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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6월25일 12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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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성경칼럼 김준남 목사, <미쿡 목사의 사랑이야기> 출간
뉴욕기독교방송 CBSN에서 ‘원어성경칼럼’을 진행하고 있는 김준남 목사(생명의 빛 교회 교육목사)가 신간 ‘미쿡 목사의 사랑이야기(프로슈코마이 출판사)’를 출간했다.

신간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을 헬라어 원문과 비교하여 그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정리했다.

김 목사는 서문에서 “본서는 성경해석의 문법적 오류를 지적하는 데 목적이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된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서 오해하므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고 그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바로 알려 줌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원문과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통해서 찾아서 그것을 충실하게 설명하여 정리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김준남 목사의 약력과 서문을 발췌한 내용이다.

<김준남 목사 약력>

1963년 생으로, 서울 신학대학교 및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충청남도 화성군에 위치한 화성 성결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였으며 1993년에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페트라 원어성경 연구원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법과 원전강독 과정을 수료했으며 제주시에 위치한 제주중앙성결교회 담임 목사로 시무하면서 제주 순복음 신학교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강의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퀸즈 성결교회와 한인동산 장로교회에 교육목사로 사역했다. 한국 외국어 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E-MBA)을 수료하였으며 NYTS D.Mim 과정을 수료했고 뉴욕 에스라 성경 연구원을 통하여 목회자를 위한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법강의와 원전강독을 강의하고 있다. 

2015년도에는 특별히 뉴저지 서머니 교회 성도들에게 헬라어 문법과 원전강독을 위한 기초를 강의했다. 현재는 생명의 빛 교회 교육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면서 뉴욕 기독교방송(CBSN)에서 ‘원어성경칼럼’을 맡아 진행중에 있다.

Jnk1009@gmail.com

<미쿡 목사의 사랑이야기 서문>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구약 성경은 거의 1600년 간에 걸쳐 기록 되었으며 여기에 사용된 언어는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고 그리스어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의 우리말 성경으로 알려진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 (1882년)가 있는데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선교사였던 존 로스(1842∼1915)와 존 매킨타이어(1837∼1905) 그리고  여러 명의 조선인 등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해서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성경 번역 위원회'가 구성되어 1900년에 신약, 1911년에는 구약이 모두 번역 되었다.  그 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지금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여져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번역된 개역성경은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문장 구성에 있어서 성경으로써의 품위도 풍부해서 성도들에게 사랑 받는 성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성경 번역에 있어서 번역자들의 사상에 기초한 용어를  선택할 수 밖에 없고 그 당시 한국 사회의 도덕과 윤리, 그리고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번역할 수 밖에 없기에 성경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독일의 철학자 슐레겔((Friedrich von Schlegel)에 의해 유명해진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번역은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행위가 아니다. 번역은 언어 뿐 아니라 해당 작품이 지닌 문화적 상황과 심지어는 역사적 맥락까지 고스란히 옮겨와야만 하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완전한 번역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번역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성경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할 수 밖에 없기에 반드시 해석하여 가르쳐 주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필자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을 헬라어 원문을 찾아가며 그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로 포장되어 번역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그대로 국어사전 의미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헬라어 ‘프로슈코마이’(προσεύχομαι)는 ‘기도하다’라고 번역이 되었다. 올바른 번역이지만 국어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빌다’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 들은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로부터도 가능하면 많이 기도할 수 있도록 강요 받기도 한다.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는 생각에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고 또 바라는 것이 있으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도는 모든 종교인들이 하는 기도이며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이다.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를 확장시키기 위한 기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인간에 대해서 ‘허물과 죄로 죽은 자’(엡2:1)로 규정하여 기도할 수 없는 존재 임을 말하고 있다. 결국 죽은 우리를 향하여 먼저 하나님의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인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아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바로 그 진리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시는 생명의 약식인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기도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흘림’이라고 정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 번역된 많은 단어가 국어사전적 의미로 해석되어 성경의 의미와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두번째로, 종교적 상식의 의미로 번역을 하면서 본이 아니게 완전히 반역의 수준으로 번역을 하므로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성경적 의미와는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는 말씀은 원문에 ‘…τῶν ὧδε ἑστώτων οἵτινες οὐ μὴ γεύσωνται θανάτου ἕως ἂν ἴδωσι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ἀνθρώπου ἐρχόμενον ἐν τῇ βασιλείᾳ αὐτοῦ’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번역자는 ‘οὐ(결코 아니다)  μὴ(아니다) γεύσωνται(경험하다) θανάτου(죽음)’을 ‘죽기 전에’로 해석했는데 원문에는 ‘οὐ’(우)라는 부정이 붙어있어 부정에 부정인 강한 긍정의 의미로 쓰여있어  ‘반드시 죽음을 경험해야만’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처럼 된 내가 반드시 죽어야(θάνατος)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죽을 수 없기에 예수님이 십가가에서 내가 되어 죽으신 (θάνατος) 것이다.

이렇게 번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나토스’(θάνατος)의 죽음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단지 종교적으로 또한 상식적으로 죽음이 두려워 ‘죽기 전에’로 번역한 것이다.  ‘다나토스’(θάνατος)의 성경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번역된 ‘죽음’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무트’(תמּו)인데 그 의미가 ‘진리의 완성’이다. 반드시 ‘다나토스’(θάνατος)의 죽음을 통과해야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요5:24).   그러기에 ‘다나토스’(θάνατος)의 죽음은 반드시 죽어야 할 죽음이요, 참 좋은 죽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 여러 곳에서 ‘다나토스’(θάνατος)라는 단어만 나오면 반대로 번역해 버린 것이다. 그 단어의 성경적 의미만 알면 그렇게 오역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세번째로, 번역된 단어가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 어쩌구니 없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기에 반드시 구약에 나오는 단어를 통해서 그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14:34)는 말씀에 따라 문자 그대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그 결과로 여자는 강단에서 설교할 수 없기에 여성 목사 안수를 금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제사장은 남자였기 때문에 여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요즘의 여성 목사 안수는 성경적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 평등 원칙에 의해서 할 수 없이 주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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