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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2월28일 16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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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됨을 인하여
            인자됨을 인하여!      요 5: 19-29절    12. 28. 14
 
성탄절이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아들(God the Son and Son of God)이신 분이 하늘을 포기하고 사람의 아들인 인자(Son of Man)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신 날이다. 이것은 David Livingstone(1813-1873년) 당시 전 세계를 통치하며 세계최강국, 세계최고 문명국을 자랑하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넉넉하던 대영제국에서 아무 것도 없고 아무 문화혜택도 받지 못하는 밀림정글, 식인종들과 야생동물과 온갖 독충의 위험이 깔려있는 문명의 오지 아프리카선교사로 들어간 것과 19세기 초 영국선교사 로버트 모리슨(1782-1834년)이 미개지 중국에서 선교한 것과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 허드슨 테일러(1832-1905년)가 문명과 담을 쌓고 사는 중국내지에서 선교를 시작해 50년간 중국선교사로 헌신한 일과 같은 비유될 수는 있어도 비교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다.
 
김 목사가 지난 10월, C국 B도시에 있는 변두리 빈민촌, 부엌과 거실을 합쳐서 한두 평(坪)정도 되는 작은 집에서 5-6명 식구들이 함께 살고, 화장실은 칸막이도 없이 수백 명이 서로 마주보며 일을 보는 공동화장실이 있는 우리나라 60년대 판자촌과 같은 빈민촌 근처 지하실에 있는 선교처소를 방문해 사역을 하고 왔다. 차를 타고 30-40분만 나가면 인구 2000만이 넘는 세계최대도시를 자랑하지만 변두리 빈민촌은 아직도 열악했다. 나는 아무 음식이라도 잘 먹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화장실이 불편한 것이었다. 화장실도 신학생들이 부지런하고 청결해서 깨끗하게 정리를 해서 냄새도 많이 나지 않아 작은 일 보는 일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Dumping을 해야 하는 큰일이었다.
 
네팔 미얀마 캄보디아 필리핀이나 도미니카 볼리비아 같은 후진국에도 화장실은 문제가 없었는데, 그곳은 60-70년대의 한국시골 화장실처럼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봐야하는 불편 때문에, 미국에서 40년이나 변기에 걸터앉아 편하게 볼일 보던 습관에 젖은 나로서는 너무 힘들었다. 30여 년 전, 미국생활 7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시골고향집에 갔을 때도 지독한 화장실냄새와 더러운 인분 속에서 쉴 새 없이 꼬무락거리는 구더기들 모습에 큰일을 못보고 5일을 참다가 서울에 나와서 속을 비었던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는 쪼그려 앉는 일이 너무 힘들어 큰일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새벽 2시에 일어나 모두 잠든 사이에 의자 두 개를 놓고 중간에 걸터앉아보려고 했는데 화장실이 좁아서 그것도 안 되고, 그래서 다시 정상적으로 쪼그려 앉아 시도했다가 고생만 하고 실패해서 나중에는 포기한 후, 힘들지만 참았다가 공항에 나와 문제해결을 하려고 결심하고 참는데 고통이 말이 아니다. 
 
그러다가 신학교가 빌딩지하실의 반만 사용하고 반은 텅 비어있는 것을 알게 돼, 요행을 바라면서 나머지 반의 지하실 방들과 교실들을 찾아보다가 다행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수세식 화장실 하나를 발견하고, 먼지가 쌓였지만 닦아내고 편하게 변기에 걸터앉아 큰일을 치르는데 얼마나 시원하고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고맙게 사용한 화장실에 물을 떠다가 인공으로 Flush를 해서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돌아왔는데, 나는 그때 선진국의 선교사들이 문명의 오지에서 수고했던 고생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다가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선교사가 미국을 떠나 우리 고향에 와서 전도했기 때문임을 감사했고, 그러다가 하나님이 하늘을 포기하고 낮고 천하고 죄 많은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했다. 그렇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 사람의 아들(Son of Man)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신 6천년 인류역사 최대사건의 날이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됐는데(For a child will be born to us, a Son will be given to us)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熱心)이 이를 이루시리라(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will accomplish this; 사 9: 6-7)”고 했고, 바울은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우리와 동일한 혈육(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것은-사망으로 말미암아(Through death-”자신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애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 14-16)고 하므로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말했으며,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By this you know the Spirit of God)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Every spirit that confesses that Jesus Christ has come in the flesh is from God)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This is 손 spirit of the antichrist; 요일 4: 2-3)”고 선포하므로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성육신의 성탄(聖誕)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갓난아이로 지구촌에 탄생하셨을 때,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among men with whom He is pleased; 눅 2:13-14)”며 천지를 뒤흔드는 대합창을 했다고 기록했다. 인류역사상 어느 왕이나 군주가 태어날 때, 어느 유명한 종교가가 태어날 때, 누가 태어날 때,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모여와서 그의 탄생을 찬양했는가? 그렇다. 하나님아들 예수께서 저 하늘을 포기하고 인류를 구원키 위하여 죽기위해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을 때이다. 인류구원을 위해서, 여러분과 나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려고 지구촌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인자(人子)됨을 인하여!
 
몇 달 전,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상자 같이 생긴 작은 차에 올라타고 손수 유리창 문을 내려서 손을 흔든 것으로 기아자동차는 대박을 터뜨렸다. 유명인이 든 가방이나 입은 옷이 불티나게 팔리고, 영화 속 한 장면에 제품이 잠깐 비치기만 해도 매출이 고공행진을 한다니 전 세계 12억의 가톨릭수장이 며칠씩이나 기아차를 타므로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으니 기아차는 돈 안들이고 횡재 중에 횡재를 한 것이다. 
 
교황이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신변보호를 위해 방탄유리로 사방이 막힌 교황리무진(Pop-Mobile)을 타는 것이 관례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황이 Pope Limousine 방탄유리 안에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체류 4-5일 동안, 작은 상자처럼 생긴 기아차 속에서 직접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 파격에 사람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고 불편한 소형차에 몸을 싣는 겸손하고 서민적인 교황 모습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가 탔던 기아차를 사겠다고 줄을 선다고 한다.
 
겸손하게 작은 차를 선택한 교황 한 사람 때문에 한국 가톨릭교회와 기아차는 호기를 맞았을 것인데, 그것이 한국가톨릭교회를 위한 단회성 Gesture였는지, 정말 겸손해서 작은 차를 탔는지, 그 후에도 교황이 관례를 깨고 다른 나라에서도 작은 차를 타는지 그리고 그의 방문 이후 한국에서 가톨릭신자가 얼마나 증가했고 전 세계에서 기아차가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는 통계를 보지 못해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한 사람이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겸손의 모습 하나로 반사이익과 영향은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셨던 하나님 아들이 사람아들로 세상에 오신 성탄의 반사이익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으로, 예수께서 죽음과 사망의 총본산 마귀를 파멸하심으로 인류에겐 죽음의 종노릇에서 자유를 얻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 그래서 예수 십자가죽음 이후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됐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탄을 통해 사람의 아들이 되신, 인자됨을 인하여(Because He is the Son of Man의 헬라어 호티 휘오스 안드로푸스 에스틴의 정확한 번역은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로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기 때문이란 뜻이다) 하나님께 최소한 여덟 가지를 받으셨다. 인자(人子)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여덟 가지를 알아본다. 
 
   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 18)
 
예수님은 공생애 중, 십자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중보기도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내게 주셨다(Thou has given Me power over all flesh;요 17: 2)”고 하셨고,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기 직전, 수백 명의 무리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權勢)를 내게 주셨다(All power is given to Me in heaven and on earth; 마 28: 18)”고 했다. 
 
권세(Authority, 엨수시아)란 “하나님과 똑같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세와 권리”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는 하나님처럼 하늘과 땅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세였고 권리였다. 사람처럼 고난과 배고픔과 아픔을 겪고 마귀 시험을 당하므로 모든 사정을 알아야만 사람을 도울 수 있기에, 사람의 몸을 입으신 기간 동안은 그 권세를 다 사용하지 않고 시공간의 제약도 받으셨지만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Power over all flesh)와 ‘하늘과 땅의 권세’(All power in heaven and on earth)는 인간으로는 누구도 넘볼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세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반 동안 이런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치셨고(마 7: 29) 각종질병들을 고치며 귀신들을 쫓아내셨으며(마 8: 1-13, 행 10: 38) 죄인들을 용서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떠나는 열두 제자와 70문도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으며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고(눅 9: 1, 10:19) 오늘날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시대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권세와 그보다 더 큰 것도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요 14: 12)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권세,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와 하늘과 땅의 권세를 사용함으로 우리 삶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예수이름으로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 하나님을 높이는 삶이 되기를 축원한다.
 
   2. 만물을 그 손에 주셨다
 
요 3: 35을 본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The Father loves the Son, and has given all things into His hand)” 하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신 예수님을 사랑해서 만물을 그 손에 주셨다는 이 말씀은 ① 사랑으로 연합된 아버지와 아들 간의 상호관계로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과 권세로써, 피조물인 모든 만물을 자기 뜻대로 지배하고 명령할 수 있는 완전한 권세를 부여받은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만물을 다스릴 권위를 부여받은 예수님은 거칠고 사납게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만물 통치자 권위의 명령 한 마디로 잔잔케 하셨고,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낚시질로 잡아 올린 물고기 뱃속에 있는 동전까지도 미리 아셨으며, 용심부리듯 거칠게 꿈틀대는 바다 위를 육지처럼 거침없이 걸어가신 기적과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로 수만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행하셨고, 아무 맛없는 맹물을 맛이 있고 냄새가 있으며 향기가 있는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셨다 
 
② 인간 예수께서 성부하나님께 의존하시는 모습이다. 전지전능이란 삼위하나님 모두에게 속한 것이지 어느 쪽에서 다른 쪽으로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을 포기하고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인간의 차원에서 하나님아버지께 만물을 받으셨고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은 주님으로 말미암고, 주를 위해 존재하며 주님께로 돌아간다. 인자가 되심으로 만물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여, 다윗처럼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만물이 다 주의 것입니다(Everything is from Thy hand, and all is Thine; 대상 28: 16)” 고백하며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섬김으로 만물을 선물로 받아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드릴 수 있는 축복의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3. 예수께 오는 자, 성도(聖徒)들을 주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않을 것이라”(요 6: 37)고 하셨고 계속해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살리는 이것이라(This is the Father's will who has sent Me, that of all which He has given Me I should lose nothing, but should raise it up again at the last day; 39절)”고 했다. 그다음 예수님은 제사장적 중보기도인 요 17장의 마지막 기도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2절)고 하셨고, “내가 아버지 이름을 나타낸 사람들인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자들은 원래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셔서 내 것이 된 자들이라”(6절)고 하셨으며, 요 18: 9에서도 제자들을 가리켜 “이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예수님께 온 자들인 성도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예수님께 헌신하여 평생을 바친 예수의 제자 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중에서 가룟 유다처럼 스스로 예수님을 떠나 멸망의 자식이 되거나 이단에 빠지는 자들 외에는 예수께서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 중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시며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서 영생을 얻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자국민이 테러인질로 잡히거나 불행한 일을 당하면 반드시 인질을 구출하거나 보복을 해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도 인질구출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이북과의 대화조건을 이유로 6.25에 참전했다가 죽은 군인들의 유골을 찾아오면서 많은 돈을 지불했고, 최근엔 5년간 큐바에 억류됐던 미국인들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규파 스파이와 교환하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은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의 유해나 전쟁포로나 인질로 잡혀있는 자국민을 구출하는데 많은 돈이 들더라도 아낌없이 투자를 한다. 그러다가 인질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 그보다 몇 배나 무서운 보복도 감행한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Melting Pot에서 녹아져 하나가 된 미국이지만 세계최강국가가 됐고, 사람들이 미국시민권자가 되면 하나같이 미국의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구원받은 성도를 사랑하는 집념은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자국민 사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강하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오는 자(The one who comes to Me)의 헬라어 헤코는 “예배하기 위해 오는 자” 또는 “믿는 자”란 의미인데, 이것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예배하기 위해 가까이 오는 것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교제를 가지는 것을 가리킨다)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에겐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선지자 호세아는 그것을 ‘사랑의 줄’(Bands of love; “사랑의 밧줄, 사랑의 끈”)이라고 했다. 포경선(捕鯨船) 작살에 맞은 고래가 기운이 다 빠져 힘없이 배로 끌려올 때까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 줄을 당기고 놓아주고를 반복하듯 예수님은 사랑의 작살 줄을 당기기도 하시고 놓아주기도 하시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예수님의 기다림은 어떤 사람은 1년, 어떤 사람은 10년, 또 어떤 사람은 20년 30년 50년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믿음을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에 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환경은 끊임없는 고난과 어려움과 시련, 연속적인 배반당함과 물질손해와 가정불화 그리고 편할 날이 없도록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떠나지 않는 육신의 질병과 여러 가지 우환과 심지어 자녀들의 죽음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기다리심에도 불구하고 인내의 한계를 벗어나 끝까지 거역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다. 
 
일반적인 성도는 대부분 그런 과정을 겪게 하지만 이단에 빠진 자들은 예외다. 하나님 아들을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케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고 스스로 타락의 길을 선택한 이단에 빠진 자들(히 6: 6, 10: 29)과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피로 사신 예수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벧후 2: 1)과 각종 이단에 빠지는 자들은 부패하여 자기스스로를 정죄한 자로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에(딛 3: 11) 예수께서는 버림받은 그들과 칼을 들고 싸우실 것이며(계 2: 26)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손을 벗어난 자들이기에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포기하시고 멸망에 던지실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오게 하므로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은 영생이 약속된 축복받은 성도들이다. 그래서 예수의 성육신을 부정하고 ‘예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 예수 말고도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는 십자가 구원 외에 다른 복음을 외치는 WCC와 종교다원주의와 Postmodernism 외에 우리 주위에서 우후죽순으로 독버섯처럼 생겨나는 수많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이단의 유혹들을 분별해 물리쳐서 이기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므로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다시 살리는 성도가 돼야 한다. 바른 신앙을 끝까지 지켜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을 받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4. 하나님 아버지의 일(요 17: 4)
 
최후중보기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The work which Thou gave me to do)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했다”고 했다. 예수님의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완수했다고 고백한 것은 예수께서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이미 승리를 보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이루었다”(I have finished the work)에서 “이루었다”는 텔레이오사스는 “모두 끝냈다, 빚을 다 지불했다”는 뜻으로 이것은 실제로 몇 시간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 외치신 가상칠언 중 여섯 번째로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말씀은 시간적인 성취의 의미보다는 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도 한 치의 착오 없이 하나님의 일을 다 이루었지만 앞으로 몇 시간 후 다가올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실패 없이 이루실 것을 기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 이루신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실패 없이 다 이룬 16가지의 하나님의 일(What is finished? 16 things)은 ①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모든 말씀을 성취함(Fulfillment of all scriptures of the sufferings of Christ: 시 22, 사 53, 눅 24; 26-26, 44, 요 19: 28, 벧전 1: 11, 3: 18) ② 마귀의 일을 멸하고 쳐부수는 사탄마귀의 파멸(Defeat of Satan: 요 12; 31-32, 골 2; 14-17, 히 2: 14-15, 요일 3: 8) ③ 수천 년 동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구분 지었던 중간의 막힌 담을 무너뜨리는 것(Breaking down of the middle wall of partition to make Jews and Gentiles one: 엡 2: 14-18, 3; 6, 고전 12; 13, 갈 3: 28, 롬 10) ④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Way for personal access to God: 엡 2; 13-18, 히 10: 19-38) 
 
⑤ 사망이 통치하는 것을 소멸하고 상쇄(취소)시킴(Cancellation of the reign of death: 롬 5; 12-21, 6: 9, 고전 15: 1-58, 고후 3: 6-15, 히 2; 14-15) ⑥ 죄의 세력과 권세를 상쇄시킴(Cancellation of sin's power: 롬 6: 1-23, 8: 2, 고전 15; 54-58) ⑦ 죽음을 사랑할 정도까지로 순종을 실연(實演)하심(Demonstration of obedience and love to death: 빌 2: 8, 히 5: 8-10, 벧전 2; 21, 4: 1) ⑧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으로 완전케 되심: Perfection of Christ: 히 2: 10, 5: 8-11) 
 
⑨ 모든 죄에서 구원하심(Salvation from all sin: 마 26: 28, 엡 1; 7, 골 1; 14, 히 9: 15, 계 1; 5, 5: 9-10) 예수십자가는 인간의 어떤 죄업이나 죄의 종류, 죄질과 죄량에 상관없이 다 용서되고 모든 죄에서 구원받게 한다. ⑩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고 화평케 하심(Making of peace between God and man: 골 1: 20-22, 고후 5: 14-21, 롬 5: 1-11) ⑪ 모든 사람이 당해야 할 사형형벌 대가를 모두 지불함(Death penalty paid for all: 고후 5: 14-21, 고전 6: 19-20, 히 2: 9-15, 롬 5: 6-8, 벧전 1; 19) ⑫ 사단의 저당권주장을 상쇄하고 죄와 사단의 통치에서 인간을 자유하게 하심(Cancellation of the mortgage claim of Satan and freeing of man and his dominion from sin and Satan: 고전 6: 19-20, 롬 8: 18-24, 14: 7-9, 고후 5: 14-15, 살전 5: 10, 히 2: 9-15, 계 5: 9-10, 21; 1-22: 5, 벧전 1; 19) 
 
⑬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만족케 하심(Satisfaction of the full justice of God: 창 2: 17, 롬 3: 21-26, 5: 1-11, 요 3: 16) ⑭ 모든 인간의 육체질병을 치료함(Bodily healing for all: 마 8: 17, 13: 15, 사 53: 4-5, 벧전 2: 25, 요 10: 10, 약 5: 14-16) ⑮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과 충만한 능력을 부여하는 길을 열어 놓음(A way for the full enduement of power and full anointing of the Holy Spirit: 갈 3; 13-14, 요 7: 37-39, 눅 24: 49, 행 1: 4-8, 2: 33) 예수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성령이 오셨다 ⑯ 옛 언약을 도말하고 새 언약을 만들어 인 치시는 일(Blotting out of the Old Covenant and making and sealing of the New Covenant: 골 2: 14-17, 엡 2: 14-18, 마 26: 28, 고후 3: 6-15, 갈 3: 13-25, 4: 21-31, 히 7: 11-28, 8: 6-10: 1-18)을 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모든 일을 빈틈이나 실수나 오차 없이 완전하게 이루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맡기시는 소명과 사명을 충실하게 이루어 드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5. 예수님께서 전한 말씀(요 17: 8)
 
예수님은 기도 중에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나의 제자들에게 주었는데, 그들은 이것을 받아드리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로 믿었다”(8절)고 했다. 요 17장에서 예수님은 당신자신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온 것은 자기 맘대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라고 무려 여섯 번이나 말씀하므로(3, 8, 18, 21, 23, 25) 성육신의 성탄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말씀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말씀도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말씀이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씀은 구약에 문서로 기록된 말씀인 로고스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입술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레마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렇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전할 말씀을 직접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설교말씀은 당대 최고지성이요 성경학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율법사들과 서기관들의 생명 없는 설교나 지식자랑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예수님의 말씀은 의사 손에 들려진 좌우 양날이 날카로운 예리한 칼처럼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고 수술하는 권세가 있었고, 총에 맞은 사슴처럼 그의 말씀에 사단마귀와 귀신들이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혼비백산 도망쳤으며, 거친 파도와 사나운 풍랑까지도 말씀 한 마디에 고요 잠잠해 졌고, 교활하게 예수를 시험하는 자들의 날카로운 공격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항복시키는 권세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었고, 하나님이 그 입에 넣어주신 말씀이었다.
 
모세의 어눌한 입술과 함께 하신 하나님, 예레미야 입술에 말씀을 담아주신 하나님, 이사야에게 학자의 혀를 주신 하나님(사 50: 4) 에스겔과 사도요한에게 말씀의 두루마리와 작은 책을 먹여주신 하나님, 예수님께 가르치고 전할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전할 말씀을 주시고, 우리 입과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6. 아버지의 이름(요 17: 11)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 중 11절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여(Holy Father),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Keep them in Your name, the name which You have given to Me)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내게 주신 아버지이름으로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온 예수님자신을  거룩하게 살게 하셨으니 그 이름으로 제자들도 거룩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 악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제자들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전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은 제자들을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살도록 성별하실 분 만 아니라 제자들을 하나가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자(The Son of man)로 사람의 아들이 되신 예수님께 여섯 번째로 주신 것은 ‘하나님아버지 이름’이었다. 건물이나 가게, 자동차나 값비싼 보석에 값을 지불하면 등기서류에 구매자사인(Sign)과 함께 물건주인이 되고, 봉인서류에 왕이나 군주의 어인이 찍히면 누구도 변개할 수 없는 절대권위 문서가 되며, 은행에 돈은 구좌에 이름을 서명한 사람만 찾을 수 있듯,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것은 예수는 하나님이 보증하는 하나님의 절대소유, 하나님과 동등한 대행자, 예수만이 하나님의 보물창고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자인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예수께 주신 이름은 ⑴ 한없는 영광으로 가득 차 있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Glorious and fearful name; 신 28: 58, 대상 29: 13, 시 72: 19) ⑵ 인간생각으로 다 품을 수 없도록 광대하고 높은 이름(Great and the most high name; 수 7: 9, 삼상 12: 22, 대하 6: 32, 시 9: 2, 겔 36: 23) ⑶ 시간과 공간을 영원히 초월하고 하늘의 해와 같이 변하지 않는 장구하고 영원한 이름(Eternal name; 시 72: 17) ⑷ 하늘과 땅과 바다를 통치하며, 지상의 모든 일을 행하고 그것을 지어 성취하여 영광과 찬송을 누구에게 주거나 뺏기지 않는 만군의 여호와(The Lord of hosts; 삼상 17: 45, 대상 17: 24, 사 42: 8, 51: 15, 렘 33: 2, 암 4; 13, 5; 8, 9: 6) ⑸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허물로 더럽힌 이름까지도 스스로 거룩하게 하사 열국에게 거룩한 자이심을 알리시며 당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지존무상하며 영원하며 거룩한 이름(The high and Lofty One and Holy name; 사 57: 15, 겔 36; 21, 22, 39; 7, 25, 암 2: 7) ⑹ 자기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면 분노하시고 저주하시는 질투(Jealous; 출 34: 14, 20: 5, 34; 14, 민 25; 11, 신 4: 24, 수 24: 19) ⑺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으로 인간들이 대대로 기억해야 하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I AM That I AM, Jehovah; 출 3: 14-15, 9: 16, 15: 3 20: 7, 23; 21, fp 18: 21)였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이름 중에 여호와(Jehovah, 야훼)란 “영원한 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The Eternal), “스스로 계시는 분”(The self- existent) 그리고 “영원한 창조자”(Eternal Creator)란 의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자가 되신 예수님께 ‘여호와의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 야훼의 권세, 야훼의 능력, 야훼의 소유권을 모두 주셨다는 말씀이다. 성경에 기록된 16개의 여호와란 칭호(Title)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인자 예수님이 받은 권세들을 알아본다. 
 
① 창 2: 4의 야훼-엘로힘(Jehovah-Elohim)인 The Eternal Creator(“영원한 창조자”)이다 ② 창 15: 2, 8에 “주 여호와”로 기록된 아도나이 야훼(Adonai-Jehovah)
“우리를 통치하는 주권자”(The Lord our sovereign)와 “절대군주 야훼” “우리 주인 야훼”(Master Jehovah)이다 ③ 창 22: 8-14에서 “야훼가 미리 알고 준비 한다”는 뜻으로 기록된 야훼-이레(Jehovah-Jireh) ④ 출 17: 15에서 “야훼는 승리의 깃발” (The Lord our banner)이란 뜻으로 기록된 야훼-닛시(Jehovah-Nissi) ⑤ “야훼는 우리 질병 치료자”(The Lord our healer)란 야훼-로페카(Jehovah-Ropheka; 출 15: 26) ⑥ “야훼는 우리의 평강”(The Lord our peace)이란 야훼-샬롬(Jehovah- Shalom; 삿 6: 24) ⑦ 렘 23: 6, 33: 16에서 “여호와는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로 소개된 야훼 치드케누(Jehovah-Tsidkeenu) ⑧ “여호와는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는 분”(The Lord our sanctifier: 출 31; 13, 레위 20: 8, 21: 8, 22: 9, 32, 겔 20: 12)이란 뜻의 야훼-메카디쉬켐(Jehovah-Mekaddishkem)이니 구약의 야훼하나님처럼 예수도 사람들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해주는 분이란 뜻이다.
  
⑨ “만군(萬軍)의 여호와”(The Lord of hosts)란 의미의 야훼-사보아드(Jehovah- Saboath) 삼상 1: 3을 중심해 성경엔 만군의 여호와가 281번이나 기록됐다 ⑩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The Lord is present)는 뜻의 야훼-샴마(Jehovah- Shammah; 겔 48: 35)이다. 하나님이 그 이름을 주신대로 예수님도 세상 끝날 까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 ⑪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지존하신 하나님”(The Lord  most high; 시 7: 17, 47: 2, 97: 9)의 야훼-엘룐(Jehovah-Elyon)이다 ⑫ “여호와는 나의 목자”(The Lord my shepherd; 시 23: 1)이신 야훼-로히(Jehovah-Rohi) ⑬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The Lord our Maker; 시 95: 6)란 의미의 야훼-호세누 (Jehovah-Hoseenu) ⑭ ”여호와 우리 하나님”(The Lord our God: 시 99: 5, 8, 9)이란 의미의 야훼-엘로헤누(Jehovah-Eloheenu) ⑮ 출 20: 2, 5, 7에서 기록한 “여호와, 너의 하나님”(The Lord thy God)의 야훼-엘로헤카(Jehovah-Eloheka) ⑯ 선지자 스가랴가 고백하며 당당하게 불렀던 “나의 하나님, 여호와”(The Lord my God; 슥 14: 5)인 야훼-엘로하이(Jehovah-Elohay)이다. 
 
이 모든 이름들이 바로 성탄절에 인자로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름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당하고 자신 있게 외치고 선포하며 말씀하기를 “예수이름으로, 내 이름으로 귀신을 대적하고 쫓아내라”(막 9: 38, 39, 16: 17) “내 이름으로 너희는 죄 사함을 받았다!”(눅 24: 47, 행 16: 43, 요일 2: 12)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 이름으로 응답을 받는다”(요 14: 13, 14, 15: 16, 16: 23) “내 이름으로 성령을 주시리라”(요 14: 26)고 했다. 어느 누가 감히 이런 선언을 할 수 있겠는가? 40년 동안 광야교회 300만 성도를 목회한 모세도, 며칠 만에 니느웨 60만 명을 구원시킨 요나도, 능력 있는 설교로 하루에 3천, 5천 명을 구원한 베드로도, 1000년의 찬란한 유럽문명의 복음을 들고 간 사도바울도 그리고 오늘날 10억, 12억, 17억의 추종자를 거느린 불교 가톨릭 무슬림의 종사(宗師)들도 감히 이런 말을 못했고 할 수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할 자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No man has ascended up 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요 3: 13)고 선포함으로 에녹(창 5: 24, 히 11: 5)과 엘리야(왕하 2: 11)와 바울(고후 12: 1-3)과 요한(계 4: 1)은 하나님의 힘에 이끌려 하늘에 올라갔지만, 예수자신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갔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자신이 부활승천으로 하늘에 올라갈 것을 예고한 말씀이지만 
 
‘올라갔다’(Ascended, 아나바이노: “위로 올라가다”, “상승하다”)는 과거분사 형 단어 시제상의 뉘앙스(Nuance: “같은 종류의 사물 사이에 미묘한 차이”)는 외국주재 대사가 본국의 요청이나 긴급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본국을 방문하듯 지상에 계신 예수께서 자주 하늘을 왕래하셨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데(Elwood Scott이 저술한 Paradise를 보면, 40일 동안 천국을 다녀온 세네카 쏘디는 실제로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여러 번 하늘을 다녀왔다고 기록했다) 그렇게 해석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받으신 예수님’께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거나 이상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당연한 일이며 상식일 수 있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성탄절에 예수님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신비와 특권에 영광을 돌린다.
 
   7.  하나님의 영광(요 17: 5, 22, 24)
 
일곱 번째로 하나님께서 인자가 된 예수님께 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이것은 창세전에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했던 영광과 예수께서 지상사역을 모두 마친 후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함께 누릴 영광 모두를 포함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삼년 반에 많은 기적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영광을 나타냈고(마 9: 8, 막 2; 12, 눅 5: 26) 갈릴리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 만드는 기적으로(요 2; 11) 죽었던 나인 성의 과부 아들(눅 7; 16)과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기적으로(요 11; 4, 40) 귀신들려 18년 동안 꼽추가 됐던 여인을 고쳐주므로(눅 13; 13) 문둥병을 고쳐주므로(눅 17: 15, 18) 벙어리와 불구자와 절뚝발이와 소경을 고쳐주심으로(마 15: 31) 그리고 여리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므로(눅 18: 43)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동시에 성소 휘장이 찢어지게 하시는 것으로(눅 23: 47)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 올라가심으로(눅 24: 26) 그리고 장차 큰 영광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마 24; 30, 25; 31, 막 13; 26, 눅 9: 26, 21: 27)과 천년왕국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으로(마 19: 28)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영광은 극치를 이룰 것이고,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 영원토록 사는 것으로 하늘의 영광도 이뤄지므로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영광은 모두 성취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로 시작된 기독교는 영광의 종교이다. 예수님의 영광이 우리 모두의 영광이 되기를 축원한다.
 
   8. 심판하는 권세(요 5: 19-29)
 
본문 27절을 본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심으로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인자됨을 인하여, 사람의 아들이 된 것 때문에(Because He is the Son of Man-Because He became the Son of Man) 하나님이 예수께 심판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선언이다.
 
장차 지구촌 사람들이 당할 심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그리스도의 칠년 대환난이 끝나면서 예수께서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민족 심판이고(마 25: 31-46) 다른 하나는 천년왕국이 끝나면서 불과 유황으로 불타는 지옥으로 던져질 모든 악인들이 바다와 육지와 사망과 음부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들이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따라 심판을 받는 최후심판이다. 
 
민족(民族) 심판은 대환난 때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교황청의 가톨릭과 야합하여 전 세계에서 유일신을 믿는 유태인과 기독교인을 박해하고 학살할 때에 그들 편에 서서 성도들을 박해한 자들과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쉰들러와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처럼 지구촌에서 핍박받는 유태인들과 성도들을 보호해준 사람들을 양의 민족과 염소의 민족으로 분류해 심판하는 심판이다. 
 
장차 지상에서(On earth) 살아있는 민족들(Living nations)을 심판할 민족 심판에서는 구원받을 자도 있고 멸망당할 자도 있으며, 지옥에 갈 자도 있고 천국에 갈 자도 있으며, 지상에 계속 살 수 있는 자들이 결정되고, 그 중엔 영생에 들어갈 자들도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In heaven) 죽은 악인들(The wicked dead)만 받는 최후심판에서는 구원받을 자가 한 사람도 없고(None saved) 모든 자들이 멸망을 당하며(All destroyed)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신했던 유태인과 이방인 모두가 포함되고(Jews and Gentiles) 모두 지옥으로 들어가며(All go to hell) 이 심판이 끝나면 아무도 지상에 살아남는 자가 없게 되며(None here will ever live on earth again) 이 심판에서 영생에 들어갈 자는 아무도 없는(None enter eternal life) 인류의 마지막 최후심판이다.
 
성경대로 하나님은 성탄절로 사람의 아들 되시는 예수께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성경엔 민족 심판의 Judge는 예수님이고(마 25; 31) 최후 백보좌 심판의 Judge는 하나님으로 기록되므로(계 20: 11) 학자들의 견해가 ‘하나님 설’과 ‘예수님 설’로 나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심판의 권세를 주셨다는 하나님 말씀이 틀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천년왕국이 끝나면서 있게 될 인류의 최후심판인 백 보좌 심판(계시록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셨고(계 4: 2, 9, 5: 1, 6: 16, 7: 1-9, 19: 4, 21: 5) 단 7: 9-10에서도 최후심판자는 하나님으로 기술됐다)은 주경학자 Finis J. Dake의 해석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성부하나님은 선포하시고 성자하나님은 이것을 집행하실 것”(행 10: 42, 17: 31, 롬 2: 16)이다. 그래서 인류의 최후심판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 Judge가 되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나신 성탄절(聖誕節)은 측량할 수 없는 깊고 높고 넓은 오묘한 비밀이 있다. 하나님은 인자가 되신 예수님께 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 ⑵ 상천하지와 저 바다의 우주만물 ⑶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수께 오는 모든 성도 ⑷ 16가지의 하나님의 일 ⑸ 레마의 하나님말씀 ⑹ 일곱 가지의 하나님의 이름 ⑺ 하나님의 영광 ⑻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백악관 앞 크리스마스트리에 달아놓은 휘황찬란한 수 만개 전등을 구경하거나 일 년에 한번 있는 교회의 중요행사로 지킬 날 정도가 아니다.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려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동방박사들처럼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치며 경배하는 날이 돼야 하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를 합창하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던 천군천사들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기뻐하며 찬양하는 날이 돼야 한다. 
 
바울사도는 하늘의 하나님이 비천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을 “하나님이 자기를 비어(Emptied Himself) 종의 형체를 가진 사건,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사건”이라 선포하며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따 아래 음부에 있는 자들까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빌 2:9-10)고 했다.
 
2014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는 성도여러분, 성탄절과 마지막 세모에 우리자신을 다 비우고 죽음을 사랑할 정도까지 하나님과 예수님께 복종하여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축복으로 2015년을 맞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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