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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3월26일 19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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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게와의 일곱 아들

            스게와의 일곱 아들    행 19: 8-20        3. 15. 15


1978년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이란 회교혁명으로 팔레비를 축출한 후, 신정정권을 수립하고 소련 남부지역인 타지크, 하자르, 아이미크, 우즈베키스탄, 트루크만의 회교권국가들을 독립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자 회교혁명 전파를 차단시키고 전략적으로 중앙아시아를 선점해 유럽까지 제패하려는 전략으로 1979년, 구소련은 선전포고도 없이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침공 한다. 그러나 아프간의 민병대 무자헤딘의 끈질긴 저항으로 초강대국 소련 군대는 1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털고 철수한다.


그 후 14년 만인 2003년 3월, 미국은 테러의 대부요 전쟁광인 사담 후세인의 생화학무기를 없애고 테러리스트에 대한 직접. 간접적인 지원을 막기 위한다는 표면적인 이유와 후세인이 프랑스와 러시아와 중국에게 석유개발권을 주자 이라크에 매장된 석유를 장악하면서 중동지역의 패권을 프랑스와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두 마리 토끼 사냥을 위해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하고 이라크를 공격한다.


미국이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하기 전, 세계 전쟁전문가들은 세계최강 미국의 승리 80%, 당시 세계 군사력 4위 이라크의 승리 20%를 점쳤다. 그러나 선전포고와 함께 ‘사막의 폭풍’ 작전을 시작한지 닷새 만에, 미국은 F-117 비행기와 B-52 폭격기와 토마호크 대공미사일 공격으로 이라크 전투기 70% 이상을 파괴했고(그래서 이라크는 나머지 전투기 수백 대를 이란으로 옮겨 놓기도 했다) 이라크 대도시들을 괴멸시켰으며, 39일 동안 계속된 강력한 공격으로 이라크는 초토화되고 재생불능의 패전국가가 됐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이라크 군대 60만을 초토화시키는 동안 미군은 단 294명만 전사하는 ‘어른과 어린아이 싸움’ 같은 전쟁이었다. 이 전쟁결과를 보고 세계는 미국의 군사력에 충격과 공포에 빠졌는데 그 중에 중국의 충격은 컸다. 왜냐하면 당시 이라크 무기의 상당수가 Made in China이었 기 때문이다.


1979년에 구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선전포고 없이 개전된 일방적인 무자비한 무력침공이었고, 2001년에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하여 6개월 만에 아프간을 초토화 시킨 것과 2003년에 이라크를 공격해 39일 만에 초토화 시킨 것도 선전포고와 함께 개전된 전쟁이었다. 소련의 아프간 공격이 장기 대국상대자가 모르는 사이에 ‘양수 겹장!’을 부른 장기라면, 미국의 아프간 공격과 이라크 공격은 상대편에게 미리 ‘이렇게 장군을 부를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끝내기 장군’을 부른 장기였다.


6000년 인류역사에서 전쟁이 없던 시기는 292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촌은 수천 년 동안 죽이고 죽는 전쟁이 계속된 전쟁터다. 부족과 부족 사이에 있었던 원시전쟁에서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의 현대전쟁까지 전쟁의 말발굽소리와 포탄의 폭음소리와 죽이고 죽은 인간의 처절한 절규와 함성이 끊어질 날이 없었던 땅 덩어리이다. 그런데 크고 작은 모든 전쟁의 대부분은 선전포고(宣戰布告)가 있었다. 그 중에 선전포고가 없었던 전쟁은 야만스럽고 비굴하며 저질적이었다. 프랑스 혁명, 볼셰비키 공산혁명, 터키 케말 파샤혁명, 이집트의 나세르 혁명전쟁에서 독일의 세계 1차 대전, 독일과 이태리와 일본의 2차 대전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북의 6.25남침 등의 쿠데타와 혁명과 국경을 침탈한 피의 전쟁들은 하나같이 선전포고를 생략한 기습적이고 야만적이며 비열한 전쟁과 혁명이었다. 이렇게 선전포고는 명분 있는 싸움에서 필요한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고 전쟁승리를 확신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쟁의 방법이다.

설교학적으로 설교(說敎)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가르치는 과학”이라고 한다. 그런데 목회 50여년을 지척에 둔 김목사의 작은 경험과 천견으로 (설교의 정의 중 하나)“설교와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흑암세력을 향하여 도전하는 선전포고”이다. 바울은 엡 3: 8-10에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In order that-To the intent that-now to the principalities and powers in heavenly places might be known by the church the manifold wisdom of God)”고 하므로 “설교는 흑암세력인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리는 선전포고라”고 했다.


바울이 말한 정사와 권세들(엡 6: 12)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아니다. 하늘에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천군과 천사들은 지상에 있는 교회나 목사들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안다. 그래서 목사들이 설교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리는 일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어불근리(語不近理)이다. 따라서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리는 설교는 흑암세력인 정사와 권세들에게 선전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이름으로 흑암세력의 총본산 사단마귀와 귀신들에게 ‘떠나라, 나오라, 물러가라, 거기서 손을 뗄 찌어다, 귀신은 떠나가고 병 고침을 받으라’고 명령하는 것도 선전포고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김목사가 해온 설교는 성도들의 영혼구원에 대한 메시지면서 사단마귀와 정사와 권세에 대한 선전포고였으며, 예수이름으로 부정적이며 절망적인 환경과 각종 질병과 귀신들을 꾸짖고 명령한 기도는 흑암세력에게 전쟁을 예고한 강력한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오늘날 지구촌강단에서 외치는 목사의 설교와 기도, 그리고 그 설교를 듣고 용기를 얻어 사단마귀와 귀신과 문제들에게 명령하고 꾸짖는 성도들의 기도는 모두 정사와 권세에 대한 선전포고인 것이다. 설교와 기도로 정사와 권세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나와 여러분이 아프간과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하고 그들을 초전박살 낸 미국처럼 적진을 파멸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나는 오늘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란 명제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


   1. 바울을 통해 나타난 희한한 능력들


예수 믿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노상에서 예수를 만나 구주로 영접하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성령을 받은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에 들어가 극고생(極苦生)의 신앙훈련을 받고 나온 후, 이방인 선교사명자가 된다. 그리고 1차 2차 3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하는데, 행 13: 1-14: 28에 기록된 1차 여행은 주후 47-49년까지 약 2년 동안에 2,400km를 여행하면서 이방 전도사역을 확장하고 성장시키며 바울의 교회지도자 안목을 넓힌 여행이었고, 행 15: 36 -18: 22까지에 기록인 2차 여행은 약 3년 반 정도 기간에 5,600km의 먼 거리를 여행한 전도여행이었으며, 3차 여행은 행 18: 23-21: 16까지의 기록으로 주후 53-56년까지 3년간 바울이 중점적으로 우상의 도시 에베소 선교목회에 심혈을 기울여 큰 부흥을 일으켰다가 에베소 소요(행 19: 23 -41)로 폭도들에게 붙잡히면서 3차 전도여행이 끝난다. 그리고 바울은 그 일로 로마로 호송되는데 ‘로마 전도’가 평생소원이었던 바울은 사도와 선교사가 아닌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 로마 전도를 시작한다.


본문은 바울이 3년 동안 목회했던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서 있었던 사건기록이다. 바울시대에 소아시아 항구도시 에베소는 우상숭배와 미신과 마술과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도시다. 에베소에 있었던 인간과 짐승과 식물의 다산(多産)을 상징한 아데미(Artemis) 여신상은 많은 수의 유방을 가지고 있었고, 사자 황소 수양들이 그 어깨와 다리 위에 양각(陽刻)되었으며, 발 위에는 한 마리 꿀벌 모양이 새겨져 있는 신상이었다. 당시 아데미 신전에는 수많은 고급 매춘부들이 사제(司祭)로 봉사하고 있어서 우상숭배 제전 때는 창녀사제와 신전 방문 순례자들 간에 추잡하고 음란한 도덕적 타락과 방종이 극심했고, 각종 부적과 우상적인 공예품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래서 에베소엔 아데미 우상과 각종 부적을 만드는 은장색(銀匠色; “은으로 부적을 만드는 장인”)이 성행했고, 심지어는 ‘에베소 주문(呪文)’을 부적처럼 몸에 달고 다니는 것이 유행일 정도였다.


이런 우상과 음란의 도시 에베소에서의 전도는 힘든 영적싸움의 사역이었다. 각종 귀신의 역사로 병든 자도 많았고 복음을 대적하는 반대세력과 악령의 역사도 강했다. 그러나 죄 많은 곳에 은혜도 많았다. 하나님은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통해 희한한 능력(Special Miracles)을 행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자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들이 떠나게 했던 것”이다(행 19: 11-12절) 당시 바울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손수건(Handkerchiefs)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땀을 닦기 위해 머리에 두르고 있던 헝겊조각이고, 앞치마(Aprons)는 장막 짓는 작업을 위해 허리에 둘렀던 행주치마였다. 손수건의 헝겊조각과 앞치마의 행주치마가 각종 병을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하나님 기적의 도구였던 것이다.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부흥회 중에 하나님께서 “김 목사야, 이번 집회에는 손을 얹고 안수를 하지 말고, 병자들이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강단 앞에 서 있는 네게 나와서 김목사 옷이나 손을 만지게 하라”고 하셔서 몇 번(대략 5번)을 그렇게 순종했었는데, 어느 집회에서는 병 고침을 받고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여러 명이 돼, 담임목사님이 그분들만 따로 간증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요 집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 오늘도 하나님은 주의 종의 안수기도를 통해서도 기적을 나타내시지만 목사의 옷자락을 만지거나 냄새나는 손수건을 얹거나 손을 만져도 질병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들이 떠나가는 희한한 이적을 행하신다. 바울을 통해 역사하셨던 희한한 하나님의 기적들이 오늘 우리 교회에서, 우리들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귀신이 사람을 괴롭히는 여러 현상들


바울의 에베소 3년 목회 중(행 20: 31)에 2년은 그 지역에서 잘 알려진 선생들의 학교였던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몇몇 사본에 따르면, 당시 바울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5시부터 10시까지)인 점심시간에서 오후 휴식시간까지를 이용해 말씀을 가르쳤고, 집회를 마친 후엔 청중들과 함께 다시 일터로 돌아가 오전에 하던 일을 끝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두란노서원 집회 그 2년 동안에,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으면 질병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들까지 떠나가는 희한한 기적들이 일어났고, 그런 일들이 계속되자 바울은 에베소에서 유명한 사도가 됐던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파리의 마술문서 574번 파피루스 3,018행엔 “내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엄히 명하노니”라는, 무당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에게 명령하는 문구가 기록돼있는데, 바울 당시 두란노 지역에서도 바울이 예수이름으로 기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을 목격한 유대인 주술사들이 바울의 행동을 모방하려고 예수이름을 자기들 주술에 이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각처를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주술사들이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We adjure you by Jesus whom Paul preaches: “우리가 바울이 전하는 예수를 빙자해 엄숙하게 명령하노라”, 13절)고 했고, 유대인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까지도 유명해지고 싶은 호기심으로 예수이름을 빙자해 악귀들을 쫓아내려고 귀신들에게 명령을 했다.


그런데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한 귀신 들린 자의 집을 찾아가 그에게 “예수이름으로 명령하노니,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자 악귀(惡鬼)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The evil spirit answered and said, Jesus I know and Paul I know but who are you?; 15절)며 거칠게 달려들어 그들을 억제하고 두드려 패서 그들이 상처를 받고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을 쳤는데 이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귀신에게 ‘나오라’고 명령하는 것은 선전포고였는데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아무 전쟁준비도 없이 귀신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선제공격으로 전쟁을 시작했다가 진주만공격으로 선제공격을 했던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한 것처럼 귀신들에게 처절하게 패배를 당한 것이다.


엡 6: 12에 따르면, 우리의 대적원수 사단마귀, 흑암세력의 총본산 안에는 사단 왕국의 최고통치자인 정사, 알카스가 있고, 정사들인 용과 옛 뱀, 사단마귀에게 권세를 부여받아 알카스의 뜻을 수행하는 엨수시아의 권세(權勢)가 있으며, 오대양육대주 지구촌 각 대륙과 나라들을 분할(分割)해 통치하는 어두움의 이 세상 주관자들인 코스모크라토파스,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이 있으며(48년 전, 전도사시절에 나는 나와 결투하기 위해 일본에서 건너온(일본귀신이 내게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일본통치자와 싸워 이긴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단마귀의 최하위급 졸개들로 악의 영들(프뉴마티카 포네리아스)인 각종 귀신들이 있다.


성경에 나타난 악의 영들인 귀신은 ① 더러운 귀신(막 7: 25, 눅 4: 33, 41, 계 18: 2) ② 악한 귀신(삿 9: 23, 삼상 18: 10, 마12; 45) ③ 점을 쳐 사람의 길흉을 말하고 사술을 행하게 하는 점하는 귀신(왕하 21: 6, 행 16: 16) ④ 싸우고 분쟁케 하는 귀신(계 16: 13-14) ⑤ 거짓말 하는 귀신(왕상 22: 23, 행 5: 9) ⑥ (조상이나 기복을 위해) 제사하게 하는 귀신(고전 10: 20) ⑦ 불순종의 귀신(엡 2; 1-3) ⑧ 온갖 소문을 퍼트리는 풍문 귀신(왕하 19: 7, 사 37: 7) ⑨ 영과 육을 깊이 잠들게 하는 귀신(사 29: 10-12, 창 2: 21, 삼상 26: 12)


⑩ 참소하는 귀신(계 12: 10, 욥 1: 9, 2: 5, 슥 3: 1-5) ⑪ 참 믿음을 떠나 멸망케 할 이단을 따르게 하는 미혹케 하는 귀신(딤전 4: 1-5) ⑫ 무서워하는(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종의 영(롬 8: 15, 히 2: 14-15) ⑬ 죽은 자의 탈을 쓴 귀신(삼상 28: 13-19) ⑭ 각종 질병을 유발케 하는 질병귀신(마 9: 33, 17: 18, 막 1: 34, 3: 30, 9: 17, 눅 7: 33, 8: 27, 11: 14, 13: 11) ⑮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요일 4: 1-3, 요이 7) ⑯ 정치지도자들을 우둔하게 하여 할 일이 없게 하는 사특한 영, 혼돈의 영(루아흐 이웨임; 사 19: 14) ⑰ 거짓 선지자들에게 (예수이름으로?)거짓 예언을 하도록 하는 더러운 사귀, 루아흐 하투메아(슥 13: 2) ⑱ 다른 복음을 전하게 하는 다른 영(고후 11:3-4)이 있다.


그다음, 귀신들이 사람의 몸을 괴롭힐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이다. ⑴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 루아흐 라아가 사울에게 임할 때, ① 악신(惡神)이 사울을 번뇌(Troubled, 바아트; “두렵게 하다, 놀라게 하다”)케 했다(삼상 16: 15) 이것은 현대 의학적으로 분류하면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착란증이다. ② 악신(惡神)이 강하게 임하자 사울이 야료하면서(Prophesied, 이트나베: “마구 내뱉는 헛소리”) 순간적인 정신착란으로 미쳐서 창을 다윗에게 던졌다(삼상 18: 10-11) 순간적인 착란으로 자기 아이를 죽이거나 총격살인, 약물자살사건을 일으키게 한다. ③ 악신에게 붙잡힌 사울은 집요하게 정적인 다윗을 제거하려고 21번이나 시도하다가 자살로 끝낸다. 악한 귀신은 원수진 마음을 풀지 않고 증오와 미움으로 살게 한다. ④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 사이에 악신을 보내매 세겜 사람들이 사사 아비멜렉을 배반했다(삿 9: 23) 악한 신은 가까운 사람들을 배신하고 배반하게 한다.


⑵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갈 때, ① 몸에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마 8: 16, 9: 33,12; 22, 28, 17: 18) ② 사람이 이전보다 더 악해 지고 사람의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마 12: 45, 막 16: 9, 눅 8: 2, 11: 26) ⑶ 귀신이 사람을 정복하고 소유할 때(Demon-possessed) 사람이 귀신에게 붙잡혀서 귀신의 소유가 되면 ① 자기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이 그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마 8: 28-34, 막 5: 1- 10, 눅 8: 26-39) 거라사 군대귀신은 쇠고랑과 쇠사슬도 끊는 괴력이 있었고 예수께서 군대귀신을 쫓아내기 전에는 아무도 군대귀신 들린 그를 통제할 수 없었다. ② 만성병으로 병의 증세가 더 심해진다(눅 13: 11) ③ 사람을 정신이상으로 미쳐서 흉악하게 한다(마 15: 22) 가나안 여인은 “내 딸이 흉악(凶惡)하게 귀신이 들렸다”(My daughter is grievously vexed with a devil)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예수님께 부르짖었다. 흉악히(Grievously vexed, 카코스: “애가 타고 짜증이 날 정도로 굉장한 고통을 겪는 상태”)는 위험할 만큼 해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⑷ 귀신이 사람을 붙잡을 때(A spirit takes him-a spirit seizes him), 간질발작으로 불과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게 하고, 졸지에 부르짖게 하며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며 몸을 상하게 한다(마 17: 15, 막 9: 18, 눅 9: 39) ⑸ 귀신이 사람을 괴롭힐 때, ‘괴롭히다’란 오클루메누스는 “귀신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것”(마 4; 24, 10: 1, 막 1: 32-34, 16: 16-18, 눅 4: 40-41, 7: 21)으로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초조해지게 하거나 귀찮게 하거나 짜증나고 화나게 하거나 동요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꿈자리가 사나워 성가시게 하고 극심한 분노와 화냄으로 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⑹ 귀신이 사람에게 붙을 때, 의사 누가는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행 8: 7-8)고 했다. 먼지 나는 곳에 가면 옷에 먼지가 묻고, 풀밭에 들어가면 풀씨들이 옷에 달라붙듯 귀신들이 우리 몸에 붙으면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기고 마음에서 참 기쁨이 사라진다. ⑺ 귀신이 사람에게 임하거나 내려올 때, 신접한 무당이나 점쟁이가 된다(행 16: 16) 이렇게 악한 귀신과 더러운 귀신은 전략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공격하고 침투한다. 사단마귀와 귀신의 모든 공격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스게와의 일곱 아들


바울이 예수이름으로 명령할 때 온갖 귀신들이 다 떠나고 심지어 바울의 땀 냄새 나는 손수건이나 때 묻은 앞치마를 얹을 때,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악귀들이 떠난다는 소문에 호승지벽(好勝之癖: “경쟁심이 왕성한 성질”)과 호기심이 발동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동네에 있는 귀신들린 정신병자를 찾아가 “바울이 전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우리가 네게 명하노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귀신이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며 대들어 스게와의 일곱 아들을 두드려 패서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그렇다. 우리의 기도와 명령은 선전포고다. 특히 귀신을 향해 ‘나가라’고 명령하는 것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는 도발적인 선전포고다. 나는 1991년에 옛날 성전부지인 실버 스프링, 841 Norwood Road에서 세 번, 2000년대 초반에 531 Norwood Road, Silver Spring, 현재 우리교회 부지에서 두 번, 땅벌을 소탕한 적이 있다. 처음에 성전부지 잔디를 깎다가 땅벌 집을 건드려 벌에 쏘여 나도 아이들도 여러 번 고생을 해서(김선천 집사는 생명이 위독해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벌들을 잡아 죽여보기도 하고 벌집을 돌로 막아보기도 하며, 벌레 죽이는 약도 뿌려보았지만 지독한 땅벌은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이다. 대책이 서지 않는다. 숫자가 줄지도 않고 도망도 가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선전포고를 하고 전략적으로 벌집을 공격했다. 공격시간을 낮에는 벌들의 활동이 활발해 밤을 선택했는데, 먼저 비닐자루를 머리부터 허리까지 뒤집어쓰고 허리를 묶은 후, 옷을 든든히 입고 장갑까지 낀 다음, 일(One) Liter 짜리 콜라 병에 휘발유를 가득 담아 벌집에 쏟아 붓고, 벌집을 솜으로 막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은 다음 기름에 젖은 솜에 불을 붙였다. 불은 다음 날까지 탔는데 불이 꺼진 후에 땅을 파보니 땅 속에 있는 벌집자리 굴이 농구공만큼 컸고 벌과 벌집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때부터 성전부지에서 벌집을 볼 때마다 그렇게 모두 없앴는데, 만일 다른 방법으로 벌을 죽이려했다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사단마귀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충분한 준비와 전략이 있어야 한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사단마귀와 귀신들에게 봉변당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명령하는 선전포고와 함께 사단마귀와 귀신들과 악의 세력으로 찌들은 가난과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되는 역사들이 나타나길 축원한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바울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교회 안에도 부지기수이다. 오늘 당신이 말씀을 믿고 기도와 명령으로 선전포고를 했음에도 아무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신의 믿음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의 믿음 같은 믿음, 영적인 권세가 약하고, 기도능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총소리가 아무리 커도 참새 한 마리 잡지 못한다면 그 총은 있으나마나이다. 시계 배터리가 약해지면 시계에서 ‘재깍 재깍’ 소리는 나지만 초침이 ‘한 번은 앞으로, 한 번은 뒤로’ 왔다갔다 제자리걸음이 되듯, 당신의 영적 권세가 없는 선전포고, 영적 능력이 없는 선전포고는 허수아비를 올라타고 비웃는 참새들처럼 사단마귀와 귀신들이 비웃는다. 질병치료를 기도하고 문제해결을 놓고 기도해도 문제들이 꼼짝달싹 안한다.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만 얹어도 질병들이 떠나고 한 길로 왔던 귀신들이 일곱 길로 줄행랑치듯,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하라!”(O Sun, stand still at Gibeon. And O, You moon, in the valley of Ajalon!; 수 10: 14)고 여호수아가 명령하자 저 하늘에서 해와 달이 운행을 멈추어 서듯, 그리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휘둘러 요단강물을 내리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십니까?”(왕하 2: 14) 외치자마자 흘러가던 요단강이 놀래 갈라지면서 위로 역류하고 아래로 빨려가 대로가 생기듯, “바람아 잠잠 하라, 파도야 고요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에 노도하던 광풍과 파도가 고요 잠잠해 졌듯, 우리의 선전포고의 말씀과 명령에 자연계가 복종하고, 영계가 복종하며, 물질세계가 순종하는 기적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4. 하나님의 전신갑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차군단 독일은 세계축구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삼바축구 브라질을 7: 0으로 격파했다. 이것은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사건이며 세계축구사의 최대이변이었다. 독일 팀은 월드컵 훈련 때, 선수들의 무릎과 어깨에 센서를 부착해 동작을 분석하고(SAP Match Insight Program-매치 인사이트 프로그램) 여기에 근거해 전술을 짰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전략 준비에도 상대 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가 동원됐다. 이렇게 과학으로 무장하고 준비한 독일 전차군단은 삼바축구의 천적 브라질을 7: 0의 골 폭풍으로 침몰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승승장구하여 2014년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독일과 민족적 사촌 간인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 할 감독은 8강전에서 연장전 종료 직전에 Penalty Kick 승부차기에 승부를 걸기 위해 지금까지 잘 싸웠던 골키퍼를 바꿨다. 그러자 축구전문가들부터 해설위원 그리고 응원 팀까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과적으로 교체 투입된 골키퍼 팀 크릴은 승부차기에서 코스타리카 선수의 슛을 두 개를 막아 팀을 준결승전에 올려놨는데 이 작전은 골키퍼 전담코치 프란스 훅이 준비한 것이다. 프란스 훅은 상대팀 선수들이 페널티 킥 때 주로 어느 방향으로 공을 차는지를 분석해 놓은 기록에 따라 골키퍼를 그 방향으로 몸을 날리게 한다는 전술이었다.


그날 크릴이 승부차기 전담으로 선택된 것은 그의 사기나 순발력이나 과거성적과는 무관하게 오직 동료 키퍼보다 팔이 길다는 이유에서였다. 팀 크릴은 월드컵에 오기 전, 코치의 사인에 따라 한쪽으로 몸을 날리는 훈련만 7주 동안 했다고 한다. 크릴이 코치의 사인 따라 몸을 던진 쪽과 코스타리카 선수들의 슛 방향은 다섯 번 모두 일치했는데 그 중 두 개를 막아 게임을 이긴 것이다. 전차군단 독일은 과학적 분석기법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축구 강소국 네덜란드는 추측통계(Stochastic; 통계, 확률적인)로 지구촌에 승리의 함성과 박수를 받았다.    


축구경기 하나에도 과학과 추측통계의 전략이 필요하듯 하나님의 기적들이 나타날 수 있는 악과 저주의 세력을 향하고 물질세계를 향한 성도들의 영적인 선전포고에도 영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은 성도들의 전투무장이다.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Put on the full armor of God, that you amy be able to stand against the wiles of the devil)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Take up the full armor of God)”고 말했다(엡 6: 10-13) 선전포고 전에 영적인 무장을 하라는 것이다.


구소련은 막강한 군사력만 믿고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10년 동안 제대로 이기는 전투 한 번 못하고 고전만하다가 퇴각했지만 충분한 전략과 무기로 준비했던 미국은 선전포고 6개월 만에 아프간을, 39일 만에 이라크를 초토화시켰다. 그렇다. 우리의 선전포고와 영적전쟁을 이기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집요한 마귀의 저항을 막고, 사단마귀의 철옹성을 괴멸시키기 위해 성도들이 입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두 종류(2 kinds of armor)가 있다.


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갑주(Defensive armor for protection)다. 방어용 갑주는 ① 구원의 투구(The helmet of salvation: 17상)를 머리에 쓸 것이다. 블레셋의 거인장수 골리앗은 처음에 놋 투구 헬멧을 머리에 쓰고 나왔다가(삼상 17: 5) 싸움 상대가 어린소년임을 보고 놋 투구를 벗었다가 다윗의 물맷돌에 이마를 맞고 죽었다(삼상 17:49) 그렇다. 우리의 영적싸움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은 구원의 투구, 예수를 통한 구원의 확신이다. 지금 죽더라도 천국에 갈 것이란 구원의 확신만이 어떤 마귀의 공격도 막을 수 있다. ② 진리의 허리띠(Loins girt about with truth)를 띠는 것이다(14상) 당시의 의복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 이었다. 그래서 전투를 하려면 먼저 옷을 붙들어 매야 했는데 옷을 붙들어 매는 띠는 진리이다. 메시야가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고, 성실로 몸의 띠를 삼았듯이’(사 11: 5) 진리, 알레떼이아의 허리띠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진실함과 충실함”을 의미한다. 공의와 진실, 성실과 충실은 마귀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두 번째 갑옷이다 ③ 가슴엔 의의 흉배를 붙일 것이다(Having put on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14하) 흉배는 목에서 허벅다리까지 가리는 것으로 창이나 칼에서 가슴과 폐, 신낭(腎囊; Protect the vital organs of the body)과 하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 59: 17에 의하면 의는 ‘예수로 인한 칭의’가 아니라 “올바르고 선한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했다. ④ 복음의 신발(The Gospel of peace-Brazen boots) 놋으로 만든 장화는 돌멩이나 가시로부터 발을 보호한다. 복음의 신을 신는 것은 악의 세력과의 전투에 대항하기 위해 복음으로 준비된 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⑤ 믿음의 방패(The shield of faith)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긴 방패는 활이나 칼의 공격에서 몸을 보호해 준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는 것”은 사단의 공격에서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는 최고의 방어무기이다.


⑵ 대적을 이기고 정복하기 위한 공격용 무기(Offensive armor for conquest)는 성령의 검(The sword of the Spirit)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창 3: 3)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죄로 사단의 유혹에 넘어졌고, 광야에서 예수님은 사단마귀의 공격을 “기록되었으되”(It is written, For it is written; “성경에 기록 됐으되, 성경이 말씀하기를”)로 물리치셨다.


그렇다. 우리가 겁 없이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고 성도들을 참소하며 비웃고 조롱하는 사단마귀에게 담대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용과 뱀의 정사와 정사의 뜻을 실행하는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18종류의 귀신들을 넉넉히 이기는 최선책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마 17: 21, 막 9: 29)는 말씀처럼 기도와 금식뿐이다. 그래서 내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기도와 금식이 있는 한, 나는 우주와 역사 앞에서 담대하게 사단마귀에게 선전포고를 할 수 있고, 사단마귀를 물리치고 정복할 수 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한 그리고 기도와 금식이 있는 한, 당신은 사단의 권세를 괴멸시킬 수 있고, 아시아를 통치하는 자, 유럽과 아프리카를 통치하는 어둠의 세력, 북미와 중남미를 지배하는 어둠의 세상주관자도 이길 수 있으며 모든 문제들을 예수이름으로 해결할 수가 있다.


진실과 성실함의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성도(Loins girt about with truth) 가슴 속은 도덕적으로 올바름과 선함이 가득한 의의 흉배를 붙이는 성도(Breastplate of righteousness) 그 발에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는 성도(Feet shod with the preparation of the gospel of peace) 왼손엔 어떤 상황에서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께 상 받을 것을 기다리는 믿음의 방패를 갖고 있는 성도(The shield of faith) 머리엔 천국의 확신과 감격으로 충만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사는 성도(The helmet of salvation) 오른손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The sword of the Spirit, the Word of God)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성도, 그리고 수시로 기도와 금식으로 무장된 성도, 이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큰 용사가 돼, 가난과 궁핍의 물질세계와 혼돈과 무질서의 정신세계를 붙잡고 있는 원수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모두 쫓아내며 다스리므로 축복을 받고 자유를 누리고, 육체와 영혼을 괴롭히는 저주의 세력에게도 선전포고를 하고 물리쳐 쫓아내므로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그 영혼이 영롱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승리자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지금까지의 당신 삶은 바울의 삶인가? 스게와 아들들의 삶인가? 앞으로의 당신의 삶은 바울의 삶을 살겠는가? 스게와 아들의 삶을 살겠는가?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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