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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5월02일 09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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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대 후회 (삼상 15:10-23)
사람마다 최소한 한두 가지, 서너 가지 또는 그 이상의 후회하는 일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 잘못된 친구를 사귄 것에서, 청년 때에 결혼을 잘못한 것, 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을 시작한 것, 심지어 미국에 오지 말았어야 한 것 그리고 교회 선택을 잘 못한 것까지 누구나 후회되는 일을 가지고 있다. 후회(後悔)란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인데,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연약무지한 존재며 유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오면서 판단미숙과 계산착오로 씻을 수 없는 실수를 하므로 후회스런 과거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성경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결코 후회를 하지 않는 분이어서 그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행하시고 하신 말씀을 실행하시는 분,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분, 맹세를 변치 않으시는 분, 말씀하신 것을 후회하거나 돌이키지 않는 분, 돌이키지도 뉘우치지도 않으시는 분, 맹세를 뉘우치지 않는 분이라고 민 23; 19, 삼상 15; 29, 시 110: 4, 렘 4: 28, 겔 24; 14, 히 7: 21에서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주만물과 인간의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까지도 모두 알고 계신 분이기에 사람처럼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야 하는 후회가 필요치 않는 분이다.

그런데 성경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후회하시고 뉘우치셨다’(Lord repented: “여호와께서 후회하셨다”, “주께서 유감스럽게 생각하셨다”, “야훼께서 뉘우치셨다”, “주께서 회개(悔改)하셨다”)라고 무려 열 번(창 6: 6, 출 32: 14, 삿 2; 18, 삼상 15: 35, 삼하 24: 16, 대상 21; 15, 시 106: 45, 렘 26: 19, 암 7: 3-6, 욘 3: 10)이나 말씀하셨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는데, 열 번이나 “여호와께서 후회하셨다”고 했다면 성경이 잘못되거나 성경기록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야훼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비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했을 때에 표현이지 결코 하나님이 계산착오나 판단력부족으로 실수를 하셔서 그 일을 후회하셨다는 말씀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신 후 후회하실 정도로 지혜나 지식이 부족한 분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후회와 뉘우치심’은 하나님의 통탄(痛歎)탄식과 통초(痛楚)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성경에 열 번이나 “야훼하나님이 후회하셨다, 주께서 뉘우치셨다”고 하신 것은 크게 네 가지 후회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대 후회(後悔)

   1. 천사와 인간의 타락 때에 후회하심(창 6: 6)

창세기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을 홍수로 심판하실 당시에 하나님의 심정을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恨歎)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다. 아담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할 때도 한탄하거나 근심하거나 후회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노아 600세 때인 아담 창조 1656년, 지구촌을 홍수심판하시기 바로직전, 지구에 인간들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것을 땅을 치며 통곡하셨다’는 말인데, 이것은 사랑하는 자식이 살인죄나 국가반역의 중죄를 짓고 부모가 보는 앞에서 사형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하는 부모의 참담한 심정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차라리 인간들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며 마음을 아파하며 후회하셨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창조를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는가?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후회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창세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이 육체가 됐기 때문이라”(Because(For that) he also is flesh: “그 이유는 그(천사들)가 육체가 됐기 때문이다”; 창 6: 2-3)고 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을 하늘에 있는 천사(天使)들로 세 번이나 기록했다(욥 1: 6, 2: 1, 38: 7)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창조를 후회하시고 근심하시며 한탄하신 것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야할 천사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지상의 여인들과 성적방종을 탐닉하여 네피림 거인들을 낳으므로 천사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그들이 육체가 됐기 때문에 천사들과 인간들을 홍수심판으로 멸망시켜야 했으므로 후회하셨다는 말씀이다.

훗날 베드로는 이 사건을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벧후 2: 4-5)고 첨가하여 설명했고, 예수님의 친 동생이며 속사도인 유다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를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천사들)와 같은 모양으로(About them in like manner) 간음(姦淫)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Giving themselves over to fornication, and going after strange flesh)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으므로 거울이 되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다른 색(Strange flesh)의 헤테로스는 자연스러운 남자와 여자의 결합 같은 것에 반대되는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또는 천사와 여자의 성교(性交)같은 “별스럽고 이상한 종류의 다른 색욕”을 의미함; Another of a different kind: Men with men and women with women and angels with women, all living contrary to nature)

이렇게 베드로와 유다는 모세가 기록한 ‘천사타락’의 사건기록을 더 충실하게 보충해서 설명했다. 그렇다. 천사들의 타락은 ‘원천지의 루시퍼 타락’이 아니라 또 다른 천사들의 타락이다. 루시퍼가 아닌 또 다른 높은 지위의 천사가 자기 졸개 무리를 데리고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The angels which kept not their first estate) 자기 처소인 하늘을 무단이탈하여 지상으로 내려와서 세상의 여인들을 보고 무차별로 그 몸을 탐닉하며 성적으로 타락했던 천사였다. 사도 요한은 그때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를 아바돈이라고 했고, 아바돈을 추종해 땅으로 내려와 여인들과 타락에 빠졌던 천사들을 황충 귀신이라고 했다(계 9: 1-11)

이 말씀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천사들과 여자들의 다른 색을 탐닉한 성적인 타락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도 다른 색을 따르는 것은 육체적 타락과 영적타락이 있다는 것이다.

⑴ 다른 색을 따르는 육체적 타락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동성연애와 인간과 짐승사이의 있는 수간(獸姦)이다. 이제 미국의 동성애문제는 14개주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수준을 지나 오바마가 이것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연방정부지원 수준까지 올라왔고, 이것을 미연방대법원이 확인해 주는 사법절차를 밟은 상태고, 유럽이나 한국 일본 중국 세계 모든 나라에 숨어있었던 동성애자들이 공개적으로 Coming out하는 시대가 됐고, 유럽에서는 고등학생들에게 성교육을 가르치기 위해 공공연하게 사람과 짐승의 성교를 시연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제 지구촌은 노아시대처럼 천사들이 지상에 내려온다면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까지도 서슴없이 ‘다른 색’에 빠져버릴 음란하고 더러운 시대가 됐다. 남은 것은 하나님의 불 심판뿐이다.

⑵ 다른 색을 따르는 영적타락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① 예수의 피로 자기들을 사신 것을 부인하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지는 것과 멸망케 할 각종 이단에 빠지거나 이단을 받아들이는 것 ② 많은 사람 특히 목사들까지 음탕과 호색하는 것을 좇는 것(Many shall follow their pernicious; “많은 사람들이 해롭고 사악한 음탕함과 호색을 좇을 것이다”. ‘좇으리라’, 엨사콜루데수신: “대단히 밀접하게 따라가는 것”)이라고 했고, 사도 유다는 ① 영적인 직분을 맡은 자들이 자기 지위(Their first estate; 제 일급 되는-으뜸 되는 자기들의 신분과 처지)를 떠나고 지키지 않는 것 ②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의 욕구를 따라서 동성연애로 자기육체를 더럽히는 것(Defile the flesh) ③ 하나님과 예수님의 권위(Dominion-통치권, 퀴리오테타: “주권”)를 업신여기는 것 ④ 영광을 훼방하는 것(Speak evil of dignities; 영광(榮光, Dignity): “거룩함, 품위, 고귀함, 존엄”, 돜사스는 “천사들을 지칭”함)이라고 했다. 모세의 율법을 사람들에게 전달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유지시키는 존재(행 7: 38, 53, 히 2: 2)인 천사들을 멸시하고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분리시키고 율법을 악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영광을 훼방하는 행위’였는데, 유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천사들을 멸시하였다(유 1: 9, 10) 

아담창조 1656년에 하나님은 아바돈 천사가 자기 졸개 천사들을 데리고 몰래 하늘을 탈출하여 지상으로 내려와서 사람의 딸들을 보고 무분별하게 성적으로 타락한 것을 보시고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계획하시면서,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하시며 후회하셨다. 그리고 21세기 오늘날, 세상뿐 아니라 교회까지도 동성애로 타락한 것과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에 미혹된 현대교회와 영적지도자들이 자기 지위를 벗어나 있는 것, 그리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것을 보시고 지구촌 인류의 심판을 생각하시면서 하나님은 후회하시고 계신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우리만이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자성도가 되고 충성된 종과 성도가 되어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홍수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 가족처럼 심판의 날에 구원받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를 보실 때에 후회하심

출 32: 14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고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않았다”(The Lord repented of the evil which He thought to do unto His people)고 기록했고, 암 7: 3, 6에서 아모스는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고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셨다”(The Lord repented for this. It shall not be, said the Lord)고 기록했다.

모세를 향해 하셨던 하나님의 후회는 모세가 40일을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있을 동안에, 아론을 충동질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 생각하시고 그 계획을 모세에게 전했을 때, 모세가 범죄한 백성들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중보기도를 할 때 하셨던 후회였고, 아모스를 향해 하셨던 후회는 하나님이 황충 메뚜기를 보내서 자라고 있는 풀을 다 먹어버리는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여주셨을 때,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 기도할 때 그리고 거대한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삼키려는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멸망이 가까운 것을 보고 하나님께 중보기도로 부르짖어 간구할 때 하셨던 하나님의 후회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는 그들을 없애버리고 싶었을 때, 하나님의 종들, 모세와 아모스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회개하고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파멸계획을 후회하시고 뜻을 돌이키셨다. 그러한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후회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주의 종, 목사들 가운데는 자기가 사는 도시의 파멸을 막는 중보기도의 종이 있고, 카운티의 파멸을 막는 종도 있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주(State)에서 나라의 멸망까지 막는 주의 종들이 있고, 반대로 자기 가정이나 가문의 비극은 물론 자신에게 밀려오는 저주까지도 막아내지 못하는 무능한 목사도 있다. 당신의 중보기도의 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

그래서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전쟁의 위기 때마다 기도로 나라를 건져준 선지자 엘리사가 죽을병에 걸려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더 이상 나라를 지켜줄 방패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구국의 대부 엘리사를 찾아가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My father, my father, the chariot of Israel and the horsemen thereof; 왕하 13; 14)를 처절하게 외쳤던 것이다. 메대 파사의 아하수에로 왕비가 됐던 에스더가 “내 민족을 내게 달라”(에 7: 3, 8: 6)고 요청함으로 70만 디아스포라를 구원한 것을 보자. 그리고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신앙과 독립을 지켜낸 청교도의 선구자 존 낙스(1513-1572)가 “스코틀랜드를 내게 달라”며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보자. 그만큼 존 낙스의 중보기도는 나라까지 지키고 보호할 능력의 기도였던 것이다.

야훼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당시 선지자들의 배역과 제사장들의 패역과 방백들과 백성들의 죄까지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타락을 통렬하게 책망케 하면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다”(겔 22: 20)고 외치게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파멸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 하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방백이나 백성을 찾지 못했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당신을 천에 하나, 만에 하나로 선택해 주의 종, 목사로 만드신 것은 백성들의 파멸과 저주와 징계채찍을 막아서서 중보 기도하라고 세운 것이다. 직업이 없어서 목사를 직업으로 세운 것도 아니고, 감투가 좋아서 목사직을 감투로 씌어준 것도 아니며,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편안한 직업이니 잠만 자라고 목사 되게 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기도로 성도들을 살리고 가정들을 살리며 성도들의 사업도 살리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라고 목사로 세우신 것이다. 당신의 중보기도로 성도들에게 내리고자 하셨던 심판을 하나님이 후회하시고, 저주를 후회하시며 파멸의 손을 거두시는 역사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3. 개인이 회개하고 슬피 부르짖으며 악한 길을 떠날 때

성경은 ①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슬피 부르짖을 때(삿 2; 18, 시 106: 44-46) ② 다윗이 교만하여 인구조사를 했다가 하나님이 진노로 내리신 염병으로 7만 명이 죽게 되자 죄를 뉘우치고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삼하 24: 16, 대상 21; 15) ③ 선지자 미가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간구할 때(렘 26: 19) ④ 니느웨 성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죄를 회개하며 기도할 때(욘 3: 10) 그들을 향했던 진노와 저주를 후회하시고 돌이키셨다고 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물 앞에 마음이 약하신 분이다.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언제라도 들어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로 싸우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세 아이 모두 회초리나 가죽 벨트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려서 싸우는 것을 화해하게 만들었고, 잘못들을 고쳐주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아이들의 우애가 두텁고 지금도 돈독한 우애를 나누고 있음을 감사한다. 처음에 몇 번, 아이들을 무릎 꿇렸을 때, 아이들은 서로 자기 잘못이 없다고 변명도 하고 책임전가도 했지만 아프게 매를 맞은 후엔 서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게 됐는데, 나중엔 화가 나있는 내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잘못을 설명하면, 세 녀석이 몽둥이를 든 내 손을 붙잡거나 내 다리를 붙잡고 모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Daddy, I am really sorry. I apologize that”하며 용서를 빌면, 마음이 약해진 나는 들었던 가죽 벨트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아이들을 품에 안고 기도해 주면서 용서를 했었다. 하나님도 죄와 실수를 핑계하거나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에겐 죄를 물으시고 죄 값을 치르게 하시지만,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부르짖어 구하는 사람에겐 한없는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개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쳐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들을 향했던 하나님의 진노 계획, 저주와 재앙계획, 몽둥이 계획을 철회하셨다. 오늘도 하나님은 아담이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죄를 전가하고 변명했듯 자신의 죄와 실수를 변명하거나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솔직하게 회개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와 실수를 슬퍼하며 야훼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을 보실 때, 쏟아 부으려던 분노와 저주를 후회하시고 마음을 돌이키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후회가 있는 오늘 우리 예배가 되기를 축원한다.

   4. 사울의 불순종과 멸망을 보실 때(삼상 15; 35)

아이가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첫째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유난히 크다.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둘째 셋째보다도 첫째에게 관심이 더 많아서 첫아이는 날 때부터 젖을 떼는 때까지 육아일기도 쓰고, 아이 사진도 많이 찍으며, 첫째를 먹이고 돌보는 것이 유별나다. 나도 붕어빵처럼 나를 닮은 첫째가 사랑스러워 3개월 때부터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으로 운전할 정도로 좋아하고 사랑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대부분의 부모는 자기 혈육의 시작인 첫째 아이에게 관심이 많다.

사울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첫째 왕이다. 그래서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유별했다. 그런데 사울은 너무 빨리 교만했고 하나님을 쉽게 떠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성경대로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왕으로 4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행 13: 21) 그런데 그의 통치 2년 만에 어려움을 참지 못하는 조급한 마음과 교만으로 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기 위해 기다리라고 했는데 자기가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의 눈 밖에 난다. 그래서 사무엘은 번제를 드린 사울에게 “왕이 야훼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망령되이 행하므로, 야훼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이스라엘 위에 영영히 세우시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다”(삼상 13; 13-14)고 통보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울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38년이나 주셨다. 그러나 교만에 빠졌던 사울은 결정적으로 아말렉을 지상에서 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에게 고통을 당하는 저주로 반미치광이, 중증 치매, 정신병자로 고생하다가 전쟁터에서 세 아들과 함께 전사당한다.

사울이 ‘아말렉 전멸’의 하나님 명령을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한다”(It repented Me that I have set up Saul to be king: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스럽다”-I regret that I have made Saul king; 삼상 15: 11)고 하셨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슴을 치면서 “내가 그를 국무총리로 세운 것이 후회스럽다, 내가 그를 대기업의 총수로 세운 것, 대학총장으로 임명한 것, 안수집사와 장로로 세운 것, 부목사로 음악목사로 세운 것, 내 사업경영과 가정사까지 모든 것을 맡긴 것, 내가 그를 친구로 삼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외치는 말과 같은 말이다.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우셨다가 그를 포기하고 버리셔야 했을 때,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스럽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얼마나 많은 목사들을 보시고, 그를 유명한 부흥사로 만든 것, 큰 교회를 섬기는 대목회자로 만드신 것, 은사의 종으로 세우신 것, 유명한 목사가 되게 한 것, 뛰어난 신학자로 만드신 것을 후회하고 계실까? 그리고 사업에 성공한 장로를 만드신 것, 신유의 은사로 많은 병을 고치는 유명한 기도원 원장으로 세운 것, 가난에서 건져내 큰 축복을 받게 한 장로 권사 집사를 후회하고 계실까?
그들이 그렇게까지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그들이 성공하여 부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들이 병 고침 받아 건강해지지 않았다면... 박태선, 문선명, 이만희 신천지이단은 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별로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초라한 목사는 되지 않았을 텐데, 맛을 잃은 소금처럼 소나 말, 개나 사람에게 짓밟히는 초라한 신세는 되지 않았을 텐데...하시면서 하나님이 후회하실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지금 하나님이 우리들을 보시고 후회를 하신다면, 나를 향한 후회는 어떤 후회일까? 나를 보시고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면, 나는 어떤 후회에 속한 사람인가? 하늘의 아바돈 천사와 지구촌 여인들의 타락으로 세상을 심판하여 버리셔야 하듯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범죄 하므로 하나님이 포기하고 버리셔야 하는 주의 종들을 향한 후회인가? 처음엔 겸손하게 잘 순종하다가 축복을 받은 후 교만하고 불순종하므로 후회하여 사울을 포기하신 것처럼, 그들의 교만과 불순종과 회개치 않음을 보시고, 축복주신 것, 사업 잘되게 하신 것, 영주권 주신 것, 행복한 가정을 허락한 것을 거두시며 하셔야 할 후회인가? 아니면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를 보시고, 당신을 그렇게 징계하여 망하게 한 것을 후회하시고 돌이키는 후회인가? 아니면 당신이 인생 밑바닥에서 질병과 저주와 절망에서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뜻을 돌이키시려는 후회인가?

회개하고 울부짖어 기도하므로 풍전등화와 절체절명 위기의 운명이 하나님이 후회하시므로 죄 용서와 구원의 감격을 누렸던 예루살렘의 다윗과 히스기야와 요나의 니느웨 같은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이 당신의 삶 속에 충만하게 나타나길 축원한다. 새벽마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가며 당신의 안타까운 사정들을 낱낱이 아뢰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당신에게 미쳐 징계의 채찍과 몽둥이를 꺾으시고 다시 사랑과 긍휼과 인자함을 베푸시는 역사들이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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