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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1월22일 22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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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주심의 감사, 복 주실 것에 감사
      복 주심의 감사, 복 주실 것에 감사   신 16: 13-17  11. 23. 14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찬송가 405장의 주인공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이 설교를 준비하는 책상 앞에는 언제나 큰 글씨로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贖)하셨음을 기억(記憶)하라”(You shall remember that you were a slave in the land of Egypt, and the Lord your God redeemed you; 신 15: 15)는 성경구절 쪽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존 뉴턴이 이 구절을 평생 동안 기억하는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그는 과거에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사다가 파는 노예 매매선의 선장이었다. 그러던 그가 55세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새 사람이 된 다음, 노예선 선장의 해상생활을 청산하고 목사가 되어, 런던에서 복음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회심한 후 이전에 몰랐던 전혀 다른 인생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악명 높고 무서운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복음 증거 하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한 번은 뉴턴이 유명한 온천도시 베스(Beth)에서 날아온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발신인은 한 악명 높은 흉악한 죄수였는데 편지내용은 그가 뉴턴 목사를 만나서 신앙지도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편지를 받은 뉴턴이 그 죄수를 찾아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그의 친구가 ‘무엇 하러 악명 높은 무서운 사람을 찾아 가려느냐’ 하며 그를 만류했다. 그때 뉴턴은 이런 말을 했다. “비록 그가 악의 소굴에서 우두머리가 된 자이나, 이제는 회개하면서 이 편지를 내게 썼소. 세상이 용서하지 못할 죄인이면 어떻소? 회개하면 되는 것이오. 나는 내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나 엄청난 회심을 경험한 바 있기에, 상대가 누구든 그를 회심으로 이끄는 일을 단념할 수 없다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 나는 반드시 그 사람을 만나야 하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성도들의 감사는 두 종류의 감사를 해야 한다. 첫째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응답감사와 둘째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고 응답해주실 것을 믿고 드리는 예비감사이다. 사람이 오늘까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감사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의 죄이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감사치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불신앙의 죄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의 응답감사와 앞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에 대한 미래감사, 예비감사 대신 원망과 불평을 일삼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고, 신약의 이스라엘도 응답감사와 예비감사 대신 거역과 불순종, 원망과 불평을 일삼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 혈통적 이스라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응답감사와 예비감사로 축복과 형통의 탄탄대로를 걷는 영적 이스라엘이 되기를 축원한다.
                 
복 주심에 감사와 복 주실 것에 감사

10여 년 전, 내가 성산기도원에 올라가 추수감사절과 연말을 위해 일주일 금식기도를 할 때였다. 하나님께서 금식기도 중에 “김 목사, 금년 추수감사절에 성도들에게, 하루를 1불로 계산하여 가정마다 365불씩, 지난 일 년 동안에 내게 받은 응답과 축복을 감사하도록 가르쳐라. 그리고 이것을 주기도문교회 추수감사절감사의 매년규례가 되게 하라”는 마음의 감동을 주셨다. 나는 그 감동을 받고 금식기도 기간 내내 고민을 많이 했다.

‘100불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 가난한 성도들인데, 200불도 많은 돈인데... 한꺼번에 365불을 헌금하라면 교인들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날 것이다’라며 고민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주신 감동이오니 순종하겠습니다. 그 대신 시험에 드는 가정이 하나도 없게 하시고 모두 믿음으로 365감사를 드리게 하시되 반드시 축복으로 갚아 주셔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금식기도를 마치고 하산하여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의 감동대로 ‘365감사’를 믿음으로 선포했다. 그러자 몇몇 성도들이 ‘김 목사는 돈만 아는 목사다. 목사가 독재한다’며 잠깐 동안 술렁거렸지만 다행히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진 않았고, 감사하게도 2주 후 감사절엔 80-90%의 가족들이 ‘365감사’를 드렸는데... 그것이 벌써 지난 10년 동안의 ‘주기도문교회 추수감사절감사 매년규례’가 됐다.

내가 ‘365감사’의 감동을 받고 기도원에서 하산하여 가까운 목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은혜를 받은 그 목사도 감사절 2주 전 주일, 나와 같은 날에 ‘365감사’를 설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설교를 들은 성도 중 한 사람이 은혜를 받고 어려운 형편에서 ‘365감사’를 드렸는데, 365감사 석 달 만에, 영주권도 없던 불법체류의 사람이 좋은 Sponsor(신원보증인)를 만나 기적적으로 영주권을 신청하게 됐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서 아무 돈도 없던 사람이 당시 35만 불짜리 집을 사는 축복을 받았다는 간증을 들려주어 은혜를 함께 나눴고, 훗날 내가 그 집을 방문해 축복기도를 해준 적이 있다.

주기도문교회도 처음 365감사 이후 지금까지 교회적으로 받은 축복과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받은 축복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영주권을 신청했는데 지금까지도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있지만 ‘주기도문 365감사성도’는 영주권뿐 아니라 시민권까지 받아 안정된 삶을 살고 있고, 자녀들이 순탄하게 대학을 입학하기도 하고 대학을 졸업하기도 하며, 좋은 아내를 얻고 좋은 남편을 얻어 자녀들까지 낳아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고 안정된 직장도 다니며, 다른 젊은이들처럼 방황하거나 곁길로 빠지지 않는 축복을 누리는 등 주기도문교회에서 365감사의 축복은 현재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4년의 응답감사와 예비감사의 365감사도 여러분의 삶과 생활에서 많은 기적과 축복을 만드는 축복의 씨앗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1.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
신명기 16장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3대 절기의 기록이다. ⑴ 유월절(踰月節, 페사크; 신 16: 1-8)이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430년 종살이를 끝내고 출애굽 하기 직전, 이집트 전역에 내린 장자살해 재앙(출 12: 1-27) 때에 죽음의 사자들이 어린양의 피가 묻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을 Pass Over(“건너가다, 뛰어넘다, 생략하다”)하여 죽음의 재앙을 당하지 않은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국가적절기이다.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고, 히브리 민간력(民間歷)으론 7월이었다가 출애굽과 함께 종교력(宗敎歷)으로 1월이 된 유월절과 무교절은 구약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이 된다.

신약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흑암세력인 마귀에게서 자유를 얻은 중생의 날(Born-again Day)에 해당하는 유월절은 하나님께 선택된 이스라엘백성이라면 누구나 평생 동안 반드시 이 날을 기념하며 지켜야 했듯, 성도들도 자기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면서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은 성경적이다. 육신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을 해마다 기억하고 지키듯 영혼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영적생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은혜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⑵ 칠칠절(9-12절)이다.
칠칠절은 유월절 이튼 날부터 시작해 50일째 되는 날로 첫 수확한 보릿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초실절(初實節, The Feast of the first-fruit of Wheat Harvest, 출 34: 22)로부터 계산해 49일(7X7=49일)이 지난 그 이튼 날을 가리키는데, 칠칠절은 보리추수가 끝나고 밀 추수를 시작하는 때로, 신약시대엔 이 날을 오순절(五旬節, The Pentecost, 행 2; 1-4)이라고 불렀다. 오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열흘째 되는 날로 성령이 마가 다락방에 임하신 날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칠칠절을 지키는 것은 과거에 그들이 애굽의 종노릇했던 것을 기억하여 같은 처지에 있는 불우한 이웃들을 초대해서 함께 즐거워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은혜시대에 성도들이 칠칠절과 오순절을 기념해 지키는 것은 ① 개인적으로 중생의 성령체험뿐 아니라 하늘의 권능을 받는 성령세례의 성령체험을 감사하라는 의미와 ② 교회적으로 보혜사 성령의 권능을 받게 하고 말세에 성령의 늦은 비를 남종과 여종들에게 소낙비로 부어주시는 축복을 감사하며 지구촌 모든 백성을 위로하고 구원하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성령의 권능을 받은 날을 감사하는 것은 성경적이며 귀한 일이다.
   ⑶ 초막절(13-17절)이다.

성경에서 초막절은 수장절(收藏節, The Feast of the In-gathering: “추수수확의 절기”, The Feast of Booths: “칸막이 판자 집의 절기”, 출 23: 16)과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이라고도 불렀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초막절, 수장절, 장막절은 1년의 모든 추수를 끝낸 뒤 지키는 절기로 은혜 중에 모든 추수를 끝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종의 추수감사 절기였다.

이때 이스라엘사람들은 집 앞의 들판이나 성전 마당 뜰에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초막집을 짓고 그 위에 나무줄기와 풀과 나무 잎사귀로 초막을 덮어서 햇볕과 이슬을 피할 수 있게 해 거기서 7일 동안 거처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야영텐트를 치고 고생하며 생활했던 옛날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뉴욕 중심가에 건축된 102층 마천루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1620년,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영국 Plymouth항에서 Mayflower호에 승선한 102명을 상징해 건축하므로 미국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자랑하고 자긍하는 것 같지만, 400년이 지난 아직도 미국을 태산처럼 버티고 있는 저력은 102명 청교도 감사신앙에서 추수감사절을 국가의 절기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진정한 자랑은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아니고 세계최강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도 아니며 미국을 떠받들고 있는 청교도신앙이다. 이 과거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청교도신앙이 살아 있으면 미국은 세계초일류국가로 역사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고, 이 감사를 잊으면 하나님이 솔로몬성전을 버리듯 미련 없이 미국을 버릴 것이다.

또한 21세기 아시아 동방의 등불 한국과 한국교회도 감사신앙을 지키면 끝까지 하나님 손에 붙잡힐 것이고, 감사를 잊으면 하나님이 손을 놓을 것이다. 이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여호와께 빈손으로 보이지 말라
16절을 본다. “너희 중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Three times in a year all your males shall appear before the Lord your God) 공수(空手)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라”(They shall not appear before the Lord empty-handed) 하나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차례 절기를 지키러 야훼하나님께 예루살렘으로 와야 하는데 야훼하나님께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씀이다.

구약의 율법은 그 성격에 따라 크게 도덕법(Moral Law)과 시민법(Civil Law)과 의식법(Ceremonial Law)으로 구분된다. 도덕법은 구약과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영구히 지켜야 하는 법으로 대표적인 도덕법은 십계명이다. 시민법은 대부분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주어진 것으로 히브리 종에 대한 규례 등이 있고, 의식법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로 각종 제사 제도나 절기에 관한 규례들이다.

그런데 구약의 의식법들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의 사건으로 대부분 모두 성취됐다. 그래서 신약성도들은 구약의 삼대절기 같은 의식법을 말씀 그대로 여자적(如字的)으로 지킬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의식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별된 삶’의 원리와 정신만은 오늘날의 성도들도 반드시 좇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 모든 규례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 성도들이 삼대절기를 지킬 때,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가서는 안 됐듯 오늘도 감사 절기를 지키는 성도들도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태어나서 먹고 입고 잠자며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모든 것은 한 가지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 태에서 벌거벗고 빈손으로 세상에 나온 우리에겐 어떤 것도 ‘내 것’이 없다.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 내 놓으라면 다 내 놓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있는 것 다 내 놓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절기를 지키기 위해 내게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You shall not appear before the Lord empty)고만 하셨다.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런 일인가? 하나님께서 ‘있는 것 다 내놔라’ 해도 군소리 없이 다 내놔야 하는데, 네 쓸 것 다 쓰고, ‘네가 내게 나올 때, 네가 주일과 수요일과 금요일과 구역예배 그리고 절기들을 지키기 위해 내게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니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가?

그렇다. 주일 외에 일 년에 서너 차례 있는 신년절기와 부활절과 감사절 그리고 성탄절 절기에 하나님께 나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 것이다. 부모가 아이가 갖고 있는 과자사탕 한 개 달라는 것은 아이 것을 뺏어 먹어 아이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이에게 과자 한 개 얻어먹고 착한 마음을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빈손으로 내게 나오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감사(感謝)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He who offers a sacrifice of thanksgiving honors Me)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To him who orders his way aright, I shall show the salvation of God; 시 50:23)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감사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며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일 것이다. 이 감사주일에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감사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로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복 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 감사하는 감사절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각 사람이 (일 년에 세 차례 절기예물을 드릴 때)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物件)을 드릴 것”이라(Every man shall give as he is able, according to the blessing of the Lord your God which He has given you)고 하셨다. 이 말씀은 절기감사예물을 드리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를 다하여, 우리자신이 야훼하나님께 받았다고 생각되는 축복만큼 최선을 다해 드리라는 말씀이다.        

사도바울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라”(고후 9: 6-7)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헌금을 가르쳤다.

그렇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당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마음에 정한 대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예물을 드릴 것인데 그것이 많이 심는 자이고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예물을 드리는 것은 적게 심는 자로써 축복을 적게 거둘 자이다. 많이 심어서 많은 축복을 거두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역대하 32: 24-25의 말씀을 보자.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불치병으로 죽음의 위기를 당했을 때, 면벽기도를 하므로 기적적인 병 고침의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받은 하나님의 질병치료의 은혜를 보답치 않고 감사하지 않으므로 자신과 그가 다스리는 나라와 그가 살고 있는 왕궁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는데, 성경저자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갚지 않은 것을 ‘그의 교만’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받은 은혜들인 육신의 질병치료에서 마음의 평안, 사업의 축복에서 자녀의 잘 됨, 영혼이 자유를 누림에서 영주권 해결 그리고 여러 가지 문제해결, 자녀들의 학교 입학과 졸업, 건강과 안전한 직장생활 등,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감사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는 것이 겸손이다. 지금 당신은 겸손한 성도인가, 교만한 교인인가?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겸손한가? 얼마만큼 감사를 표시하는가?

2014년의 감사절이 내가 복을 받은 만큼, 내가 복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많이 심으므로 많은 것을 거두는 축복의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4. 복 주실 것을 믿고 드리는 감사예물
15절 하반 절을 본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Because the Lord your God will bless you) 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 지니라” 그렇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감사예물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감사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여드리는 감사예물이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복을 생각하고 믿고 기대하면서 미리 드리는 예물이다.

서울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간증이다. 담임목사님이 ‘365 추수감사절 예물’을 교회에 선포하면서, ‘금년 감사절예물은 지난 1년 동안의 축복을 감사하는 하나님응답의 예물이며, 앞으로 1년 동안에 받을 축복을 믿고 미리 드리는 미리감사 예물이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여러분이 응답 받고 축복 받기 원하는 성도는 믿음으로 365감사를 드리라’고 선포하면서, ‘금년 우리 교회의 감사절 헌금은 하루를 만원으로 계산해 365만원을 드린다’고 했다.

그 교회에서 그해 감사절에 365감사예물을 드리고 여러 성도들이 축복을 받았는데 그 중, 두 사람의 간증을 소개한다. 한 사람은 그 교회 장로의 딸인데, 이 처녀는 일류대학을 나오고 직장도 좋은 직장에 다니며 인물도 뛰어날 정도로 예쁜데 어쩐 일인지 37세가 되도록 결혼을 못했다. 지금까지 맞선을 40번 이상이나 보았지만 처녀가 좋아하면 상대편이 맘에 안 들어 하고, 상대가 좋아서 결혼을 하고 싶어 하면 장로 딸이 맘에 안 들어서 결혼을 못한 채 37세 노처녀가 됐다.

이렇게 본인과 부모의 고민이 커 식구들이 딸의 결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있던 차에 목사님의 ‘365감사’ 광고를 듣고 기족회의를 한 다음, 장로 부부는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365감사를 드리고, 딸은 앞으로 하나님께 받을 좋은 남편과의 결혼을 위한 365감사를 드리기로 하여, 그해 추수감사절 감사예물을 장로부부와 외동딸의 헌금을 합쳐서 730만원을 드렸다.

그런데 장로 가정이 감사예물로 730만원을 드린 지 4개월쯤에 지인의 소개로 장로 딸이 맞선을 봤는데, 남편 될 청년은 딸보다 2살 더 많은 총각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온 의사로서 돈도 있고 잘 생기고 성품도 좋고 무엇보다 신앙이 좋은 목사 아들이어서 아주 쉽게 결혼이 성사됐다. 딸의 결혼식이 끝난 후, 장로님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축복을 믿고 드린 365감사로 훌륭한 사위를 보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며 365만원으로 좋은 사위를 살 수 있겠는가?’며 간증을 해 많은 성도들이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고시에 7번이나 떨어졌던 젊은 집사의 간증이다. 이 집사는 가정형편이 좋아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일류만을 졸업한 수재였는데 희한한 정도로 고시를 볼 때마다 떨어지므로 낙심이 컸었다. 그러다가 목사님이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믿고 365감사를 드리라’는 말씀을 했을 때, 처음에는 ‘목사가 돈만 아는 사람이라’는 거부반응이 생겨 교회를 떠날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받을 축복은 차치하고 내가 지금까지 받은 축복을 감사한다고 해도 365만원은 돈도 아니다’란 생각이 들어왔다. 그래서 ‘365감사를 드리되,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 반, 하나님이 앞으로 주실 축복으로 반’의 맘으로 365만원을 감사절예물로 드렸다. 그리고 365감사헌금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후, 고시시험을 치는데 신기할 정도로 문제마다 너무 쉽더란다. 심지어는 며칠 전에 처음 읽은 것이 오늘 문제로 나온 것도 있어서 쉽게 답을 기록해 아주 좋은 점수로 고시를 패스했다. 고시에 합격한 후, 젊은 집사는 처음에는 ‘일곱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내가 고시공부를 많이 해서 합격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나중에는 ‘축복을 믿고 드린 365감사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란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교회를 찾아가 감사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지더란다. 그리고 다른 집사들과 젊은 청년들에게 ‘돈으로 계산해도, 365만원으로 고시에 합격한 것이 수 천 만원이 들면서 몇 년 동안 고생했던 것보다 얼마나 간단하며 크고 멋있는 축복인가?’라면서 ‘기회가 된다면 365감사를 해보라’고 권면했다고 한다.

그렇다. 오늘 우리의 365감사는 365만원인 3650불도 아닌 그 돈의 10분지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지난 일 년의 축복을 365불로 아니 3,650불로도 다 갚을 수 없다. 우리가 일 년 동안 공짜로 숨 쉰 공기와 공짜로 마신 물 값만도 수만 불의 가치가 넘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하보다 귀한 우리 영혼을 구원해 영생을 누릴 축복을 공짜로 주셨으니 그것은 돈으로 계산할 정도가 아니다. 영생과 비교할 때 365불이나 3650불은 먼지에 불과하고 36500불이나 36만 5000불은 돈도 아니며 365만 불과 3천 650만 불도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축복과는 그 무엇도 비교가 안 된다.

종말시대를 살고 있는 제 3세대와 제4세대에 인기 있는 사업 중에 하나는 지하 벙커 요새사업과 우주여행 비즈니스이다. 미국을 위시해 네델란드나 스웨덴, 프랑스 이태리 같은 나라에서는 지하 수십m에서 수백m에 지하 10층 20층 요새건물을 지어 앞으로 있을 세계전쟁에서 핵무기 공격이나 자연재해를 피해서 몇 십 년을 살려는 건축 사업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한 가족이 살 수 있는 지하벙커 한 채 가격이 몇 백만 불씩 하는데도 공급이 모자랄 정도다. 그다음, 차세대 인기사업은 우주여행 비즈니스이다. 달이나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 그곳에서 세계전쟁을 피해 살겠다는 구상으로, 한 사람 당 수천만 불이 드는데도 응모자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하벙커요새나 우주여행은 모두 Super Rich(최고 부자)들만의 꿈이다. 지하벙커나 우주여행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지구와 같은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야 하고 마실 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오늘 지난 일 년 동안, 우리가 공짜로 마신 공기와 물 값을 돈으로 계산해서 추수감사절 헌금을 내라면 여러분은 얼마나 낼 수 있는가?

공기를 5분만 마시지 못해도 죽고, 물을 30일만 마시지 못해도 죽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 년치 공기와 물 값을 계산해서 365불, 3650불, 36500불 36만 5000불은 정가의 제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365감사는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감사예물이다. 거기에 첨가해서 주실 축복을 믿고 감사하는 축복의 씨앗 예물까지라면 365감사엔 어떤 이의를 달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가 드리는 365감사는 하나님이 보실 때, 어린아이 소꿉질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축복을 감사하는 365감사도 기쁘게 받으시고, 하나님께 받을 축복을 믿고 감사하여 미리 드리는 365감사도 기쁘게 받으시니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넓으며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은 것인가?

2014년 감사절예배를 드리는 우리 중 한 사람도 365감사에 인색하지 말고, 더 많이 못 드리는 감사에 송구함으로 감사하며, 촛불에 감사하면 등불을 주시고 등불에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에 감사하면 달빛을 달빛에 감사하면 태양빛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더 많은 축복 주실 것을 믿고 드리는 365감사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기를 원하며 내년에는 ‘365감사 간증’이 풍성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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