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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2월27일 14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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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일념
내 직무실에는 목양일념이라는 글씨가 표구되어 있다. 전 총신대 총장이었던 정성구박사의 글이다. 오직 양들을 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목회자들에게 주는 일침의 말씀이다. 

목회자가 목양일념을 하지 못해 생기는 부작용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왜 목회자들은 오직 양들을 치는데 일념을 하지 못할까? “내양을 치라”(요21:16)는 주님의 부탁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목회자들은 따른 것들에 기웃대기가 일 수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딴짓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선 그 유혹은 전통적으로 항상 그러했듯이, 돈, 이성, 명예로부터 온다. 종래 목회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에서 출발하지만, 대체로 가난과 불완전한 기반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종교적으로 충족되지 못하는 보상심리는 자연 다른 목표를 찾게 한다. 목회자가 돈, 이성, 명예를 찾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유혹들은 가치관의 혼란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미 성취한 목표 위에 더 많은 풍족을 요구할 때발생하는 욕망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이 욕망을 부채질하는 것은 목회자 자신으로부터의 탐욕만은 아니다. 성도들의 목회자들에 대한 과대한 요구가 욕망의 길을 터 놓는다. 대체로 성도들은 목회자가 더 많은 재주를 가지기를 바란다. 목회를 위해 오직 공부를 십 년을 준비해도 빠듯한 이들에게 세상 경험까지 요구한다. 그리고 물론 다양한 경영능력과 탁월한 언변 및 미모도 요구한다. 한 사람이 다 가지기에는 정말 버거운 정도의 짐을 자기 목회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필요충족의 순리를 따라 쓸데없는 학위나, 목회테크닉을 위해 쉽게 쓸 수 있는 잔재주를 배우는 데에 올인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유혹이 목회자들의 노년을 노린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걱정이다. 혹이라도 자식들이 자리를 잡았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더욱 불행해 진다. 생사의 문제는 신앙의 기본이지만, 당장 교회 밖에 나간다면, 목회자는 벌거벗은 몸으로 추운 겨울 거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이런 형편에서 예외인 목회자는 몇 안 된다. 이 때문에 자식에게는 가난을 되물림 해 주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세습을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소명이 너무 귀해 자식에게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부모로부터 곁눈질을 하면서 배운 세습무당은 내림굿을 통해 귀신이 직접 들어가 역사하는 강신당무에 비해 훨씬 덜 영험하다. 잔재주만 배운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무당 이야기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호환 목사(워싱톤 이반젤리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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