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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01월19일 10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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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빨리)! 바리(빨리)!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같은 영화나 책을 두번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다 보니 ‘국제시장’을 두번이나 보게 되었다. 깔깔… 그러니 천만 관객이 넘을 수 밖에… 영화라는 것이 제한된 시간 때문에  겅중겅중 진행되던지 설명이 없어서 궁금증을 많이 남길 때가 있다. 이번에 상영된 ‘국제시장’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영화이니까 관람자인 나는 또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할 수 밖에… 그 중 우리들을 크게 감동시킨 사건 중의 하나인 ‘흥남철수(1.4 후퇴)’는 100퍼센트 실화이다.
 
국제시장을 보고 나서 6.25 전쟁을 뒤져 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서 UN 16개국에서 젊은이들이 몰려왔고 미국은 14만 명을 보낸적도 있단다. 세상에 … 1950년 당시 우리 군인은 9만 5천명이었고 공군은 아예 없는 나라였다는데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10대 후반의 아들들이 와서 목숨을 바쳐준 것이다. 어쩐지 미국 동네 가는 곳마다 심심치 않게 ‘한국전 기념비’가 있어서 가슴뭉클하게 만든다 했더니 우리 ‘빚진자’였다. 아니 ‘진 빚을 까맣게 잊고 사는 나라 사람들’ 이네! 최소한 나는 까맣게 몰랐다.
 
선글라스를 끼고 시가를 물고 있는 미군장교와 그의 옆에서 울먹이며 간청하던 잘생기고 앳된 한국청년 통역관을 보는 순간 ‘어? 누구지? 이거 실화야?’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데 이 기특한 애국청년은 한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현봉학 박사 (1922~2007) 이고 그 옆의 장군은 아몬드 (Edward M. Almond) 소장이다.

 
그는 세브란스를 졸업하고 1947년부터 2년간 리치먼드에서 공부하고 1950년 귀국해서 6.25가 발발하자 미해병대 문관 및 10군단 사령관의 민사부 고문으로 일하다가 유창한 영어로 아몬드 장군의 눈에 띄었고 석회암 동굴로 유명한 루레이에서 태어나 버지니아군사학교를 졸업한 아몬드 장군이라 버지니아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더 친하게 되어 “장군님 제발… 불쌍한 우리 국민들을 살려주세요!” 눈보라 휘날리던 함흥철수의 간절한 호소와 고심 끝의 수락이 있었다. 그는 1916~1953년에 걸쳐 1차,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에 참전한 백전노장으로 맥아더 사령관의 측근이었다.

 
어쨓든 1950년 12월 12일부터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진행된 흥남철수를 통해 총 10만5천 여명의 군인과 피난민 9만 8천 여명이 군함과 상선등의 193척의 배를 타고 거제도 장승포로 무사히 철수했고, 영화에 나오는 상선인 메리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도 기껏 2000명 정원의 배인데 적재했던 탄약과 포탄 휘발유들을 버리고  1만 4천 명을 태우고 지뢰를 뚫고 구조한 배이다. 그날 그 배에서 5명의 크리스마스 베이비들이 태어났단다. 당황한 선원들은 한국말을 몰라 그냥 ‘김치1, 2, 3, 4, 5’라고 불렀다고…나는 이 ‘김치’ 라는 이름 에서 탄성과 축복이 느껴진다. 아! 이 특별한 아기 김치들! 예쁘게 성장해서 행복했겠지! 

 
이 배는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 북에 기록되었다는데…ㅎㅎ…배 위의 피난민들 중 일부가 드럼통 위에서 불을 피우는 바람에 승무원들이 기절초풍했고…왜냐하면 1만 4천 여명이 한 방에 날아가는 세계최대규모의 해상화제사고가 일어날 뻔 했다니까…하지만 우리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최악의 조건에서 1만 4천여명을 구조한 이 배를, 사람들이 기적의 배(Ship of Miracle)라고 불렀던 이 배를, 피난민들의 생명선 이었던 이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정작 우리는 새까많게 잊고 살아오던 중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달랑 훈장 하나 받고… 1971년 퇴역하여 1993에 고철로 팔려 해체되어 자취없이 사라졌다. 

 
이 고맙고 고마운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은 켑틴 라루(Captain Leonard Larue 1914-2001)였다. 그는 전쟁 당시 37세 였는데 전후 40세에 뉴져지 뉴튼의 St. Paul’s Abbey에서 87세로 수도사 마리누스 (Brother Marinus)로 생을 마치셨다. 그는 돌아가실 때까지 흥남철수와 관련된 말은 일체하지 않았는데 “나는 가끔 그  항해를 생각합니다.   나는 어떻게 그 적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한 영혼도 다치지 않고 끝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크리스마스 무렵, 한국해안의 고난에 찬 바다 속에, 하나님의 손이 내 뱃전을 인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라는  간증을 남겼다.

 
그런데 이 감동스런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당시 22세였던 부선장 로버트 러니 (Robert Lunny)가 수도원에서 평생을 기도와 묵상으로 지내는 선장을 찾아가서 활약상을 한국 인들에게 알리자고 하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했는데 뭘 그러느냐!’고 번번이 거절당하는 바람에 이 배의 이야기는 영영 잊혀질 뻔 하였단다. 아마 자기가 미처 구하지 못했던 피난민들의 모습이 그를 수도사가 되게 한 것은 아닐까!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수도원에 서 세상과 단절한 체 그가 올린 고독한 기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2001년 10월 14일 신부가 돌아가시며 타임즈지에 흥남부두에서 상선으로 피난민들을 구했던 선장이었던 마리누스 신부의 기사가  짧게 실린 후, 2004년 1월 11일 자에 다시 한국 왜관의 한국신부들이 ‘라루 선장’을 기리며 수도원을 인수하여 부활시키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폐쇄되었던 수도원의 일요미사가 부활되고, 한국인의 손으로 무, 배추, 토마토를 길러 치즈버거, 스프와 함께 김치가 제공되고 여러가지 추모사업들도 많이 생겨난다고…보답이라고 이름붙이기 에는 말이 안되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의 손으로 수도원이 소생되고 있다니 그 때 한국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바리(빨리)! 바리(빨리)!를 외치며 구조를 해 준 생명의 은인들에게 늦게나마 ‘땡큐!’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정말 기쁘다. 그 때…그 순간…빨리! 빨리! 보다 더 적절한 말이 어디있어! 빨리! 빨리!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잠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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