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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8월18일 16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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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열린 감옥 문

새벽에 열린 감옥 문   (행 12: 7-17)

 

중국에서 40년을 선교사로 봉사했던 포펜 박사가 감옥에서 나온 실화이다. 그가 중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한지 40년째 되는 해, 그는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재판을 받게 됐다. 시청광장에서의 공개재판에 수많은 관중이 몰려들었다. 재판 차례가 돼 포펜 박사가 단 위에 오르자 그를 향하여 수많은 죄목이 낭독됐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죄는 국가에 대한 반역죄였다.

 

공개재판이 끝나자 포펜 박사는 조그만 감방에 억류됐다. 어찌나 작은 방이었든지 제대로 허리를 펴고 누울 수도 없었다. 그곳에서 포펜 박사는 자신의 운명이 어찌될지도 모른 채 있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너무 고통스럽고 견딜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주실 것을 기도하고 잠들어 버렸다. 그런데 잠이 들었던 그는 갑자기 감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따라 오십시오. 그리고 제가 누구인지는 묻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보낸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십시오.” 감옥 문을 연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포펜 박사는 그 사람을 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밤공기가 차가운 자갈밭을 걸어갔다.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항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저기 배가 보이지요?” 그를 인도해온 사람이 말했다. “빨리 타십시오. 저 배는 홍콩으로 가는 배입니다. 홍콩에 도착하시면 자유롭게 당신의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포펜 박사는 그때까지도 꿈을 꾸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배를 타고 멀어져가는 중국 본토를 바라보면서 그때에야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포펜 박사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천사가 감옥 문을 열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새벽에 열린 감옥 문

 

본문은 복음의 확장으로 기독교의 영역이 점차로 확대해지자 헤롯왕이 무자비하게 기독교를 탄압한 내용이다. 본장의 헤롯은 예수 탄생 시 300명에 가까운 이스라엘의 유아를 살해했던 헤롯 대왕의 손자(눅 1; 5)인 헤롯 아그립바(AD 37-44)로서 그는 유대 땅의 ¼인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면서 자기 죄를 책망한 세례 요한을 처형했던 헤롯 안티파스의 조카이기도 하다(눅 3: 19) 이렇게 헤롯 가문은 대를 이어서 기독교에 적대적이었고 그들의 재임 기간 중에 순교자의 피가 끊이질 않았다.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기독교를 박해하면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감옥에 가두었다가 먼저 야고보를 참수했는데 유대인들이 야고보 죽이는 것을 기뻐하자 베드로까지 죽이려다가 그의 사형이 유대인의 절기 유월절과 무교절이 겹치므로 절기를 피해 베드로를 죽이려했는데 그 사이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오게 되는 사건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네 사람의 군인이 한 팀이 되어 여섯 시간마다 교대하며 철통같이 지키는 상황에서 감옥에 갇혀있었고 무교절이 끝나는 일주일 후에 야고보처럼 공개처형을 당할 위기에 있었다. 이러한 위기상황 때, 온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밤마다 합심하여 철야하며 특별 기도를 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출했는데 그 시간이 바로 새벽이었다(행 12: 18) 그렇다. 놀랍게도 많은 시간 중에서 새벽은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도움과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는 특별축복의 통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국교회는 새벽기도로 세계적인 부흥의 기적을 만들어 냈고 새벽기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과 기적을 체험했다. 새벽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들이 당신에게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새벽에 열리는 감옥 문의 역사들을 알아보자.

 

1. 감옥(Prison)

 

성경엔 감옥(Prison)이란 단어가 93회, 감옥에 수감된 죄수(Prisoner)란 단어가 33회 등 감옥에 관한 단어가 126번이나 기록됐다. 그래서 감옥에 수감된 사람만큼이나 감옥의 의미는 다양하다. 감옥(監獄)이라고 모두 죄인만 갇히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지어서 감옥에 수감되는 사람도 있지만 죄 없이 억울하게 갇히는 사람, 누명을 뒤집어쓰고 갇히는 사람, 심지어는 밖에 있으면 맞아줄 사람이 없어 갈 곳, 잠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일부러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성경이 보여주는 감옥들을 알아본다.

 

⑴ 누명의 감옥(창 39: 29, 히 11: 36)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 쥴리카(Zuleekha: 전설에 의하면 쥴리카는 이집트의 최고미인이면서 도덕적이고 덕행이 있는 여자였는데, 어느 날 이집트의 최고미인들인 고관대작 귀부인 40여명을 자기 집에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을 때, 여인들마다 요셉을 보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칭송하며 흠모하자 그녀도 요셉에게 빠져버렸다고 한다)의 유혹을 거절했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듯 세상엔 죄 없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 의외로 많다.

 

2011년 10월 1일 펜실베니아 주 페이에트 카운티에서 살해혐의로 억울하게 25년간이나 옥살이를 했던 데이비드 먼친스키(59세)가 무죄로 석방되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 미국이나 한국, 그리고 전 세계 감옥에 죄 없이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⑵ 좋은 소식 기다림의 감옥(창 40: 23, 41; 14)

 

요셉의 꿈 해몽대로 복직하게 된 술 맡은 관원장이 구명운동을 해 감옥에서 건져 주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애타게 기다렸지만 요셉은 2년 동안 좋은 사면소식을 듣지 못한 채 감옥에서 견뎌야 했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기다림의 감옥은 요셉이 갇혔던 붉은 벽돌집 감옥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사업의 좋은 소식, 결혼의 좋은 소식, 시험합격의 좋은 소식, 구직의 좋은 소식, 영주권과 시민권의 좋은 소식, 만남의 좋은 소식...사면의 좋은 소식 등 수많은 좋은 소식을 마음 졸이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감옥이다.

 

⑶ 실패와 패배의 감옥(삿 16: 21, 25)

 

삼손은 창녀 들릴라 유혹에 실패해 원수 블레셋 군사에게 사로잡혀서 두 눈이 뽑히고 굵은 놋줄 사슬에 매인 채 감옥에서 연자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됐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당하는 인생실패, 사업실패, 가정실패, 자녀교육 실패에서 신앙실패까지의 모든 실패와 패배감에 사로잡힌 좌절상태가 바로 감옥이다.

 

⑷ 신앙 위한 박해의 감옥(왕상 22; 17, 대하 18: 26, 렘 37: 16, 마 11: 2, 14: 10, 눅 3: 20)

 

선지자 미가야와 예레미야, 세례 요한, 바울과 실라는 신앙을 위해 감옥에 갇혔다. 오늘 이북이나 중국 같은 공산국가와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모슬렘 국가에서 예수 믿는 신앙을 지키려다가 박해로 감옥에 갇혀 있는 성도들이 수십만, 수백만이 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물의 감옥만이 아니라 신앙박해를 이기기 위해 당하는 마음의 감옥, 환경의 감옥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러므로 신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를 당하며 이혼까지 당하면서 재산도 자식도 빼앗기며 심지어 죽음까지 당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감옥이다.

 

⑸ 원통함의 감옥(시 142: 7)

 

다윗은 “내 영혼을 옥(獄)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고 고백했다. 이것은 자기가 섬겨야 했던 왕이며 주군이면서 개인적으로는 혈육관계의 장인인 사울에게 13년 이상을 아무 죄도 없이 21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끝도 없이 피해 쫓겨 다녀야 하는 원통함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한 다윗의 기도내용이다. 그렇다. 다윗처럼 마음속에 원통함이 상처로 남아 있고 원한이 쓴 뿌리처럼 남아 있는 것이 감옥이다.

 

⑹ 도적맞음, 노략과 탈취 당함의 감옥(사 42; 22)

 

“이 백성이 도적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도적맞음, 노략 당함, 탈취 당함의 감옥이다. 입이 있어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아무 힘이 없어서 눈뜨고 보는 앞에서 억울하게 도적맞고 일을 하고도 품삯을 받지 못하며 강제로 노략 당하고 탈취를 당하면서도 그런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자가 아무도 없는 상황, 아무도 내편 돼주는 사람이 없는 슬픈 현실이 정신적인 감옥이다. 그러나 이렇게 강한 자들에게 짓밟히고 당하는 인권유린과 노동력 탈취의 감옥도 견딜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을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는 마귀에게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당하면서도 아무도 구해줄 자가 없고 아무도 내 편 돼줄 사람이 없는 것은 영적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2000년 전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사단마귀와 각종 귀신들에게 눌린 자와 포로 된 자들을 자유케 하며, 눈 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해주려고, 감옥에 갇힌 인류를 구원하려고 오셨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으므로 참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은 6천년 동안 지구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자행하던 마귀를 멸하시고 성도들을 모든 사단마귀의 감옥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

 

⑺ 불순종과 범죄의 징벌(렘 52: 11, 3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獄)에 두었더라”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 왕 에월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월 이십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獄)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유다 왕 시드기야와 여호야긴은 하나님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예언과 충고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하들과 백성들을 더 두려워해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며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다가 바벨론에 끌려가 감옥에 갇히는 비극을 당했다. 오늘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 눈치 보다가 불순종하는 죄 때문에 영적인 감옥, 물질적인 감옥, 정신적인 감옥에 갇히는 징벌을 당하는 일이 많다.

⑻ 미움과 증오의 감옥(마 5; 25, 18: 20)

 

용서하지 않는 마음, 미움과 증오는 그 자체로 이미 감옥이다. 먹고 마실 것이 풍부하고 잠잘 곳이 평안하며 걱정과는 거리가 먼 삶의 환경으로 몸이 자유로워도 그 마음이 미움과 증오로 사로잡혀 있으면 그 사람은 이미 감옥에 갇혀 있는 불행한 사람이다. 육신이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은 육신의 행동이 제약을 받으면서도 마음은 자유로울 수가 있지만 마음이 미움과 증오, 분노와 울분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러한 감옥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는 한 그의 삶은 창살 없는 불행한 감옥생활이다.

⑼ 대환난의 박해의 감옥(마 25: 36, 39, 43, 44, 눅 21; 12)

 

며칠 전, 이라크에서는 모슬렘들이 기독교인 마을을 공격해 어른과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죽이는 일이 있었고 파키스탄과 벵글라데시의 중동지역과 이집트와 리비아와 아프리카의 모슬렘나라에서도 기독교 박해가 점점 더해가고 있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휴거 직전인 종말시대에 세계적인 신앙타락과 종교탄압으로 많은 의로운 성도들이 예수이름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일이 있을 것이며, 성도들의 공중 휴거 후 지상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칠년 대환난 때에는 훨씬 더 강도 높은 핍박과 감옥에 갇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성도들이 핍박과 어려움 당하는 특별훈련이 필요한 때이다. 일부러라도 극기 훈련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며칠 동안 해병대 훈련을 받거나 며칠 동안 금식 훈련을 받아도 사람이 달라진다. 그래서 말세 성도는 자원해서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축복이라는 ‘온실 안 신앙’으로는 박해와 핍박을 견뎌내지 못한다.

 

2.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베드로가 사형 당하기 몇 시간 전, 극적으로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탈출한 사건은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누가는 그 극적인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진지라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 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니라”(행 12: 6-10)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18절)

 

베드로를 지키는 헤롯의 군사들이 얼마나 철통같이 감옥을 지켰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이중 삼중으로 지켰고 파수꾼들이 감옥을 포위한 상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는 바람이 철창을 통과하듯 모든 장애물을 없애고 유유히 감옥 문을 열어 베드로가 감옥을 탈출하게 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란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새벽에 성도들을 도우신다.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가장 좋은 시간이 새벽이란 말이다. 그래서 새벽기도 성도가 남들보다 많은 기적과 축복을 받는 것이다.

 

고라 자손은 찬양하는 여종들과 음률을 맞춰 노래하기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 very present help in trouble)...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God will help her when morning dawns: 시 46; 1, 5절)

 

할렐루야! 하나님은 새벽에 나를 도우신다. God shall help me, right early!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우리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감옥 같은 환경에 그대로 있다면, 내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약속을 했다가 게을러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도움을 얻지 못한 사람과 같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사랑했던 사람을 뺏긴 사람과 같다. 새벽에 돕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새벽에 나와 도움을 받는 역사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새벽과 아침(Dawn, morning)이란 단어가 227회, 이른 아침, Early in the morning이란 단어를 34회나 언급한 성경에서 하나님이 새벽에 사람을 도우신 대표적인 기록을 보면 ⑴ 새벽에 기도를 응답하셨다(시 5: 3, 88: 13) 새벽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그 가치와 축복을 다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새벽기도는 기도응답의 비밀 열쇠다. 새벽기도로 기도제목들이 응답받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⑵ 원수를 쳐 주시고 징계해 주셨다. 이스라엘을 놔주지 않고 억류했던 바로를 새벽에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출 7: 15) 파리 재앙(출 8: 20) 우박 재앙(출 9: 13-21) 메뚜기 재앙으로 치셨고(출 10; 13)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으로 치셨다(출 12: 10, 22) 유다를 침공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항복을 강요하는 앗수르 정예군 18만 5천명을 치셔서 송장으로 만드셨다(사 37: 36) 그렇다. 지금도 하나님은 새벽 기도하는 성도의 각종 원수들을 쳐서 파괴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애굽의 기마병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못하게 막으신 기적과 애굽 군대를 바다에 수장한 초자연적인 기적이 새벽의 기적이었다(출 14: 24, 27, 30)

 

구산 중학교 교감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던 양동수 장로는 부대에서 훈련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부대원 18명을 죽이고 1명이 살았을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청년이었다. 그는 목에 총을 맞고 많은 피를 흘려서 생존가능이 2%도 안 되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는데 그를 살려낸 의사는 “자네는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할 정도로 위험했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살아난 그 새벽시간, 고향집에 계시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절박한 마음을 주셔서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새벽기도를 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새벽기도가 그를 살린 것이다.

 

메추라기와 만나의 기적이 새벽의 사건이다(출 16: 1-7) ⑸ 원수를 정복케 하는 축복을 주셨다. 난공불락의 철옹성 여리고가 이스라엘 앞에 무너져 내린 것이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었다(수 6: 12, 15) 그렇게 당당하고 무섭게 보이던 당신의 원수들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기적은 새벽 기도를 할 때이다. ⑹ 모세를 만나셨고 그에게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새벽에 모세를 만나셨고 십계명과 수많은 율례와 규례의 말씀을 주셨다(출 19: 16) ⑺ 숨겼던 아간의 죄를 밝혀내시고 이스라엘에 전쟁승리를 주셨다(수 7: 14)

 

룻이 기업 무를 자를 만나는 축복을 받았다(룻 3: 13, 4장) 룻이 보아스를 남편으로 맞게 되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은 새벽의 사건에서다. ⑼ 다윗에게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고 그의 다닐 길을 알게 하셨다(시 143: 8) 새벽기도는 그날의 나의 길, 그 주간의 나의 길, 그 달의 나의 길, 그 해의 나의 길...내가 다닐 길을 안내해주시는 축복의 시간이다. ⑽ 엘리야를 먹이셨다. 하나님이 아침에 까마귀들에게 먹을 것을 엘리야에게 가져다주게 했다(왕상 17: 6)

 

하나님은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신다(Be Thou their arm, Be Thou their strength every morning; 사 33: 2) 하나님은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고 우리의 힘과 건강이 되신다. 새벽기도는 하나님께 질병을 고침 받고 건강을 얻는 지름길이다. ⑿ 다니엘을 사자(獅子)굴에서 나오게 하셨다(단 6: 15)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나온 것은 죽음의 위험에서 건짐 받은 사건이기도 하지만 다니엘을 법적으로 얽어매고 있던 모든 쇠사슬을 끊어 놓는 기적이었고 다니엘을 시기 질투하는 모든 대적들을 이기는 기적이었다. 당신이 새벽기도로 사자 굴 같은 위험과 어려움의 위기들을 이기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미련한 요나를 깨닫게 하신 시간이었다(욘 4; 7) ‘박 넝쿨 시각교육’으로 미련한 요나를 깨닫게 하신 시간이 새벽이었음은 오늘도 하나님은 새벽에 미련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교훈하심을 가리킨다. 새벽기도와 새벽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시는 축복은 이스라엘의 만나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다. 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눅 24: 1-12) 새벽기도는 성경에 기록된 문자적인 예수를 만나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부활의 주님과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새벽은 잘못된 새벽이다.

 

지은정권사 가족은 새벽기도로 기적적으로 영주권을 받았고, 박승진집사도 새벽기도로 방광암을 기적적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김숙자 권사는 새벽기도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뇌수술을 완전하게 치료받게 했고, 김동신 집사는 40일 새벽기도로 몇 십만 명 중 하나가 걸리는 희귀병을 앓던 딸을 지금 건강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이 외에도 주기도문 교회에서 새벽기도로 축복 받은 성도들의 간증은 얼마든지 있다. 이제 김목사가 중요한 일,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주기도문 교회 성도모두가 새벽기도로 기적과 축복들을 체험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벽기도로 기적을 체험한 성도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귀하고 좋은 새벽기도를 더 열심히 계속해서 더 많은 기적들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새벽기도가 어떤 사건이 생길 그때마다 하는 월례행사나 연례행사가 아니라 날마다 생활화되는 성도,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날마다 일어나는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자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감옥에 갇혀있는가? 나를 옥죄고 있는 감옥, 나의 숨통을 움켜쥐고 있는 감옥은 어떤 감옥인가? 환경적으로 나를 위협하는 감옥, 생활 속에서 나의 호흡을 압박하는 감옥, 동서남북 전후좌우에서 내 가슴을 짓누르는 감옥, 내 영혼을 짓누르고 있는 감옥들은 어떤 감옥인가? 여러분은 언제까지 감옥에 갇혀 한숨지으며 탄식하고 운명을 저주하면서 살겠는가?

 

베드로처럼 감옥에서 나오는 새벽의 기적을 만나라. 새벽에 도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당신 자신의 약속이 돼 매일 매일의 새벽기도에서 천사들이 동원되고 감옥마다 옥문들이 열리고 쇠사슬들이 끊어지는 축복의 기적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한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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