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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4월25일 18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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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칠대 바람 잡기 (전 1: 12-18)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해,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개시와 함께 세계전쟁으로 발전한 2차 세계대전이 1945년 5월에 독일이 항복하고, 같은 해 8월에 일본이 항복하므로 전쟁이 끝났던 종전 당시, 지구 인구는 약 20억 이었는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 인구는 72억 2,400만 명이나 된다. 이것은 김목사가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대략 80-90억의 사람이 태어났고, 30-40억 정도가 노사, 병사, 전사, 횡사, 사고사, 자살 등으로 죽은 것을 의미하는데, 지구촌엔 이전에도 수많은 영웅호걸 열사 기인 성자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새벽별처럼 사라져 갔고, 지나간 70여 년 동안에도 세계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며, 지금도 오대양육대주엔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예술 체육 종교세계에서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큰 별과 작은 별들이 존재한다.

BC 1,000년경인 3,000여 년 전, 지혜의 왕이며, 세기적 철학자였던 솔로몬은 전도서를 통해서 “인간이 태양아래서 수고하고 노력하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Vanity of vanities, says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What profit has a man of all his labor, which he takes under the sun?-“전도자가 말하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소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가?”)고 설교했는데, 설교자며 전도자인 솔로몬은 계속해서 성경의 21번째 책으로 12장, 222절, 5,584단어로 구성된 전도서(Ecclesiastes, 코헬라: “회중을 하나로 모집하고 모여든 회중에게 종교적 진리를 전달하는 전도자-“설교자, 성직자”란 뜻의 책)를 통해서 해아래서 인간들이 하는 30 종류의 일이 ‘헛되다’ (30 things considered vanity)고 거침없이 선언했다.

솔로몬은 해 아래서 사람이 하는 헛된 일을 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모든 것’(All things are vanity; 전 1:2, 14, 2: 11, 17, 3: 19)이 헛되다고 했고 ② 해아래서 하는 사람들의 수고(Man's labor under the sun; 1: 3)가 헛되며 ③ 해 아래는 새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단조로울 뿐이니 헛되고(Monotony of all things; 1: 8-11, 3: 15) ④ 인간이 하늘 아래서 행하고 이뤄놓은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이니 헛되며(All things done under heaven; 1: 13-14) ⑤ 내가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것도 헛되다(Wisdom and knowledge; 1: 16-18)고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⑥ 악인의 행위대로 의인이 보응을 받고 의인의 행위대로 악인이 보상받는 것을 보니 이러한 불공평하게 받는 보상(Unequal reward; 8: 14)이 헛되고 ⑦ 잠시도 쉴 사이가 없는 인간의 노고(Man's ceaseless work; 8: 16-17)와 고생이 헛되며 ⑧ 모든 인간이 똑같이 당하는 죽음의 운명(Sameness of life; 9: 2-6)을 보니 헛되고 ⑨ 인간의 생명과 삶 자체가 헛되며(Life itself; 11: 8) ⑩ 소년의 때와 청년의 때도 헛되다(Childhood and youth; 11: 9-10)등 무려 서른(30) 종류의 ‘헛됨’을 열거하며 설교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일곱 가지 예를 들면서, 내가 이것들을 깊이 연구해보니 “해 아래서 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과 수고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을 깨달았다”(I realized that this is striving after wind-“바람을 잡으려는 노력인 것을 깨달았다”, I perceived that this is vexation of spirit-“이것은 말할 수 없는 정신의 고통인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므로 ‘인생의 칠대 바람 잡기’를 설교한다.

그렇다. 김목사의 지혜가 솔로몬의 지혜와 비교할 때 조족지혈이고,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인생 선배들 앞에서 감히 인생을 논할 나이는 아니지만 눈앞에 7순이 다가온 세상을 살아보니 ‘인생은 바람 잡기 연극임’을 긍정하게 된다. 지나간 70여 년의 세월 동안, 두 손으로 오는 바람과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아보고, 내 곁을 떠나간 바람을 좇아가 붙잡아 봤지만 손을 펴보니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인 것을 알게 됐다. 이제 헛되고 무상하며 덧없는 인생 70-80년에서 100년, 150년의 삶을 ‘바람 잡기’로 표현한 대철학자 솔로몬의 변론을 들어본다.  

   인생의 칠대 바람 잡기

사람이 세상에서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 지구촌최고의 재산과 절대 권력, 지상최고의 미녀들로 700명의 부인과 300명의 첩을 데리고 밤낮으로 주류육림 속에서 끝없는 쾌락을 탐닉하며 살았던 솔로몬,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해 누리다가 이방나라의 팔등신 공주 부인들 유혹에 넘어가, 얼마 동안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신 우상숭배를 하며 타락과 방황의 늪에 빠져서 어둠 속을 헤매다가, 절망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광명을 찾은 솔로몬은 전도서(傳道書)를 통해, 자기 경험을 예로 들어 죄 사함 받지 못한 모든 인생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이 헛되고 허무한 것임을 증거하고, 본능적으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인생들(전 3; 11)에게 참다운 만족과 영생을 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인 것을 전하므로 전도서를 읽는 독자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고 있다. 솔로몬은 사람들의 바람을 잡으려는 노력을 일곱 가지로 설명했다.
 
   1. 지식추구의 바람 잡기(전 1: 12-18절)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응답으로 지혜를 받고 지구촌 최고 지혜의 왕이 된다. 그러나 솔로몬은 거기에 만족치 않고 마음을 다해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여 관찰하고 연구하므로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만났고, 그 결과 레바논 백향목에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와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곤충과 물고기들을 관찰하여 깨달은 후, 3000개의 잠언을 기록하고 1005곡의 노래를 작시 작곡하므로 역사에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 지혜지존이 된다.

그래서 솔로몬의 지혜는 당대에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보다 탁월했고, 피라미드에서 볼 수 있듯 기하학, 천문학, 의학 등 자연과학이 뛰어났던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도 뛰어났으며, 당시 지혜의 신성이라 불리며 시편 88편과 89편을 작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고 예언하는 예언의 노래’인 신령한 노래까지 부르며 다윗 왕의 선견자까지 됐던 예스라사람 에단((Ethan)과 마홀의 아들 헤만(Heman; 대상 25: 1-5)과 당시 지혜로 세상을 놀라게 하던 갈골(Calcol)과 다르다(Darda)보다 월등하여 솔로몬의 이름은 우뢰처럼 온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다. 그래서 모든 민족과 천하만국의 왕 중에서 솔로몬의 소문을 듣고 그의 지혜를 듣기 위해 금은보화와 귀중품을 싸들고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이었었다(왕상 4: 34) 

이렇게 지혜의 끝자락까지를 두루 섭렵한 극지(極知)의 태산이며 지혜의 거성인 솔로몬은 이제 마지막으로 일생동안 자기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여 비밀을 알고자 했지만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인 미친 것과 미련한 것(Madness and folly: “광기의 미침과 정신착란 그리고 어리석음과 우둔함”)을 파헤쳐 알아보기 위해 마음을 쓰다가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게 되자 고뇌하면서, 전 1; 18을 통해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For in much wisdom is much grief, and he that increases knowledge increases sorrow)는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미친 것(Madness, 홀렐라)은 “정신착란과 정신이상으로 미쳐서 정신없이 지껄이는 것”을 의미하고, 어리석은 것(Folly, 시쿨르드)은 지혜의 행동과 대조되는 “미쳐서 어리석고 무질서하게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자기 지혜로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보려고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깨닫지 못하고 “이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며 포기했는데, 3000년 세월이 지나 지식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21세기의 지혜와 지식도 아직도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솔로몬처럼 ‘바람을 잡으려는 것’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 미친 것과 어리석은 자를 고치셨고, 예수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그런 권세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는 솔로몬보다 더 나은 은혜를 받게 된 것이다.

솔로몬은 전 1: 14절에서 ‘인간이 죄악 된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헛되고 무상하다, 모두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바람을 잡으려는 것‘은 전도서에서 1: 14, 17, 2: 11, 17, 26, 4: 4, 6, 16, 5: 16, 6: 9등 열 번이나 발견된다)고 했고, 15절에선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다”고 했는데, 구부러지고 이지러진 것(Crooked and Lacking)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인간사회에 나타나는 왜곡된 것이나 결핍된 것”이란 뜻으로 인생에게 예측불허하게 나타나는 변칙성과 의외성 사건들을 가리킨다.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나타난 구부러지고 모자라는 일 중에서 내가 예측한 대로 나타난 것이 몇 %나 되는가? 나는 부부생활과 사업과 가정사가 탄탄대로의 고속도로처럼 평탄한 길을 원했지만, 내 소원과는 반대로 구부러진 길로 갔던 것이 얼마며, 내게 있어야 할 가정행복과 돈과 사람들과 사랑과 건강이 모자라고 결핍돼 고생했던 일들이 얼마인가? 이렇게 과거 우리에게 예측불허하게 나타났던 일들과 앞으로 나타날 변칙적인 일들이 헛되고 무상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해 아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구부러지고 이지러진 모든 일과 인간이 끝없이 추구하여 얻어 보려는 지혜와 지식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21세기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땅을 정복했고 바다를 정복했으며, 저 하늘 우주까지 정복했다. 그러나 지혜의 왕 솔로몬이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아보려 했다가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아직도 인간은 지혜와 지식으로 정복한 것보다는 정복하지 못한 부분영역이 훨씬 더 넓고 많다. 앞으로 100년 200년 아니 천년이 지나도 인간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처럼 전지전능의 벽을 넘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추구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2. 쾌락과 부의 바람 잡기(2: 1-11)

솔로몬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그 끝을 가 본 사람이다. 1절은 인간의 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즐거움을 누리게 해본다는 말로 1절의 즐거움(Pleasure)이란 재산의 소유나 감각적인 쾌락에서 오는 기쁨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솔로몬은 자기는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고 추구하는 육신적인 기쁨에서 오는 모든 즐거움과 쾌락의 극치를 다 경험해 보았다고 고백한다.

솔로몬은 세속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왕국(王國)과 여러 나라에서 데려온 공주부인들을 위한 궁전들과 각양각색의 많은 성읍들도 건축했고(왕상 7: 1-12, 9: 1, 15-22, 24, 10: 21) 왕궁 주변에 인위적으로 여러 종류의 과수원을 만들기도 했으며, 동산에 개울과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각종 과일나무도 심었고(요세푸스), 팔레스타인의 긴 여름에 비가 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빗물을 받아 놓기 위해 헤브론 못(삼하 4: 12)과 실로암 못(요 9: 7)과 헤스본 연못(아 7: 4)등 처처에 커다란 물웅덩이를 만들었으며, ① 전쟁포로 중에서 포로를 만들거나(민 31: 9, 왕하 5: 2) ② 타인의 노예를 돈으로 사거나(창 17: 27, 37: 28, 36, 겔 27: 13) ③ 노예 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들(창 17: 12)과 ④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나 그 자녀가 노예가 된 자들(출 22: 3, 왕하 4; 1)과 ⑤ 가난 때문에 자신이나 그 자녀가 노예로 팔린 자(레 25: 39, 47)들을 노예로 삼아 소와 양떼를 관리하게 하여 소유재산을 많게 하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가 아니라 왕궁의 축제나 연회석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하는 남녀가수(Male and female singers)들을 두었으며, 700명의 처와 300명의 첩들을 두므로 밤과 낮으로 궁중연회와 육체의 쾌락으로 즐겼다.

10절은 솔로몬이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쾌락의 대상이나 마음에 생각나는 내면적 만족감을 주는 것은 무엇이든 막론하고 모든 즐거움을 추구해 모두 다 얻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의 말 한마디면 사시사철 언제든지 무엇이든 눈앞에 준비가 됐고, 그가 손만 내밀면 낮이든 밤이든 하루24시간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만족됨으로 잠시는 기뻤을지라도 그것을 성취한 후엔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감과 불만족감에 빠졌었다는 고백이다. 11절은 자신의 육신적인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재물과 물질적인 번영과 처와 첩들을 손에 쥐었지만 이렇게 애쓴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일’이었다는 말씀이다.

솔로몬 나이만큼의 연륜을 살았지만 솔로몬만큼 화려하게 육신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경험치는 못했어도, 오늘 김목사는 전도서를 빌려 인간의 쾌락과 부의 추구가 뜬 구름 잡기요, 바람 잡기라 선포한다. 물론 여기엔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면서 세상적인 재미나 즐거움이 많이 없어져 버린 이유도 있고, 나이가 들면서 세상적인 기쁨이나 쾌락의 욕구가 적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재미있어하는 것들을 조용히 직시하며 관조해보니, 과연 솔로몬의 설교가 백번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목사는 30-40대에서 50대 초반까지도 지구촌이 나요 내가 지구촌이라 착각할 정도로 두려움을 모르는 교만했고 야심만만했던 목사였다. 그래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목사였다. 목회 30년차까지도, 수많은 산전수전을 겪었으면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철부지 목사였다. 그러다가 50대 중후반에 ‘불순종과 악신 징계’를 당한 후부터 철이 들고 ‘인생의 헛됨과 허무’를 깨닫기 시작했고, 허황된 야망에서 깨어나 ‘하나님이 왜 나를 목사로 부르셨는가?’의 ‘나의 사명과 소명’을 깨닫게 됐으며...오늘 ‘지금의 나’로 만족하며 내 길을 가고 있게 됨을 감사한다. 30여 년 동안에 수천 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 15권이 넘는 사진앨범을 남겼지만, 세상 재미와 즐거움이 적어져버린 지금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진 찍는 일을 피하고 있는데. 이것은 김목사가 세상을 도피하는 염세주의자가 돼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소망’이 그런 것들보다 크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적인 기쁨과 쾌락과 즐거움을 바람 잡기로 보고 남은여생을 하늘의 소망과 기쁨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3. 지혜추구의 바람 잡기(2: 12-17절)

1장에서 솔로몬은 지혜를 알고자 한 것이 헛되고(1: 17)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다고 하므로(1: 18) 세상 지혜의 허무함을 말했지만, 2; 12에선 세상을 살면서 상대적으로 지혜의 우등함을 언급했다.

옛날 한글을 쓸 줄 모르셨던 우리 어머니는 군대 간 시동생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때, 초등학생인 나에게 글을 불러주면서 편지를 쓰게 하거나 글을 아는 이웃집에 가서 대필을 부탁했고, 가방끈이 짧았던 부친은 친구에게 산을 빌려 주었다가 친구가 부친의 불학무식을 이용해 사기로 산지를 명예이전 하므로 당시 수억 짜리 땅을 통째로 빼앗기고 일평생 상처를 안고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렇다. 이것이 세상에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솔로몬은 지혜를 빛으로, 우매를 어둠으로 비유하면서, 지혜를 사물을 어둠에서 밝혀주며 질서를 회복하고 갈 길을 보여주는 빛과 같다고 했고, 우매함과 어리석음을 사물의 실상을 감추고 혼돈과 무질서를 야기 시키는 어둠과 같다고 했다. 똑 같은 사람이라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가방끈이 긴 사람과 짧은 사람은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SKY와 ISKY 대학을 선호하고, 서울대 고대 연대 출신끼리 좋은 자리를 나눠 먹고, 심지어 LA에서는 바느질 공장에서도 이대 숙대 동창끼리 모인다고 한다.

14절에서 “지혜자는 눈이 밝다”고 했는데 ‘눈이 밝다’의 에나 베로쇼를 직역하면 “그의 눈이 그의 머리에 있다”(The wise man's eyes are in his head)는 뜻으로 “지혜자의 안목이 열려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지혜자는 머리(뇌)속에 눈이 달려 있어 보고 듣고 깨닫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 15-16절은 그렇게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 우등하고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사건인 죽음, 그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가 없으니 허무하다는 말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지혜자나 우매자가 궁극적으로 죽음이란 같은 운명에 처하는 것을 보니 세상 지혜의 한계와 헛됨을 통감한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공부를 많이 한 지혜자라고 배우지 못한 사람보다 10년 30년을 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게나 지고 땅이나 파는 무식한 농사꾼이 공부를 많이 한 장관 박사 교수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죽음 앞에선 지혜자나 우매자나 차별이 없다. 지혜가 많았던 솔로몬은 그것을 보고 지혜의 허무함을 느꼈고 인생을 바람 잡기라고 느낀 것이다.

17절에서 솔로몬은 “내가 사는 것을 한(恨)하였다”고 말한다. 한하다(Hated)의 히브리어 하네는 “싫어하다, 증오하다, 미워하다”라는 뜻이다. 솔로몬이 자기가 우매자와 똑같이 인생의 종말인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반발심을 느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 중심주의의 신앙적 인생관을 회복한 후, 짧은 인생을 한탄하고 싫어하는 소극적 삶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축복으로 여기고 선을 추구하는 적극적 삶으로 전환한다(3: 12, 5: 18-20, 9: 9) 우리의 생애가 짧던 길던, 방황에서 회개하고 신본주의 인생관을 회복하여 적극적으로 살았던 솔로몬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나만의 삶을 기뻐하며 만족해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즐겁게 사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4. 인간 수고의 헛됨, 바람 잡기(2: 18-26절)

본문에서 솔로몬은 자기후대 인물이 자신의 업적을 물려받아 잘 관리하지 못하고 결국 물거품처럼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는 것을 염려하여 인간수고의 헛됨을 바람 잡기로 표현했다. 실제로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고 솔로몬의 대를 이은 르호보암은 교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애굽 왕 세숑크 2세(Shesonk, 시삭, BC 935-914)의 공격을 당하는데, 애굽 왕은 유다의 많은 성읍들을 탈취하고 성전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탈취했으며, 솔로몬이 순금으로 만든 크고 작은 금 방패(Gold shield) 500개(대하 9: 15-16)까지 탈취해 가므로 솔로몬의 업적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솔로몬이 40여 년에 걸쳐 쌓았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솔로몬 한 사람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72억 인간 모두가 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해 아래서 하고 있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은 바람 잡기요, 뜬 구름 움켜잡기인 것이다.

23절은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사업성공을 위해,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두 잡 세 잡을 뛰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일에 몰두하며, 궁핍한 자가 물질에 대한 애착과 염려 때문에 밤에도 평안히 안식하지 못하고 수고한 것이 허망한 결과를 가져올 때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하다는 말이고, 24절은 인생이 참으로 삶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는 신본주의 신앙을 암시한 말로, 솔로몬은 이런 신앙에서만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한 것이 보람과 기쁨이 된다고 고백한다. 25절은 “누가 하나님을 떠나서 먹을 수 있으며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 참된 축복과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만 말미암는다.”는 고백이고, 26절은 “인생의 행복한 최선의 삶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경건한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고백이다. 인간의 모든 수고가 바람 잡기의 헛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서 참 행복과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5. 세상 인기(명예, 명성)의 바람 잡기(전 4: 13-16절)

전 3: 16-17에서 인간 법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의와 하나님의 심판을, 3: 18-21에서 모두 다 흙으로 돌아가는 차별 없는 인간의 죽음을, 4: 1-3에서 학대받는 자의 허무함을, 4: 4-6에서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이웃에게 시기 당하는 것의 허무함을, 4: 7-12에서 자식과 형제가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으로 아무 낙도 누리지 못하고 뼈 빠지게 일해 돈을 버는 외롭고 고독한 자의 허무를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적으로 통치한다는 것을 의심케 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논술한 솔로몬은 이제 본문, 4; 13-16에서 ‘인간 명성과 인기의 허무함’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외면한 인간은 결코 참된 구원과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솔로몬은 가난하던 지혜로운 소년이 훗날, 왕이 돼 백성을 치리할지라도 후 세대 백성들은 그의 치정을 기억하거나 그의 공적을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라며, ‘소년이 치리하던 시대는 그 세대대로 역사 속에서 진행돼 갔을 뿐’이라고 설교한다. 덧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 명성, 하늘을 치솟는 한 때의 인기, 인간의 명예가 바람 잡기의 헛됨과 무상한 것임을 설파한 교훈이다.

BC 356년 7월, 필립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 왕비의 아들로 태어나 12살에 사나운 명마를 길들여 이름을 날리고, 13세부터 그리스의 대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사 받으므로 뛰어난 무예와 탁월한 학문을 구비한 청년영웅 알렉산더는 그리스 정복통일을 시작으로, 당대 세계최강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를 정복한 후, BC 323년,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다가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로 33세 젊은 나이로 죽기까지 그의 말발굽 아래 천하는 숨을 죽였다. 인더스 강변에서 흘러가는 장강대하를 바라보며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며 통곡했다는 알렉산더는 죽으면서, 시체를 운구할 관 양쪽에 구멍을 뚫어서 자기의 양손을 내놓게 하여 아테네 거리를 가득 메울 백성들에게 “나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라” 했다고 한다.

그렇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벌거벗고 왔다가 수의 한 벌 걸치고 간다. 그리고 시체가 누울 땅은 한 평이면 족하다. 그러니 인생이 ‘바람 잡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정복한 땅의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은 알렉산더처럼, 당신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해서 이뤄놓은 성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죽는 ‘바람 잡기의 인생’이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영원하신 하나님 없이는 인생의 모든 수고가 바람을 잡으려는 헛수고이다. 자신의 수고를 누리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하며, 헛된 수고에 매달려 살지 말고 영원한 하늘의 소망으로 살기를 축원한다.

   6. 재물의 헛됨(5: 10-16)

솔로몬은 5; 10-16에서 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탐욕은 인간의 욕망을 다 채워주지 못한다(10절) ② 재물의 양에 비례해 소비도 증가한다(11절) 돈을 많이 벌면 돈쓸 일도 많아진다. ③ 부자는 재물 지키는 일로 잠을 못 자니 재물은 참된 평안을 방해한다(12절) ④ 재물을 과도하게 아끼다가 해를 받는다(13절) 우리는 많은 수십, 수백 억대의 부자가 돈 아끼다가 굶어죽는 일을 자주 본다. ⑤ 재물을 상실하면 해를 받는다(14절)고 하므로 ‘재물의 헛됨’을 설교했고, 6: 7-9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 허무한 것을 말하므로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바람 잡기”라고 설교했다. 그렇다. 인간의 진정한 기쁨은 단순히 먹는 음식이나 물질 따위의 외형적인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조주시며 모든 기쁨과 만유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 뜬 구름 잡기와 바람 잡기의 허무한 노력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축복의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7.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헛됨(6: 7-9)     

옛 소련 연방, 그루지야에서 농민 출신의 구두수선공 아들로 태어나 그 지방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15세 때에 혁명운동에 참가했다가 그 일로 신학교에서 추방당한 죠셉 스탈린(Stalin, losif Vissarionovich, 1879-1953년)은 1901년(22세)에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위원으로 피선된 후부터 1917년 2월 볼세비키 혁명으로 감옥을 탈출할 때까지 14년 동안(1903년부터)에 무려 여섯 번이나 감옥에 투옥될 정도로 공산주의에 빠졌다.

1924년 45세에 스탈린은 레닌 사후에 공산당 서기장이 되고, 제 8회 소비에트 대회에서 스탈린 신헌법을 채택한 후, 반대하는 정적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스탈린은 친구들, 경쟁자, 동반자, 자본주의자, 노동자, 자기의 혁명을 도왔던 장군들 심지어 자기를 추종하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들까지 숙청했다. 이들 중엔 스탈린이 두려워했던 사람도 있고, 아무 이유 없이 죽은 사람도 있다. 자신도 끌려갈 것을 예상한 사람도 있고, ‘나만은 스탈린의 절친’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스탈린을 반대한 혁명가들을 제거하여 스탈린을 도왔던 KGB(비밀경찰) 국장들의 운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스탈린은 KGB국장들을 숙청하여 제거할 때, 그들의 후임자를 시켜서 처형했다.

가난한 러시아에서 300조원의 개인 재산을 모은 러시아황제를 총살시킨 트로츠키를 망명시킨 지노비예프, 지노비예프를 숙청한 카메네프를 처형한 부하린, 부하린을 몰아낸 멘진스키(임기: 1926-1936년)를 독살시킨 야고다(1934-1936), 야고다를 때려죽인 에조프(1936-1938)를 고문해 통곡하며 엉엉 울게 했던 베리아...이렇게 KGB 후임국장들을 이용해 피의 강물을 이루며 숙청에 숙청을 거듭해 이룩한 역사가 스탈린의 역사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넓은 동토의 땅 소련에서 하늘을 뚫는 원한에 사무친 피의 소리와 공포에 눌린 저주의 원망이 수십 년에 걸쳐 계속되고 수십 만, 수백만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속출했던 역사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스탈린은 살았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숙청과 고문과 총살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 이것이 스탈린식 권력의 최고 비밀무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절대 권좌에 앉아 통치의 칼을 휘두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스탈린, 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왔다. 이제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어가는 스탈린을 둘러싼 그의 마지막 머슴 네 사람, 베리아, 말렌코프, 불가린, 흐루쇼프의 모습을 본다. 스탈린이 쓰러져 의식을 잃자 네 사람 중에 KGB국장 베리아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그를 욕하기 시작한다. 스탈린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를 격분해서 욕을 한다. 그때 갑자기 의식이 돌아온 듯 스탈린의 깊은 숨소리가 들리자, 욕을 퍼붓던 베리아가 돌변하여 무릎을 꿇고 스탈린 손에 키스를 한다. 하지만 잠시 후, 스탈린이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자, 베리아는 벌떡 일어나 스탈린에게 침을 뱉으면서 욕을 한다. 그리고 또다시 스탈린이 깨어나려고 몸을 움직이자 베리아는 “왜, 도대체 죽지 않느냐?”며 소리를 지르면서 베개로 스탈린의 코와 입을 막아 눌러서 죽인다. 이것이 가까운 친구에서 정적까지 숙청하고 수백만을 죽여서 권력을 소유하고, 지구의 1/4 땅을 통치하면서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해 6.25전쟁을 일으키게 했던 스탈린의 최후이다. 채워지지 않는 인간욕망의 헛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화다. 

어디 그뿐인가? 이웃나라 열방의 팔등신 미녀공주 1000명을 아내로 삼았어도 솔로몬의 끝없는 욕망을 채워주지 못했고, 5000명의 여인을 품고 자랑했던 운동선수와 3000명 남자를 가슴에 안았던 미녀배우도 잠시의 만족은 있었지만 또 다시 욕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또 다른 욕망을 찾아 절규하듯 인간의 육체적 욕망, 재물의 욕망, 권세의 욕망은 그가 죽기 전까지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해 아래서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바람 잡기’의 헛된 일이다. 그 성공이 아무리 크고, 그 권세가 막강하고 재물이 많아도, 그리고 의술의 노력으로 남들보다 10년 30년 50년을 더 살더라도, 인간의 노력과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바람 잡기인 인생을 포기해 산속으로 들어가 살거나 비관적으로 살라고 하지 않았다. 전 8: 15에서 지혜자 솔로몬은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I commended mirth: “내가 유쾌하게 떠들고 즐거워할 것을 명한다!”)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므로, 아무리 구조적 모순이 팽배한 이 세상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최선으로 살아가는 길은 하나님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대로 먹고 마시며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상하고 차원이 높은 삶이 있다. 그것은 빌 3: 10-12에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한 말씀이다.

고무풍선에도 잡히고 가죽 공에도 잡혀 갇히는 바람이 사람 손엔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내게 다가오는 바람도, 내 곁을 지나가는 바람도, 나를 스쳐간 바람도 잡지 못한다. 바람은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잡았고 우리도 예수님을 잡았으며 잡을 수 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잡을 수 있는 부활이다.

지식추구도 바람 잡기요, 쾌락과 부의 추구도 바람 잡기며, 지혜추구도 바람 잡기이고, 인간의 모든 수고가 바람 잡기며, 사람이 누리는 인기와 명예와 명성이 바람 잡기이고, 인간이 쌓아 놓은 재물도 바람 잡기이며, 집어넣는 나무마다 태우고 나무를 더 달라는 아궁이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도 바람 잡기이다. 그래서 세상엔 잡을 것이 없다. 매달리면 끊어질 썩은 밧줄은 그만두고라도 손만 대면 끊어질 거미줄만큼의 잡을 것도 없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바람 잡기의 헛수고인데, 예수 안에는 잡을 것이 있다. 예수 안에서 장차 우리에게 있을 부활이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 썩어 없어질 몸이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 허물과 죄로 태어났다가 예수피로 용서받고 살아나 거룩한 몸으로 살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변화되는 부활, 하늘과 땅만큼의 멀고 먼 시공간도 찰나순간에 옮겨갈 수 있는 부활의 몸, 그러면서 예수님처럼 살과 뼈가 있고 다른 사람과 교통 교제할 수 있는 부활이다. 아, 웬 은혜며 웬 축복인가? 죄 많은 이 땅에 살면서 나의 두 손으로 이 부활을 붙잡고 살 수 있다니! 이것이 세상종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이다. 그래서 세상 종교는 바람 잡기이고 기독교는 부활 잡기이다. 당신의 손에는 부활이 잡혀 있는가? 

아무리 움켜잡아도 빈 손 뿐인 허무한 인생 삶의 여정에서, 더 이상 허무하고 헛된 바람 잡기에 속지 말고, 자신의 부활을 위해, 자신의 더 좋은 부활을 위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고, 주의 종과 교회를 위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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