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람이 필요합니다.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5월 03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백동흠칼럼
2014년07월10일 12시19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람이 필요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람이 필요합니다.

 

로댕의 “깔레의 시민” 이란 조각품이 있습니다.
6명의 사람이 목에 밧줄을 감고 고통에 싸인 모습으로 걷고 있는 조각품입니다.
이 조각품의 주인공들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만들어 낸 주인공들입니다ㄷ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1337년-1453년) 당시
프랑스의 작은 도시 깔레 시에서 영국의 대군과 싸웠습니다.(1338년)
깔레의 시민은 프랑스의 지원병 없이 1년간을 버티면서 싸웠으나
도시 전체가 불타고 식량도 바닥나고 무기도 다 떨어져 백기를 들게 됩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극한 분노 속에 도시 전체를 도살하려 했습니다만
깔레의 항복 사절단이 간절히 자비를 구함으로
영국 왕은 전쟁에 대한 책임질 사람들을 요구했습니다.

첫째 너희 도시의 명망 높은 6명의 지도자이여야 하며
둘째 머리를 밀고 속옷만 걸치고 맨발로
셋째 목에 처형할 밧줄을 걸고
넷째 깔레 도시의 열쇄를 영국 왕께 바치고
다섯째 교수형으로 올라갈 사람을 오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들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때 제일 먼저 가장 큰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피에르가 일어섭니다.
그러자 깔레의 시장인 장 데르가 나섭니다.
사업가인 피에르 드 위쌍이 손을 듭니다.
그러자 그 아들이 아버지의 위대한 정신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덕스러운 지도자 3명이 나서므로 모두 7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더 많으므로 제비뽑기를 하여
6사람을 선택하자고 했으나 외슈타스가 거부했습니다.
그대신에 제일 늦게 나온 사람을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날 6명이 다 도착했을 때까지 외슈타스 생피에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날 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6명의 고결한 희생과 죽음을 위해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이 깔레의 시민들에게 알려 집니다.
영국군에게 순식간에 퍼져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의 물결이 넘친 것입니다.
임신 중인 영국 왕비가 그의 남편 에드워드 3세에게 탄원을 하게 됩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고결한 죽음으로 희생한 그 한사람으로 인해  
6명의 지도자와 깔레의 시민 모두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깔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적 근거지로 남게 됩니다.
훗날 로댕이 10년의 작업 끝에 “깔레의 시민” 조각상이 세워지게 됩니다.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란
Noble(귀족)과 Obliger(준수하다)의 합성어로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성 혹은 고귀한 신분에 걸 맞는 책임감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고유 명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지금은 환경을 탓하거나
사람을 탓할 때가 아닙니다.
다들 그러니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하며
적당히 세속에 젖어 경건의 모양만 갖고 살 때가 아닙니다.

영적 “노블레스 오블레주”의 사람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아시지요?
우리의 주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해주신 분입니다.
대신 담당하여 책임지어 주심으로 죽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높은 신분의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성과 윤리
그리고 그 신분에 걸 맞는 책임과 소명의식
지금 그런 영성의 사람으로 살라고 명했습니다.(요13:34, 벧전2:21)

하나님은 그런 영적 노블레스 오블레주의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성을 치료하며 고쳐주겠다고 했습니다.(렘5:1)
노블레스 오블레주의 한 사람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그대! 한 사람이 이 땅의 희망이며
대한민국의 희망일수가 있습니다.


책임져 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갑자기 그리웠나 봅니다.
비어 놓고
내려 놓고
더 많이 낮아져서
신분에 걸 맞게 책임을
져 주는 그런 감동의 사람이
되여 주었으면 해서요.
그렇게 살고자 하는 그대의 모습이
눈물 겹도록 그립습니다.





백동흠 목사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백동흠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42125487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백동흠칼럼
다음기사 : (백동흠 칼럼) 참 (2014-07-23 19:07:06)
이전기사 : 6.25 ! 잊혀지는 역사가 되고 있는가? (2014-07-07 08:22:29)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