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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3월08일 21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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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방황

시인의 방황

                            백  동흠

하얀 공백 같은 곳에
무수하게 흩어지는 언어들,
파편이 인다.

부수어 지는 아픔보다
단어의 뜻이 상실되는 
아픔이 애태우게 한다.

차라리 하얀 여백이
없었더라면 
몸부림이나마
없었을 것을...

채울래야 
채울 수 없는 공허가
물같이 출렁거린다.


詩作노트
 시간을 하얀 공백이라면
 삶은 그 속에 기록되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가 죽어지는 곳에서의
 언어의 상실을 느껴 보셨는지요
 그것은 존재에 대한 아픔이랍니다.
시신(屍身)같이 무감각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도 감사한 것은 살아있기에
 몸부림치며 방황하는 것이겠지요
 살아 있기에 말입니다..


요즈음은 잘 안되네요.  
 

시도 안 써지고 글도 잘 안 된답니다.
때론 숨이 막히고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이렇게 굳어지고 마는 것인가?
거북이 등같이 쩍쩍 갈라진 땅이 됐는가?
마음이 메마르고 정서가 굳어지고 언어가 죽어지면
 살아 있다하나 죽은 자의 삶이 되겠지요?
아직은 살아 있기에 작은 몸부림을 하나 봅니다.
그저 불쌍이 여겨 주세요! 주님을 부르고 있답니다.
이것도 주의 은혜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동흠 목사(시인/그라나다힐 한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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