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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7월14일 20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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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제가 농촌의 작은 교회에 전도사가 되어 첫 목회를 시작할 때입니다.

어느 날 산을 넘어 교인 가정에 심방을 갔다 오다가 길에 떨어져 퍼덕이는 새 새끼를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둥지에서 떨어져 퍼덕이다가 길가까지 온 모양입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미 새도 안보이고 둥지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반드시 죽을 것 같아서 할 수없이 그것을 보듬어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새끼 새인데도 그 크기가 참새보다도 더 컸습니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그 새가 어떤 종류의 새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구니에 철사를 엮어서 새장을 만들고 헌 옷가지를 깔고 새를 거기 두고 헝겊을 덮었더니 가만히 있습니다. 조금 있더니 기운을 차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울기 시작합니다. 쌀과 콩을 깨트려서 주었는데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들에 나가 작은 청개구리를 잡아서 주었더니 냉큼 받아먹었습니다. 곡식을 먹는 새가 아니고 육식을 먹는 새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처음에는 작은 청개구리로 시작해서 조금씩 큰 개구리를 잡아서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잘 먹는지 먹는대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 씨니까 제 성을 따서 조가비라고 이름을 짓고 부르며 키웠습니다.

이윽고 날개와 깃털이 다 자라서 날 수 있게 되어서 새장 밖에 놨더니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프면 담에 와서 앉아서 먹을 것을 달라고 울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잡은 개구리를 주면 제 옆에 와서 앉아서 먹을 것을 먹고는 날아갔다가 때가 되면 오고 이름을 부르면 오곤 했습니다. 한 8개월까지 그 새를 키우며 참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기르기 시작한지 한달 반쯤 되었을 때에 아주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새장 안에 있을 때였는데 밖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새를 한 시간 정도 계속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가 갑자기 입을 벌리고 속에 것을 토하여 내는 것입니다. 저는 무슨 탈이 난줄 알고 가서보니 놀랍게도 통으로 삼킨 개구리를 살은 다 소화를 시키고 남은 뼈를 토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나무를 단으로 묶으려고 가지런히 하는 것처럼 뱃속에서 한번에 6-8개쯤 되는 뼈를 가지런히 모아 토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가지런히 모이지 않으면 그것이 목에 걸려서 토해 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뱃속에 손이 있는 것처럼 살은 모두 소화를 시키고 소화되지 않은 뼈를 가지런히 정돈되어 토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름도 모르는 새까지도 개구리를 통째로 잡아먹고 남은 뼈를 가지런히 하게해서 토하여 내게 하시므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보고 너무도 신기하고 감격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뼈가 저리게 깨달아졌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미물인 새도 뱃속에서 뼈를 정돈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고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이루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을 당할 처지가 되자 당신의 아들까지 주시는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고 천국까지 보장을 받은 귀한 존재가 우리인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손길로 함께 하실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이 사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뭘 해야 되는 줄 알고 세상의 것에 목매고 살았습니다. 물질에 목을 매고 권세에 목을 매고 나 자신의 마음에 만족을 위하여 목매고 살았습니다. 새와 비교할 수 없는 값있고 귀한 존재인데 새보다도 못한 존재가 할 행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터지면 벌떼같이 일어나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고 나라를 탓하고 비방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귀한 존재답게 스스로 가치를 높이고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조우형 목사(만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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