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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0월25일 09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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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가 (思友歌, 동무생각)

박도수 (朴道守)

약 50여 년 전 , 나는 부산 공군 어느 군부대의 군수품 창고대장의 직책에 있었다.  내가 지휘 감독한 저장시설은 옥 내외(屋內外)를 통틀어 10여개가 넘는 대형시설이었다. 그 창고들 중에서 병기부품창고 ( 자동차 부품) 가 언제나 도난이 잦아서 말썽이었다.

어느 날, 일과가 끝날 무렵, 당직병을 데리고 각 창고를 순찰하던 나는 병기창고 문 뒤에 숨겨져 있는 봉지를 하나 발견하였다. 봉지를  열어보니 시중에서 값비싸게 잘 팔리는 차량부품이었다. 그 창고는 부품의 수불(受拂)이 잦아서 다른 어느 창고보다도 관계 사병들의 출입이 많았었다. 그런데 그 요긴한 부품이 용이하게 지출 할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에서, 용무상 출입자도 끈인 마감시간에 창고 문 뒤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은 도난 예비행위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나는 상례(常例)에 따라 일일 창고 순찰기록부에 그 사실을 기록하고 그 날의 업무종료보고를 하면서 그 사실도 상부에 보고하였다. 특별히 이러한 사안은 필히 보고토록 지침이 하달되어 있었다.   며칠 후에 부대장의 지시에 따라 수사대에서 그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일차적으로 그 창고의 실무책임자였던 창고장이 조사를 받게 되었다. 확증은 없었으나 창고장의 입장은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부품은 그 부품의 부품번호에 따라 위치카드를 보지 않고는 보통사람으로써는 찾을 수 없게 되어있었다. 창고장은 그 엄무의 습성상 그 부품의 위치를 잘 알뿐 아니라 수불의 빈도나 시장성도 잘 알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부산 모 대학의 야간 법대학생으로 여름방학이 끝나, 새 학기 등록금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였었다.    정황으로 보아 그 창고장은 참으로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 그는 수사대에 불려가 모진 매와 가혹한 심문을 받으며 조사를 받았으나 결국 무혐의가 되어 풀려나와 정상적인 업무를 계속하였다.   

얼마동안 그는 수사대에서 얻어맞은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고 눈덩이도 부어있었다. 나는 그 사건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것이 몹시 꺼림 직하였다. 그러나 그는 낮에는 열심히 자기 직무에 충실했고 야간의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아니했다.   혐의 없이 풀려난 그는, 그 사건 외에는 아무런 흠이 없는 모범군인이었다.

그가  다니던 학교 졸업을 앞두고 제대를 하게 되어, 나는 부대원들을 모아 그의 졸업기념 겸 송별 party를 베풀었다.

송별회에서 오랜 군 생활을 성실히 마치고 떠나는 그는 사우가 (思友歌, 동무생각)를 불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마음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모두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를 떠나보낸 후, 나는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알 수 없다.

죄와 허물은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 일이지만, 그의 상관이었던 나는, 그가 의심받고 모질게 얻어맞으며 조사를 받을 때에 한 번도 그를 조사하던 수사관을 찾아가 상관으로써 후의(厚誼)를 구하지 못했었다. 그 사건이 밝혀지기만을 바랐던 나의 조부러움이 한없이 부끄럽고 슬펐으며, 부하였던 그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곤욕을 치룬 그를 생각했다. 그 이름이 박도수(朴道守)이다.   나는 그가 그의이름대로 “도를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으리라고 믿으며 종종 그를 회상하곤 한다.

며칠 전, 야외에 운동하려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車)의 CD를 켜니 사우가(思友歌) 가 흘러 나왔다. 나도 그 사우가를 따라 부르면서 울먹이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제 인생 후반에 들어섰을 그가 정령 어느 한때 도적을 심문하거나 아니면 변호하거나 심판의 자리에 앉았었을 지도 모르는 그를, 먼 세월의 담을 넘고 깊은 상념(想念)에 잠기며 슬픈 마음을 달랜다.


필자 註 : 수필속의 인명은 밝히지 않으려 했으나, 이미 50년의 세월이 지난 옛날의 회상이 아름다워 밝힙니다.

주진경 목사(본사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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