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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2월07일 16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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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기적치유의 삼중 비밀

        예수 기적치유의 삼중 비밀     마 9: 27-34       2. 8. 15


2002년 막내 딸 대학졸업식 참석차 미국의 서부를 대륙횡단을 했을 때, 메릴랜드에서 고속도로 70번과 76번을 타고 북쪽으로 가서 80번으로 달리다가 94번을 갈아탄 후, 노드 다코타(North Dakota)에서 85번 하이웨이를 타고 내려와 러시 모어 산을 둘러보고, 다시 90번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몬태나(Montana)주에서 15번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돌아보고 라스베이거스를 통과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사흘 동안, 월드컵 축구 한국 게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시청하면서 하루 평균 1100-1300마일을 달렸고, 5일 동안에 볼일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올 때는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국경을 넘어 들어가 멕시코 태평양 연안도시 티화나에서 동부 멕시코 만 끝자락도시 몬테레이(Monterrey)까지 멕시코 대륙을 횡단한 후, 고속도로 35번을 타고 북행해서 국경세관이 있는 텍사스 라레도(Laredo)로 들어와 샌안토니오를 통과해 대각선으로 워싱턴까지 질주한 3-4일 간의 대장정이었다.


40년 전 내가 처음으로 밟은 고향 같은 땅이고, 우리가족이 10여년을 살아서 정이 들어서겠지만, 동부 생활 30년 동안에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여섯 번이나 왕복할 때마다 캘리포니아는 언제나 내게 어머니 품과 같이 아늑하고 매력 있는 땅으로 다가온다. 맑고 시원한 태양과 바다, 산과 계곡, 언제라도 부담 없이 달려 나갈 수 있는 연중무휴의 좋은 날씨와 볼거리가 각처에 산재해 있는 땅, 그래서 캘리포니아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땅이다.


1542년 스페인 탐험가 후안 카브리요가 샌디에이고만을 탐험한 후,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멕시코 령이 됐고, 184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멕시코가 패전하면서 미국에 편입돼, 1850년 미국의 31번째 주가 된 캘리포니아는 텍사스, 뉴욕, 플로리다와 함께 미국 50개주 중 수퍼 파워 4개 주로 꼽힌다. 캘리포니아는 여러 면에서 압도적이다. 면적(面積)은 남북한을 합친 것의 2배 이상으로 알래스카, 텍사스에 이어 3번째이고, 경제력(經濟力)은 캘리포니아가 지금 바로 독립국가가 된다면 세계 7-8위 수준이며, 인구(人口)도 2013년 7월 현재 3800만 명으로 2위 텍사스 2645만, 3위 뉴욕 주 1965만보다 많다.


그리고 자연경관과 운치풍광도 캘리포니아 만 한 곳이 없다. 미국엔 59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그 중 요세미티, 레드우드, 세코이아, 킹스캐년, 데스 벨리, 리센 화산, 조슈아 트리, 채널 아일랜드, 피너클스 국립공원이 캘리포니아에 있다. 수십 명이 팔을 벌려 연결해야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수령(樹齡; 나무나이)수천 년 된 Cedar(삼나무)들이 울울창창한 국립공원에서 끝이 안 보이는 돌과 기암절벽과 모래가 어우러진 사막과 년 중 ⅔가 눈 속에 덮여 있는 설경의 고산, 수천 피트 산꼭대기에 백두산 천지보다 더 넓어 유람선들이 다니는 거대한 호수 절경 등 세계적인 국립공원 9개가 캘리포니아에 있다. 그래서 30년을 살아온 워싱턴이 현재의 고향이라면 캘리포니아는 언제라도 달려가 안기고픈 어머니 품과 같은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아 있다.


여섯 번째 대륙횡단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저 옛날 출애굽시대에 여호수아와 쌍두마차로 모세를 보필했던 갈렙 장군이 “내 나이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정탐으로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야훼하나님께서 말씀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Now then, give me this hill country; 수 14: 10하-12상)라 고백하며, 벽촌산지 헤브론을 받아서 도시로 개발해 다윗의 성도(聖都)로 만들었던 것처럼, “내 나이 75세 전에, 마지막으로 워싱턴에서 토론토로 올라가 거기서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여 서부 밴쿠버까지 갔다가 미국으로 들어와 마음의 고향 캘리포니아 땅을 밟고 함께 늙어가는 동료 목사들을 만나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고 꿈과 우정을 나눈 후(그때쯤엔 서부의 여러 목사들이 천국으로 갔을 것이다) 거기서 현재의 고향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일곱 번째 왕복 대륙횡단 대장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건강과 마지막시대에 내게 맡긴 사명을 담금질하면서 “하나님이여, 지구촌의 마지막 역사와 세계를 내게 주소서”를 기도하는 기회를 가질 것을 기약하며 12일 동안의 두 나라 대륙횡단 대장정을 끝냈고, 그래서 지금도 그날을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과 일반사람들은 객관성과 상식에서 문제해결을 찾는다. 그러나 기독교와 성도들은 상식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상식과 이성을 뛰어넘는 초과학과 기적에서 문제의 답을 찾는다. 기적이란 인간의 지식과 경험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여 평범한 우리 삶에 이성과 과학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 나타나는 것이다.


길을 지나가는 열(10) 사람에게 서울의 한강 반포대교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은 500m에서 5km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것을 만 명에게 물어보고 평균치를 내면 놀랍게도 실제 길이인 1.1km에 거의 근접하는 수치(數値)가 나온다고 한다.

이것은 수학적으로 사람의 상식과 객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고 정치과학적으로는 많은 사람의 생각인 민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수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제해결을 이성적인 판단에서 찾으려 하고, 상식과 객관성에서 문제해답을 찾으려 하며, 다수의 민심이나 군중심리에서 문제해결의 기적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기적(奇蹟)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이 만드는 기적은 출애굽시대 이집트의 술객 얀네와 얌브레가 바로의 이름으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해 마술(魔術)로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고(출 7: 11) 지팡이로 강물을 쳐서 피가 되게 하며(출 7: 22) 술법으로 물속에서 개구리 Ep가 나오게 한 것처럼(출 8: 7) 하나님의 기적의 작은 부분을 흉내 낼 뿐, 완전한 기적은 아니다.


                       예수 기적치유의 삼중 비밀


마태 9: 18-35절은 예수님이 ⑴ 열두 해를 앓던 혈루병자 여인을 치료하신 기적 ⑵ 열두 살 된 죽었던 소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신 기적 ⑶ 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기적 ⑷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신 기적 등 연속적으로 네 가지의 기적을 기록한 사건기록이다. 네 가지 치유사건 기록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병 고침을 받는 세 가지 비밀, 어떻게 해야 예수 기적으로 질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가?’를 배울 수 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삼중비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과 예수님이 공생애에서 나타낸 42번의 기적 같은 기적을 우리 삶에서 경험하며 살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예수기적의 삼중비밀은 무엇인가?”


   1. 믿음으로만 기적이 체험된다.


12년 동안 자궁벽이 헐어 하혈을 하던 혈루병자 여인은 목숨을 걸고 피골이 상접한 연약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걸어와서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겉옷을 만진 자기 자신의 믿음으로’ 불치병의 고침을 받았고, 죽은 딸을 위로하고 자기의 극한 슬픔을 나타내려고 피리 불고 훤화하는 자들을 고용해 춤추고 노래하게 하며 울음꾼들까지 고용해 울게 하므로 불안공포를 이기려 애쓰면서 절망 속에서 딸의 장례를 준비하던 회당장 야이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Do not be afraid any longer, only believe!; “더 이상 무서워 떨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막 5: 36)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마음을 바꿔 용기를 내 믿음을 갖고 예수님을 의지하므로 죽어서 시체가 됐던 딸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렇다. 12년 혈루병자 여자는 자신의 믿음으로 병 고침을 받았고, 죽었던 열두 살 소녀는 부모의 믿음으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 오늘도 예수님의 기적은 당신의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자신의 믿음이든지, 보호자의 믿음이든지...믿음만이 우리를 기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는 삶의 굴곡진 여정에서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하시고 긍휼을 베푸실 때, 그리고 성경시대에 예수님이 사람의 질병을 고쳐주거나 기적을 나타내실 때 ① 병자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해 주셨고(막 5: 34) ② 보호자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셨으며(마 8: 8-13, 막 7: 29, 9: 24-25) ③ 병자를 기도해주는 안수자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기도 하셨고(약 5: 15) ④ 병자나 보호자나 안수자의 믿음이 없는데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이름 때문에 질병을 고쳐주거나 기적을 나타내 주셨는데(시 23: 3, 겔 20: 9, 22, 요 9: 3) 오늘도 예수님의 기적으로 병 고침을 받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뜨거운 물에 얼음 녹듯 예수님의 기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원하면 당신의 믿음을 예수께 보일 것이고, 보호자의 믿음이라도 보여야 한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네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Your faith has saved you; 눅 7: 50,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눅 8: 48, 17: 19, 18: 42)고 하셨다. 그 만큼 예수님의 기적에서 우리 자신의 믿음은 중요하다. 그리고 나를 도와주는 보호자의 믿음, 나를 후원하고 후견(後見)하는 Guardian(관리자, 후견인, 보관자-지정후견인과 법정후견인)의 믿음도 중요하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믿음과 그를 후견하는 보호자의 믿음, 복잡한 문제로 고민하는 본인의 믿음과 그를 돕고 협조하는 보호자의 믿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현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의 믿음도 중요하고 그의 선교를 후원하는 교회나 목사나 성도들의 믿음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믿음만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기적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인가? 성경 히브리서 11: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믿음은 소망했던 것들의 (현상 밑에 있는 불변의)실체요” -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다” - “눈에는 안 보이고 귀에는 들리지 않으며 손으로 만지지는 못했지만 보이고 들리고 만지는 것 같은 확실한 증거다”)고 했다.


그렇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실상과 실체를 손에 잡은 것처럼 입으로 말하고 고백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돈이 없지만 돈을 가진 것처럼 말하고 부자처럼 행동하는 것이고, 비록 지금은 질병으로 고생하지만 예수이름으로 병이 나은 것처럼 말하고 건강을 시인하며 건강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며, 비록 지금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혀 내 인생의 걸음걸이가 난보(難保)하며 비틀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말과 행동은 얼음을 깨고 질주하는 쇄빙선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축복을 말하고 자신 있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 믿음은 구약적인 믿음과 신약적인 믿음이 있다. 구약적인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하나님께 자기실존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히 11장에 나오는 구약의 30여 명 믿음의 선진들이 자기들의 믿음을 보였던 그런 믿음이다. 그리고 신약적인 믿음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하나님나라에 대한 신뢰로써 예수님이 선포하고 약속하신 십자가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구약적인 믿음’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구주되심을 믿는 신약적인 믿음’이 나 자신이나 보호자에게 있을 때, 기적적으로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실상과 실체로 나타나고,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만지지 못한 것들도 기적적으로 산 증거로 나타난다. 믿음으로 육체적인 기적, 경제적인 기적, 가정적인 기적과 영적인 기적들이 많이 나타나길 축원한다.

1968년 5월부터 70년대 초까지 3년 동안, 하나님은 나와 소백산 시골교회 우리 교인들에게 ‘7년 후에 내가 너를 미국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나에게는 꿈으로 음성으로 계시로 여러 번 보여주셨고, 성도들에겐 입신을 통한 계시로, 방언 통역과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 거의 모든 예배 때마다 보여주셨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지만 세상과 동 떨어진 소백산 깊은 산골, 가난한 시골교회에서 미국(美國)은 나에게 꿈에서나 가볼 수 있는 아득하게 멀고 먼 환상의 나라일 뿐이었다. 당시 내겐 미국과 연결된 사람이나 연줄도 없었고 미국으로 초청하거나 데려갈 사람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가난했다(너무 가난해 영양부족으로 시골목회 3년 만에 양쪽 폐에 동공이 생겨 군 입대 3일 만에 의가사제대를 했다) 어느 때는 미국과 연고를 만들어보려고 Pen-Pal을 시도해 보기도 했는데, 한두 차례 편지가 오고가면 ‘당신 같은 목사와는 대화가 안 된다, 교제를 안 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펜팔을 끝낸다.


당시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젊은 날의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뼈 속까지 밀려드는 고독과 외로움, 그래서 외로움과 절망을 이기기 위해 낮에는 성경읽기와 영어공부와 산기도, 밤에는 교회강단에 엎드려 철야기도하거나 산 기도를 하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당시,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을 2일1독 하는 날이 많을 정도로 성경과 영어에 전력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억지 기도였지만 기도를 통한 수많은 신비체험도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으며, 꾸준한 영어공부로 훗날 미국에서 학위취득 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하나님은 3년에 걸쳐 계속적으로 꿈으로 환상으로 음성으로 그리고 성도들을 통해 ‘미국의 꿈’을 계시로 약속해주셨지만 현실은 내게 허허벌판의 홀로 서있는 절망과 외로움과 고독뿐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간증이지만 7년 동안에 ‘꿈보다 현실을 찾아서’ 세 번이나 보따리를 싸 요나처럼 ‘소백산 탈출’을 시도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미래 청사진 환상과 계시’로 나를 설득해 산속으로 데려가셨다.

그때, 외로움과 고독에서 새벽마다 저녁마다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만물이 깊이 잠든 소백산골짜기 밤의 어둠을 묵묵히 밝히는 휘영청 둥근 달을 바라보며, 그리고 독사와 사나운 짐승들이 출몰하는 수목이 울울창창한 산속을 홀로 거닐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천지가 진동하도록 목소리를 높여 18번으로 불렀던 나의 찬송은 “보이는 것 의지 안하고 믿음으로, 내 주와 한 가지 걷는 것, 참 행복 아닌가...”였고, “...허락하심 이루어 사랑 항상 있도다. 모두 이뤄주심을 나는 믿사옵니다. 구주밖에 누구를 달리 찾아 보리요. 복과 영생 예수니 더 원할 것 없도다”(찬 450장)였다. 그 찬송과 함께 흘렸던 눈물 그래서 하나님의 병에 담겨진 나의 눈물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3년 동안은 남발하는 국회의원 공약보다 더 많이 약속을 하셨던 하나님이 4년차부터는 이사야의 고백처럼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Thou art a God who hides Himself; 사 45: 15)이 되셔서 나의 믿음을 저울질하시며 내 믿음을 강하게 키우셨다. 처음에 2-3일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꿈과 계시와 환상으로 약속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4년차부터는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6개월의 한번...으로 횟수가 줄었고 6년차엔 꿈과 계시와 응답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의 18번 찬송을 부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러자 나중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공허한 약속(空約)으로 느껴질 정도까지가 돼,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기도와 약속을 의심하는 기도의 치열한 피투성이 싸움이 될 정도였다.


기도할 때마다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을 제시하고 마귀는 의심의 카드를 내 놓는다. 기도할 때는 용기와 믿음이 생기고 기도가 끝나면 불안과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나의 소백산 6년차 1년은 앞이 안 보이는 암흑의 터널 속에서 몸부림치는 생활이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서울로 나와 도시목회를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여러분, 어둠의 색깔은 먼동이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캄캄하고, 히말라야 고산등정은 마지막 고지정복이 가장 힘이 들며, 430년 이집트 종살이에서 출애굽 바로 직전이 가장 힘들었던 시련과 고비였듯 여러분의 기도응답도, 믿음의 싸움도 마지막 단계가 가장 힘이 든다는 것을 기억하고 낙심치 말기를 축원한다.


그렇게 6년차의 영적전쟁 1년이 끝나고 7년차가 된 1974년 3월 초,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보낸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전보내용은 ‘미국인 부흥사를 데리고 왔으니 속히 서울에서 만나자’는 친구목사의 전보였다. 그래서 갑자기 서울로 상경해 얼떨결에 미국인 부흥사 통역을 두 달 정도 하게 됐는데(평생 처음 해보는 통역-엉터리 통역?-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돼 미국인목사 초청으로 미국에 들어 온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때 친구가 초청한 미국인목사의 설교통역이 ‘7년 전에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기회’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이변이며 기적이다.


흑인 목사의 초청장을 받은 후, 그해 12월 4일 미국비자를 받는 날까지의 아홉(9) 달은 ‘7년의 기다림’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영적싸움(당시 나에겐 군대문제와 재산문제 서류 문제 등 비자취득은 95% 불가능이었다. 평생 처음 불면증으로 고생했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

그렇게 해서 ‘7년 후에 미국에 보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4개월을 단축시켜 6년 8개월 만에 성취가 된 것이다. 아무 것도 안 보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손에 잡히는 것 아무 것도 없었지만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란 말씀대로 김목사는 7년 동안의 믿음의 기도로 1975년 1월 14일 미국 땅, 캘리포니아 LA공항을 밟았다. 그것이 김목사의 지나간 40년 미국생활의 시작이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으로 그리고 보호자가 된 여러분의 믿음으로 자신과 가정과 회사, 가게와 자녀와 직장 그리고 주기도문교회와 역사 위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기적을 나타내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하나님과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라


본문에 기록된 맹인 두 사람이 고침 받은 기적은 소경들이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므로 나타난 치료기적이다. 27절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서(야이로의 집) 떠나가실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Two blind men followed Him, crying out, and saying, 'Have mercy on us, Son of David!)라 외쳤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소경들의 외치는 소리를 멋 들은 척 외면한 채, 가던 걸음을 계속해 자신의 거처인 가버나움 선교본부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잠시 후, 소경 두 사람이 예수 계신 곳으로 따라 들어와 더듬거리며 예수님 앞으로 왔다. 잠시 후, 예수님은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너희 눈을 뜨게 할 줄-을 믿느냐?”(Do you believe that I am able to do this?)며 두 소경에게 물었다. 그때 두 사람은 촌각도 지체하지 않고 “Yes, Lord!”(그렇습니다. 주여-주여, 믿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두 소경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According to your faith, be it done to you)고 하셨고 두 소경은 그 자리에서 고침을 받는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두 소경의 믿음을 요구하셨고 그들의 믿음 고백을 들으신 후에 병을 고쳐주셨다.


그러나 이 치료사건에서 더 중요한 것은 두 소경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 부르짖었다는 것과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와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가능하다.


한국 청년들이 우연한 기회에 캘리포니아 5번 고속도로에서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 그리고 아무도 없는 캄캄한 텍사스 주 사막 고가도로에서, 그리고 앞이 안 보이도록 폭설이 쏟아지는 미주리 주 외딴 길에서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고 지나쳐 갈 때, 자기차를 세운 후 위험을 무릎 쓰고, 어느 중년신사의 고장 난 차를 고쳐주고 어느 노인할아버지의 펑크 난 타이어를 고쳐주었다가 그들이 대기업의 회장이고 큰 회사사장이어서 훗날 우연하게 그들의 도움을 받아 영주권을 받은 이야기와 회사의 중직이 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영주권이 없던 불법체류자라도,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돈 많은 사람, 힘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 불쌍히 여김을 받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
두 소경이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자마자 한 순간에 병 고침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 받고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 하나님의 기적과 예수의 기적은 한 순간에 우리 삶에 나타나 음지를 양지로, 절망을 소망으로, 가난과 배고픔을 부요함과 행복으로, 고질병으로 살아날 가망이 없던 몸을 건강의 몸으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7대 비결을 가르치고 있다. ⑴ 자기의 모든 죄를 입으로 자복하고 버릴 것이다(잠 28: 13, 사 55: 7) 어떤 죄든 모든 죄를 입으로 자백할 것이다. 큰 죄든 작은 죄든, 사람들이 아는 죄든 모르는 죄든, 육신적인 죄든 정신적인 죄든 영적인 죄든 모든 죄를 입으로 고백하고 버리면 불쌍히 여김 받는 축복이 있지만 죄를 고집하고 숨기면 불쌍히 여김 받는 일은 없다 ⑵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느 1: 5) 성경엔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이 십계명을 중심해 무려 6468개가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 계명으로 함축된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일성수와 십일조성수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고 원수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으로 할 수가 있다 ⑶ 전심으로(With my whole heart!)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것이다(시 119: 58) ⑷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할 것이다(시 103: 13) ⑸ 모든 시험과 시련을 참고 끝까지 인내할 것이다(약 5: 10-11)


⑹ 내 이웃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마 5: 7) 2차 대전 때, 유태인 대학살로 독일이 유태인들을 혐오하고 박해하며 죽일 때, 병들고 가난했던 유태인 모자(母子)를 살려주었던 독일인 의사가 25년 후에 자기가 죽을병에 걸려 죽기 직전, 젊은 유태인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는데, 그 의사가 바로 25년 전에 자기가 살려준 유태인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자기도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⑺ 부르짖어 기도할 것이다. 성경엔 소리 질러 기도했다(Cry out)는 말씀이 무려 430번이나 기록될 정도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부르짖어 기도했다. 본문의 두 소경도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 질러 기도했다가 예수님의 기적으로 고침을 받았으며, 오늘 지구상의 셀 수없는 많은 성도들이 산과 들과 사막에서 그리고 골방과 기도원과 교회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각양각색의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기적과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3. 흑암세력을 꾸짖고 명령하라


본문의 마지막 부분인 32-34절은 예수님이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고쳐주신 기록이다. 본문엔 그런 기록이 없지만, 성경에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실 때는 언제나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또는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아이에게서 나오고(I command you, come out of him and do not enter him again)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 25)고 꾸짖으며 명령하셨고, 심지어 노도(怒濤)하는 파도와 풍랑을 잔잔케 하실 때도 바람과 바다에게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꾸짖고 명령하므로 잔잔케 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도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고 하여(In the name of Jesus Christ the Nazarene, walk!; 행 3: 6) 병자를 고쳤고, 베드로는 죽은 시체에게 “다비다야 일어나라!”(Tabitha, arise; 행전 9: 40)고 명령하므로 살렸으며, 바울은 점하는 귀신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녀에게서 나오라”(I command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o come out of her!; 행전 16: 18) 꾸짖고 명령하므로 귀신을 쫓아냈다. 그래서 기독교의 기적은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흑암세력을 꾸짖고 명령할 때 일어난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特權)이다.


5개월 전인 작년 8월 워싱턴 나욧 신학대학 인가 때문에 고민하며 기도할 때이다. 우리를 반대하고 망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 심지어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까지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나욧 신학대학 인가(Permit)는 안 나온다. 아무리 기도해 봐도 응답은 ‘노’(No)라”며 비웃고 조롱한다. 이러한 절망과 맞서서 싸우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나와 뉴욕, 뉴저지 분교학장 김희복 목사와 그곳의 학생들뿐이었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런 와중에 MD고등교육국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열거하며 인가거절 통지서를 보내왔다. 그땐 사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이었다. 그래서 첨가서류를 다시 접수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그렇게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여러 지역에 흩어진 기도 동지들에게도 기도부탁을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어느 날 기도하는 성도 중 한 분이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예수이름으로 서류 담당자 마음이 감동돼 인가서류에 사인(서명)할 찌어다’라고 명령하며 기도하라고 하신다”(기도 중 에 담당자가 목사님 서류를 책상 속에 넣어두고 다른 서류만 취급하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며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나도 평상시에 알고 있던 말씀이었지만 그 말에 다시 힘과 용기를 얻은 후, 기도할 때마다 “예수이름으로 응답해 달라”는 기도보다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서류담당자는 학교인가서류에 서명을 할 찌어다”를 명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예수이름으로 문제를 꾸짖고 명령하기를 두 달이 지난 10월 24일, 마침내 신학대학과 대학원 인가허락이 떨어졌다. 할렐루야!!


인생사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다 흑암세력 사단마귀가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 배후에 사단마귀가 역사하고 있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남편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아내가 딴 마음을 품는 것도, 착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변해 탈선하는 것도, 아무리 기도를 하고 싶어도 5분 10분만 지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싶은 것도,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그래서 이 문제가 끝나면 저 문제가 찾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 생기려고 하면 꼭 방해꾼이 나타나 일이 성사되지 않는 것도, 그리고 설교시간만 되면 졸음이 쏟아지는 것까지도 자신의 실수나 경험미숙이나 관리부족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놀랍게도 사단마귀 흑암세력이 문제의 배후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문제해결을 영적싸움에서 찾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의 문제는 어떤 문제인가? 예수의 이름으로 흑암세력을 꾸짖고 명령하여 문제들을 해결하는 영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세계 미래회의에서 발간하는 Future List(퓨처 리스트)지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 후엔 평생직종, 평생직장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때쯤엔 줄기세포가 보편화되어 최고육질의 소고기줄기세포와 최고품질의 섬유소에 비타민이 가미된 채소줄기세포를 공장에서 대량생산할 수 있어서 사람들의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기계화된 인류는 완전고용이 아닌 완전실업이 정책의 목표가 되며 그래서 돈 많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라 평생 이어갈 일거리를 가진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되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역사회 배급으로 하루 종일 놀고먹으며 웬만큼 똑똑하지 않으면 일자리가 없어서 대규모 노동력이 일거리를 찾아 아프리카로 옮겨가 아프리카의 인구는 16억쯤이 되고, 일거리를 잃고 정체성을 잃으면서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한편 20년 후, 하이퍼소닉 비행기의 출현으로 지구촌 구석구석 2시간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지구촌시대가 되고, 아침에 워싱턴에서 출근해 저녁에 서울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는 시대, 그래서 지구촌은 말 그대로 1일 생활권, 1일 취업권이 되므로 게으르고 동기화되지 못한 사람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쓰레기처럼 시간을 소일하다 소멸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허구와 망상의 꿈같은 과학자들의 예고로써, 이 같은 과학자들의 환상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기 바이러스 하나라도 다스리지 못하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희망은 남가일몽일 뿐이다.


오늘 우리에겐 하나님의 기적과 예수님의 기적이 필요하다. 성경적인 기적들은 우리의 믿음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의 불쌍히 여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명령에서 나타난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문제들을 믿음으로 해결하고 창조자의 불쌍히 여김을 받음으로 해결하며 예수이름을 사용하는 여러분의 권세 있는 명령으로 해결하는 축복들이 넘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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