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4월 26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호환칼럼
2015년05월12일 10시30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결혼
결혼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맺어진 약속이자, 계약인가? 아니면 좀 더 현대적 의미로 말해 자기 취향의 선택이자, 개인의 유익성을 도모하기 위한 결정인가? 이 이기적인 발상은 나이를 먹은 나에게는 세대의 차이로 느껴진다. 문화에 대한 인식의 서로 다른 차이로, 오늘날 젊은이들은 가파른 서로 각기 다른 절벽 위에 서 있다. 그들은 오늘날 결혼이라는 외줄로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건너가기를 바라고 있다.

얼마 전 아들 녀석이 결혼을 약속했던 아이와 결별을 했다. 흔히들 있을 법한 일이지만 나이를 먹어 가는 나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서로 충분히 계산하고 결정한 일이라 어버이로서 이러쿵 저러쿵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오직 마음의 부담을 침묵으로 지키며 오고 있다. 평생을 마음이 맞지 않는 상대와 함께 부딪기며 참고, 갈등의 고통을 감수하고 죽지 못해 사느니, 차라리 그런 결정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며 자신을 달래 본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하고 싶다. 결혼은 당사자들이 결정하는 일이고, 다른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맡겨질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결혼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결혼하려는 이들은 반드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또 결혼을 약속했다면 결혼을 약속하고 또한 결혼을 한다는 일은, 열매와 수확을 위해 묘목을 심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싹을 피우고 열매를 얻는 일은 수 많은 시간의 투자와 가꾸기를 정성으로 더해야 얻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있는 현재만을 오직 생각한다. ‘지금 불타는 심정을 너에게 느끼게 하고 싶다’는 오직 감정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자기 순간 감정의 도취이자, 상대를 자기 느낌으로 끌어 들이는 이입의 한 일종 일 수 있다. 상대도 충분히 나를 수용했다고 믿어도, 상대 역시 각자가 자기 이기심만 더한 것일지 모른다.

오늘날 서구의 이혼율은 50%를 웃돈다.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무엇이 문제일까를 생각하다 보니 그 동안 ‘우리가 결혼에 대해 너무 이기적이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이 든다. 오래 전 17세기에 쓰여져 오늘날까지 장로교의 기본교리로 지켜지고 있는 웨스터민스터교리에 기록된, “결혼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들을 생산하기 위해 주어진 제도”라고 하는 글을 읽으면서 “웃기는 교리구나”라고 생각했던 일이 새삼 떠 오른다.  

그러나 웃을 일만은 아니다. 애정이 없는 결혼은 있었어도 안 될 일이지만, 거룩한 목적이 없는 결혼은 이미 파산을 신고하고 시작한 노름과도 같다. 어쨌든,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까지 하려는 모든 젊은 이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결혼과 관련해서, 왜 주님을 한번도 생각하지 않느냐”는 충고이다. 결혼을 왜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그 분의 사역을 위해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은 오직 사랑을 나누는데 방해만 될 따름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김호환 칼럼>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김호환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14586223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호환칼럼
다음기사 : 너가 없는 세상 (2015-05-25 14:05:51)
이전기사 : 이단들과 나 (2015-04-06 09:24:48)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