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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6월13일 20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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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의 사대 신앙고백 (잠 30: 1-10절)
지구촌 200여 나라의 모법(母法)이라고 부르는 탈무드법전은 주전 444년, 70년 바벨론포로생활에서 본토로 귀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학사겸 제사장이던 에스라가 낭독했던 율법서에서 시작해 주후 6세기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유대인의 교훈들을 기록한 법전이다. 이 탈무드법전 안에는 수많은 율법과 성서해석, 율법규례와 현명한 충고, 여러 가지 삶의 지혜, 자선과 박애, 강한 가족 관념과 폭력에 대한 미움, 잔인에 대한 배척과 동물학대에 대한 경계 등 수많은 것이 기록됐다.

총 6장에, 63권의 소책자로 된 이 탈무드는 첫 번째 장엔, 농업에 관한 율법들과 그 설명이 기록돼 있으니 그것을 제라임이라 하고, 두 번째 장은 안식일과 축일, 금식일에 관한 율법들로 모에드라 부르며, 셋째 장은 결혼과 이혼에 관한 율법들로 나쉼이라 부르고, 넷째 장은 네제킨이라 부르는 민법과 형법에 관한 율법이며, 다섯째 장은 성소와 제사의식에 관한 율법인 코다쉼 마지막 장은 레위인의 정결에 관한 율법으로 토호로트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탈무드는 유대인의 자녀교육과 천재교육에서 각 나라의 모든 법률까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다. 그런데 탈무드에서 역사에 전무후무한 지혜지존 솔로몬,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부귀와 영화의 지존, 그리고 1950년대 환율로 대략 1천 500억불, 오늘날의 환율시가(市價)로는 5,000억불이 넘는 세계최초, 지상최대 최고의 값비싼 성전을 건축해 하나님께 바친 솔로몬, 그리고 위대한 사상가요 철인이며, 대문학가요 저술가였던 솔로몬이 여섯 개의 이름을 가졌었다고 기록됐는데 그 이름은 ⑴ “평화”와 “평강”이란 뜻의 솔로몬(Solomon) ⑵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자”란 뜻의 여디디아(Jedidiah; 삼하 12: 25) ⑶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코헬렛(Koheleth) ⑷ “신앙심이 깊은”, “경건한”, “복종”이란 뜻의 야게(Jakeh)의 아들 ⑸ “모으는 자”, “채집자”, “수집하는 자”란 뜻의 아굴(Agur) ⑹ “하나님께 향한”, “하나님을 위하여”란 뜻의 르므엘(Lemuel) 등 여섯 개의 이름이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라고 한 것은 잠언 30장이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의미이다. 이제 “모으는 자”, “채집자”, “수집하는 자”의 아굴이란 필명(筆名, (Pen Name)으로 자기인생과 신앙을 고백하며 기도제목을 진솔하게 고백한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서 “아굴의 사대 신앙고백”을 알아본다. 아굴은 본문에서 무엇을 고백했는가? 솔로몬이 본문을 통해서 사람들을 경계하고 교훈하고자 했던 익명충고(匿名忠告)는 과연 무엇이며, 그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이었으며, 그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일평생의 기도제목은 무엇인가? ‘아굴의 신앙고백’은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1. 사람들을 향한 아굴의 고백

2절, 3절을 본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Surely I am more stupid than any man;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바보스럽고 어리석다”) 내게는 사람의 총명(聰明)이 있지 아니 하니라(I don't have the understanding of a man)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I neither learned wisdom)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도다”(Nor have knowledge of the Holy One)

‘다른 사람에 비하면 짐승이라’는 말씀의 문자적인 뜻은 “확실히 나는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짐승과 같다”라는 뜻이다. 아굴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 자신의 지혜, 하나님이 없는 인간지혜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지혜요, 하나님을 아는 자의 지식과 비교할 때, 세상적인 나의 지식과 지혜는 짐승의 지혜와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그렇다. 머리와 가슴에서 하나님을 쫓아내버린 인간의 지혜, 하나님 없는 무신론적인 인간지혜는 먹고 잠자고 똥 싸고 새끼 낳고 살다가 어느 날 속절없이 허무하게 잡혀죽는 짐승의 지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학교교육을 15-6년, 20년, 25-6년을 받아서 최고지성이 되고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더라도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른 것이 없다.

남들이 하기 힘든 공부를 많이 했다. 남들은 하나도 따기 어려운 자격증과 면허를 여러 개나 취득했다. 다른 사람은 꿈도 꾸기 어려운 분야를 전공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월급도 많이 받고, 어디를 가든 좋은 직장이 기다리고 있으며, 많은 보수와 높은 자리가 보장돼 있어서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결혼대상도 최고수준의 사람을 맘대로 선택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가 세상을 떠나 죽음 건너편으로 여행을 시작할 때, 그 고급지식과 화려한 인생경력과 그 좋은 면허장들과 높은 지위와 막강한 세력이 자기 영혼을 구원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For what is a man profited, if he shall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or what shall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 마 16: 26)라고 했다. 그렇다. 사람이 만일 천하의 지식을 다 배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다 해도 그 지식이 제 목숨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사람이 만일 천하의 지혜를 다 가졌어도 자기 생명을 지옥에서 건지지 못하고 그 지혜와 함께 지옥으로 들어간다면, 그리고 사람이 만일 천하의 모든 재산을 소유했어도 그 재산이 자기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지식과 지혜와 재산은 아무 유익이 없다. 그 지식과 지혜는 짐승의 지혜일뿐이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생명,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겠는가?(What shall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 자기영혼과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 목숨, 자기영혼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구상에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허무한 일이다. 정말 허무한 일이다. 당신이 지식과 지혜를 통해 얻은 수많은 자격증과 면허증과 학위증 그리고 노벨 평화상 문학상까지라도 영혼구원에는 아무 효력을 발생할 수 없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지혜와 지식은 짐승의 지혜일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최고의 지혜, 구원과 생명의 지혜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하나님께 대한 아굴의 고백 

본문 4-6절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아굴의 신앙고백이다. 아굴이 하나님을 향하여 했던 열 가지 고백을 알아본다. ⑴ 하나님은 임의대로 하늘에 올라가실 수 있는 분이시다(God can ascend to heaven; 4절, 창 18; 33, 28: 12, 요 3: 13, 신 30: 11-12, 롬 10: 6-7) ⑵ 그분은 맘대로 하늘에서 내려오실 수도 있는 분이다(He can descend from heaven; 4절, 슥 14; 5, 딛 2: 13, 유 14, 계 21: 2, 10) 역사이래로 자기 임의대로 하늘에 올라간 자가 누구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어디 있는가? 하나님과 예수(요 3: 13) 외에 그 누구도 없다 ⑶ 그는 바람을 장중에 모으신 분, 바람을 맘대로 주장하시는 분이시다(He controls the wind; 4절, 전 1; 6, 시 19: 1-6, 마 8: 27) 하나님은 바람을 주장하셔서 공기가 오염되거나 혼탁해져 전염병이 만연할 때, 거센 태풍을 불게 하여 병균들을 싹 쓸어버리시고, 사나운 회오리바람, 불가항력의 토네이도 돌풍, 비구름을 몰고 오는 거센 바람과 태풍으로 공기를 정화시키시며, 봄을 데려오고 겨울을 끌어오는 계절풍과 농사꾼의 이마에서 땀을 식혀주는 가을바람까지 크고 작은 모든 바람을 주장하시는 분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촌 구석구석의 모든 사상과 이념의 바람까지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⑷ 하나님은 물을 옷에 싸듯, 오대양육대주의 모든 물을 주장하시는 분이다(He controls the waters: 4절, 욥 26: 8, 시 104: 6-9, 잠 8: 28) 하나님은 산꼭대기에도 물이 있게 하시고, 모래사막에도 오지정글에도 물이 있게 하시며, 물을 변화시켜 피가 되게 하기도 하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기도 하시며, 하늘 문을 닫아 3년 6개월과 7년을 비 한 방울 오지 않게도 하시고, 하늘이 찢어지듯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게도 하시는 분이며 차돌바위반석을 터트려 생수가 솟아나게 하시는 ‘물을 주장하고 다스리시는 분’이다.

⑸ 하나님은 땅의 모든 끝을 정하신 분이다(He established the land out of the waters; 4절, 창 1; 9-10, 렘 5: 5: 22, 욥 38: 4-11, 시 102: 25) 그렇다. 성경대로 하나님은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고 뭍이 드러나게 하므로, 물은 오대양이 되게 하셨고, 육지는 육대주가 되게 하셨다. ⑹ 하나님은 이름을 갖고 계신 분이다(He has a name: 4절, 창 1; 1, 출 3; 13-15, 6: 3, 34; 14, 시 68: 4, 사 57: 15) 성경엔 하나님께서 당신자신의 이름을 여호와, 야훼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에예 아셀 에예)라고 하신 후, 여호와 이레, 여호와 살롬, 여호와 라파, 여호와 삼마, 여호와 치두케누, 여호와 닛시...등 인격적인 이름만도 28종류로 알려주셨고, 신약에서 독특한 이름으로 알려준 이름은 8 종류, 그리고 12가지의 상징적인 이름까지, 성경엔 무려 48가지 이름을 알려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름을 갖고 계신 분이다.

⑺ 하나님은 그 아들을 갖고 계시는데(He has a Son; 시 2; 7, 요 3: 16, 마 1: 21, 사 9: 6-7) 그 아들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신 예수이시다. ⑻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다(His every word is pure; 5절, 시 19: 7, 딤후 3: 16-17) 그 말씀이 순전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성도들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다 ⑼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방패가 되신다(He is protector of all who put their trust in Him: 5절, 시 91편)

⑽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하는 자를 너그럽게 용서하거나 관대하게 받아주는 분이 아니시다(He will not tolerate additions to His Word; 6절, 신 4; 2, 12: 32, 계 22; 18)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하는 사람도 용서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삭감하는 자도 용서치 않는 분이시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말씀에 더하고 빼는 얄팍한 자기 꾀에 넘어가 사단유혹에 져서 죽임을 당한 것을 보라. 그래서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저주하되 계시록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고 했다(If any man shall add to these things. God shall add to him the plagues that are written in this book; 계 22: 18) 그 이론이 어떤 이론이든,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이든, 그 사상이 어떤 사상이든...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봐주시거나 묵인해주거나 너그럽게 용서해주지 않으리란 말씀이다.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그에게 더 하겠다’는 하나님의 단호한 말씀을 보라. 계시록엔 하나님의 재앙이 무려 32가지가 기록됐다. “하나님의 촛대인 교회, ‘주의 종’을 옮기겠다”는 재앙에서(계 2: 5)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는 재앙(계 3: 5, 출 32: 32-33) 그리고 “전쟁과 기근과 지진, 불과 피, 독물을 마심, 영원한 불지옥에 던짐까지”(계 2: 11, 14: 9-11, 22: 15) 32가지의 재앙이다. 말씀에 더하는 자에게 내리겠다는 재앙들이다.

아굴은 하나님께 대한 열 가지 신앙고백의 그 마지막 고백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는 자를 하나님이 책망할 것이고, 너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더하는 거짓말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삭감하는 거짓말도 하지 않는 그래서 말씀을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며 지키므로 축복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아굴의 고백적인 두 가지 기도

7절에서 9절까지는 아굴이 자기평생의 소원을 두 마디로 기도한 기도내용이다. 아굴은 “하나님이여, 내가 죽기 전에 나의 기도(祈禱)를 들어 주소서”(Deprive me not before I die; Deny me them not  before I die: Do not refuse me before I die: “내가 죽기 전에 이 소원들을 거절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의 두 가지 기도제목은

⑴ “허탄(虛誕)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
 (Remove far from me vanity and lies; “헛된 것과 거짓을 내게서 멀리 하소서”)

‘헛되고 허탄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게 하소서’...아굴의 기도를 묵상하며 곱씹어 볼수록 그의 기도가 참으로 귀하고 위대한 기도라고 생각된다. 내 인생 70 고희(古稀) 문턱에 올라서보니,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산 것보다는 허황되고 망령된 허탄한 삶과 위선적이며 거짓된 삶이 더 많은 것에 부끄럼을 느끼기 때문이다. 50여년을 목회한 부족한 목사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반세기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정직과 진실함보다는 위선적이며 거짓되고 허황되고 망령된 허탄한 삶을 살아왔다. 없으면서도 다 가진 척,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다 아는 척, 약하면서도 강한 척, 기도도 안하면서 많이 하는 척, 경건하지도 않으면서 경건한 척, ‘척 척 병’에 걸려 살아왔다. 그러기에 아굴의 기도는 김목사의 기도가 돼야 한다.

거울이 처음 나왔을 때, 이야기다. 어느 시골 농사꾼이 장날에 시장에 갔다. 지게에 지고 간 물건을 다 판 후, 시장구경을 하다가 거울을 발견했다. 얼굴을 비추면 얼굴이 보이고, 태양빛을 받아 멀리 비추면 신기하게도 광선막대기처럼 빛을 반사해 준다. 그래서 비싼 돈을 주고 거울을 사서 집에 돌아온 후, 장롱서랍에 몰래 넣어두었다. 그리고 밭에서 일하고 들어와서는 서랍을 열고 자기 혼자 싱글벙글 웃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한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서도 그 짓을 하고, 밖에 나가면서도 그 짓을 하며,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도 뜬금없이 예전에 하지 않던 짓을 한다. 정신병자가 아니고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 일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내가 남편을 수상하게 생각해, 남편이 외출한 후, 몰래 장롱서랍을 열어봤는데, 장롱서랍 안에 예쁘고 잘 생긴 젊은 여자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충격을 받은 부인은 화가 나고 고민이 생겼다. 장롱 속에 젊은 여인을 숨겨두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분하고 억울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때부터 일 잘하던 부인이 일도 안하고, 남편 밥 잘해주고 아이들 잘 챙기던 부인이 사사건건 소리를 지르고 불평불만이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타일렀다. 그랬더니 ‘남편이 젊은 부인을 데리고 사는데 어떻게 내가 좋을 수가 있느냐’고 한다. 그러면서 젊은 부인이 장롱서랍 속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후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장롱서랍을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는 이빨도 다 빠지고 머리는 하얗게 쉬고 얼굴을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장롱속에 있는 여자는 젊은 여자가 아니고 나처럼 늙어빠진 할망구라고 했다. 그래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장롱속의 여자가 젊은 여자다, 늙은이다 하며 우기고 있는데, 마침 밖에 나갔던 남편이 들어왔다. 그래서 남편이 서랍속에 숨겼던 거울을 꺼내 설명해줬다는 얘기다.

그렇다. 거울 속에 나는 나 이상도, 나 이하도 아니다. 내 얼굴이 햇볕에 까맣게 탔으면 거울 속에 나도 까맣고, 내 얼굴이 예쁘면 예쁘고, 코가 크면 코가 클 뿐이다. 내가 하얀 드레스를 입었으면 흰 드레스의 멋쟁이여인이고, 내가 이목구비가 늘씬하면 팔등신 콜라병미인이며, 내가 김목사처럼 짜리몽땅하면 짜리몽땅 늙은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 이상으로 둔갑해보려고 하고, 나 이상으로 변장하기도 하며, 나 이하로 속이기도 하고, 나 이하로 자신을 숨기기도 한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아굴처럼,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된 그리고 망령되고 허탄하며 온갖 거짓됨을 내게서 멀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⑵ “나를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시며, 필요한 양식으로만 먹여 주소서”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Feed me with food convenient for me!

나를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시며, Feed me only my necessary food(“나에게 필요한 양식으로만 먹여 주소서”) 아굴의 이 기도 또한 위대한 기도였다. 그는 이 기도를 하면서, 내가 부자가 되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하나님을 잊어버려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두렵고, 내가 가난하게 된다면, 내가 남의 것, 형제의 것 그리고 하나님의 것까지 도적질하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에서라고 했다.

한때 솔로몬은 천하 모든 사람보다 부귀와 영화가 뛰어나게 되고 최고의 권력을 누리게 되자 1,000명의 부인을 거느리는 희대의 플레이보이가 됐고,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나타나셔서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도록 등 따습고 배부르다보니,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먹고 즐기며 마시고 놀기에 바빴으며 이방여인들의 꾐에 빠져 우상숭배까지 하게 됐다. 오늘도 축복의 그릇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이 사업이 잘돼 작은 성공을 한 후, ‘내가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됐고, 지혜가 있어서 성공했으며, 재수가 좋아...장사(가게)터가 좋아 돈 벌었다’며, 새벽마다 성전을 찾던 사람이 밤늦도록 노는 일에 시간 보내다가 새벽기도 졸업하고, 나중에는 수요일예배 졸업에서 주일예배까지 졸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히고 사업이 망해 알거지가 됐을 때는 새벽마다 성전을 찾아와 부르짖고, 예배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한번만 살려주시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주일성수하고 십일조도 바치며 주의 종도 잘 받들고 선교헌금, 건축헌금도 바치겠다’고 작정하고 약속해 놓고는 사업이 잘돼 살만해지자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를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시며, 내게 필요한 양식으로만 먹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아굴의 고백, 솔로몬의 기도는 너무나 이치에 맞는 기도이다. 오늘 아굴의 고백적인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고, 솔로몬의 기도가 아멘이 되며, 입을 열러 그 기도를 드리므로 그 기도처럼 우리 삶을 살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4. 평신도를 향한 아굴의 경고적인 고백

10절을 본다. “너는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Accuse not a sevant to his master. Lest he curse you and you be found guilty; Do not falsely accuse a servant, lest you be found guilty and he curse you for slander)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주인에게 그의 종을 헐뜯어 말하지 말라. 그 종이 저주하면 너는 하릴없이 당한다”고 번역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든 은밀 하게든, 어떤 종을 그 상전에게 모함하거나 고발하지 말라, 남의 실수를 이웃에게 고발하지 말라는 명령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평신도가 실수한 주의 종을 하나님께 고발하거나 훼방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적인 메시지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을 훼방하거나 중상하며 대적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교인들을 대적하시며 그런 자들은 죄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성경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빚을 갚아야 할 자’, 회계(會計)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 17)고 했고,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16: 6)고 했으며,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전 16: 18)고 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성전에 계신 예수님이 오른손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붙잡고 계시다“(계 1: 16, 2: 1)고 하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대적하는 것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대적하거나 내 손으로 주의 종을 치는 것은 야훼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이라“(삼상 24: 6, 26: 11)고백하며 집요하게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끝까지 피했다. 그러나 마지막엔 600명 군사들을 데리고 아기스에게 망명하여 블레셋 용병으로 사울과 정당하게 전쟁을 해 복수하려다가 아말렉 복병을 만나 곤욕을 치루고 추종자 부하들의 반란으로 죽음의 위기까지 겪은 후(삼상 30: 1-6) 회개하여 본래의 자기 신앙을 회복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를 두둔하거나 옹호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고 그래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 목사들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저지르고 죄도 짓는다(나는 지혜가 부족해서 다른 목사들보다 실수를 더 많이 한다) 그러나 담임목사의 죄와 실수를 징계하고 바로 잡는 일은 장로나 권사 집사 평신도 심지어 부목사의 몫이 아니라 그들을 종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몫이다. 그렇다고 목사는 아무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종말시대이기에 목사들의 실수와 범죄가 점점 더 많이 나타나고, 그들을 향한 사회와 교인들의 돌팔매질이 더 거칠고 야만적인 것이 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주의 종들도 정신 차려 죄를 멀리해야 하고, 성도들도 주의 종들을 대적하는 일을 멀리하는 것이 신앙의 지혜이다. 아굴은 본문에서 그것을 경고하며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50여년의 짧지 않은 내 목회생활을 돌아볼 때, 비록 목사가 실수했지만 그들을 훼방하고 중상하고 대적한 사람들, 본인과 자손들이 잘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이 많은 권사의 간증이다. 청주에서 권사님이 장로님과 함께 4-50명 되는 작은 교회에서 목사님의 개척교회를 도왔다. 기도 많이 하는 권사와 큰 회사 사장인 장로의 전도로 8-9년 만에 당시 충청도에선 가장 큰 3,500명이 모이는 교회를 이루었다. 그 동안 장로가 드린 헌금은 천문학적일 정도로 많은 헌금을 드려 큰 교회를 건축했고, 많은 장학금을 드려 가난한 학생들을 도와 교회를 알렸으며, 전국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수많은 가난한 시골 교회 목사 전도사들의 생활비를 대주었고, 교회버스 구입하는데 필요한 돈 요청하면 버스를 사주고, 교회장의자에서 피아노 전자 오르겐 에어컨 음악시스템 교회 마이크 등을 구입해 주었다. 그리고 장로를 통해 구제받은 사람들은 수천 명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교회들을 물질로 섬기고, 주의 종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다가 보니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장로의 도자기 회사는 세계적인 수출회사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고 교회는 연부년 월부월 급성장하여 대교회가 됐다.
그런데 교회가 급성장하고 대교회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장로들과 권사, 집사들이 ‘현재 담임목사님은 이 큰 교회를 목회하는데 그릇이 부족하니 교회에 걸맞게 실력 있는 유명한 목사를 모시자’고 도자가 사장 장로에게 건의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담임목사를 내보내고 다른 목사 청빙하는 것이 일사천리로 결정되고, 청빙위원장으로 그 장로가 선임됐다.

30여 명의 장로와 100여 명의 권사, 수백 명의 집사들이 의견일치로 청빙결정을 한 후, 마지막으로 수석장로가 함께 교회를 개척한 멤버며, 당시 정치권에 영향이 컸던 여권사,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며 그 일을 기도하고 있던 노인 권사를 찾아와 의논을 했다. 그때 노 권사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담임목사를 바꾸는 일은 안 된다’며 반대를 했는데, 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가결되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온 권사는 안타까움에 교회개척 동지인 김장로와 그의 부인인 친구 최권사를 찾아가 ‘한번만 더 기도해보고 이 일을 취소해 달라’ 권면했다. 그러나 그의 권면과 충고는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유명한 목사 청빙문제’로 김장로가 3개월 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어느 날, 그의 부인 최권사가 갑자기 정신이상이 되더니 교통사고로 절명했다. 그리고 여섯 달 째는 그렇게 건강하던 김장로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중풍병자가 돼 아무 의식도 없는 식물인간이 됐다.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간증을 내게 해주던 노인 권사는 “목사님, 아무리 물질(物質)로 교회를 많이 섬기고 많은 교회들을 도왔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훼방하고 괴롭히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는 분이라”며 한숨 섞인 간증으로 끝을 맺었다.

3,000년 전, 아굴이 “너는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고 했던 경고적인 고백은 오늘도 유효하다. 앞으로 우리에게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성도가 되자.

아굴의 사대 신앙고백, 솔로몬의 네 가지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길 축원한다. ‘하나님이 없는 지식과 지혜는 짐승의 지혜와 같다’는 지구촌인류를 향한 아굴의 신앙고백, 절절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아굴의 열 가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 ‘허탄과 거짓을 멀리하게 하소서’, ‘나로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마시고, 내게 필요한 양식만 주옵소서’의 두 가지 신앙고백적인 아굴의 기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의 종들을 대적하거나 훼방치 말라’는 아굴의 마지막 신앙고백이 오늘 나와 우리 가족의 신앙고백이 되므로 주 앞에 서는 날까지 거룩한 믿음과 신앙을 지키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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