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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7월14일 20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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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는 왜 고등학교에 군대를 파견했나?


<101 공수부대 호위를 받으며 학교에 들어가는 9명의 흑인학생>



대법원 판결, 몽고메리 시 버스 보이콧, 그에 뒤이은 각종 평화시위..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내내 흑인 민권 문제에 관한 아이젠하워의 도덕적 리더십은 공백 상태에 있었다. 이 냉전 시대의 장군은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는 안전한 곳으로 만들면서도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는 자신의 비전 속에 정작 흑인들을 위한 자리는 만들어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젠하워의 공식적인 발언은 무척 애매했다. 남부 민주당 의원들의 표가 필요했던 그로서는 아마 강력한 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딕시크래트’(Dixiecrats)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는 말로는 국법을 준수하겠다고 하면서도 대법원 판결은 추인하지 않으려했다.

그 당시 이 인기 절정의 대통령 입에서 짐 크로의 상황에 대해 격노하거나 인종차별에 대한 지도력을 보여주는 단 한마디의 말만 나왔어도 민권 운동은 아마 한결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결국 (남부의) 압력에 밀려 아주 못마땅한 투로 흑인 학생들의 권리보다는 대통령의 권력에 더 무게를 두는 최후의 수단을 내렸다. 

1957년 9월 아칸소 주지사 오빌 파우부스는 아칸소 주방위군에서 차출한 완전무장 군인 270명을 리틀록 센트롤 고등학교에 배치했다. 백인 전용 학교였던 그곳에 흑인 학생 아홉명이 등교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었다.

미국인과 전세계인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학교에 들어가려던 학생들이 성난 군중들로부터 야유와 저주의 침 세례를 받으며 경비병의 저지를 받고 발길을 되돌리는 모습을 혐오스럽게 지켜보았다. 이 모든 일이 군인들의 감시하에 이뤄졌다.

연방지방법원은 아이들의 등교를 허락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주지사는 아칸소 주방위군을 철수시키고 골이 잔뜩 나 있는 소규모 지방 경찰대에 흑인 학생들의 보호 임무를 맡겼다. 

일이 그렇게 되자 아이젠하워도 연방법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101공수부대 소속 낙하산병 1,100명을 리틀록에 파견하고 국가방위군을 자신의 직접 명령하게 두었다. 재건 이래 최초로 미국군대는 흑인의 권리보호를 위해 남부에 파견되었다. 

국가방위군은 그해 내내 리틀록 센트럴고등학교에 주둔해 있었고 흑인 학생 9명도 저주와 괴롭힘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꿋꿋히 1년을 버텼다. 리틀록 사건으로 분명해진 것은 앞으로 민권운동을 하려면 대법원의 판결을 집행해줄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리라는 것이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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