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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8월11일 17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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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굳세게 하라 학 2: 1-9절

사람은 좋든 싫든 평생 라이벌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의 학창시절엔 성적이나 미모나 싸움실력의 라이벌이 있다가 사회에 나가면 ‘누가 더 좋은 직장을 가졌는가, 돈은 누가 더 잘 버는가, 결혼은 누가 더 잘 했나’ 등 개인적인 입신출세의 경쟁자가 있지만, 현대나 기아 같은 대기업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있고, IT산업의 선두주자 삼성이나 LG 같은 회사는 중국 일본 독일 같은 호적수라이벌들이 있으며, 작은 사업이나 조그만 구멍가게까지도 그 사업의 경쟁자와 호적수가 있고, 운동선수도 운동마다 적수와 겨룸상대가 있으며, 심지어 예쁜 미인을 사랑하거나 멋진 청년을 사랑하는데도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라이벌연적(戀敵)이 있다.

 

라이벌은 귀찮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 경쟁의 호적수, 라이벌경쟁상대 때문에 자신이 더 노력하고 발전하게 된다. 미국은 건국 이후 240여 년간 라이벌의식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문화가 비슷한 북쪽의 캐나다는 아이스하키 등 각 부문에서 미국과 우열을 가리는 숙적이고, 남쪽의 멕시코는 이민문제와 축구라는 촉매로 미국과 경쟁적인 인연을 맺고 있다.

 

미국의 50개주 역시 나름대로 경쟁 속에 지역별로 성향이 뚜렷하게 나눠져 있다.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동족상쟁 비극을 야기한 남북전쟁 이후 농업지대인 남부와 상대적으로 공업이 발달한 북부의 의식차이는 더욱 벌어졌지만 여전히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고 있다. 게다가 세계 200여 나라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미국을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Melting-Pot 합중국’ 나라로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라이벌 경쟁의식은 자기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라이벌의식이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에 이어 지구촌에서 두 번째로 영토가 넓은 캐나다는 불어권인 동쪽 퀘벡 주와 영어권인 서쪽 간의 반목이 극심하다. 한국보다 약간 큰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4개로 나눠져 있고 축구협회까지도 4곳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월드컵 예선도 따로 구성된 대표팀으로 치른다. 동서가 통일된 독일은 아직도 동(東)과 서(西)가 앙금이 남아 있고, 이탈리아도 잘 사는 북부와 비교적 덜 개발된 남부의 반목이 심하며, 동구권의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골수에 사무친 적대적관계로 결국 둘로 갈라섰고, 얼마 전까지 한 나라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둘로 갈라져 경쟁상대가 됐으며, 인도도 종교분쟁으로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돼 나갔다. 그 외에도 스페인은 프랑스에 인접한 동부(東部) 카탈루니아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고,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권과 가까운 남부(南部) 안달루시아 지역도 판이한 지역정서를 지니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남북의 7,000만과 세계에 흩어진 한인디아스포라까지 합쳐 8,000만이 통일되어 하나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체육 모든 면에서 세계 7대강국 중 하나가 되고, 옛 고구려의 위상을 되찾아 21세기 세계역사를 진동시킬 수 있을 것인데, 비극적인 6.25 골육상쟁이 끝나고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과 북이 총부리를 맞대고 철천지원수로 싸우고 있으니 부정적 경쟁의식은 이렇게 큰 민족적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라이벌경쟁의식은 부정적으로는 수단방법 다해서라도 라이벌을 이기겠다는 투쟁심과 의욕으로 서로를 망하게 하고, 긍정적으로는 자기를 발전시키는 커다란 동력이 된다. 그래서 라이벌이 항상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잘만 이용하면 서로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 한국의 연.고전이 대학 스포츠의 활력을 불어넣고, 한국축구가 일본과의 라이벌의식에서 발전하여 아시아축구의 맹주가 됐으며, Los Angeles의 USC와 UCLA의 대학라이벌, Dodgers와 Angels의 실업야구 라이벌, Lakers와 Clippers의 농구 라이벌경쟁의식으로 서로 발전하듯 건강한 라이벌문화는 피차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라이벌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에서 라이벌경쟁자 때문에 골치 앓아야 하고, 혈압이 올라가야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지만 여러분이 싸워서 이기고 정복해야할 마지막 경쟁상대, 최후의 라이벌, 최종의 호적수는 외부의 그 어떤 사람도 아닌 바로 당신자신이다. 그래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 신앙의 승리와 패배, 내 삶의 최후승리와 최종실패는 바로 당신자신(Yourself)에게 달렸다.

 

스스로 굳세게 하라!(Be strong)

 

본문 4절에서 하나님은 70년 만에 바벨론포로에서 본토 이스라엘로 귀환하여 무너진 성전을 예루살렘에서 다시 짓기 시작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Yet now be strong! O, Zerub-ba-bel(“스룹바벨아, 스스로 굳게 하라”) Be strong, O Joshua, son of Jehozadak, the high priest(“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게 하라”) Be strong. all you people of the land(“이 땅의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라”) For I am with you(“(그 이유는)내가 너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라며 “스스로 굳게 할 것”을 세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를 굳세게 하는 사람,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사람과 함께 하신다. 반대로 자기를 약하게 하는 사람, 매사에 자기 스스로 물러서는 사람, 자학하고 자신을 폄하하며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 하고 스스로(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원수가 나보다 너무 강하며, 나는 저주받은 사람이란) ‘메뚜기 신드롬’에 빠져있는 사람에겐 함께 하시지 않는다(민 13: 33) 그래서 요르단광야 들판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스스로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했던 세례요한을 혜성처럼 일으켜 400년 암흑시대의 흑암을 뚫고 나와 ‘회개와 천국’을 외치며 역사를 뒤흔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시대의 영웅을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태양광선 중에 마지막 석양이 가장 웅장하고 장엄하듯, 촛불의 마지막이 가장 힘찬 광선을 발산하듯,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주자로 역사무대를 빛내며 달려갔다. 스스로 강하게 하고 스스로 담대하게 만들며 스스로 굳세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1. 성도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

 

비즈니스를 새로 창업하거나 교회를 새로 개척하면 3년 이내에 60-70%가 문을 닫는다는 통계가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후발주자들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중에 30-40%는 살아남아 성공하는데 성공한 사업가의 6가지 특징은 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비즈니스와 관계된 사람뿐 아니라 인맥관리차원에서 대인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⑵ 항상 목표를 세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루 단위나 한 주간 또는 한 달 단위로 목표치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일해 목표를 성취하지만 실패한 사람은 목표가 없이 대충 일을 한다. ⑶ 오늘 할 일을 알고 있다. 성공한 사람은 오늘 해야 할 일이 분명하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스케줄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계획 없이 일한다. ⑷ 로토에 관심이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확률이 벼락 맞아 죽는 것보다 힘들다는 로토에 관심 두지 않고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이고, 게을러 실패하는 사람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로토 추첨하는 날만 기다린다. ⑸ TV는 조금만 본다. 성공하는 사람은 하루 TV 시청시간이 한 시간 남짓이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이나 레저 활동, 사람 만나는데 활용하지만 실패한 사람은 할일이 없어서 TV 앞에만 앉아 있다. ⑹ 음식에 신경을 쓴다. 건강은 자체가 돈이며 자신과 가정의 행복이기에 성공하는 사람은 먹는 음식, 음료, 간식에 칼로리가 얼마나 있는지 신경 쓰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건강관리에 소홀하다. 이런 것들이 절대적으로 사업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의 습성은 실패하는 사람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인 나를 지적해서그대(너) 자신, 너 스스로”라고 한 Thyself(히-나프셐, 헬-헤아우톤; “그대, 당신, 너”(You, Ye)란 뜻의 인칭대명사 2인칭 단수 주격; 어떤 한사람을 지적해 부르는 말)란 말이 215번,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인 우리 모두를 지적해서너 자신, 너 스스로”라고 한 Yourselves(헬-헤아우투, 휴마)란 말이 190번, 그래서 ‘네 자신, 너 스스로’란 말이 무려 405회나 언급됐는데, 그러면 성경이 성도에게 명령한 ‘나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스스로 조심할 것이다(Take heed to yourselves: “주의하고 조심하라”) ① 스스로 조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모세(주의 종)를 방해하지 말라(출 19: 12) ② 스스로 조심하여 에서에게 기업으로 준 땅(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한 발자국이라도 범하지 말라(신 2: 4) ③ 스스로 조심하여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신 4: 15- 26, 11: 16) ④ 말씀을 어떻게 듣는지 스스로 삼가라(눅 8: 18) ⑤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고 뜻밖에 주님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눅 21: 34) ⑵ Consecrate yourselves(“스스로를 하나님께 헌신하라”, 출 32: 29)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며 물질을 드려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할 것이다 ⑶ Sanctify yourselves(“스스로 너희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하라”) ① 거룩해지기 위해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스스로 구별하라(레11: 44) ② 스스로 구별하여 신접한 자나 박수를 추종하지 말라(레 20: 7) ③ 하나님의 기적의 선물인 메추라기를 받도록 스스로 몸을 거룩하게 하라(민 11: 18) ④ 요단강을 도강(하나님의 기적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 성결케 하라(수 3: 5) ⑤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 남아 있지 않게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수 7: 13) ⑥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삼상 16: 5) ⑥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기 위해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대상 15: 12)

 

Separate yourselves(반역자를 징계하는데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를 구별하여 반역자들을 떠나라; 민 16: 21, 에스라 10: 11) ⑸ Keep yourself from the accursed thing(“하나님께 바친 물건에 손대는 저주에서 너 자신을 지켜라”; 수 6: 18) ⑹ Yield yourselves unto God(“네 육신의 지체를 스스로 하나님께 드려라”; 롬 6: 13, 16-23) 우리 지체를 스스로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는 말씀이다 ⑺ Avenge not yourself(“네 스스로 보복이나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마라”; 롬 12: 19) 보복이나 원수 갚는 일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소관이고 하나님의 특권이다. 내가 원수 갚으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이며 월권행위다. 그러므로 어떤 억울한 일도 보복을 하나님께 맡길 것이다 ⑻ Give yourselves to fasting and prayer(“금식과 기도하는 일에 네 자신을 드려라”; 고전 7: 5) 일 년에 몇 차례 대청소를 해야 집이 깨끗하게 보존되듯 우리 몸은 성령이 거주하는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수시로 금식과 기도로서 대청소를 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깨끗해질 수가 있고 건강하게 보존할 수 있다.

 

Examine yourselves whether you be in the faith and prove yourselves(“항상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스스로를 시험하고 스스로를 확증하라”; 고후 13; 5) 정기검진에서 병이 발견된다면 건강관리를 실패한 것이듯이 성경은 스스로 자신을 시험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확증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고 했다 ⑽ Speaking to yourselves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네 스스로 시편의 찬양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라”; 엡 5: 19) 차를 운전하거나 일을 하거나 음식을 요리하면서 자기 스스로(자기 입으로) 끊임없이 흥얼거리며 찬양하는데 바치라는 말씀이다. ⑾ Submitting yourselves one to another(“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스스로 이웃에게 복종하라”; 엡 5: 21) 자존심 상하게 이웃에게 고개 숙일 이유가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고 이웃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이다 ⑿ Be at peace among yourselves(“네 스스로를 화목의 사람이 되라”; 살전 5: 13) 나를 화목의 도구, 화평케 하는 자를 만들라는 말씀이다 ⒀ Submit yourselves to God(“너 자신(스스로)을 하나님께 순복하라”; 약 4: 7) 순간순간 때마다 시간마다 분초마다 자신 스스로를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는 마귀가 틈탈 수가 없다. 내 속으로 사단이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다 ⒁ Humble yourselves in the sight of God(“하나님 앞에서 자기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라”; 약 4: 10)

 

Have fervent charity among yourselves(“먼저 스스로 열심히 사랑하는 자가 되라”; 벧전 4: 8) 남이 먼저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⒃ Building up yourselves on your most holy faith(“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네 자신(스스로)을 건축하라”; 유 20) ⒄ Keep yourselves in the love of God(“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라”; 유 21)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이다. 오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최고자리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뇌물을 받거나 혼외자식을 두거나 마약에 손을 대는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최정상에서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하고 추락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잠 4: 25)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잠 16: 32)고 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사람, 스스로를 지키는 거룩하고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스스로 굳세게 하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수많은 선수들과 감독들을 제치고 세계축구의 거성으로 떠오른 신성(新星)은 독일선수들을 조련해 세계챔피언으로 만든 요하임 뢰브 감독이다. 뢰브 감독은 이번 월드컵 동안 뛰어난 전략과 탁월한 용병술, 세련된 외모와 패션 감각까지 뽐내며 꽃 중년 열풍을 일으켰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 특히 중년 여성들이 독일팀 경기가 벌어지면 TV 앞을 떠날 줄 모를 정도로 인기 만점이었다.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14년이 있기까지의 뢰브 감독의 인생 스토리는 한 마디로 보잘 것 없는 평균이하, 형편무인지경이었다. 선수시절에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큰 족적을 남긴 차범근 감독과 같은 팀에서 주전도 아닌 백업 공격수였다. 선수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그는 1995년 선수생활을 접고 지도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34세 젊은 나이에 스위스 하위리그팀 프라우엔펠트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데뷔전을 치르지만 그의 경력은 들쑥날쑥 보잘 것이 없었고, 그 후 터키의 페네르바체, 독일 2부 칼스루에 그리고 다시 터키와 오스트리아를 전전긍긍하며 떠도는 신세였다. 하지만 뢰브는 실패에서 스스로를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실직기간 동안 뢰브는 독일축구협회 코칭스쿨을 다니면서 거기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는 인연을 만나 교분을 쌓게 되는데 그가 바로 독일의 대표적인 골잡이였던 위르겐 클린스만이다. 2004년 여름, 클린스만이 독일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간 눈여겨봤던 뢰브를 수석 코치로 지명하고, 이렇게 손을 잡은 두 사람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3위(동메달)의 성과를 낸다. 그 후 클린스만이 대표팀 감독을 사임하면서 그 동안의 실력을 인정받은 뢰브가 독일 대표팀을 맡게 되는데 그때부터 8년 동안, 과거의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절치부심, 자기스스로를 굳게 하고 강하게 하면서 독일 축구를 과학적으로 갈고 닦아 8년 만에 마침내 브라질월드컵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뢰브는 일약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스스로를 강하게 했던 한 사람의 운명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당신도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굳세게 할 때, 당신 삶의 현장에 기적들이 일어날 것이다.

 

BC. 538년 고레스의 칙령으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본토귀환자원자 20세 이상 50세까지의 장정 42,360명과 노비 7,337명 그들의 가족까지 남녀노소 줄잡아 대략 40-50만을 거느리고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70년 전, 바벨론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예루살렘은 아무 것도 없는, 나무와 잡초만 우거진 황량한 들판이었고 들짐승들만 우글대는 황폐한 불모지였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아무 준비도 없이 폐허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성전재건을 착수한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유대인과 앗수르인의 혼열족이 된 사마리아인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 성전건축이 중단된다. 그들이 식민지의 종교적 관습이나 제도에 잔인하고 무모한 파괴정책을 실시하는 고레스의 후계자 캄비세스에게 투서를 올려 성전건축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고레스 왕 2년인 BC. 536년 2월(스 3; 8) 성전건축의 기초를 놓았던 성전재건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16년 동안이나 중단됐다.

 

성전재건이 중단되자 이스라엘백성들은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고, 건축이 중단된 이유를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이라며 낙심하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스가랴와 학개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책망하고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You look for much, but behold, it comes to little),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When you bring it home, I blow it away) 이것이 무슨 연고냐?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기 때문이라”며 성전건축을 중단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지적하고 성전건축을 격려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캄비세스를 이어 왕이 된 다리오에게 탄원서를 올려 성전건축 허락을 받아내므로 마침내 중단 16년 만에 성전재건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학 1: 5)

 

본문은 성전재건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난 때에 하나님이 학개를 통해 하신 말씀이다. 백성들 중에는 그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 그 웅장하고 화려한 솔로몬성전을 본 노인들이 있었는데, 스룹바벨이 한 달 동안에 기초작업을 한 성전 모습을 보니 거대한 궁궐과 다 쓰러져가는 시골초가집의 차이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에 실망을 느끼고 절망하며 통곡을 한다. 탈무드 기록에 따르면 재건된 성전엔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서 ① 제단의 거룩한 불 ② 영광스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세키나(Shekinah) ③ 법궤와 그룹천사 ④ 우림과 둠밈 ⑤ 예언의 영(靈) 등, 다섯 가지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빠져 있는 초라한 성전을 본 노인들은 실망했고, 그 동안 성전재건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물거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원망이나 낙심, 절망은 발견 한 달여 만에 1000여 명을 죽게 하여 세계를 떨게 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빨리 전염된다. 이스라엘의 노인들로부터 시작된 한숨과 탄식과 절망의 통곡은 삽시간에 전염됐다. 필리핀에서 시작되는 작은 태풍들이 북상하면서 세력을 키워 한국 중국 일본에 도착할 때는 엄청난 파멸을 가져오는 거대한 태풍이 되듯 노인들로 시작된 작은 원망, 불평, 낙심 절망은 점점 더 커져가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이 돼갔다. 그때 선지자 학개가 외쳤던 설교가 본문말씀이다.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스로 굳세게 하라”(Be strong! Take courage!)는 선지자 학개의 설교를 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충격을 받고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마침내 성전건축을 끝낸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만들어 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176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이날 웨일스의 가난한 농가에서 ‘웨일스의 애꾸눈 사도’라 불렸던 크리스마스 에반스(Christmas Evans가 태어났다. 에반스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에반스는 몸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성격이 거칠고 사나운 삼촌 집에 살면서 일을 도우며 살았는데, 그때 물에 빠져 죽을 위기와 말에서 떨어져 죽을 위기 등 여러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어려움을 겪는다.

 

크리스마스 에반스는 18세가 되도록 글을 한 줄도 읽을 줄 몰랐다. 그렇지만 교회생활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때 에반스가 살고 있던 카디갠셔(Cardiganshire) 지방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영적부흥 운동이 불타오르고 있었는데 에반스도 이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중생의 경험을 한다. 뜨거운 은혜를 체험한 에반스는 어느 날 그곳 아르메니안 장로교회 한 교인에게 “저는 성경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성경을 더듬거리고서라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7, 8명 중에서 한 명 정도 밖에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뒤, 열심히 글을 익힌 에반스는 성경구절을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게 되자 목사님을 찾아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6개월 간 열심히 성경공부를 한 에반스는 영국으로 가서 더 많은 신학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영국으로 가던 중 폭도들에게 붙잡혀 심하게 매를 맞았는데 그때 한쪽 눈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에반스는 신학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배우기 힘든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완벽하게 익혔다.

 

공부를 마친 에반스는 고되고 힘들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며 설교하고 전도하는 순회목사가 된다. 교통수단이 열악했던 시대에 에반스는 말을 타고 달리거나 마차를 타고 거칠고 험한 산길과 언덕길을 수천수만 마일을 다니며 전도하므로 마침내 ‘웨일스의 사도’라는 영광스런 이름을 얻게 된다. 이러한 그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 새롭게 태어났으며,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게 됐다.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배우지 못함과 무식함에 좌절하지 않고 자기스스로를 굳세게 함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한 시대의 영웅, 크리스마스 에반스처럼 스스로를 굳세게 하므로 새로운 역사의 주인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본문은 실망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로하는 말씀이다. 1-5절은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을 보고 실망하는 이스라엘을 위로하는 말씀이고,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라”는 6절의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우주의 영적질서가 새로워질 것을 예언한 말씀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지구촌이 완전히 새로워질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렇다. 장차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시면 천지가 진동하고 “하늘과 땅이 새롭게 될 것”(Renovation of the heaven and the earth; 히 1: 10, 12; 25-29, 벧후 3: 6-13, 롬 8: 19-23)이다. 천지가 진동하면서 현재 지구촌의 세계지도가 완전히 바뀔 것이며 Solar System(태양계)도 바뀔 것이며, 현재의 지구환경은 타락이전 아담하와의 에덴동산처럼 바뀔 것이다. 예수님의 천년왕국은 땅의 토질과 자연과 식물과 동물과 사람의 체질까지 그리고 인간수명까지 바뀌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다음, 7-9절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성전에 관한 예언이다. 하나님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스룹바벨 성전의 영광이 더 클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언적으로, 메시야의 초림보다 재림의 영광이 훨씬 더 클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은 솔로몬 성전처럼 수백억 수천억을 들여 지은 세계적인 건물의 성전보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성전에 영광이 더 크게 나타나게 역사하신다. 그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교인이 많고 교회건물이 장엄하고 컸던 다섯 교회보다, 교회는 작았지만 고난과 박해 중에 묵묵히 충성하던 서머나 교회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았던 필라델피아 교회를 칭찬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반대와 방해공작으로 중단됐던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 그리고 웅장하고 화려했던 솔로몬성전의 위용보다 초라한 것에 실망했다가 스스로를 굳세게 하여 성전을 재건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스룹바벨 성전의 영광뿐 아니라 장차 지구촌에 다시 세워질 예수님의 천년왕국 성전의 영광과 천년왕국의 축복까지를 예언하며 약속하셨다.

 

그렇다. 오늘도 하나님은 스스로를 굳게 하는 성도, 자기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성도, 자기스스로를 담대하게 하는 성도를 축복하신다. 오늘 여러분은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자인가, 스스로를 나약하게 하는 자인가? 스스로를 담대하게 하는 자인가, 스스로를 겁약하게 하는 자인가?

 

성경은 구약시대에 아합은 악처 이세벨의 꼬임에 넘어가 스스로 팔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다가(왕상 21: 25-26) 전쟁터에서 자살로 자기인생을 끝냈고, 신약시대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율법사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눅 30) 외식하다가 지옥의 판결을 받았으며(마 23: 13, 15, 16, 23, 25, 27, 29, 33) 교회시대와 은혜시대에 정통신앙을 버리고 이단에 빠진 자들은 자기스스로를 정죄한 자(딛 3; 11)로서 스스로가 지옥의 멸망을 자처한 자들이라(히 6: 4-8, 10: 26-31, 벧후 2: 1)고 했다. 스스로의 결정을 잘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담대 하라”)는 절대자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 번(신 31: 23, 수 1: 6-9)이나 직접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했고, 모세도 여호수아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신 31“ 1-7)고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도 자기들을 인도할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수 1: 18)고 부탁했으며,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장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수 10: 25)고 했고, 다윗도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두 번씩이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대상 22; 13, 28: 20)고 했으며, 히스기야 왕도 앗수르 군대의 침공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두려워 떨던 백성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대하 32; 7)고 했다. 대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과(고전 16: 13) 자기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딤후 2: 1) “남자답게 스스로 강건(剛健)하라, 예수의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했다. 그렇다.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만이 성도가 인생을 승리하는 길이기에 하나님은 주의 종들에게 이것을 부탁하고 명령하신 것이다.

 

심리학 용어로 Lucifer's Effect(‘루시퍼 효과)란 말이 있다. “평범한 사람도 악마의 옷을 입히면 악마가 된다”는 말이다. 40년 전,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박사가 스탠포드 대학에 임시감옥을 만들어 놓고 24명의 자원자 학생을 제비뽑기로 반씩 나눠 12명은 간수로, 12명은 죄수 역할을 맡겼다. 이 일을 자원한 24명 모두 머리 좋고 영리하며 공부도 잘하고 마음이 착한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실험도중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간수를 맡은 학생들은 죄수들에게 가학적이 됐다. 실험이 진행 될수록 간수는 점점 더 잔인해졌고 죄수는 비굴해졌다. 그래서 당초 2주로 예정하고 악마실험을 시작했다가 참가자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위험수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어서 6일 만에 실험을 중단했다.

 

그렇다. 아무리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도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언제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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