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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2월01일 12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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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로 가는 철로] 성지의 소리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변에 놓인 신발들. 강변 노점상이 늘여놓은 중고신발들이 아니다. 여기서 나치에 의해 총살당한 유대인들이 남기고 간 것이다. 

11월 21일부터 30일까지 베를린, 드레스덴, 프라하, 비엔나,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길에 남겨진 안티 세미티즘(반유대주의)의 현장들을 돌아보며 숙연해 졌지만, 유독 아름다운 다뉴브 강변에 영원히 멈추어진 저들의 발걸음으로 인해 우리의 발걸음도 몹시 무거워지다.

드디어 10시간 걸리는 밤 열차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이동하는 날, 부다페스트는 추웠다.
 
나는 낡은 부다페스트 역에서 어둠 속으로 뻗어 있는 철로를 바라보았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우리의 밤열차 역시 6만 명의 헝가리 출신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실어 날랐던 열차들과 동일한 철로를 달릴 것이다.

로마 제국하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지만, 독일이 점령한 유럽의 철로들은 아우슈비츠로 향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왜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이 철로들을 폭격하고 끊어버리지 않았는가. 아우슈비츠에서만 100만 명의 유대인이 소각장의 연기로 사라졌다. 아우슈비츠로 들어오는 철로들을 끊었다면 최소한 사이클론 가스에 집단학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던 그 철로에 서서 나는 무수히 질문을 던졌다. 왜 철로들을 끊지 않았나? 

짐짝처럼 실려와 내려지는 즉시 가스실로 향하는 줄과 잠시 생명이 연장되는 강제노역의 줄, 
그 운명의 두 줄 사이로, 내 시선에 꽂히는 또 하나의 철로가 있었다. 역사를 이어오며 끊어지지 않은 그 철로는 안티 세미티즘(Anti- Semitism)이란 철로였다.

그토록 존경해 마지 않는 초대교회 교부들로부터 중세와 개혁교회의 아버지 마틴 루터(Martin Luther)를 거쳐 근대에 이르고 마침내 히틀러의 제 3제국에 이르기까지, 아니 어쩌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완전 단절되지 않은 철로, 안티 세미티즘(Anti- Semitism).

그 철로의 출발 역 이름은 '대체신학'(supersessionism)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연합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고 본질적으로 신(그리스도)을 죽인 패역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으며 교회(혹은 기독교인들)가 유대인들을 대신하여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참 이스라엘'이 되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이들이 세계를 떠도는 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버림받았다는 증거이며, 오직 하나님이 이들을 완전히 멸절시키지 않고 남겨 두신 이유는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은 저렇게 고통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함이다.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대 종착역에 이르기 전, 유대인들은 수많은 안티 세미티즘의 역들을 거치며 모욕당하고 핍박당하고 죽어 나갔다. 중요 역장들의 자리에는 교부들, 신학자들, 신부들, 수도원장들이 앉아 있었고, 마틴 루터의 유대인들에 대한 메세지는 나찌의 '유대인 문제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 to the Question of Jews)을 위한 신학적 근거로 이용당하였다.

"유대인들은 그 이름을 거룩한 유다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예수를 판 가롯 유다에서 따온 것이다...
가롯 유다라는 말은 돈을 의미한다...회당은 예수 님에게 이혼을 당했고 가롯 유다의 아내가 되었다"(제롬); "유대인들은 가인과 같은 자들이다. 가인으로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게 한 처벌로서 끝없이 방황해야 한다"(어거스틴);"회당의 유대인들은 마귀의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유대인들과 접촉하는 것은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기독교들이 회당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부인되는 곳이 없게 될 것이다. 회당은 불신의 장소이고 불경건의 집이며, 정신 이상자의 피난처이고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저주받은 곳이기 때문이다"(암부로쓰);
"하나님께서 버린 회당은 사창가와 위험한 절벽보다도 더 악한 것이며 또 도둑의 소굴보다 더 위험하고 더러운 야수들이 모인 곳이다",...그들은 탐욕주의자이고 마음이 무딘 자들이고 영혼이 세속적이고 육적인 자들로서,...약탈하는 자, 탐욕하는 자, 가난한 자들을 저버린 자, 도둑들, 무역에서 속이는 자들이다...돈을 위해서 어떤 것이라고 할 자들이며 심지어 (이를 위해) 하나님을 죽인 자들이다"(존 크리소스톰)
중세에 오면서 유대인들 기독교 어린아이의 피를 그들의 제의에 이용한다는 설, 성찬이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된다는 화체설이 나오면서 유대인들이 성체를 훼손한다는 모함, 유대인들은 돼지를 숭배하는 자들이며 돼지 젖을 빠는 자로 묘사(Judensau) 하는 등, 중세에 이르면서 기독교와 관련한 유대인들에 대한 모함과 핍박이 계속 이어진다.
 
정신적으로 구교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던 마르틴 루터 역시 유대인들에 대한 심한 혐오감을 표출하였다: "유대인들은 참으로 기독교로 개종할 수 없는 종자이다...그들은 추방되면서 1400년 동안 계속된 그들의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배우지 못했다...나는 유대인들을 개종시키고자 별로 애쓰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심장은 돌과 쇠처럼 딱딱합니다.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해서도 움직여질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혹독하게 처벌이 되어서 거리가 피로 흥건하고 그들의 죽은 시체가 수만이 아니라 수백만이 된다고 할지라도 이런 악마의 자식들을 개종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악마와 그들의 자손을 개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그런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루터가 그의 소책자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차마 이 글에서 소개하고 싶지 않다.
 
히틀러 정권이 유대인들을 게토에 가두고 황색별을 달게 한 것은 각각 3차(1179년), 4차(1215년) 라테란 공의회의 결정을 반복한 것이며, 루터의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The Jews and their Lies)』라는 책자에는 유대인의 제의살인을 담고 있으며 기독교인의 의무는 유대인을 살해하는 것이라고 선동했다.
그래서 줄리어스 스트라이커(Julius Streicher)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소에서도 당당할  있었을것이다:
"
만일 검찰이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The Jews and their Lies)』을 고려했다면 마틴 루터 박사께서는 아마도 오늘(1946 4 29이 피고인 석에 앉으셨을 것입니다『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마틴 루터 박사는 유대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고 우리가 그들의 회당을 불태우고 파괴해야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행동양식은 그의 정신세계에 의해 결정된다. 공동체의 행동양태는 집단의식 내지 집단 문화로 특징 지워진다. 4세기 이래로 유럽 정신문화의 배양처는 교회였으며 배양 주체는 신부와 신학자와 목사였다. 

홀로코스트의 직접적 책임자가 교회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히틀러는 오랫동안 교회를 통해 배양되어 온 안티 세미티즘을 그의 유럽 지배 야욕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1차대전의 패배로 좌절감에 빠져 있던 독일 국민을 아리안 인종 우월주의로 고무시키고, 그 실행책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배태되어온 반유대주의를 유대인멸절주의로 변환시킨 것이다.
히틀러는 아리안 인종 우월주의를 실행하는 또 다른 실천 이데올로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독일과 유럽인들에게 보편적으로 깔려 있던 반유대주의를 이용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반유대주의가 독일과 유럽 정신세계에 깊숙이 깔려 있었기에, 나찌와 SS 대원들은 별 죄악감 없이 발포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고, 발가벗은 목욕탕 안의 유대인들에게 살인 가스를 주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들의 정신세계에는 유대인들은 버러지요 악이요 소각되어야 할 쓰레기라는 의식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던 거였다. '악의 평범성'을 얘기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말처럼 나찌 대원들도 평범한 가장이요 남편이었을 것이다. 아렌트가 1961년 예루살렘의 재판정에서 선 히틀러의 심복 아히크만에게서 보았던 지극히 정상적인 한 인간처럼 말이다. 보편적인 유럽인들의 의식세계에 깔려 있는 유대인들에 대한 생각이나, 나찌의 유대인들에 생각이나 동일했던 것이다.

나는 아우슈비츠 정문 앞의 철로에 서서 이 철로로 연결되는 철로들을 끊어 버리지 못한 연합군 수뇌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뇌리에도 잠재된 반유대주의적 의식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아우슈비츠로 끌려 온 수 많은 인명들을 대량학살 한다는 정보를 접하고서도 어찌 그리로 가는 철로들을 끊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들도 뉴른베르크 전범 재판소에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란 죄목으로 고발당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 역시, 매 예배 시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인 '거룩한 공교회'(Holy Catholic Church)의 일원임을 고백하는 나 역시, 역사적인 형제들인 유럽교회 형제들과 함께 유대인들을 향해 돌을 던졌던 무리 중에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바른 신학은 얼마나 중요한 건지, 하나님 앞에서 역사를 살아가는 길잡이의 역할을 되새긴다.

2014년 11월 30일 기독교와 안티 세미티즘 과목의 유럽탐방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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