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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9월13일 08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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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에서 쇤 추석명절 이야기
해마다 명절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형님 댁을 간다. 형님 지론은 명절엔 무조건 다 모여야 된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나 모이지 그게 아니라면 집안사람들이 1년에 한 번도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요번엔 교동대교가 개통되어 배 시간에 쫒기고 애태우는 일이 없이 편안하게 다녀왔다. 주일 오후예배까지 마치고 출발했는데 상습 정체구간인 중동에서 좀 밀리고 그 외에는 뻥 뚫려서 쉽게 갔다.
 
시골집에 도착하여 보니 마당에 큰 개가 새끼를 아홉 마리 났는데 복슬복슬한 게 아주 실해 보였다. 집안이 잘 되려면 우양의 새끼까지 복을 받는 건데 일단 기분이 좋아 인증샷으로 폰에 올렸다. 하루 자고 아침 식전 우리는 명절예배를 드린다. 항상 내가 예배를 인도하는데 짧지만 형님네가 교회는 안 나가도 1년데 이렇게 서너 번 예배를 드리니 귀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없이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아멘도 하고 아우 목사의 설교를 경청하는 시간이다.
 
조반을 먹은 후는 선친 묘를 향하여 출발했다. 거의 다가서 우리가 우회전 하려는데 앞에 차가 와서 약간 안 비킬 태세였다. 몇 미터만 가면 우린 우회전이니까 그 쪽에서 비켜줘야 하는데 젊은 애들이 웬지 뻣뻣해 보였다. 결국 후진해 줘서 형님 차가 우회전 했는데 비켜준 쪽이 차에서 내리더니 형님을 쫒아가서 따지는 것 같았다.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인가. 
나도 차에서 내렸다. 명절 날 싸우자는 건가. 그러자 형님이 ‘가만있자~ 이 사람들 낯이 익은데 누구지?’ 하니까 그 중에 제일 어른 되는 사람이 ‘저 OOO 씨 동생입니다.’ 그러니까 형님이 ‘아~ 어쩐지. 아니 근데 내가 이렇게 우회전해야 해서 좀 비켜 달라한 것이 뭐가 잘못됐습니까?’ 했고, 나도 내려서 보니 이 어린놈들이 후진 몇 미터 한 거 가지고 어른한테 따지나 하고 지켜보던 중 자세히 보니 그 중 제일 어른이 중학교 내 동창 같아 보였다.
 
“아니, 그나저나 나하고 동창 아니유?” “누구지?” “나 황화진” “아. 맞다. 야. 이게 몇 년 만이야.” “야, 너 제영(가명)이지?” “그래 근데 너 어디서 뭐하니? 명함 있으면 줘” 그래서 명함을 줬더니 “어, 목사님이네, 야 너 훌륭하구나.” “훌륭하긴 자네는 뭐하는데?” “어. 난 은행 지점장인데 지금 정년퇴직 날짜 받아놔서 출근은 않고 마지막 휴가야”
 
대충 이렇게 보내놓고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자녀들 같은데 그것들이 감히 그 상황에 그런 행동을 날린 게 참 어이없다는 생각에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거 같아 씁쓸했다.
 
그 사람들을 보내고 우린 산에 올라가서 선친 묘 앞에 섰다. 이건 효 문화 정착을 위한 차원에서 하는 행위이다. 역시 내가 ‘일동 묵념’을 선언하면 모두 묵상기도를 한다. 마치고는 묘지 주변을 대략 살피고 정리도 한다.
 
 내려오다 반가운 동네 후배도 만나서 잠시 담소했고 그리고 내려 왔는데 누가 날 찾는다고 한다. 근데 그 사람이 나보고 하는 첫 마디가 “야 이 새끼야 너 동창회 좀 나와 임마. 이 새끼 머리만 빠졌지 그대로네” 그런다. 근데 난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니 근데 누구지?” “나 영철(가명)이” “야, 너 오랜 만이구나” 이 친구 중학교 입학시험 때 내가 보여줘서 붙은 친구인데 교양은 어디로 출장 보냈는지 나를 완력으로 기선 잡으려고 하는 듯한 액션에 별로 내키지 않는 조우 잠시 하고 보냈다. 중학교 때 보고 어제 처음 본 건데 정말 죽마고우라 반가워서 이 새끼 저 새끼 찾는 그런 게 아닌 것 같고 웬지 좀 거시기 했다. 친구지간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 먹고 나오다 전에 배 타고 다니던 월선포가 어떤 표정으로 있는지 새우젓도 살 겸 가봤다. 적막강산일 줄 알았더니 그곳은 강화군내버스 종점이 되어 바다구경오고 바다낚시 하고 새우젓 사고 그러는 사람들로 붐볐다. 교동대교 건너 다시 창후리도 가봤다. 상권이 죽었을 줄 알았더니 여전히 활기차 보였다. 세상은 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게끔 돼 있는 것 같았다.


황화진 목사(수필가/수원 강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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