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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4월01일 17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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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됨을 인하여(2)

              인자됨을 인하여(2)    요 5: 22-27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내일부터는 교회력(敎會曆)으로 사순절 마지막 주간이다. 네 개의 열흘인 40일을 절기로 지킨다는 사순절은 Ash Wednesday부터 Easter Eve(부활절 전야)까지에서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지키는 절기이다. 사순절(四旬節)은 3세기 초까지는 기간을 정하지 않고 이틀이나 사흘 정도 지키다가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ea)때부터 40일 간으로 정한 부활절 준비기간의 절기로 동로마 희랍정교회는 주후 600년경부터 으로 7(칠)주간을 지키되 일곱 토요일과 일곱 주일은 제외하고, 일요일은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신 종려주일(Palm Sunday)만 포함해 36일을 지키기 시작했고, 서로마 가톨릭교회는 6(여섯) 주간을 지키되 주일을 제외하고 36일과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의 첫 주일까지의 4일을 포함해 40일을 지키기 시작했다.

노아홍수가 비가 내린 기간이 40일이었고(창 7: 4)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으며(민 14; 33) 세례 받으신 예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하면서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듯이, ‘40’을 고난과 시련과 인내를 상징하는 숫자로 연상하고 기념하기 위해, 많은 신. 구교신자들이 사순절 40일 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명상과 경건훈련의 기간으로 삼고 지키고 있지만, 사실 사순절(四旬節)은 동서 로마교회가 만든 교회전통과 절기일 뿐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절기이다.

물론 사순절의 교회전통이나 전례절기를 경건하게 지키므로 은혜를 받는 교인이 있어서 많은 교회들이 지키겠지만 내 개인 신앙으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듯 일 년, 365일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말씀 속에서 주님과 동행한다면, 구태여 사순절의 40일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좋은 음식도 피하며, 개인적인 희생을 치르기 위해 채소 중심의 단순한 음식을 먹거나, 매 금요일마다 단식을 하거나, 40일 동안 하루에 저녁 한 끼로 채소와 생선과 달걀만 먹는 ‘사순절 식사’(Lent Fare)가 과연 필요할까’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떤 형식이나 제도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개인 성격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성도들이 순종하고 지켜야할 성경적인 교회전통이 아니기에 나는 지금까지 50여 년 목회에서 사순절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사순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신앙양심에 따라 나는 고백하지 않지만 사도신경을 신조로 고백하는 교인을 정죄하지 않듯이 사순절을 지키는 교인을 비판하거나 정죄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사순절은 부활주일부터 거슬러 올라가간 여섯 주간의 42일에서 부활주일과 종려주일의 2일을 제외한 40일을 의미한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날이란 뜻으로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이라고 부르는데, 사순절의 첫 번째 주일은 고대 동서교회가 세례지원자를 받아드려 세례를 준비하는 세례지원식의 날로 정했고, 두 번째 주일은 예수님의 변화산 변용을 기념하는 날로 정했으며, 제 3주에서 5주까지의 주일은 세례지원자들의 신앙고백에서 여러 가지 신앙결단을 준비시킨 날로 지켰다.

사순절이란 영어 Lent는 영어 고어인 렌크텐(Lencten)과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봄날”이란 뜻인데, 초기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을 “40번째”라는 헬라어 테사라코스테(Tessarakoste) 또는 라틴어 쿠아드라게시마(Quadragesima)라고 불렀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성경에 언급된 40의 숫자를 인용해 포장했지만 사순절(四旬節)은 성경적인 절기나 용어가 아니고 동방정교회나 서방가톨릭이 교회전통과 예식을 강조하는 절기이기에 성도들이 의미 없이 억지로 사순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거나 신앙 도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절기라 생각된다.

                          인자(人子)됨을 인하여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사복음서(四福音書)는 예수님의 성육신부터 30년의 은둔생활인 Private Life(사생활)와 3년 반 동안의 전도생활인 Public Life(공생애)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하늘로 승천하심을 기록한 책들이다. 특히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사생활보다는 90%이상이 3년 반 공생애에 대한 기록이고, 공생애 기록에서도 ⅓ 정도가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과 부활승천의 기록일 정도로 마지막 한 주간 기록에 비중을 많이 두었다.

마태복음은 21장부터 27장까지가 고난주간의 기록이고 28장이 부활의 기록이며, 마가복음은 11-15장까지가 고난주간의 기록이고 16장이 부활과 승천하심의 기록이며, 누가복음은 19: 28-23: 56절까지가 고난주간의 기록이고 24장이 부활과 승천하심의 기록이며, 요한복음은 12-19장까지가 고난주간의 기록이고 20-21장이 부활과 부활의 몸을 사람들에게 보인 기록들이다.

오늘은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개선의 날을 기념하는 날로 Palm Sunday(종려 주일)이다. 금년과는 나흘간의 날짜 차이는 있지만 주후 30년 4월 2일 종려주일, 예수님은 새끼나귀를 타고 수십만 시민들이 외치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Hosanna to the Son of David!;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소서!”-Save us now, O Lord; 시 118: 25)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마 21: 9)라는 함성을 들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Triumphal Entry, ‘개선왕의 입성’이다.

그런데 민족의 구원을 요청하며 ‘호산나’를 절규하고 부르짖던 군중은 닷새 만(5일 후)에 ‘Crucify Him!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폭도의 소리로 바뀌고 그 결과 예수는 정상적인 재판이 생략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데 예수님은 이 고난주간 닷새째인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인 주일 새벽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부활의 주(I have the keys of death and of Hades; 계 1; 18절)가 되신다.
 
예수님은 “내가 인자됨을 인하여(Because He is the Son of Man)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권세를 내게 주셨다”(요 5: 27) 그래서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겼다”(He has given all judgment to the Son; 요 5: 22)고 했다.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는 절대 권세는 당신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을 누릴 권세를 33년 반 동안 포기하고 사람으로 지구촌에 오신 것의 등가교환(等價交換)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의 성육신의 대가가 컸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이렇게 성도들의 구원도 믿기만 하면 받는다. 구원의 조건이 없다. 그러나 성도들의 축복, 영적인 축복과 물질적인 축복, 가정의 축복과 건강의 축복, 자녀의 축복과 신령한 영적축복은 조건이 있다. 심는 대로 거둔다. 당신이 믿고 드린 대로, 충성한 대로, 헌신한 대로, 심는 대로 열매를 거둔다. 많이 심어 많이 거두고, 많이 기도해 많이 응답받는 역사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이제 예수께서 성육신하므로 하나님이 예수님께 맡기신 하나님의 심판,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집행하실 하나님의 칠대심판(7 great judgments of Scripture)을 알아본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의 죄의 심판(요 12: 31-32)
    Judgment of believer's sin in the cross of Christ(요 3: 14, 17: 4, 롬 6: 8)

땅거미가 어둠으로 온 누리를 삼켜가듯 음산한 죽음의 사자가 애굽 땅을 덮어가면서 바로의 장자부터 감옥에 갇힌 죄수와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새끼를 죽이고 애굽의 모든 신들에게 벌을 내릴 때, 유월절 양의 피를 집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히브리인 집들은 Pass-Over했던 것처럼 장차 있을 예수님의 심판은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는 자들을 심판하신다. 그날 애굽 전국에 흩어져 있던 유월절 양의 피가 발려진 히브리인 집집 안에는 간음한 자, 도적질 한 자, 살인한 자, 거짓말 한 사기꾼도 있었지만 ‘양의 피 때문에’ 조건 없이 구원을 받았듯, 세상 죄를 걸머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죄의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구세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지옥심판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의 죄의 심판이다.

그래서 인간이 짖는 세상의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예수를 믿지 않는 죄, 예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죄다. 그래서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잔인하게 살인을 해서가 아니다. 더러운 간음을 해서도 아니다. 도적질해서도, 사기를 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인간이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십자가로 대신 심판 받으신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죄의 심판을 받으신 예수를 믿음으로 죄의 심판에서 자유를 얻었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 십자가 심판’이 없기 때문에 ‘예수의 지옥심판’을 받는다.

성경은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요(He who believes in Him is not judged)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으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요 3; 18)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He who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아들을 순종치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But he who does not obey the Son sha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abides on him; 요 3: 36)고 했다.

여름에 먹구름이 덮여있으면 비가 오고, 겨울에 하늘을 덮고 있는 먹구름은 눈이 돼 쏟아지듯, 예수님이 인류의 죄 때문에 받으신 십자가심판을 믿지 않는 자에겐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구름처럼 덮여있는 자로써 영생과도 상관이 없는 자일 뿐 아니라 언제라도 지옥심판에 노출돼 있는 자이다. 우리 대신 죄와 지옥의 심판을 받으신 예수십자가 심판을 믿고 받아드려 영생의 사람이 된 성도들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까지 이 사실을 모르는 교인이 있다면 예수 십자가 심판을 믿으므로 지옥심판에서 사면되기를 축원한다.

   2. 성도의 삶을 통해 받는 스스로의 심판(고전 11: 31-32)        
    Believer's self-Judgment through-out life(롬 6:16-23, 8:1-13, 엡 4:22-32)

예수님의 두 번째 심판은 매일 매일, 성도들의 삶에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으로,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징계와 채찍으로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심판이다(히 12: 5-11) 이 심판의 목적은 성도들의 Sanctification(성화)과 성결과 거룩함이다.

성막이 세워진 후 시내 산을 떠나기 전까지 기간인 출애굽 제 2년의 한 달 20일 동안에 시내 산기슭에서 모세를 통해 주어진 레위기(출 40: 17, 민 1; 1) 총 27장에 859절, 24,546단어로 된 성경 세 번째 책인 레위기는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인간의 성결 의무를 기록한 책이다. 레위기는 거룩에서 시작해 거룩으로 끝날 정도로 ‘거룩’이라는 말이 무려 90여 번이나 강조된 책으로 그래서 레위기는 한마디로 성도의 거룩함을 위해 기록된 책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 성결해지고 거룩해 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① 수직적으로는 번제(1, 6, 9장) 소제(2장) 화목제(3, 7장) 속죄제(4, 5, 16장) 속건제(5-7장)의 다섯 가지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② 수평적으로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안식일(23: 1-3)에서 유월절(23; 4, 5) 무교절(23: 6-8) 초실절(23: 9-14) 오순절(23: 15-22) 나팔절(23; 23-25) 속죄일(23: 26-32) 초막절(23: 33, 34)의 일곱 가지 절기 지키는 것을 통해 성도들이 거룩함을 지킬 수 있음을 가르쳤다. 구약시대에 히브리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죄 용서를 받으려면 다섯 가지 제사를 드려야 하고,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오제칠절(五祭七節)의 책이다.

그래서 구약 히브리 사람들은 지은 죄를 용서 받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일 년 내내, 오제칠절, 다섯 가지 제사와 일곱 가지 절기를 지켜야만 했는데 오제칠절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레 17: 11, 히 9: 22) 수많은 양과 염소와 황소와 비둘기를 잡아야 했고, 고운 밀가루로 전병을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제사와 절기마다 힘든 일이었고 번거로운 일이었으며, 돈도 많이 들고 노력도 많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돌아가시므로 신약성도들은 성전을 찾아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얻고 거룩함을 얻게 됐다.

그럼에도 태생적 죄인인 인간은 간사하고 연약해 여러 가지 유혹을 받아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불순종하며 마귀에게 붙잡혀 죄의 종노릇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았음에도 불순종하는 성도들, 죄를 짓는 성도들에게 징계의 채찍을 드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들의 삶을 통한 예수님의 심판이다.

어떤 성도에겐 교통사고를 당하게도 하고, 어떤 이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게도 하며, 어떤 사람은 사업이 실패하여 알거지가 되게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부부가 헤어져 가정행복이 산산조각 나게 도 하시며, 어떤 사람은 몸에 병이 들어 고생하게도 하시고, 어떤 사람은 일이 풀리지 않고 꼬이기만 하게 하시며, 어떤 성도는 조금만 잘못된 생각을 해도 어려움을 겪게도 하고, 심지어 불순종이 길어지는 어떤 사람은 사랑하던 자녀를 데려가기도 한다. 이러한 생활심판은 모두 주님께서 하시는 징계심판, 채찍심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심판의 목적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기 위한 것’이다(히 12: 10) 그래서 시편저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됐다”(시 119: 71)고 고백했다.

김 목사의 삶에서 예수님의 채찍심판과 징계심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요만큼의 목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거룩한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오랜 세월 동안, 내 속엔 악한 생각들인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 간음과 탐욕과 악독,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 훼방과 교만과 광패(막 7: 21-23)가 가득해 끊임없이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용암처럼 솟아나 자신을 더럽게 했던 나였다. 목사가 된 20, 30년 후까지도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였고,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했던 자였으며, 수군수군하는 자, 이웃을 비방하는 자,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였고,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기를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던 자였으며,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무지한 자, 하나님과 이웃과의 약속을 쉽게 버리는 배약하는 자, 무정하고 무자비한 자였다(롬 1: 28-31) 그래서 이러한 악을 죽이고 거룩한 목사 만드시려는 예수님의 징계채찍, 생활심판을 많이 받은 목사였다.

목회 50년을 눈앞에 둔 목사로 이제야 조금 철이 드는 내 모습에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붙잡아 주신 예수님의 징계심판, 채찍심판에 감사를 한다. 나에게 이 심판이 없었다면 예수 믿어서 천국은 가겠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목사, 천국에서 상급 없는 목사가 될 뻔 했을 것인데 채찍심판으로 주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게 하시니 이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채찍과 징계심판을 통해 거룩함에 동참하는 축복을 받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3. 수 세기를 걸쳐 하나님을 반역한 이스라엘의 심판
     Judgment of Israel for her many centuries of rebellion(겔 20: 33-44)

출애굽 이후 3,500년의 유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축복-불순종과 반역-하나님의 진노심판-이스라엘의 회개-축복(祝福)-반역(叛逆)-심판(審判)-회개(悔改)’가 반복적으로 계속된 악순환(惡循環)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반역하는 삶을 계속하다가 BC.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가고, BC.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을 당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민족적인 비극을 당하고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다가 주후 30년 4월 7일 고난의 날 금요일, 재판정에서 ‘예수와 바라바 중 누구를 놓아주길 원하느냐?’ 묻는 빌라도에게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His blood be on us and on our children; 마 27: 25)고 외치는 결정적인 죄를 범한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토(Titus) 장군에게 멸망당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나라 없는 민족, 디아스포라로 살아간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에게 이유도 모른 채 6백만 유대인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6백만이 죽는 Holocaust에서도 예수님의 피 값을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지막 대학살 Holocaust의 비극이 다시 오게 되는데 그것은 칠년대환난의 후반기인 후 삼년 반에 온다. 성경 슥 13: 8은 말씀하기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라”(Two parts in it will be cut off and perish. But the third will be left in it)고 했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2,200-2,400만의 이스라엘사람(미국에 700만, 이스라엘에 700만, 알젠틴에 600여만, 전 세계 기타지역에 200-400만) 중에서 ⅔가 죽임을 당하고 ⅓만 살아남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때 적그리스도의 박해로 전 지구촌에서 ⅔가 학살을 당하면서, 이스라엘은 비로써 2000년 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믿지 않고 십자가에 처형한 죄를 민족적으로 회개하고(슥 12: 10-14) 전 세계에서 살아남는 ⅓만이 모두 구원을 받는데 그것을 ‘이스라엘의 민족구원’(롬 11: 26)이라고 한다.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 중에서 그날에 회개하고 살아남은 Remnant 유대인들만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는다. 이렇게 대환난에서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심판자, 지구촌 유대인 ⅔를 죽이고 ⅓만 남게 하는 심판자가 예수님이다.

   4. 타락한 천사들의 심판(벧후 2: 4, 유 6-7, 계 20: 11-15)
     Judgment of angels for rebellion against God(마 25: 41, 48, 계 20: 10)

성경에 천사들의 타락기록은 두 번에 걸쳐 있었다. 첫 번째는 원천지를 흔적도 없이 파멸로 이끈 루시퍼의 타락이고, 두 번째는 노아시대에 사람의 딸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켜 홍수심판을 가져온 아바돈의 타락이다. 루시퍼의 타락은 자신과 자기를 추종하던 졸개들과 함께 하늘에서 쫓겨나 저 광막한 우주의 한 별에 정착하게 했고, 완전했던 원천지를 수억 년, 수십억 년 동안 땅을 흙과 물로 뒤죽박죽이 된 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하는 심판을 받게 했으며, 아바돈의 타락은 지구촌에 노아홍수 심판을 받게 하는 지구파멸을 가져왔고, 자신과 졸개들은 현재 지하 무저갱에 갇혀 있게 하는 징벌을 받았다. 그러나 타락한 천사 루시퍼와 아바돈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영원한 지옥심판은 장차 있을 것이다.

지금도 루시퍼는 하늘 왕국에서 빛의 속도로 지구를 왕래하면서(눅 10: 18, 욥 1: 7, 2: 2) 지구촌의 인간들을 미혹해 살인, 테러, 민족분쟁, 간음과 음란과 동성연애의 온갖 죄를 짓게 하고 있고, 아바돈은 현재 지하 무저갱에 갇혀 있는데, 성도들이 휴거하여 하늘로 들림 받고 난 후,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무저갱에서 나와 다섯 달 동안, 온 천하를 다니며 전갈이 사람을 쏘듯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다시 무저갱으로 돌아갔다가 천년왕국이 끝남과 동시에, 루시퍼와 아바돈은 예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지옥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장차 죄인들이 들어갈 지옥(地獄)은 사단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각종귀신들 그리고 아바돈과 그의 졸개들인 황충 귀신들이 죄인들과 함께 들어가 공존하면서, 죄인들은 온 몸을 돌아다니며 살을 찢는 독사뱀들과 나무 잎을 씹는 애벌레누에처럼 살을 씹어 먹는 구더기들의 고통에 유황불 지옥의 고통까지 그리고 지옥의 사자들인 사단마귀와 아바돈 황충귀신들에게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는 장소가 된다. 이렇게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하여 지옥에 던져 넣는 심판자가 바로 예수님이다.

   5. 성도들의 행위 심판
     Judgment of believer's works(롬 14: 10, 고후 5: 10-11, 고전 3; 11-15)

평생을 깊은 산속 수도원에서 금식과 기도와 명상으로 보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던 자부심이 대단했던 성자 줄리안이 어느 날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나게 되자 그 동안 자기가 했던 자기열심을 자랑했다. 그러자 줄리안의 자랑을 다 듣고 난 천사는 줄리안에게서 그의 열심덩어리를 뽑아내 분석하여 그에게 보여주었는데, 열심덩어리 100근 속에 자신의 야심과 당파심이 20근, 명예심이 30근, 강제적으로 억누르는 강압심이 15근, 의무심이 15근, 불평이 15근이 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순열심은 5근 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회개하고 새로운 수도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성도들이 예수님께 자기들의 행위를 심판 받는 것은 두 종류의 심판이 있다. 첫 번째 심판은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에 그 몸이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지상의 죽은 성도들과 그 뒤를 이어 산 채로 휴거 승천하는 휴거성도들의 심판이다. 그 날에 부활하는 성도들은 구약시대부터 휴거직전까지 하나님과 예수를 믿었다가 죽어 무덤에 장사된 성도들로서 그들은 무덤에서 납골당에서 나무속에서 시멘트 바닥 속과 시궁창에서 물에서 불에서 공기에서 영혼과 육체가 나와서 부활의 몸과 연합하여 부활체로 하늘로 승천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부로 준비된 휴거성도와 지상의 어린아이들은 산 채로 들림 받아 하늘로 휴거한다. 그런 다음, 부활성도와 휴거성도들은 공중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 상급심판, 생활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두 번째 심판은 예수님이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대환난을 통과하고 예수님을 맞는 지상성도들이 받을 생활심판, 행위심판이다.

산상보훈의 결론에서 예수님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모래위에 집을 건축한 어리석은 사람을 비교해 설명하면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힐 때, 주초를 반석위에 세운 집은 든든하게 그대로 있고, 모래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는데 그 무너짐이 심할 것이라고 하셨고(마 7: 24-27)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유일한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터(The Only Foundation; 고전 3: 11) 위에 건축하는 두 종류 건물과 두 종류 결과(Two kinds of building; two different result; 고전 3: 12-15)를 강론하면서, 공력이 불에 타서 없어질 건물은 풀이나 짚이나 나무로 지은 집이요, 공력이 불에 타지 않을 집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이라고 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 신앙생활을 ‘성도들이 짓는 집을 자신들의 공력’(Every man's work, 에르곤: “각 사람의 수고와 행위”)이라고 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때부터 죽는 날까지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각종 예배와 헌금을 드리며 교회건축에 동참하고 선교하며 구제하고 전도하며 봉사를 하는 모든 헌신과 충성을 그들의 공력(Their work, 에르곤)이라고 한 것인데, 그 공력이 하나는 불에 타서 없어질 공력이고, 다른 하나는 불에 타지 않는 공력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당시 로마의 장군 맘미우스가 고린도를 불태워버린 대화재사건에서 불에 타버린 목재건물과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는 건물을 연상하면서 성도의 두 가지 공력을 말했다.

예수님께서 장차 공중 재림 때에 새 예루살렘 하늘에서 하실 부활성도와 휴거 성도에게 하실 공력심판과 지상재림에서 지상성도에게 하실 공력심판(Believers will be judged concerning)은 ① 교리와 가르침에 대한 심판(Doctrines; 롬 2: 14-16, 롬 14장)이고 ② 이웃에 대한 행위(Conduct to others: 마 18장, 롬 14장) 심판이며 ③ 육체적이며 정욕적인 특성의 심판(Carnal traits; 골 3장, 롬 1-2장, 8: 1-13, 14: 1-23)으로, 얼마나 육체의 소욕을 죽이며 살았는가...를 심판하실 것이고 ④ 우리가 했던 언어를 심판하실 것이며(Words; 마 12; 32-37) ⑤ 허위 선전, 비방, 명예훼손(Slander)과 싸우고 말다툼하는 언쟁(Quarrel)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말과 근거 없는 헛소문(Idle words) 그리고 부정직한 것(Dishonesty)과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Broken-promises)과 잘못된 거래(Wrong dealings)등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 것을 향한 심판하시고(Things that affect others; 롬 1: 29-32, 고전 6: 9-11, 갈 5: 19-21, 엡 4; 1-32, 5: 1-33, 롬 12: 1-21, 14; 1-23)

⑥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무시하고 등한시한 것(Neglected opportunities)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허비한 것(Talented wasted) 좋은 삶을 상실한 것(Loose living)과 영적으로 결핍하고 부족함(Lack of spirituality)등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것을 심판하시며(Things that affect themselves)하시며 ⑦ 빛 가운데 사는 것을 거절하고(Refusal to walk in the light) 불순종하며(Disobedience)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며(Rejection) 성령께 순복하고 성령과 동사하고 동업하는 것을 실패한 것(Failure to co-operate and yield to the Spirit)등 하나님께 영향을 끼친 것을 심판하실 것(Things that affect God; 고전 12장, 롬 12장, 엡 4: 1-32, 5: 1-33)이다.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에게 대한 말과 행동과 마음의 생각까지 심판하실 것이다.

주경학자 Finis Jennings Dake 박사는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면서 우리 공력이 불에 타서 없어지므로 천국에서 상급을 받지 못하게 하는 풀과 나무와 짚의 공력을 ① 잘못된 이단의 교리와 가르침(False doctrine)이 7% ② 이웃에게 손해와 어려움을 주는 잘못된 관계(Conduct related to others)가 8% ③ 시기와 질투(Envying)가 9% ④ 다툼과 분쟁과 투쟁과 싸움과 불화(Strife)가 7% ⑤ 분열과 불일치와 의견차로 나누이는 것(Division)이 8% ⑥ 편견, 편협, 광신, 고집불통(Bigotry)이 7% ⑦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개인적인 야심(Personal ambition)이 10% ⑧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인정받기 위한 것(Love of praise)이 8% ⑨ 자기가 속한 교파와 교단에 대한 자부심과 교만(Pride of denomination)이 10% ⑩ 자기재능과 달란트에 대한 교만(Pride of talent)이 11% ⑪ 권세와 권의를 사랑하는 것(Love of authority)이 무려 11%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금과 은과 보석의 공력으로 불에 타지 않는 공력인 ① 하나님 사랑(Love of God)이 4% ②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Love of Man(사람 사랑)이 3%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지상의 교인들이 천국에서 자기가 받을 상급의 집을 짓는 공력의 93%가 풀이나 짚이나 나무로 불에 타 없어질 공력을 쌓고, 심판의 불에 타지 않는 금과 은과 보석의 공력을 쌓는 것이 7%라는 충격적인 보고를 했다. 지금 당신의 공력은 과연 어떤 공력인가? 비오고 바람 불고 창수가 날 때 무너지는 집, 풀이나 짚이나 나무로 지은 불에 탈 공력의 집인가? 아니면 비와 바람과 창수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집과 그리스도의 심판의 불에 타지 않을 공력의 집인가? 하늘과 땅에서 하실 그리스도의 성도들의 행위심판에서 그 공력이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6. 예수 재림 때에 있을 민족 심판
     Judgment of the living nation at the 2nd advent(마 25: 31-46)

1908년 4월 28일 체코에서 출생해 1974년10월 9일 66세로 독일에서 죽은 오스카 쉰들러는 자신이 전쟁 중에 모은 돈과 수백 년간 집안에 전해오던 가문의 전 상속재산을 투입해 나치대학살에서 1,200명 유대인을 구한 사람이다. 위험을 무릎 쓰고 유대인 구출에 400만 마르크 전 재산을 써버려 부인과 별거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쉰들러는 우리시대에 영웅이다.

전쟁 후 고향 체코시골에서 가명으로 숨어 살면서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다가 그의 과거행적을 아는 체코 계 옛 나치들이 그를 멸시하고 협박하자 회사를 정리하고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1949년부터 농부로 살았는데, 매년마다 자신이 구해준 유태인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연명하다가 주위에 살던 전범들의 살해위협을 받고 1957년 서독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유태인들이 전쟁 전처럼 큰 공장을 하도록 투자를 해줘 대형시멘트 공장을 운영했다가 주위에 따가운 눈총으로 1961년 회사를 포기하는데 마침 그해에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의 증인으로 섰다가 세계 언론으로부터 ‘천사와 은인’이라는 큰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1962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옳은 사람’이라는 칭호로 세계방송을 타게 된 쉰들러는 그의 과거를 모르던 동업자들에게 ‘더러운 인간’이라며 등을 돌리므로 괴로워하다가 미국이민을 계획했지만 전범재판을 피한 ‘나치’로 몰려 이민을 포기하는데, 독일정부는 쉰들러를 전범재판에 세워 ‘나치였다’고 판단해 수많은 곤욕을 치루며 살다가 1974년 66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쉰들러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시체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 공동묘지에 안치됐는데, 그의 무덤엔 지난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헌화가 들어오고 조문객들이 줄을 이어있어 공동묘지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으로 남아 있다. 그가 전쟁에서 구해 준 1,200명 유태인은 오늘날 그 자손이 4,000명으로 늘어났고 그들은 지금도 자기들의 조상들을 구해준 쉰들러에게 감사하고 있다.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실 때, 예수님은 지구촌 200여 나라와 수천수만의 방언과 부족과 민족을 양의 민족과 염소의 민족으로 나누어 민족 심판을 하신다. 국가적인 박해 중에 목숨을 걸고 선지자들을 숨기고 목숨을 살린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왕상 18: 3-4)와 오스카 쉰들러처럼 칠년 대 환란 때, 전 세계에서 신앙 때문에 핍박 받는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을 돌보고 지켜준 사람들을 양의 민족으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야합하고 동조하여 박해당하는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거나 방치했던 자들을 염소의 민족으로 심판하신다. 그때 양의 민족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축복을 주시고, 염소의 민족은 죽임을 당했다가 최후심판 때에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 예수님의 민족 심판에서 양의 민족으로 살아남는 축복의 가문과 가정, 씨족과 종족과 나라가 되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7. 죽은 악인들의 심판
     Judgment of the wicked dead(계 20: 11-15, 행 17: 31, 롬 2; 16)

문자 그대로 죽어 있는 악인들이 받을 심판이다. 백보좌 최후심판이라 불리는 이 심판은 아담하와의 에덴동산 이후 천년왕국 끝자락에 있을 곡과 마곡 반란에 참여한 인류역사의 모든 악인들이 부활하여 지옥에 들어갈 심판을 당하는 최후심판이다. 이 심판은 ① 양심의 법(Law of conscience; 롬 2; 12-16)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양심의 법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 ② 기억의 법(Law of memory; 눅 16: 25) ③ 모세의 율법(Law of Moses; 롬 2: 12-16) ④ 개인특성과 품성과 성질의 법(Law of character; 히 3: 8-10, 엡 4; 19) ⑤ 전해지고 기록된 복음(Gospel; 롬 2; 12-16) ⑥ 자신 속에 기억 저장된 개인적 행동(Records of personal acts: 마12: 36, 눅 12; 2-9, 요 3; 18, 계 20; 12) ⑦ 생명의 책(The book of life: 계 3: 5, 13; 8, 17: 8, 20: 12, 15, 21; 27, 22: 18-19, 출 32; 32-33, 시 69: 28, 단 12; 1,눅 10: 20, 빌 4; 3) ⑧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요 12; 48)에 근거하는 심판(Basis: “근저”, “근거”, “기초”)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불평할 수 없는 공평한 심판이고 공의로운 심판이다. 그리고 이 심판은 성부하나님이 판결을 선포하시고, 성자하나님이 시행하는 심판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이며 예수님의 심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칠대심판은 예수님의 칠대심판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인자됨을 인하여’ 모든 심판전권을 예수님께 인계하신 것이다.

호렙산 언덕에서 자기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징표로 발에서 신발을 벗었던 모세를 통해 역사에 전무후무한 출애굽의 기적을 행하게 하신 하나님, 여리고 빈들에서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여호와의 군대장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신발을 벗었던 여호수아를 사용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30년 동안 축복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하늘 영광을 포기하고 세상 죄를 짊어지시려고 ‘인자가 되신 예수님“께 모든 심판 권세를 주셨던 하나님 앞에서, Palm Sunday, 거룩한 종려주일에, 땅위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성도들에게 땅과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 축복들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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