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을 촉구하는 강연회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5월 08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손영구칼럼
2014년11월13일 13시30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각성을 촉구하는 강연회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실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
 
11월11일 뉴욕 프라미스교회(김남수목사)에서 이승만대통령 기념사업회 뉴욕지회와 신뢰회복 국민연합 미주본부가 공동주최하는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강사로는 국가정보원(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활동했던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SUE MI TERRY 박사와 이승만포럼, 뉴데일리 대표인 인보길회장이였다.
 
테리 박사는 한미동맹 61주년을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에 대한 비교, 이승만 대통령이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ROK-US MUTUAL DEFENSE TREATY) 덕에 주한미군이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주어 한국이 전자산업 경제 문화 교육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통일이다, 그래서 인권. 자유등이 완전 박탈되여 비참하게 69년동안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을 해방시켜야 하며, 북한땅을 개발한다면 한국은 계속 크게 발전 융성케 될 것이다,  

그러나 통일문제가 간단치 않다,  북한 정권자는 3대로 세습한 29세의 젊은이다.  그리고 핵무기를 가진 정권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등 도움이 없이는 통일이 어렵다.  

한국의 박근혜대통령께서 지금 통일에 대해 많이 강조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는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며, 깊이 감사를 드린다. 통일되면 한국은 세계속에 큰일을 할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강한 나라이다. 세계에는 아직도 민주화, 산업화가 안된 가난한 나라들이 많다. 통일되면 한국은 과거 어려웠기에 어려움을 당한 많은 나라를 도울수 있다
 
두번째 강사인 인보길 회장은 이승만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장시간 소상하게 말해주었다.

이승만은 청년시대부터 학문에 천재였고 한학과 한문을 완전히 숙달했다, 19세 청년시 미국 아펜셀라가 세운 배재학당에 들어가 미국목사 선교사들을 만나면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배워 약 8개월만에 마스터하고, 선교사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 되였다.

2년후 졸업시 1천명의 유명인들이 모인 가운데 학생대표로 영어연설을 했으며 제목은 한국독립이었다.  졸업후 협성신문발간, 후에 매일신문으로 개명하여 편집인 주필 사장등을 역임하며 조선의 개혁과 미래발전상등을 신문에 게재하며 국민 계몽에 앞장섰다.

한국에 최초로 신문을 만든 언론인이였다,  망해가는 조선에 횃불을 들기위해 시위도 하는 행동대원이였다, 중추원(현재 국회)을 만들어, 민주주의 정치를 해야한다는 시위주동자로 지목되여 투옥되고 국가반역죄로 사형 무기수형 언도를 받았다,  

감옥에서 성경읽으며 기도했고, 독립정신이란 책을 저술했으며 그책에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미래상을 썻다.   25-26세 청년때에 국가건설의 꿈을 갖고 있었다. 

미국같은 나라 세우는 것과 한국이 아시아에서 최고의 기독교 국가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였다. 
감옥에서 성령의 불 체험을 했고, 3대 기도제목으로 이런 기도를 했다. “주여, 이나라를 구원해 주소서, 나의 생명을 구원해주소서, 10만 성도를 일으켜 주옵소서.”.

30세에 민영환 한규설 장관들의 추천으로 영어 잘하는 이승만은 특사로 출옥하며 고종의 밀서를 갖고 도미케된다. 일본의 불법적 한국 점령을 미국에 알려 나라를 구하는 사명을 띄고 미국에 첫발을 디딘다. 이일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독립을위해 일했다,

미국에서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명문대학만 들어갔다. 그래서  조지와싱톤 대학에서 학사, 하바드대학에서 석사, 프린스톤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5년만에 획득한 어학과 학문의 천재였다.  1945년 해방된 해가 70세이다. 한국에 들어와 유엔을 끌어들여 한국에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했다,

1948년 5/10 총선거, 7/17 대한민국 헌법 및 정부조직법 공포 7/20 대통령 선거에서 189표 압도적 득표로 대통령 당선, 집무실에 민위방본 (국민을 위함이 나라(정부)의 근본 임무이다)라는 휘호를 부침,  7/24 건국대통령 취임식,  8/15일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공포, 자정을 기해 미군정 종식. 1961년까지 건국절을 지켰다.

 민주당 정권과 4/19 세력들이 건국절을 파기하며 광복절로 회귀한 것이다.  이제는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고 건국일을 지켜야한다.  1천만 서명운동에 동참해야한다.
 
이승만대통령은 3/15선거가 부정하게 이루어 진 것을 4월에야 알았다

 4/12 국무회의록에는 “어린 학생을 죽여 놓고 무슨헛소리를 하는거야? 긴급한 해결책은 내가 그만 두는 것뿐이야, 혹시 선거가 잘못 됬다고 들은 것 없는가?"

4/19 "어떻게 백성을 죽일 수 있어? 이 사람들이 나더러 나가라는 것 아니야?  좋은 자리 내 놓으려고 해,  무슨 까닭인지 알아야겠어,  그래야 해결할게 아닌가?"

4/25 "부정했다면 다시 해야지 왜 부정을 해? 국민이 살아 있구먼, 부정을 보고 일어서는 백성이 백성이지,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 장하다. 챙피해 챙피해 내가 챙피해" 

4/26 "하야성명 발표하고 관용차 안타고 걸어서 이화장으로 나감"

 
1965년 7/19 하와이 해변 요양원서에서 마지막 절규는  “통일은 어떻게 되지?”

갈라디아서 5;1절 상고하며,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는 말씀을 남기도 소천함

재산으로 남긴것은 평생 읽던 성경 한권 뿐이다
이승만은 독재자가 아니라 민주주의 실천자이다, 감옥에서 꿈꾸던 미국 같은 나라가 지금되었다

손영구목사(이승만대통령 기념사업회 미주총회장)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손영구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42413735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손영구칼럼
다음기사 : 병든 나라 병든 교회 (2014-12-07 18:43:52)
이전기사 : 용공난용 연포기재 (2014-10-27 10:07:31)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