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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0월15일 14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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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셰르(5)
랍스터, 고급 디너의 대명사 캐비어, 상어 지느러미 스프 등은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오징어 덮밥, 미더덕이 들어간 아구찜, 여름내 일에 지친 황소가 두 마리만 먹으면 벌떡 일어난다는 산낙지, 바다의 산삼이라는 굴, 조개가 듬뿍 들어간 시원한 해물칼국수, 곰장어 구이, 해삼, 멍게, 새우튀김, 가을 몸보신에 좋은 추어탕, 메기 매운탕 등. 생각과 침이 동시에 솟아나는 음식들이 아닌가.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오직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해산물만 코셰르 규정에 합당한 음식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레 11:10).
 
그러면 고등어는 코셰르인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보조 질문: 고등어는 유교의 제사상에 오르는가? 답은 ‘오르지 못한다’이다. 왜? 비늘이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유교의 제사음식에도 비늘이 없는 생선은 포함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참고로 돔배기-간을 한 상어고기 (상어는 비늘이 없다)-는 지역에 따라 예외이다.]

 비늘이 뭐길래.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어류의 비늘은 피부를 보호하고 외부의 세균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물의 온도를 감지하는 역할과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기능”이 있는데, “(물고기) 몸 속의 물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하고 또 밖의 물이 몸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갑옷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비늘이 없는 생선들은 비늘의 기능을 무엇으로 대신하나? 더 두꺼운 껍질 – 뱀장어나 상어껍질을 생각해 보라 - 로 대신한다. 비늘의 기능적인 측면 때문에 비늘이 생선의 정함과 부정함을 선별하거나 유교의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는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성경과 유교에서조차 비늘 있는 생선인가? 형식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관점에서 추론해보면, 물 속에서 사는 생물이라도 육지 동물에 해당하는 사지(四肢), 즉 팔 다리 (지느러미)를 갖추고 나름의 의관 (비늘)을 갖추어야 일종의 ‘양반 생선’으로 본 것이 아닐까.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추론해 보면)  “너희들,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식욕부터 다스려라, 실패한 너희 조상처럼 눈에 보기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해서 (창 3:6) 입과 코로 욕구가 자극되는 대로 살지 말라.” 구별해서 먹어라. 먹고 싶다고 욕구대로 충동적으로 먹지 말라. 그것이 거룩의 출발이다. 오늘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며 가라사대, “‘라면 상무’도 기본욕구, 곧 식욕과 관련된 처신을 잘 못해서 ‘기업의 별’을 달았다가 떨어졌고, ‘4 스타’도 입의 욕구를 잘 다스리지 못해 추락했지 않았나!”   

식욕을 다스리는 것이 모든 욕구 절제의 기본이다. 유대인은 자기 수신(修身)의 수련을 밥상에서 시작한다. 거룩한 삶의 출발이 밥상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들이 제사장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자기절제의 훈련을 밥상머리에서부터 시키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한데 못 먹을 게 무어냐. 욕구(식욕) 당기는 데로 먹으면 그만이지. 그러다가 망한 자가 ‘에서’이다.

성경에서 먹음의 문제는 단순히 웰비잉 (well-being) 식단의 문제도 아니요, 미식(美食)의 문제도 아니다. 자기 소욕에 옳은 데로 행하는 인간 본성, ‘예쩨르’의 통제 문제이다. “(음식) 구별해서 먹어라.” 이는 거룩의 문제인 동시에 “식욕을 다스려라,” “너 자신을 다스려라”의 문제이다. 이것이 성경 중에서 제일 읽기 고단한 레위기, 그 중에서 음식규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리라.
 
고등어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러면, 고등어는 코셰르인가? ‘비늘이 없다’는 이유로 유교의 제사장에 오르지 못하니까 ‘코셰르가 아니다’라는 답이 목구멍까지 올라 올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생각은 유교의 생각이고 성경의 생각은 성경의 생각이다. 정답은 ‘코셰르’이다.

고등어는 잡히는 순간에 비늘이 상실된다고 한다. ‘오메가 3’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의 대명사, 고등어가 코셰르란 사실에 유대인들이 다소 위안받을 일이다.

정연호 목사(이스라엘 University of the Holy Land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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