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세르(3)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4월 20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칼럼
2014년10월04일 22시42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코세르(3)
비행기 나의 옆 좌석에 앉은 젊은 유대인이 기내식을 되돌리며 굶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미리 코셰르 음식 신청을 하지 않은 까닭이다. 코셰르를 지키는 유대인들에게는 여행의 제한이 있다. 이들이 유대인 식당이 없는 지역으로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커다란 이민 가방을 코셰르 음식으로 채운다. 아니면 아예 풀과 과일로 때우면 코셰르 규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첫 번째 음식의 제한에 관한 규정은 홍수이후 고기를 먹게 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모든 움직이는 생명체에게는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셨다 (창 1:29-30). 
사람에게는 다른 모든 피조물과 같이 오직 채식만 허용이 되었다. 이런 규정이 아담과 하와 이후로 열 세대 동안 계속되다가 노아가 홍수 후에 방주를 떠나면서 사람에게 고기가 먹거리로 주어진다 :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 9:3).
 
모든 산 동물이라고 했으니, 이 때에는 아마도 돼지고기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위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노아의 7계명에 따라 해석을 하면 (무슨 고기든 먹되)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창 9:4).
 
두 번째 음식의 제한규정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다.

야곱의 이야기에 보면 천사가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했는데, 천사가 그를 칠 때 야곱의 환도뼈가 탈골된다. 창세기 32장 33절에 보는것처럼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도뼈 (‘기드 하나쉐’ גיד הנשה )를 먹지 않게 된다.
 
세 번째 음식의 제한규정은 출애굽 이후 모세의 시내산 언약에 따라 수여된 율법에 따라 생겨나게 된다. 

레위기 11장 (신 14장 참조)에 의하면 먹을 수 있는 정한 동물 (코셰르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 (비-코셰르 동물)로 나뉜다.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동물은 전자, 두 가지 조건 중의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후자, 즉 부정한 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있기는 하나 새김질을 하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전자 그룹에 속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상의 고기음식 규정과 관련하여 코셰르에 관한 세 개의 기본적인 규정이 있다: 

첫째, 이상과 같이 고기 자체가 코셰르 동물의 것이어야 한다.

둘째, 코셰르 동물이라 하더라도, 도살전에 이미 죽었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병든 동물은 먹지 못한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고 그것을 개에게 던질지니라” (출 22:31).
 
셋째, 이상의 조건에 합당한 동물을 도살법 (‘슈키타’ שחיטה 법)에 따라 도살하여야 한다. 코셰르 규정에 따라 동물을 도살하는 전문적인 도살자를 ‘쇼케트’(שוחט )라고 한다.

피를 제거해야 하고, 환도뼈 (기드 하나쉐)를 제거하는 것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이 쇼케트는 코셰르의 책임을 지고 있는 랍비의 감독을 받는다. 랍비는 쇼케트가 쓰는 칼을 점검하기도 하는데, 날이 무딘 것은 사용이 금지가 된다. 날이 무딘 칼이 사용될 경우에 도살되는 동물이 고통을 받게 되어서 제의적으로 도살되지 못했다고 간주되며 그래서 코셰르가 아니게 된다.

이는 유대교가 인도주의적인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코넬대학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대교의 슈키타에 따른 도살이 가장 인도주의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정연호 목사(이스라엘 University of the Holy Land 교수)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75765880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칼럼
다음기사 : 코셰르(4) (2014-10-10 15:25:28)
이전기사 : [이영훈 칼럼] 시대적 요구, 섬김의 리더십 (2014-10-03 06:36:06)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