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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7월02일 17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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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의 어메이징그레이스
지난 주 금요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한 작은 도시인 찰스턴의 농구장에서 총기난사 희생자의 한 사람인 담임목사 크레멘타 피트니 목사님의 장례예배가 있었다. 6월17일 수요일 저녁은 임마누엘 AME교회(아프리칸감리교성공회)의 성경공부가 있는 날이었다. 담임 목사님과 교인들이 모였는데 한 백인 청년이 처음으로 방문했다. 누가 문을 열어주고 받아드렸는데 그가 쏜 총에 담임목사를 비롯하여 신도 등 9명이 살해당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41세의 클레멘타핀크니 목사였다. 13살에 강단에 서고, 18살에 담임목사가 됐고, 23살에 주상원의원으로의 공직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날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장례식에서 추모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그저 단순히 대통령의 흑인 목사에 대한 추모사가 아니었다. 그의 연설은 연설이라기 보다는 설교였다. 예언자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치료의 시간이었고 용서의 시간,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의 연설내용은 감동적이었고 청중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날 그는 연설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선량함이라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한다면 모든게 가능해집니다. 그 은총을 통해 모든 것을 바꿀수 있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두번 되풀이 해서 말한 후 오바마대통령은 잠시 침묵했는데 어느 순간 그의 입에서 뜻하지 않게 낮고 깊은 바리톤음성의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모두가 깜짝놀라고, 다 일어나서 같이 “나같은 죄인”을 불렀다.

1절을 끝까지 다 불렀는데 어떤 사람은 울고 웃고, 박수치고, 감동에 젖은, 많은 이가 눈물을 닦았다. 올르간이 반주를 시작했고, 성가대와 6천명의 청중들이 같이 “나같은 죄인”을 불렀다. 흑인 특유의 톤으로 느리게 찬송가를 부른 그는 그 시간 한 사람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형제자매였으며 설교자였고 상을 당한 미국이라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거기에는 갑자기 희생을 당한 사람, 목회자들과 교인들에 대한 깊은 애도와 사랑, 희생자의 가족을 감싸주고, 예배에 동참한 모든 이들을 안아주는 사랑과 아픔과 위로가 있었다. 이 찬송가는 사실 영어가사가 더 의미가 깊고 감동적인 노래다.

그날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의 백미는 어메이징그레이스 노래가 끝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9명 희생자의 이름이 힘있게 불려진 것이었습니다.

“핀크니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찾았습니다”. 수지잭슨은, 에텔랜스는, 디페인미들톤은, 티완자샌더슨은, 다니앨시몬은, 샤론다콜멘싱글톤은, 미라톰슨은 등 각 사림의 이름을 부르면서 같은 말, “하나님의 은혜를 찾았습니다” 를 8번 더 되풀이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 저희들은 이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한 값지고 특별한 은혜의 선물을 계속 받을 것이고 이 하나님의 은혜는 미합중국 전역에 전해주실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는 교회 담임 핀크니 목사에 대하여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믿음으로 살던 사람이었다”고 말하면서 보지않고도 믿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인간의 증오심으로 인하여 눈을 멀게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약속받은 모든 것을 다 받지 못하였더래도 언제가는 받을 것을 알고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올 것을 믿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처음보는 그를 문을 열어주고 환영한 교인들이었다. 그는 그들의 환영을 마음에서 받아드리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희생자의 가족이 슬픔 속에서 말한 “그를 용서한다” 라는 “용서” 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 상상도 하지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 처음들은 단어인지 모르지 않았을가 생각한다. 죽인자는 그의 희생자들이나 가족들이 알고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경험해 보지못했고, 더구나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담임목사 핀크니 목사님에게서 용서와 사랑의 가르침을 받은 가족들은 그의 가르침대로 그를 용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랑하는 것, 용서하는 것을 가르친 그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의 가르침이 희생자 가족들의 입에서 “용서한다”라는 실질적인 단어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바마대통령은 핀크니목사가 교회 뿐 아니라 그가 사는 지역사회의 봉사한 것까지도 말했다.

목사님은 미국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소외받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학교 교육시설이 부족한 곳, 어린이들이 아직도 배가 고픈 동네, 아파도 치료도 받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곳에서 핀크니 목사는 지역사회를 위해서 일했다고 말했다. 주의회 의원으로 외롭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신념을 가지고 일했고 실망하지 않았다. 목사님은 남들에게 못되고 비열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약자로서도 행동하지 않았으며 조용하고 친절하게, 자기의 의견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찾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동반자로서 같이 일했다. 긍휼심이 많았던 그는 남의 불편한 일도 대신해주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았다. 방안에서 기도만 하지 않은 그는 사람들을 도왔는데 배고픈 자는 먹이고, 옷이 없으면 입히고, 홈레스에게는 잘곳을 마련해 해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어떤 곳이었는지 말했다. 흑인들에게 있어 교회는 편하지만은 않은 세상,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에서 쉼의 장소였다. 그러므로 이번 총격사건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에게 온 세상이 슬픔을 나누지만 통증은 어느 누구보다 심하고 아프다고 말하면서 교회는 특히 흑인들에게 삶의 중심지였다고 말했다. 과거 수세기 동안 흑인 교회는 노예들에게 안전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 “hush harbors” 이었으며, 모여서 할렐루야를 외쳐 소리칠 수 있는 찬양의 장소였고, 도망하는 노예들의 장소였고, 노동자들의 쉬는곳 이었다고 말했다. 교회는 흑인들에게 봉사센터의 일도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일터를 마련할 계획을 짜고, 네트워크의 장소이고 아이들이 먹고 놀수있는 위험이 따르지 않는 장소, 멋있고 똑똑하다고 칭찬받는 장소, 이 모든 것을 배우는 장소이기도 했다.

임마누엘AME교회가 가지는 의미는 큽니다. 그곳은 그곳 교인들의 자존심이 손상받지 않는 곳이고 임마누엘교회보다 더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 없는 곳입니다. 임미누엘AME교회는 자유를 찾는 흑인들에 의하여 지어진 곳이며, 노예제도가 끝내기를 바랬기에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일으킨 화재에 의하여 불타버린 교회였으나 불사조같이 재더미에서 일어난 곳이 임마누엘AME 교회 입니다.

핀크니와 다른 8명의 죽은자와 죽인자가 모두 이런 흑인교회의 역사를 안다고는 말할수없으나 이런 위험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압니다. 폭탄과 화재, 총으로 교회들에게 악한 행동함으로 통제하고, 위협하고 압박하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나라를 만든 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하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분이며 다른 의견도 가지고 계신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의해 사용되어지는 것을 몰랐고 증오로 눈먼 이 청년은 목사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했으며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비치는 사랑의 빛을 보지못했을 것이다.

증오로 눈이 먼 이 청년은 목사님이 알고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에게 은혜는 찬송가 “나같은 죄인”에 설명되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신성한 것으로 은혜는 거저받고 하나님의 은혜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 비극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가 어떤 점에 장님이었는지를 알게했습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셔서 잃어버린데서 우리 자신을 찾게했습니다. 우리가 잃었던 은혜를 원한이나 자만, 서로 간에 대한 근시안적인 생각과 공포로 인하여 얻지못했을 지라도 주십니다. 다시한번 더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를 주십니다. 감사함으로 받은 은혜를 값지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너무 오랜기간 동안” 이라고 말하면서 미국의 시민인 우리들이 장님이었던 것들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는 남부연합기가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아프게했는데도 그 고통을 보지않은 장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남부기가 이번 살인사건의 원인은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조직적인 억압과 백인흑인 등 인종의 예속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남부연합군기를 내리는 것이 남북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즉 노예제도를 인식한 것입니다. 노예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 이후의 인권에 대한 반대도 잘못된 것입니다. 미국 역사에 한 발자욱 더나가는 것으로 치료되지 않은 상처에 대한 의미있는 진정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더 나은 나라, 주(州)를 위한 놀라운 변화의 표현인 것입니다. 선한 뜻을 가진 여러사람들의 노력으로 모든 인종의 사람들은 더 온전한 미국을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를 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오랜기간 과거의 불의가 우리가 지금 보고있는 오늘의 모습을 형성했습니다. 이 비극으로 우리는 우리의 수많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여 가난 속에서 살며 무너져가는 학교에서 살도록 했는지 직장이나 평생직업에 대한 가망성없이 자라도록 하게했는지 우리에게 물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 미움을 키우지 않았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인종간의 차별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마음을 병들게하지 않았는지 생각합니다. 차별적인 용어를 교정해야 하고 모든 어린이들을 그들이 태어난 신분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귀하게 생각하고, 모든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너무나 오랜기간 동안…” 이라고 대통령이 말하니 모든 청중들이 따라서 “너무나 오랜동안..” 이라고 외쳤습니다.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너무나 오랜동안 우리들은 눈을 뜨고도 장님이었습니다. 교회지하실에서, 극장에서, 국민학교에서 총기사고로 죽었습니다. 매일같이 수십명의 사람들이 총기사고로 죽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총기사고로 인하여 셀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했습니다. 불구가 되고, 아이들은 상처받고 매일 두려움 속에서 학교에 가고, 남편들은 아내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총기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같은 사건을 봅니다.

우리들은 죄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저 주십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얻을지 선택하고 어떻게 명예롭게할지 결정해야 합 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되고 부족한 것을 교정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서 쾌적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하는 편견이라는 불편한 진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위한다면서 상징적인 모습만
보인다면 또다시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마음을 엽시다. 선함이라는 은총을 발견한다면 모든것이 가능해집니다. 그 은혜를 통해 모든 것을 바꿀수있습니다. 어메이징그레이스.

그날의 그의 추모사를 들은 수많은 청중들과 CNN, MSNBC방송인과 방송을 통해 들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대통령이 추모연설에서 그처럼 말하고 연설의 끝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대통령은 전에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있겠느냐고 말들을 하였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필자는 70년대 흑인이 90%였던 병원과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려는 지역정신건강센터에서 2년을 일한 적이 있어서 그들의 고통과 문제를 알고 보고, 들었다.

증조할머니가 자유노예 (freed slave)였다는 할머니, 백인직원만 보면 어쩐지 기가죽던 젊은 여성직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꾸 방황하던 남자직원,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의 열기와 좌절에서 고통하던 환자들과 직원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좌절을 코케인으로 해결하려던 환자가 된 그에게서 고통을 보았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연락하는 그때의 젊은 환자가 있었다. 힘들고 정신증상이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나에게 자기도 모르게 전화번호를 돌린다. 내가 목사가 된 것을 알고 기도해달라고 하고 자신이 어디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준다. 그가 입원해있던 병원의 직원에 나에게 누군가 질문을 해서 오래전의 환자인데 증상이 악화되면 전화하는 환자라고 말해주었다. 미국의 흑인이 대통령이고 법무장관, 시장등 많은 분야에 지도자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별의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이런 문제로 고통받지않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차별의 문제는 온 세계의 문제로 흑백인종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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