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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2월13일 21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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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를 건지리라

        내가 저를 건지리라    시 91: 14       12. 14. 14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를 글로-컬(Glo-cal)시대라고 한다. 글로-컬이란 내가 사는 작은 세상과 지구촌 모든 나라들의 상황과 문화가 서로 얽히고설켜 단시간에 소통(疏通)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16-7세기 스페인, 에스파냐식민지였던 중남미아메리카에 에스파냐국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데 3개월이 걸렸다. 그러다가 18세기엔 더 빨라져서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에서 죽었을 때, 그 소식이 영국 런던까지 전해지는 데는 2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고, 1799년 조지 워싱턴이 죽었을 때는 7일 만에 뉴욕에 그 소식이 전해졌고,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했을 때, 미국인 68%가 30분 안에 그 소식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얼마 살지 않는 오지 산골구석이나 무인도 같은 외딴 섬에 틀어박혀 살아도 같은 시간대에 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글로-컬 시대다. 그래서 세계는 기업경영세계화 전략을 부르짖는 시대가 됐고, 기독교에서도 선교의 글로-컬화(Glocalization) 전략으로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선교하는 인-바운드(In-bound)선교와 다른 나라로 나가서 외국인을 선교하는 Out-bound(아웃바운드)선교까지 여러 가지 전략으로 선교하는 글로-컬 시대다.


우리 조상들은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사암도인의 침술론(鍼術論) 등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삼대의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삼대의서는 서민들이 쉽게 읽을 수도 없었고, 그 내용을 소화해 내지 못해서 일반인들이 많은 혜택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 글로-컬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이해가 어렵다는 삼대의서도 쉽게 해석된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됐고, 삼대의서 외에도 더 많은 의서들을 통해 건강의 원리들을 배우고 적용할 수 있게 돼, 편리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글로-컬 시대로 손쉽게 얻게 된 ‘조상들의 건강지혜 십계명’을 소개한다.

사람이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려면 ⑴ 소육다채(所肉多菜)이다. ‘채소는 많이 먹고 고기는 적게 먹어라’는 말이다 ⑵ 소식다저(小食多咀), ‘(위의 70%만 채우고)음식은 적게 먹고 씹는 것은 많이 하라’이다 ⑶ ‘곡식은 많이 먹고 설탕(단 것)은 적게 먹어라’는 소당다곡(小糖多穀) ⑷ ‘소금은 적게 먹고 식초는 많이 먹어라’는 소염다초(小鹽多醋)


의대를 졸업한 자아버스박사는 버몬트 주에서 병원개업을 했는데 손님이 적어 고민하던 중 그 이유를 연구하다가 버몬트토착민들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사과초에 꿀을 타먹고 병을 고치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사과초를 연구하다가 식초는 만성피로를 없애고 박테리아를 소멸하며 만성두통과 관절염에 좋고 미용에도 뛰어난 효과를 주는 것을 발견하므로 사과초로 세계적인 의사가 됐는데, 그래서 그때부터 그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사과초에 벌꿀을 타서 마시게 하므로 만성피로증과 동맥경화, 비만증, 만성두통, 고혈압, 현기증, 감기, 설사, 괴혈병(壞血病) 등 각종의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므로 유명한 의사가 됐다. 이렇게 식초는 건강에 좋으니 소염다초를 시행할 것이다.


⑸ ‘적게 분노하고 많이 웃는’ 소노다소(小怒多笑)이다. 사람이 기쁘게 웃을 때,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체액순환이 원활해져 건강해지지만 분노하거나 화를 내면 체액순환통로가 마비돼 병에 걸린다.

⑹ ‘괴로워하는 번민이나 염려고민은 적게 하고 잠을 많이 자라’는 소번다면(所煩多眠)이다. 잠을 많이 자라는 말은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어라’, ‘이불속에 오래 있어라’는 말이 아니라 ‘단잠을 자라’, ‘숙면을 취하라’는 말이다. 깊은 숙면(熟眠)의 단잠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For so He gives His beloved sleep; 시 127: 2)는 약속의 말씀처럼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은혜로 충만할 때만 가능하다.


⑺ ‘차는 적게 타고 걷기는 많이 하라’의 소차다보(小車多步)이다. 사람의 건강은 혈액순환, 체액순환, 체열순환이 원활한데 달려있다. 그런데 많이 걸으면 걷는 동안에 손가락운동을 통해 혈액순환이 촉진되고, 발가락운동을 통해 체액순환이 잘 되며, 머리의 움직임을 통해 몸의 열인 체열순환이 잘 돼 건강에 좋다.

⑻ ‘옷은 적게 입고 목욕은 자주하라’는 소의다욕(小衣多浴)이다. 옷을 많이 껴입으면 땀구멍에서 분비된 땀이 피부에서 말라 땀구멍을 막음으로 몸 안에 필요한 산소를 호흡해서 들이키는데 지장을 주지만 목욕은 막힌 땀구멍을 깨끗하게 해주고 산소호흡을 도와주므로 건강에 좋다. ⑼ ‘음식을 탐하지 말고 배설이 잘되게 하라’는 소욕다설(小欲多泄) ⑽ ‘말은 적게 하고 휴식은 많이 취하라’는 소언다휴(小言多休)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건강십계를 잘 지키고, 글로-컬 시대의 빠른 정보를 통해 많은 건강비결을 알고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도적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는 마귀’에게 건강을 도적질 당하고 쉽게 죽임을 당하며 행복을 도적질 당하므로 파괴되는 개인과 가정이 얼마며, 죄의 유혹에 빠져 천길만길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집집마다 “하나님, 나를 건져 주옵소서, 우리 가정을 건져 주옵소서!”라는 절박한 소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오늘 나는 “내가 너를 건지리라”(I will deliver you)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눈다.


                             내가 저를 건지리라

   1. 나를 건져주시는 하나님


오늘 육체의 질병고통에서, 마음의 고민에서, 정신적방황과 갈등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영적인 방황에서 당신을 건져줄 자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자기를 낳아주고 자기를 향한 사랑이 무조건적이며 인생경험이 풍부한 부모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생명처럼 사랑해주고 어떤 부탁이든 다 들어주는 믿음직한 나의 남편, 나의 아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막강한 권세로 나의 든든한 백(Back)과 후견인이 돼주는 태산 같은 삼촌,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해결해주는 나의 변호사, 병이 생길 때마다 자신과 가정의 몸을 지켜주는 Family Doctor, 내 고통에 항상 동참해주는 가까운 친구, 어려울 때마다 나에게 조언해주는 나의 맨토, 또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땀 흘려 모아 은행창고에 저금된 죽을 때까지 써도 남을 많은 돈과 아무리 어려운 불경기가 와도 장래가 보장되는 든든한 사업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당신이 믿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음부와 사망의 입으로 들어가 죽음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절망의 진흙탕에서, 한숨과 탄식의 늪에서 당신을 건져줄 수 있는가? 우리는 6천년 인류역사에서 죄책감의 절망과 무의미의 절망과 허무의 절망에서 아무도 인간을 건져준 사람이 없었던 것을 경험해서 안다. 그렇다. 한 때 세상을 뒤흔들며 정복했던 영웅호걸도, 지구촌의 수백수천만과 수억이 추앙하며 추종하는 성현과 종교지도자도,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사람까지 살릴 정도로 뛰어났던 의사들도 그리고 달에 인간의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도 이웃은 차치하고 자신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성경은 “너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Stop regarding man-Cease ye from man, whose breath of life is in his nostrils. For why should he be esteemed?; 사 2: 22)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지니(Do not trust in princes. In mortal man, in whom there is no salvation)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의 도모가 소멸(消滅)하리로다”(His breath goes forth-His spirit departs, he returns to his earth. In that very day his thought perish; 시 146: 3-4)


그렇다. 직경 1인치도 안 되는 작은 콧구멍으로 하나님이 공급해주는 산소를 호흡해야만 생명이 유지되는 존재가 인간이고, 31억 개의 분자 중 단 1개 유전인자에 이상이 생겨도 한순간에 망해버리는 연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렇게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인간을 당신이 믿고 의지할지라도 인간은 당신을 건져줄 자는 아니다.


오직 만물의 창조자요 당신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건지시는 자며, 건지실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성경 사사기 3: 9, 15절은 이스라엘이 메소포타미아의 Cushan-rishathaim(구산 리사다임)폭정에서 압박과 서러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사사 옷니엘과 왼손잡이 사사장군 에훗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건졌다고 했고, 성군 다윗은 삼하 22: 2, 시 18: 2, 40: 17, 70: 5, 144: 2절을 통해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요 나의 요새요, 나를 건지시는 자요(The Lord is my deliverer)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라”며 5번이나 자기신앙을 고백하며 노래하고 찬양했으며, 신 32: 39, 행 7: 35, 롬 11: 26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건지시는 자이심을 기록했다.


이렇게 성경은 10번이나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를 건지실 자, Deliverer, 위기와 위험에서 구출해주는 구조자, 악마를 퇴출해주는 구원자라고 했다. 지구촌 역사에 어떤 신이나 어떤 사람이 ‘나는 너를 건질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담대하게 선언했는가? 아무도 없다. 지구상 오대양육대주에 나라와 족속들이 섬기는 수억의 하나님들이 존재하고 수십, 수백억의 신들이 있지만 만물의 창조주 야훼하나님, 그분 외에는 아무도 ‘나는 너를 건져주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신도 없고 사람도 없다. 모든 환경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실 때


하나님의 건져주심은 전천후 구원사건이다. 성경엔 하나님이 사람을 건져주신다는 Deliver란 말이 536번이 기록됐다. 그만큼 하나님이 사람을 건져주시는 삶의 환경과 사건은 많고 다양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는 데는 어떤 제약이 없다. 어떤 문제, 어떤 사건, 어떤 환경에서도 건져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실 때 나의 삶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가?


   ⑴ 위기와 어려움에서 건져주심


창 48: 16에서 야곱은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이라 고백했고, 삼하 4; 9에서 다윗은 “내 생명을 여러 환난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했으며, 단 3: 17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죽음의 풀무불 속에서 건지셨음을 기록했고, 행 7: 10에서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모든 환난에서 건져 내사 어려움을 이기고 애굽의 총리로 성공케 하셨음을 기록했다. 오늘도 하나님의 건져주심은 우리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생명을 건져주시고, 피할 수 없는 사고현장에서도 건져서 보호해주시며, 모든 환난과 역경에서도 건져주신다.


친구 목사가 수원에서 30분 후에 설교가 있어서 총알택시를 탔는데, 서울에서 수원까지 한 시간거리를 23분 만에 도착할 정도로 총알처럼 달리다가 목표지점 도착 바로 앞에서 13m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목사는 경황이 없어서 교회로 달려가 부흥집회를 마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고로 옆에 탔던 승객 한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운전사는 갈비뼈들이 모두 부서지는 중상을 당했으며, 또 한 사람은 두 다리가 부러졌다. 그날 집회를 마치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심방했더니 그가 “목사님 때문에 살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는 간증을 들었는데, 여러분도 그런 간증 한두 가지는 갖고 있어 감사하겠지만 내게도 하나님이 위태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나를 건져주신 축복간증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서너 가지만 소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①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가방을 어깨에 둘러맨 채, 달리는 기차 난간을 잡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강교 위를 가다가 깜빡 졸았는데, 졸다가 다리가 꺾이면서 기차에서 철교 위로 떨어지는 순간 하나님께서 난간을 붙잡게 하여 살아난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간증이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사방이 꽉 막힌 방에 갇힌 것처럼 현기증이 나고, 내 정신이 분열되려는 맨붕의 Panic 상태가 될 정도며,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이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건져주지 않았으면 나는 ‘기차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은 소년’이란 신문기사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존재가 됐을 것이다. 그때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② 1984년 가을,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휴스턴까지 18시간을 운전해 갔다가 다시 18시간을 운전해 애틀랜타로 돌아오던 때에 새벽 2-3시, 알라바마 주 버밍햄을 통과할 때, 도로에 아무 차도 없어서 긴장이 풀어져 졸면서 시속 70-80마일을 달리다가 갑자기 나보다 더 빨리 내 옆을 주행하던 차를 추돌한 사건에서 보호하여 건져주신 기적이다. 이것도 내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인데 상식적으로 그 정도 속력에서 차들이 부딪히면 (차들이 튕겨나가거나 차들이 도로에서 몇 바퀴를 굴러야 하는)대형사고가 나야하는데 시속 70-80마일의 빠른 속도에서 4m이상 되는 차들이 1-2cm(1인치) 간격을 유지하며 달리다가 찰나순간에 부딪쳤다가 떨어진다는 것은 기네스북에나 기록될 운전 실력 그 이상의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사고 후 집에 와서 살펴보니 Side mirror에 미세한 Scratch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사고현장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③ 1992년 겨울 오후 4-5시의 러시아워, 하루 종일 쏟아지는 폭설로 95번 고속도로가 마비될 정도일 때, 여목사 두 분과 볼티모어로 심방을 가다가 내 차가 도로빙판에서 미끄러져 불가항력으로 맞은 편 3차선까지 20-30m를 대각선으로 썰매처럼 밀려서 넘어가는데 30-40m 뒤에선 대형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앞에는 수많은 차들이 밀려오자, 그것을 보고 위기를 느낀 두 분 여목사는 “주여, 살려 주세요” 하면서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양방에서 총알처럼 달려오는 자동차 홍수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속수무책인 채로 생명을 하나님께 맡긴 나는 혼자 운전대를 잡고 내가 달리던 속도로 미끄러져 밀려가 맞은 편 Shoulder Rail에 부딪히면서 멈춰 섰던 기적이다.

그날 Rush Hour에 ‘95번 고속도로에서 수십 대 차량 추돌사고로 한국인 목사 세 사람이 사망함’이란 쇼킹한 뉴스에서 홍수처럼 밀려오는 그 많은 차들이 나를 피해 간 것은 하나님이 나를 건지신 기적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건지시는 기적은 한 가지 위기상황에서 보호해주시는 단순한 사건만이 아니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얼 키고 설 킨 복잡한 문제,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몇 년에 걸쳐 해결돼야 하는 문제 그리고 육신의 질병문제에서 부부의 가정문제 사업의 문제까지 모든 문제에서 건져주시는 기적이다. 하나님의 건져주시는 축복이 오늘 예배성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한다.


  ⑵ 사람들에게서 건져주심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시되 사람들에게서 건져주신다. ① 시 140: 1, 살후 3: 2에서는 악인들에게서 건져주신다고 했고 ② 삼상 12; 10, 시 136: 24, 눅 1: 74에서는 원수와 대적들에게서 건져주신다고 했으며 ③ 에스라 8: 31에서는 나를 죽이려고 내 앞에 매복해 있는 자들과 내 길을 훼방하는 자들에게서 건져주신다고 했고 ④ 시 31: 15에서는 나를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⑤ 삼하 22: 18에서는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⑥ 겔 34: 27에서는 나를 종 삼으려는 자에게서 ⑦ 시 35: 10에서는 나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⑧ 시 43: 1에서는 불의한 자에게서 ⑨ 잠 2:12에서는 패역을 말하는 자 ⑩ 삼하 22: 44, 시 18: 43에서는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열방의 으뜸을 삼아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게 하신다고 했고 ⑪시 144: 7에서는 이방인의 손에서 건져주신다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시되 성난 사자처럼 앞에서 내게 달려드는 사람들과 뒤에서 음흉한 계교를 꾸미고 나를 훼방하며 망하게 하려는 사람에게서 건지시고, 천사처럼 웃으면서 접근해 나를 죽이려는 자들에게서 건지시며, 궤사한 사람들에게서, 나보다 실력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경쟁자에게서, 그리고 악한 말로 나를 씹는 자들에게서 건져주신다. 사람들에게서 건져주시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⑶ 흑암의 영적세력에서의 건지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적존재인 사람은 ① 허물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 ② 중생을 통해 영혼이 살아났지만 영적으로 어린아이 상태인 사람 ③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으로 나눌 수가 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영역 밖에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없지만 영적으로 어린아이나 장성한 사람에게는 구원받은 사람마다 하나님이 각자의 천사들을 보내 보호해주시고 성령으로 지켜주시는데, 어린아이들에게 부모의 관심이 집중되듯 하나님도 신앙이 어린 성도들에겐 자상한 보살핌을 주시지만,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들에겐 스스로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능 있는 성도가 되길 소원하신다.


그래서 자녀를 강한 자녀로 양육하는 부모 중에는 자녀들을 ‘마마보이’의 나약한 아이들로 키우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강자로 키우기 위해,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 고생을 당하게 하기도하고, 구두 닦기 Shoeshine Boy가 되게 하기도 하며, 신문배달이나 Homeless의 밑바닥 생활, 그리고 회사 말단직원 생활부터 시작하게 하는 부모도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용사를 만드시기 위해 어떤 성도에겐 남들보다 의도적으로 더 많은 시련과 연단을 주어서 강한 성도, 영적실력이 있는 성도, 강한 영력의 성도가 되게 하신다. 그래서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고난의 그 끝을 맛보았던 욥은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다”(Many such decrees-Many such things-are with Him; “하나님께는 이런 일들, 하나님의 뜻으로 결정된 이러한 일들이 많이 있다”; 욥 23: 14)고 고백했다.

이 말은 ‘자기(욥)처럼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유 없는 고통을 내리신다, 이유 없는 고통이 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욥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의인들의 고난을 위해 그런 일을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이 이런 극단적인 고난을 당할 때, 흑암세력에게 공격당하는 영적고통에서 건져주므로 고난정복자로 만드신다.


그래서 다윗은 시 33: 19, 56: 13에서 “주께서 사망과 죽음의 권세에서 건지셨다”고 했고, 시 51: 14에서는 피 흘린 죄, 사람을 죽인 살인죄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흑암세력에서 건져주시기를 간구”했으며, 본편 3절에서 시편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져주시기를 간구했고, 시 116: 8에서는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했으며, 시 89: 48에서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질 것인가?”를 호소했다. 그만큼 나와 맞서 싸우는 흑암의 영적세력이 강하기에 신앙의 선배들은 흑암세력에게서 건져주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성령을 받은 후 은혜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마귀는 나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무서운 시련들을 많이 주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잠을 자다보면 발끝에서부터 몸에 마비가 시작돼 마비증세가 머리로 올라오는데 가슴까지 올 때면 Nightmare(가위눌림)로 잠이 깨고, 잠이 깬 후 마비된 부분을 손으로 만지며 마사지를 하면 다시 살아나는 희한한 병으로 고생을 했었다. 내가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고 성경을 많이 읽으면 그런 일이 적어지고 신앙이 약해지면 몸의 마비와 가위눌림 현상이 자주 일어났었다.


우리 집은 대대로 우상숭배가 많은 귀신소굴이었다. 할머니는 부뚜막이나 장독대에 물을 떠 놓고 정성을 드리며 귀신을 섬겼고, 어머니는 일 년에 몇 차례씩 무당을 데려다가 굿을 하는 무당 마니아(Mania)였으며, 심지어는 무당에게 나를 양아들로 줄 정도였으니 귀신들이 예수 믿고 성령 받아 목사가 되겠다는 나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을 밤마다 각종 귀신들과 싸우며 죽음의 위협을 받는 고통을 당했는데, 이렇게 가문에서 혼자 예수 믿는 내게는 영적 싸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학교를 들어가선 더 큰 귀신과의 전쟁을 겪었고 개척교회시절엔 이제까지 겪었던 영적전쟁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흑암세력과의 영적전쟁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견디기 힘든 고난과 시련과 연단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시지 않고 어려운 위기에서 건져주셨다.


한 손에는 라면상자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소백산 두메산골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한지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 김치도 없이 라면만으로 점심을 먹은 후, 책상다리를 한 채 베개를 양 무릎에 걸쳐놓고 성경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갑자기 내 앞에 나보다 열배 이상이나 큰 거인이 삼각 팬츠만 입은 채 나타나 “나는 너와 싸우기 위해 일본에서 건너온 귀신이라”고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나를 덮쳐누른다. 그때 나는 그의 배에 덮여 눌려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고, 그의 기운은 얼마나 센지...그의 강한 힘과 몸무게에 눌려 옴짝달싹도 못한 나는 질식해 죽을 정도였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는 통나무 같은 팔과 무쇠 같은 손아귀 힘으로 내 목을 움켜쥐고 조른다.


나는 호흡이 서서히 중단되면서 의식의 끈만을 간신이 붙잡은 채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보다가 갑자기 나의 기억 저편에서부터 아주 미세하게 ‘예수님의 이름’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찰나순간에 온 몸과 마음에 강한 힘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 두 손으로 내 목을 움켜쥐고 온 몸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는 일본귀신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세 번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떠나가라”고 명령하자 놀란 귀신이 나를 놓고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도망을 가는데, 놀랍게도 내 몸은 방안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내 영이 도망가는 귀신을 쫓아서 부엌까지 달려갔다. 부엌으로 도망간 귀신은 오후 햇살이 내려 쪼이는 부엌 한 가운데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졌는데 50여 년 전의 그 기억, 오후 햇살 속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부엌바닥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던 부엌먼지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 시골개척교회 짧은 7년 동안에 있었던 귀신소굴 같았던 소백산에서의 수많은 영적전투(하나님은 나의 영을 이끌어 끝이 안 보이도록 수가 많은 마귀소굴에 들어가게 하셔서 수만의 마귀들과 싸워 각종 귀신들을 격퇴하는 통쾌한 경험을 여러 번 하게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양손을 들고 방언기도로 마귀들을 대적했는데, 나의 두 손과 입에서 파란 불이 장풍처럼 쏟아져 나가 마귀들을 불태워 죽이는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40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미국생활에서의 수많은 고난과 시련의 검산도곡(劍山刀谷)을 헤쳐 나온 흑암세력과의 영적전투 중에서, 특히 여섯 달 동안의 지옥훈련 같은 각종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나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하시고 30-40명의 천사들이 나의 기도를 받아 적게 하시는 계시를 보여주신 2000년 6월 30일의 신비체험과 그 이후의 축복은 모두 하나님이 나를 흑암세력에서 건져주신 기적의 역사들이다.

지금까지 나를 흑암세력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장차 나를 흑암세력에서 건져주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모든 흑암세력에서 건져주는 축복들을 주시기를 축원한다.


   ⑷ 사람들에게 나를 알게 하시는 것


다윗은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하기를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존하사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삼하 22: 44)라고 했다. 하나님이 나를 모든 환경에서 건져주심으로 나를 보존하시고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Thou hast kept me as head of the nations) 내가 알지 못하는 열방이 나를 섬길 것이라(A people whom I have not known serve me)는 고백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면, 당신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좋게 알려지고, 자랑스럽게 알려지며, 존경스럽게 알려지고, 칭송하도록 알려진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나를 섬기는 축복이 있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 아이들 대학졸업식에 참석했다가 친구 목사님들의 축하파티로 식사대접을 받고 났는데, 식당주인 마담이 나를 보더니 Godfather(대부) 같다고 한다. 그때 목사처럼 안 보이고 대부같이 보인 것이 몸 둘 곳이 없도록 죄송했는데 그때뿐 아니라 목회 30여 년이 될 때까지, 부흥회를 가거나 중요한 모임에 초대를 받으면, 나를 목사보다는 유도선수나 레슬러로 보는 것이 늘 송구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다가 1991년 7월 7일, 엘리콧 시티의 어느 성도가 “목사님의 설교 테잎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살리듯 죽어가던 내 영혼을 살려주신 것을 감사하여 전화를 했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생전 처음 보는 택시운전기사가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목사님’으로 불러주고, 작업복에 고무신을 신고 간 나를 미용실의 미용사가 목사로 알아주며, 동대문시장의 장사군도 목사님으로 불러주게 돼 ‘이제야 목사 같이 보이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시면, 사람들이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그 장로, 그 권사, 그 집사 좋은 일군이래, 그분은 그 먼 곳에서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데, 그분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업가래, 그는 워싱턴에서 십일조를 제일 많이 내는 성도 중 한분이래, 그 많은 교회시험 중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그분은 진짜 하나님을 믿는 장로 권사 집사며 목사님의 오른 팔이야...’등등의 소문이 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알려진다.


하나님이 건져주심으로 여러 가지 이기기 힘든 극난의 위기와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고, 나를 해하려는 사람들의 온갖 방해와 음해, 훼방과 궤휼에서 건짐을 받으며, 영적인 흑암세력에게서 건짐을 받아 자유 함을 얻으며, 사람들에게도 좋게 알려지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3. 하나님이 사람을 건지시는 방법


그러면 하나님은 성도들을 어떻게 건지시는가?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시는 방법은?


   ⑴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셔서 건지신다


시편저자는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 사 위경(危境)에서 건지신다”(He sent His word and healed them. And delivered them from their destruction; 시 107: 20)고 했다.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물에 빠진 사람에겐 헬리콥터의 사다리나 밧줄로 건지고, Emergency 환자는 응급처치와 수술로 고치고 건지며, 야구에서 주자 만루의 위기 때는 믿을 수 있는 구원투수로 게임을 건지고, 집에 화재가 생겼을 때는 소방대원들이 건져주듯 하나님은 성도들을 위기에서 건지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셔서 건지신다.


당신이 성경을 읽다가 강한 깨달음이 올 때, 그것이 당신을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 등골이 오싹하고 솜털이 일어서며 소름이 끼치는 것도, 그리고 성경을 공부할 때 강한 도전을 받거나 말씀이 화살처럼 마음에 박히는 것도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고 고치시는 손길이다. 그때 당신이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건지시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만일 그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거나 거절하면 하나님이 고치시고 건지시려는 능력은 사라진다. 닭의 울음소리를 통해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환경에서 건짐을 받는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⑵ 꿈을 통해서 건지신다(욥 33: 19-33)


성경엔 꿈(Dream)이란 말이 122번이 언급됐고, 야곱과 요셉, 솔로몬과 느부갓네살, 예레미야와 다니엘, 동방박사와 빌라도의 아내 Claudia Procula(클라우디아 프로큘라)등 꿈꾼 사람 15명과 그들이 꾼 꿈 35개가 소개됐지만 그들의 꿈은 한 개인에서 한 나라의 운명 그리고 지구촌 운명이 결정될 정도로 중요한 꿈들이었다.


나의 49년 목회와 70여 년 삶의 여정도 꿈을 통한 계시역사가 60%나 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는 네 가지 이유(욥 33: 17-18)는 ① 사람으로 자기 계획과 꾀를 버리게 하기 위해서(He may withdraw man from his purpose) ②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고(And hide pride from man) ③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He keeps back his soul from the pit) ④ 그 생명을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기 위해서(And his life from perishing by the sword)라고 했다. 당신을 건지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꿈을 잘 분별해 축복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⑶ 하나님의 직접개입으로 건지신다(단 6: 22)


결박당한 채, 풀무불 속에 던져진 히브리 세 청년과 굶주린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 그리고 감옥에 갇혔던 사도들(행 5: 17-19, 12: 7-9, 16: 26)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여 그들을 건져주신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급할 때는 급한 방법으로 직접 개입하여 우리를 건져주신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관심 가시권(可視圈) 안에 있는 존귀한 존재다.


   4. 하나님이 건져주시는 성도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건지는가? 하나님의 건짐을 받을 사람은 어떤 성도들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하나님은 아무나 건져주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건지는 성도가 따로 있다.


여러분이 새벽부터 밤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Two Job 세 잡까지 뛰면서 힘들게 일하고, 잠이 부족해 졸면서 운전하다가 티켓을 띠고 수많은 사고위험을 겪으면서 돈 벌어 적진성산으로 억척스럽게 은행에 저금하는 것은 이웃집 미국사람이나 가난한 히스패닉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 하나님도 하나님과 아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무조건 건져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무나 불쌍하다고 물에 빠진 자 건져주듯 건져주시지 않는다. 오늘 본문을 본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Because he has loved Me-Because he has set his love upon Me, therefore I will deliver him!) 하나님이 당신을 어려운 환경에서, 경제적 가정적 위기상황에서, 사방에서 당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흑암의 영적세력에서 건져주시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적당하게 사랑할 때가 아니다. 사랑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무방하거나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식의 적당한 사랑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이다.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한즉(Because he loves Me)의 히브리어 하솨크는 “그의 사랑으로 나를 맹공격 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인 사랑, 맹공격의 사랑, 생명 바치는 사랑, 무모하리만치 죽자 사자 달려드는 사랑을 가리킨다.


키도 작고 얼굴도 잘 생기지 못한 30세 넘은 노처녀가 현재 남편을 처음 보는 순간
‘바로 저 사람이다’라는 Feel이 꽂혀 사랑을 시작했다. 노처녀는 주일마다 2시간 거리를 운전해 예배를 참석에 목사님을 사랑했지만 미녀들이 넘쳐나는 교회에서 목사님 사랑을 받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서 목사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예 교회근처로 이사를 해, 주일 예배뿐 아니라 매일 새벽기도와 수요일, 금요예배까지 참석해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던 총각목사는 거의 날마다 만나는 처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목사가 공부 때문에 타주로 이사를 가므로 관계가 끝났다. 하지만 노처녀는 좋은 직장도 포기하고 목사가 공부하는 도시의 교회 근처로 이사를 갔고, 주일마다 교회에서 그를 만났다.


노처녀의 속셈을 모르는 총각목사는 타주에서 만난 노처녀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된다. 지금은 뉴욕에서 큰 목회를 하고 은퇴하신 원로목사님의 러브스토리이다. 사모님은 목회자 세미나에서 ‘사랑을 하려면 적극적으로 해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랑을 차지할 수 있다’며 그 간증을 했는데, 그렇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하나님의 관심을 끌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공격적인 사랑, 적극적인 사랑, 불퇴전의 죽자 사자의 사랑으로 하나님이 모든 환경에서 건져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수백 가지, 수천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말씀이 신 6: 1-9까지로, 그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지시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 지키는 것’(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e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ght; 5절)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지시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는 ① 네 앞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② 자기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③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④ 주일을 성수하라 ⑤ 네 영적부모와 육적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하나님의 것과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 ⑨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⑩ ‘사람이나 물건이나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의 열 가지 계명이다.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일로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세상 끝 날까지, 나 개인이 하나님 앞에 서는 끝 날과 지구 종말의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위험과 어려움과 영적저주의 환경에서 건져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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