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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3월08일 21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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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하는 사람(2)

                 형통하는 사람(2)    시 1: 1-6절        3. 8. 15


며칠 전 한국에서 40대 젊은 여성이 살인과 살인미수, 존속살해, 사기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희대의 엽기 보험 살인의 주범인 44세의 여인은 2011년 5월, 이혼한 전남편에게 제초제농약을 먹여 죽이고 보험금 4억 5000만원을 수령했고, 2년 후인 2013년 1월에는 새로 결혼한 남편을, 그리고 7개월 후인 8월에는 시어머니를 같은 수법으로 죽이고 5억 30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이 여인은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음료수나 음식에 제초제를 조금씩 몰래 타 먹여서 농약 성분이 몸에 들어가 쌓이면서 폐에 염증이 생기게 해 그들이 병원에서 폐렴 치료 중에 숨진 것으로 일을 꾸며 완전범죄 범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자기가 낳은 20(스무)살 친 딸에게도 죽지 않을 정도로 농약을 먹여 병원에 입원케 하므로 병원비보험금까지 수령했다.


형통(亨通)은 사람과 통하는 인통, 시간과 통하는 시통, 물질과 통하는 물통, 사건과 통하는 사통, 하나님과 통하는 신통과 영통인데 이 희대의 엽기 보험 살인마 여인은 눈에 보이는 억대 보험금인 물통(物通)에만 눈이 어두워 전 남편, 현재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를 죽인 연쇄살인과 자기 딸까지 죽이려는 살인미수로 인통(人通)사통(事通) 영통(靈通)이 막혀 쇠고랑을 찬 것이다. 작은 욕심 때문에 인통, 사통, 물통, 시통, 신통이 막히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기를 축원한다.
    
내가 1981년에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교회를 시작하고 심방을 다니다가 도시 여러 곳에 그때까지 남아있던 흑인노예시장을 볼 수 있었는데, 어떤 노예시장은 넓고 둥근 운동장을 한 바퀴 돌듯 원형으로 둥글게 노예막사를 지어놓고 반 평정도 간격으로 칸을 막아 소나 말의 우리처럼 만들어진 것도 있었고, 어떤 노예시장은 옛날 한국시골 5일 장에서 소를 팔기 위해 땅에 박아 놓은 나무 말뚝기둥에 묶어 놓았듯, 넓은 공터운동장에 가로세로 간격을 맞춰 노예들을 묶어 놓기 위해 쇠고랑이 달린 나무말뚝을 박아 놓았던 노예시장도 있었다. 흑인노예들은 아프리카에서 조지아 주 서버나 항구까지 노예선을 타고 왔다가 애틀랜타로 끌려와 노예시장에서 소나 말처럼 백인들에게 팔려갔다고 한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사막과 들판을 헤매다가 100여리 길 도단에서 반가움으로 형들을 만났지만 한 순간에 흉폭한 살인자들로 변한 형들의 배반으로 물 없는 우물에 갇혀 굶어 죽을 뻔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졸지에 사막을 횡단하며 장사하는 미디안 대상들에게 노예로 팔린 요셉은 여러 날에 걸쳐 거칠고 험한 네게브사막 길을 통과해 멀고 먼 이집트까지 낮에는 사막더위로 밤에는 추위로 고생하며 굶주리면서 포승줄에 묶여 짐승처럼 끌려 간 후, 노예시장에 매물로 나갔다가 운 좋게 파라오 시위대장 보디발의 눈에 띄어 그의 종으로 팔려간다. 부자 집 아들로 부족한 것 없이 왕자처럼 살던 요셉이 형들의 인신매매로 하루아침에 타국에서 노예로 팔린 것이다.


모세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약 240여 년 전(요셉의 죽음에서 출애굽까지는 144년이 됐고, 총리생활은 80년, 총리가 되기 전은 13년), 요셉이 보디발 집에 노예로 팔려갔던 것을 상세히 기록하면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 39: 2-3)고 기록했다. 비록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됐고, 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보디발 장군이 야훼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과 야훼하나님이 요셉을 형통케 하시는 것을 보았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가장 비참한 노예생활에서도 형통한 자가 됐고, 인통 사통 물통 시통 신통의 형통한 자로 복을 받아 마침내 이집트제국의 총리가 되고, 총리생활 80년의 축복을 누렸으니 오늘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도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하므로 형통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형통케 하시는 다섯 가지 방법은 ① 수금(囚擒)된 자(아시르: “감옥생활을 하는 자” 또는 “포로생활을 하는 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질병과 가난과 부자유에 포로가 된 채 짓눌림과 고역과 압제에 시달려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을 해방을 받아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시 68: 6) ②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것을 이뤄지게 하신다(대상 22: 11, 왕하 18: 7) ③ 사람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그를 형통케 하여 성공하도록 인도해 주신다(사 48: 15) ④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받들어 높이 들려서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사 53: 13) ⑤ 일의 출발과 시작은 보잘 것 없이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케 하시는 것이다(욥 8: 6-7)


그래서 요셉을 형통케 하셨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You may prosper wherever you go; “네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수 1: 7)라고 약속하시고 가나안 7년 전쟁에서 여호수아가 싸우러 나갈 때마다 그를 형통케 하여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31나라를 모두 격파하고 그 땅을 12지파에게 나눠주었고(수 12; 1- 24)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다윗도 형통하여 욱일승천의 기세로 그의 나라가 점점 강성해 갔으며(시 30: 6, 삼하 5: 10) 그 아들 솔로몬도 형통했고(왕상 3: 13, 4; 1-34, 10: 7) 웃시야(대하 26: 5)와 히스기야(대하 31: 21, 32: 30)도 형통하여 태평성세와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들었으며, 다니엘(단 6: 28)도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케 하시므로 7명의 왕들이 바뀌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서 바사의 고레스까지(BC. 605-530년)  80여 년 동안, 정권과 나라와 국권이 여러 번 바뀌는 소용돌이 중에도 왕들을 보필한 장수총리가 됐고, 예수님(사 53: 10, 렘 23: 4)도 성육신 초림에 십자가처형을 당했지만 재림주로 다시 오실 때는 메시아로 형통하여 세상을 천년 동안 통치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는 형통은 인간생각을 초월하는 기적과 축복들이 있다. 2015 을미년이 주기도문교회와 성도여러분의 형통하는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형통(亨通)하는 사람(2)


지난 주일에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형통케 하실 때, 성도들이 받게 되는 다섯 가지 축복과 성도들의 형통을 방해하는 일곱 가지 원인들을 전했다. 오늘은 형통하는 사람, 두 번째 시리즈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형통하는가?’ ‘형통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7대 비밀’을 함께 나눈다.


   1. 자기장막에서 죄와 불의를 버려야 한다(욥 22: 23-27, 잠 28: 13)


1728년(영조 4년)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시도한 반란이 있었다. 이인좌가 무신년에 일으킨 반란이라 하여 무신란(戊申亂) 또는 이인좌의 난으로 불리는 이 반란에서 이인좌 일당이 실패하자, 1735년 영조는 이인좌 반란에 동조했던 충청도를 공홍도(公洪道)로, 전라도를 전광도(全光道)로, 강원도를 강춘도(江春道)로 바꿔 부르라는 교지를 내린다. 그리고 7년 전 이인좌의 난 때, 가담자들이 나왔던 청주와 충주, 나주, 원주도 이름을 바꿔 목에서 현으로 강등하면서 충청도와 전라도와 강원도까지 강등하여 부르게 한 것이다.


이후 삼도는 다시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로 이름을 되찾았지만 정조가 왕이 되자마자 분이 안 풀렸는지 이인좌가 태어난 청주를 서원현으로 강등하고 충청도는 공충도(公忠道)로 다시 강등한다. 이렇게 이조시대엔 대역 죄인이 나온 고을을 징벌적으로 강등개명을 했는데 그 중에도 특히 충청도는 공홍도(公洪道), 공충도(公忠道) 외에 청공도(淸公道), 홍충도(洪忠道), 충홍도(忠洪道)란 불명예스런 이름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군주의 심기를 건드린 괘씸죄로 이름이 바뀐 고을 주민들이 당한 크고 작은 불이익도 대단했다. 그 여파로 생긴 것은 아니겠지만 선거철마다 충청도를 ‘멍청도’로 부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20대 젊은 날을 7년 동안 충청도에서 목회를 해, 충청도가 고향 같은 나는 작은 울분과 불쾌감을 느끼곤 한다. 


괘씸하다고 충청도를 공홍도에서 충홍도 멍청도까지 강등해 부르듯, 1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승객 300여명이 사망하고 실종하는 대형 참사 문제해결책으로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위기순간에 배 앞에까지 가서 승객 구하는 일을 수수방관했던 해경을 강등보다 더 심한 ‘해경해체’라는 강경발언으로 민심을 달래보려고 했고, 꼬리 무는 병영가혹행위와 성폭행만행을 뿌리 뽑겠다며 극약처방으로 육군참모총장은 ‘부대해체’까지 부르짖었지만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므로 지금까지 앵돌아진 민심을 달래지 못했고 상처받은 민심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듯이, 인간의 죄나 불의는 죄지은 사람 이름을 강등해 부르거나 그 사람의 직급이나 지위를 낮추거나 그가 죄 값으로 징계와 어려움을 당하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의 죄나 불의는 그 죄와 불의를 회개하고 버릴 때 보혈의 능력으로 용서해주시는 예수 이름과 십자가보혈 외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 장막에서 죄를 예수께 회개한 후 불의를 멀리 버려야 용서를 받고, 죄 용서를 받고 불의가 사함을 받을 때, 비로써 하나님은 그런 성도를 형통케 하신다.“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He who conceals his transgressions will not prosper)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란 잠언의 말씀과 “If you return to the Almighty, you shall be built up! If you remove unrighteous far from your tent, you shall be prosper!”(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는 욥기의 말씀대로 죄와 불의를 장막에서 멀리 버리므로 다시 흥하고, 다시 회복되는 형통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2. 중단 없는 기도생활이다(단 6: 28)


Where is the 12th man?(열두 번째 사람은 어디 있나요?) 8년 전,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와 노리치 시티 결승전 하프타임 때에 스포츠 중계방송 마이크에서 흘러나온 한 여인의 말이다. 노리치 시티의 구단주 델리아 스미스가“열두 번째 사람은 어디 있나요? 그들은 다 어디 있나요?”라며 흐느끼듯 울먹이며 이 방송을 내 보낼 때, 청중들은 숙연해졌다. 전반전 강호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팀이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며 졸전을 벌이는 걸 보다 못해 델리아 스미스가 하프타임 도중 마이크를 잡은 것인데, 스미스 구단주는 관중들의 응원열기가 부족해 선수들이 제대로 뛰지 못하고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응원을 요청한 것이다.


“12번째 사나이들이여, 제발 힘 좀 보태주세요!” 그녀의 애절한 읍소가 먹혀들었는지 후반전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팬들의 응원함성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고 응원에 힘을 얻은 선수들은 펄펄 날았다. 그렇게 전반전에 몇 꼴을 먹어 패색이 짙었던 노리치 시티는 팬들의 열화 같은 응원함성에 힘입어 끝내 기적을 만들고 맨체스터 시티를 이겼는데 그 경기는 그해 프리미어리그 최대 이변으로 꼽혔던 경기가 됐다. 그리고 언론마다 ‘스미스의 눈물’을 앞 다퉈 보도하는 바람에 스미스 구단주는 ‘12번째 여인’이라는 찬사와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2번째 사나이’는 100년 전, 미식축구 Football팀인 텍사스 A & M 대학이 처음으로 사용한 후(지금도 이 대학 스타디움 관중석엔 12번째 사나이란 사인이 크게 걸려있다) 미국 Football팀과 전 세계 Soccer팀 응원자들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는데(영국의 훌리건과 한국의 붉은 악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잘 아는 대로 ‘12번째 사나이’의 존재감은 홈팀에게는 사기진작에 둘도 없는 보약효과가 있고, 원정팀에는 심한 부담감을 주는 쥐약효과가 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낳는다. 선수들뿐 아니라 심판들까지도 영향을 받는데, 작년 브라질월드컵 개막전에서 일본 주심이 응원팀함성에 주눅이 들어 브라질에게 페널티 킥을 안겨 주어 득점케 할 정도로 원정팀에 불리한 휘슬을 불 확률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 명문 팀은 등번호 12번을 영구결번(Retired number)으로 은퇴를 시켰기 때문에 유럽이나 남미 프로리그에선 등번호 12번을 단 선수들이 없다. 축구황제 펠레나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도 등번호가 10이다. 그래서 게임이 열리는 날엔 12번을 단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응원석에 앉아 있던 팬들은 홈팀이 공격모드에 돌입하면 함성을 질러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하버드대학은 지난 10년 동안,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정밀 분석한 결과 홈팀의 관중은 1만 명당 0.1골을 득점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연구발표를 했다. 그만큼 벤치에 앉아있는 홈팀의 응원단, ‘12번째 사나이’의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의 12번째 사나이, 홈팀응원단은 그 무엇보다도 “기도(祈禱)”이다. 10대 소년 다니엘은 80여 년간 낮 설고 물설며 언어와 풍습과 종교마저 생소한 이방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기도 하나로 형통의 사람으로 살았다. 그렇다. 기도는 경기장을 종횡무진하며 달리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서포터(Supporter: “지지자, 응원자, 원조자”)처럼 사단마귀와 죄와 저주, 유혹과 시험이 많은 험한 세상에서 당신을 응원하는 최대의 힘이다. 다니엘의 불굴의 기도가 왕이 바뀌고 권력이 바뀌며 나라와 국가체제가 바뀌고 사람들까지 바뀌었어도 80년 동안 그의 형통을 견고케 했듯, 당신의 기도가 당신의 형통을 든든히 붙잡아 주는 축복의 도구가 되길 축원한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 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 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 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 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 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 하십니까?

엘리사가 기도할 때, 그의 종은 불 말과 불 병거의 천군천사가 자기들을 호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왕하 6: 17)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천군천사들이 그의 기도를 도왔다(눅 22: 43) 다니엘이 기도할 때 가브리엘 천사가 기도응답을 가지고 그를 찾아왔다(단 10: 10-14) 고넬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천사를 그에게 보내주셨다(행 10: 4) 사도요한이 기도할 때 여러 천사가 그를 찾아왔다. 무관미말의 부족한 목사인 김목사도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여러 번 천사들을 보내 나를 위로하셨고 내게 큰 힘을 주셨던 체험이 있다. 그렇다. 우리의 기도는 경기장 밖의 ‘12번째 사나이’인 우리의 응원자,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신 천사들(히 1: 14)을 불러오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그래서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않겠다”(As for me, far be it from me that I shouls sin against the Lord by ceasing to pray for you; 삼상 12; 23)고 선언하며 기도하는 것을 쉬는 것, 기도중단을 죄라고 했다.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는, 중단 없는 기도생활로 중단 없는 형통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3. 하나님께 묻고 행하라(삿 18: 5)


본문은 사사시대까지 아모리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압력으로 여호수아에게 분배받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거주지가 없이 떠돌아다니던 단 지파 사람들이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서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을 만나자 “우리를 위하여 야훼하나님께 물어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고 의뢰하는 말씀이다. 단 지파는 요나단의 지시를 따라 라이스를 처서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촌과 성읍을 건설하고 요나단을 제사장 삼고 단 지파 부족국가를 세운다.


성도들의 형통하는 세 번째 비밀은 매사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가르쳐주는 주의 종을 신뢰하는 것이다. 사울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 나섰다가 찾지 못해 당황할 때, 머슴꾼사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찾아가 길을 묻다가 잃었던 암나귀도 찾고 예상치도 않게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축복을 받았고,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무당에게 물었다가 전사로 인생을 끝냈으며, 다윗은 사건을 당할 때마다 매사에 하나님께 묻고 그 응답에 순종하고 따르므로 형통하는 축복을 받았고,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과 마온 군사들이 연합군을 편성하고 침공하자, 백성들과 구국기도회를 하는 중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람 야하시엘을 통해 전쟁방법을 예언해줄 때, 백성들에게 “야훼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Believe in-Put your trust in-the Lord your God, and you shall be established. Believe His prophet, so you shall prosper; 대하 20: 20)를 선포하며 전쟁을 시작하므로 대승리를 거두고 엄청난 전리품을 거두는 축복을 받았다.


그렇다. 여러분이 어렵고 힘든 문제를 만날 때, 철야기도로 금식기도로 작정기도로 서원기도로 하나님께 물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들과 의논하고 기도를 부탁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응답해주시기도 하고 주의 종을 통해서 기도의 응답을 주실 것인데, 그때 그 응답을 따라 순종하면 형통하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라(렘 22: 16)


선지자 예레미야는 부왕 요시야가 선정을 베풀어 백성 중에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므로 형통했던 것을 설명하면서, 자기도취에 빠져서 불의와 부정으로 타락하고 무임노동으로 백성들을 착취하고 괴롭힌 젊은 독재자인 그의 아들 여호야김을 향하여 “네가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Do you become a king because you are competing in sedar?; 렘 22: 15)고 책망했다. 그렇다. 요시야 왕이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해주므로 형통한 왕이 됐듯, 오늘도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해주는 성도를 형통케 하신다. 성경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주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실 것이라”(잠 19: 17)고 했다. 주일헌금 십일조 감사헌금 외에 가난한 자, 궁핍한 자, 연약한 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불쌍히 여길 선교헌금과 구제헌금을 드림으로 야훼하나님이 선행을 갚아주는 형통의 축복을 받길 축원한다.


   5.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전능자에게 빌고, 청결하고 정직하라


성경 욥기 8: 5-6에서 빌닷은 If you would seek to God betimes(네가 만일 하나님을 일찍 일어나 찾고 구하면-네가 만일 새벽기도로 나를 열심히 찾고 구하면) And make your supplication to the Almighty(네가 전능하신 자에게 애원하며 탄원하면) If you are pure and upright(네가 만일 청결하고 똑바로 서서 정직하면) 여호와께서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God would awake for him and make him prosperous again)라고 했다.


그렇다. 날마다 새벽을 깨우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애원하고 탄원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돌아보시고 형통케 하실 것이다. 당신의 새벽기도가 성도들에게 보이고 하나님께 눈도장이나 찍는 의무적 기도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원통함과 사무쳐 끓어오르는 격동을 하나님께 고백한 한나의 기도(삼상 1: 16)와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던 외로운 여인이 불의한 재판관에게 원한에 사무쳐 부르짖었던 과부의 기도(눅 18: 7)와 닫힌 빵집 문을 두드려 빵집주인을 깨웠던 친구의 부르짖는 기도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홍해를 갈라놓은 모세의 기도가 되므로 새벽기도로 형통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그리고 당신의 삶이 청결하고 정직하므로 정결하고 깨끗함을 축복하시는 야훼하나님과 정직하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자녀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형통케 해주시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6. 예루살렘을 사랑하라(시 122: 6)


성군 다윗은 시 122: 6에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Pray for the peace of Jerusalem)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May they prosper who love Jerusalem-They shall prosper who love you, Jerusalem”고 선포했다. 그렇다. 성도들이 인통, 사통, 물통, 시통, 신통영통의 형통의 축복을 받는 비밀 중에 하나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에 815번이나 언급되고 현재 예루살렘(810회), 여부스, 시온(152회), 다윗 성, 하나님의 성(시 46: 4) 아리엘(사 29: 1) 거룩한 성, 오홀리바(A-holi-bah: 겔 23: 4)등 18가지 이름으로 호칭되는 예루살렘(Jerusalem) 그리고 장차미래에 의의 성읍(The city of righteous; 사 1: 26) 신실한 고을(The faithful city; 사 1: 26) 여호와의 성읍(The city of the Lord; 사 60: 14)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The Zion of the Holy One of Israel; 사 60: 14)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헵시바(Hephzibah, My delight is in her; 사 62: 4) 찾은바 된 자(Sought one; 사 62: 12) 버림받지 않은 성읍(A city not forsaken; 사 62: 12) 야훼가 거기 계신 성, 여호와 삼마(The Lord is there, Adonai-Shammah; 겔 48: 35) 진리의 성읍(A city of truth; 슥 8: 3) 만군의 여호와의 산(The mountain of the Lord of hosts; 슥 8: 3) 성산(The holy mountain; 슥 8: 3)등 14가지 이름(14 future names of Jerusalem)으로 불려 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형통할 것이란 말씀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⑴ 구약적인 의미이다. 시 122편을 노래했던 다윗 당시에 예루살렘은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궤가 모셔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질 거룩한 장소였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장소 중에서 하나님이 선택하므로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리며 백성들이 공의로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왕의 보좌가 있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할 것이란 구약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할 것이란 말씀이다.
 
   ⑵ 신약적인 의미이다. 성경시대에 예수님이 비록 예루살렘을 장악한 산헤드린 공회와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의 모함으로 재판을 받아 십자가처형을 당하셨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께 “내 집”(My House; 막 11: 17)이면서 “내 아버지 집인 하나님의 집”(눅 2: 49, 요 2: 16)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을 성전숙정으로 시작하셨고, 공생애 마지막도 성전숙정으로 끝내셨으며, 장차 지상에 재림하실 때도 지상성전을 대청소하시는 것으로 세상심판을 시작하실 것이다(렘 25: 29, 겔 9: 4, 말 3; 1-6, 벧전 4: 17-18)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다”(마 23: 37, 눅 13: 34)며 통곡하시면서 운명하실 정도로 예수님의 최대관심은 당신의 몸이신 교회와 성전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신약적인 의미도 교회와 성전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 성전을 사랑하는 성도, 에배를 사랑하는 성도는 형통의 축복을 받는다.


   ⑶ 종말적인 의미이다. 인류의 마지막 심판재앙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시작되고 예수님의 천년왕국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다. 장차 용과 사단마귀에게 전권을 위임받을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환난성전에 자기우상을 세워 우상숭배를 강요하면서 그것을 반대하는 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을 말살하는 Holocaust(대학살)정책으로 마지막 ‘후 삼년 반환난’이 시작된다. 그리고 칠년 대환난이 끝나고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여 주님의 나라를 시작할 때, 다시 세워질 예루살렘 천년왕국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물로 전 세계를 살려 에덴동산이 되게 하고, 예루살렘은 지구촌의 Headquarter, Capital City가 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할 것이란 종말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가 형통할 것이란 의미이다. 주님의 다시 오시는 휴거와 천년왕국을 예비하는 성도로 형통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7.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성경은 ⑴ 여호와의 말씀과 명령인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지키는 자가 형통하고(신 29; 9, 수 1; 7-8, 왕상 2: 3, 대상 22; 13) ⑵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가 형통한다(시 128: 1-2)고 했으며 ⑶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몰랐던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다(대하 26: 5)고 했으며 ⑷ 오늘 본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서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In whatever he does, he prospers; 시 1: 2-3절)고 했다. 그렇다. 복 있는 사람, 인통 사통 물통 시통 영통의 형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랑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다.


2012년 1월 13일, 내가 뉴저지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때에 어느 성도가 신비체험으로 입신을 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다이아몬드로 지은 집에 벽마다 성경구절로 Decoration(장식)된 나의 천국 집을 본 후, 예수님이 “너는 돌아가서 나의 종, 김 엘리야목사에게 지금까지도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앞으로 더 많이 읽고 특별히 계시록을 더 많이 읽으면 이제까지 깨닫지 못한 많은 비밀을 알려줄 것이라고 전해라”는 간증을 전해들은 그날, 2012년 1월 13일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약 125독 신약 190독 그리고 계시록을 1150독을 읽을 수 있었데, 그 3년 동안에 내가 받은 하나님의 축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많고 귀한 축복이었다. 이 축복들은 무르익은 과일을 따 먹는 것 같은 축복으로 나의 50여 년 목회생활 중 가장 귀한 축복들로 기억되는데, 이 말씀도전(挑戰)은 내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든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든지 내가 우리 주님을 먼저 만나는 날까지 계속할 것이다. 말씀을 사랑하므로 받는 이 풍성한 영적축복이 나 뿐 만아니라 워싱턴의 500여개 교회 목사들과 미국과 캐나다 5000여 교회 목사들 그리고 지구촌 모든 주의 종들에게 임하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시성(詩聖) 다윗은 시 19: 7-10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달다”고 노래했고, 말씀을 통해 자기가 받은 5가지 축복을 ① “내가 이것들로 경계를 받고 이 말씀을 지킴으로 상이 크다”(11절) ② 말씀을 통해 자신의 허물(Error, Fault, 쉐기아: “무의식적인 범죄”, “모르고 짓는 죄”)을 깨닫고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는 축복을 받으며(12절) ③ 자신으로 고범죄(Presumptuous sin: “가정적인 조, 추정적인 죄”, 제딤: “교만으로 짓는 죄. 무례하고 완악한 죄”)를 짓지 않게 하고 그 죄가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는 축복을 받고(13상) ④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The great transgression, 폐솨: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에 대한 반역”)에서 벗어나는 축복을 받으며(13하) 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열납(悅納)되는 축복, 기도가 응답되는 축복을 받았다(14절)고 노래했다.


이보다 더 큰 축복, 이보다 더 멋있는 형통, 이보다 더 뛰어난 축복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며 밤낮으로 읽고 묵상하는 자만 이러한 만사가 형통하는 축복을 받는다. 묵상(Meditates: “생각하다, 명상하다, 심사숙고하다”)한다는 말의 히브리어 하가는 묵상하다는 뜻 외에 “말하다, 속삭이다”란 뜻이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조용히 암송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하지만 현재 나는 신약성경 27권 260장의 내용을 눈을 감고 장들의 내용을 대략 더듬어 내려갈 정도(막히는 곳도 있다)이고 구약 39권의 929장은 아직도 기억하는 장보다는 기억이 안 되는 장이 많을 정도로 까마득한 상태이다. 그렇더라도 말씀을 사랑하고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 함께 복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므로 많이 읽고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한다. 2015년이 성경을 사랑하는 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는 해가 되므로 인통 사통 물통 시통 영통신통의 형통의 해가 돼, 일생 중 가장 행복한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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