지게 되자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 새벽기도를 나가고, 주일은 물론 수요일, 금요일 예배까지 열심히 참석하며, 목사님을 따라 산기도도 따라가고, 금식기도도 하며 주의 종 섬기는 일은 맡아서 할 정도로 충성된 안수집사 생활을 했다. 그래서 신앙생활 14-5년 후, 피택 장로로 피선되고 모범성도의 교회생활을 했는데, 목사님과 성도들은 ‘시무장로로 장립 받아 교회를 섬겨 달라’고 하자 ‘사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장로 직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1995년 여름, 15년 만에 내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세탁소를 정리하고 1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큰 염색공장을 운영하는 대사업가가 돼 있었다. 점심을 대접하면서 그는 ‘목사님과 성도들은 시무장로로 헌신해달라고 하는데 너무 바빠서 미루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은 미루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그러자 그는 ‘돈 벌고 한국사회에 잘 알려진 사업가가 되다 보니 모임과 행사마다 초대를 받고, 사람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교회를 멀리하게 됐다. 장로직분을 받았으면, 교회 일에 바쁘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텐데, 세상일에 바쁘다보니 점점 교회를 멀리하는-주일성수까지 못하는-생활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으니, 하나님께 순종해 장로 장립을 받고 충성하라’고 권면하고 헤어졌다.

내가 1995년 가을에 한국에 갔다가 98년에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들은 소식은 ‘그가 얼마 전에 회사에 들어온 권총강도 총에 맞아 죽었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처음에 나로 인해 예수님을 알게 된 집사였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성도였으며, 그가 바라고 소원했던 큰 부자까지 됐던 피택 장로였는데, 그리고 신앙연륜과 경제능력도 이제부터 제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르우벤 지파는 큰 결심만 하고 헌신의 기회를 놓쳤다가 저주의 지파가 됐다. 오늘 당신은 결심만 하고, 생각만 하다가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있지 않는가? 당신이 20대, 30대 청년 때에 결심이 40, 50세를 넘기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세월은 당신의 결심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도 당신을 무작정 기다리시지 않는다. 결심이 설 때, 마음에 감동이 올 때, 부인과 의논하지 않고 새벽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출발한 것처럼, 주저 없이 순종하라. 그것만이 당신이 살 길이요, 당신 가족과 자녀들이 잘 되는 길이다. 

오늘도 여선지 드보라와 사사 바락의 듀엣 찬양은 지진처럼 우리 가슴을 흔들고 있다. 당신은 축복의 사람으로 역사에 남겠는가, 저주의 사람으로 이름을 남기겠는가?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실 때,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 그리고 내가 아직 기억력이 있고 눈 밝으며 힘이 있을 때, 겁쟁이 바락이 드보라의 말을 듣고 담대하게 도전하므로 사사 바락이 되고, 나라를 구출한 민족의 영웅이 됐듯이, 즉시 순종하므로 하나님나라에 신앙영웅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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