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이름다운 마음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4월 30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금옥칼럼
2015년02월27일 15시01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배려의 이름다운 마음
배려(配慮)의 아름다운 마음
 
한국의 음식은 외국인들에게도 불고기, 김치, 잡채 등 이제는 익숙한 이름들이 많고 좋아하는 분들도 많다. 최근에 뉴욕북부 오너스헤븐이라는 곳에서 필자와 몇몇 목회자들이 휴식 겸 수양회를 잘 마치고 돌아 왔는데 미국식 식사인데도 한국의 김치를 주어 반가웠다. 한국음식 김치는 이제는 이태리나 멕시코 음식같이 흔한 음식이 되었다.
 
한국의 음식문화 중에 죽(粥)에 대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 한국에서는 오랜 질병, 감기나 열병 등 몹시 앓다가 회복되면 어른들이 원기회복을 위해 미음 같은 죽부터 먹도록 배려해 주고 죽을 끓여 준다. 아마 독자들도 병을 앓고 난 뒤 어머니나 할머니가 끓여 준 죽을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 가족들도 엄마가 끓여준 끓여 준 죽을 먹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식 죽은 미국식 죽과 달라서 끓이는 과정이나 끓인 후에도 정성이 들어간다. 우리는 죽을 물김치와 같이 먹는다. 죽도 종류가 많다. 필자가 아는 죽의 이름은 호박죽, 전복죽, 감자죽, 옥수수죽, 팥죽 등 몇 개 안되지만 종류가 다양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으나 본인도 저의 친지들이 정성껏 끓인 죽을 대접받은 몇 번의 경험이 있다. 죽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끓인 그분들의 정성과 이웃 생각하는 배려하는 마음 caring mind을 생각하면서 그때 받았던 느낌을 나누고자 한다. 잊지 못할 귀한 경험이었음을 고백한다.
 
첫 번째 죽 이야기
오래 전 목회자가 되기 전 주님에게서 금식15일을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나 명령에 순종하여 15간의 금식을 잘 이행했다. 주님께서 도와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주님의 은혜로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금식을 끝냈다. 교회의 한 권사님이 제가 금식이 끝나는 날 죽을 끓여 오셨다. 금식 마지막 날은 교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는데 그 시간 그분은 정성껏 담근 물김치와 죽을 끓이고 천에 받쳐 죽을 내려서 미음 같이 엷은 죽을 가지고 금식이 끝나는 오후 시간 2:30에 맞춰 택시를 타고 교회로 오셨었다. 옆에 앉아 죽과 물김치를 먹으라고 상을 차려주고 지켜봐 주었었다. 30여 년 전의 일이나 아직도 조금 전에 일어난 것 같이 그분의 얼굴과 손에 수저를 쥐어주던 그분의 모습이 생생하다.
 
두번째 죽 이야기
몇 주 전에 제가 심한 감기로 음식을 잘 먹지 못할 때였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잠시 일을 보고 자려고 누웠는데 누군가가 카톡을 보냈다. 나중에 열어보려다가 일어나서 열어보니, 어느 여성 목사님 한 분이 지금 문 밖에 죽을 놓고 왔는데 들고 들어와서 식기 전에 드시라고 한 문자였다.시간이 새벽 4시였다. 죽이 따끈한 것을 보니 새벽부터 죽을 끓이고 고구마를 구워 더글라스톤에서 몸소 가지고 왔는데 거실 불이 꺼진 것을 보고 제가 잔다고 생각하고 놓고 간 것이었다. 사실 그 시간에 저는 제 공부방에 있었다. 얼른 전화를 해서 돌아오시라고 했더니 지금 이미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팥죽과 호박죽, 구운 고구마와 다른 몇 가지가 보따리 안에 있었다. 물론 따끈따끈했고... 잠도 자지 않고 새벽 내내 죽을 끓여서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도 그 새벽에 가지고 오신 것 이었다. 금년 2월 뉴욕의 날씨가 좀 추웠는가? 당연히 보따리를 풀고 따끈한 팥죽과 군고구마부터 먹었다.
 
세번 째 죽이야기
저에게 상담오시는 믿음 좋은 분이 있다. 며칠 전에 그 분이 내가 기침하는 것을 보고는 죽을 끓여오겠다고 해서 괜찮다고 했는데 다음날 죽을 끓여 오셨다. 채에 받친 듯 호박죽과 새알을 만들어 끓여왔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팠을 때, 며칠 전에 금식을 끝낸 담임목사님에게도 호박죽을 끓여드린 그 호박죽이라는 죽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 동안 그 분의 죽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 걱정과 보살핌, care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몸이 불편하고 아플 때는 누군가가 옆에 같이 있어 주고 먹거리도 준비해서 주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이것이 모두 관심과 배려, 걱정해주는 마음 때문이다. 죽(粥)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누군가를 위하여 정성들여 죽을 끓인다는 것은 한국인들 만이 가지고 있는 정성이고 누군가를 걱정하고 돌보아주고자 하는 사려 깊은 마음, 사랑이다.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의 민족들도 우리같이 누가 아플 때, 병에서 회복할 때 죽을 써준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다 
 
그 마음에는 보살피는 마음, 사랑이 있기에 죽을 끓이고, 물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저에게 그랬던 것 같이 추운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에 죽을 끓여 본인에게 먹도록 하기 위하여 달려오는 것이다. 재료준비하고 호박죽과 팥죽 두 가지 죽을 끓이고 고구마를 굽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보살핌이 아니겠는가? 호박이나 팥이 그냥 냄비 속에 들어가고 물을 붓는다고 다 죽이 되는 것은 아니고, 시간을 보고 흘러 넘치지 않도록 젓고,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죽이 쏟아지지 않도록 잘 닫고 넣어야 한다. 그 목사님은 저에게 죽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밤에 끓였는데 초저녁에 해놓고 잠을 자다 온 것이 아닌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죽을 끓여 아침의 여명이 얼마 안 남은 그 시간, 가장 춥다는 새벽 4시에 가져온 것이 아닌가? 그리고 새벽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본인은 그것이 병자에 대한 목회자의 사랑, 배려와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단연히 말할 수 있다. 아마 이 목사님은 다른 분들에게도 저에게 한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다른 분들에게도 사랑과 배려, 즉 생각하는 마음을 쏟았을 것이다. 
 
주님을 구세주로 믿고 사는 크리스천들이나 다른 모든 분들은 위의 죽을 끓인 세 분과 같은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caring mind 를 가져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세상이 악하고 문제들이 너무 많아 미움만 있다고 느껴질 때는 이런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 필요하다. 주님께서 남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베풀라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다른 이웃들에 대한 배려와 큰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있다. 한 소년과 우리 주 예수님이다. 
따가운 햇빛과 풀, 바위와 흙 밖에 없는 빈들에서 주님께서 소년에게서 받은 물고기 다섯 개와 빵 두 덩어리로 아이들과 여자, 남자 등 2 만여 명의 수많은 사람을 먹인 이야기인 오병이어의 스토리는 기독교인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아는 어려서부터 들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스토리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사복음서에 실렸다. 얼마나 중요했으면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겠는가? 그만큼 누구나 다 알고 실천해야 하는 귀중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선교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12제자를 데리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산으로 가시니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는데 유월절이 가까웠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순례 온 유대인들까지 해서 특히 사람들이 더 많았다. 주님이 그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병도 고쳐주셨는데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보며 제자들이 주님에게 걱정을 한 것을 본다. 날이 저물어가는데 이곳은 빈들이어서 먹을 것이 없으니 무리들이 마을과 촌으로 내려가서 먹을 것도 얻고 잠자리도 얻게 해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먹을 것과 잘 곳이 마땅치 않은 빈들에 수많은 사람들 어린이까지 있는 사막의 밤은 춥기 때문에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제자다운 걱정이었다. 재정도 마땅치 않았기에 그 많은 음식을 사 올 수도 없었거니와 혹여 사다가 먹인다고 해도 각자에게 조금씩 만 나눠주어야 했다
 
그랬더니 위의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주님께서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주님이 제자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들의 마음을 시험을 해 본 것이었다. 시골로 전도 나가서 성공적으로 잘하고 온 제자들인데도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전과 같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긍휼의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이 어떻게 이들에게서 일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한 말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을 산밑으로 내려 보내 음식을 사서 먹게 하고 잘 곳도 찾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들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아이들도 있고 부인들과 병자, 노약자들까지 있었을 터인데 제자들은 그들에 대한 깊은 배려가 없었던 것 같다. 주님은 그들의 배려하는 마음을 보고 싶었는데….
 
그들의 대답은 돈이 없다는 말과 돈이 있어 음식을 산다고해도 다 먹일 수 없다는 것과 먹어도 조금 밖에 먹일 수 없다는 실망스런 대답이었다. 아무도 자기에게 남은 것을 내놓지 않는 때에 한 소년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고기 2개와 5개의 빵을 주님에게 드렸다. 그 소년은 아낌 없이 주님에게 자기에게 있던 것을 몽땅 주님께 드렸다 이것은 하루 종일 하늘나라 이야기를 하고 병 고칠 자들을 고쳐주신 주님을 보고 주님에 대한 감사와 당신도 배고프고 피곤하셨을 것이라는 배
려를 한 소년의 마음, 자기가 먹을 것을 포기한 것이다.
 
그 후, 주님을 따라 올라와 하루 종일 주님의 말씀을 들은, 배가 고파진 무리들이 충분히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도록 충분히 먹은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스토리이다.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 빵과 고기를 축사하시고 앉은 무리들에게 떼어 먹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 소년에게서 본 것은 긍휼과 사랑과 배려이다. 주님의 배고 고파진 무리들에게 대한 염려, 소년의 종일 말씀하시고 병 고쳐 주신 주님에 대한 배려가 이런 기적을 낳은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따라 산으로 와서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저녁이 되었는데도 돌아갈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안타까웠다. 주님의 그 마음에는 사랑과 연민, 긍휼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주님의 말과는 반대로 그들을 마을로 보내 음식과 잘 곳을 그들 스스로가 해결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배려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을을 가기 위해 그곳을 떠나 배를 타야 하고, 인가가 있는 마을까지는 호수를 지나야 했었다. 본인이 이스라엘 여행에서 갈릴리 호수를 지나 건너편에 있는 빈들이라는 산을 보았기에 안다. 그 호수는 갑자기 광풍이 분다고 하는데 그곳의 지형을 아는 손바닥같이 아는 제자들이 그런 말을 했다면 배려 없는 마음 때문이다.
배려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이 있고 그분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분들은 친절하고 몸소 남들에게 배려와 친절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들이다. 마음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주님의 말과는 다르다. 만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유아원 직원들이었다면 한국의 충격적인 어린이 폭력은 없었을 것이다.
 
죽을 끓여다 준 몇몇 분을 생각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생각했다. 요새같이 섭씨영하 -20, 30도를 오르내리는 기록적인 이상한 뉴욕 추위에 외롭거나, 떨고 있거나, 아프신 분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독자들이 그들을 찾아보고 이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주는 여러분이 되기 바라는 것은 본인도 그런 배려를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행동을 보고 100배로 갚아주실 것은 확실하다. 


김금옥 목사(에버그린장로교회 담임/정신신경과 전문의)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김금옥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82881310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금옥칼럼
다음기사 : 사순절에 붙여 (2015-03-18 09:04:30)
이전기사 : 어린이는 보호와 안전이 보장되어야 (2015-01-20 07:43:29)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