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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6월14일 08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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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보여준다.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보여준다.  

현대 무신론의 원조인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종교가 생긴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의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에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신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들이 신이 있으면 좋겠다는 투사의 원리가 신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고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고 했고 또한 "종교는 일종의 병적인 비현실주의를 의미한다"고도 하였다. 

반면에 성경은 무신론을 죄악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이세상의 모든 근본 원리 즉, 도덕, 사회윤리의 모든 것들과 인간의 기본가치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나님이 없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선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선언이다. 

무신론은 우리가 죄를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없애준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말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질서,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선언이다. 심지어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신론은 파국으로 치닫는 아주 무서운 사상체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인간의 생각을 아주 싫어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자를 성경은 어리석은 자로 말한다. 그 이유는 자기가 자신의 행복과 삶의 기반을 발로 차버리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양심이 있다고 말한다. 

“저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내 마음에는 양심의 도덕율이 빛나고 있다 우리 안에서 소리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계속 들려온다. 우리 속에 있는 양심이 하나님을 증거한다”라고 임마누엘 칸트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말했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기 보다 자기 안에 각인되어 있는 하나님 의식을 지워 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무신론의 공허함 무신론의 염세적 태도와 무신론의 공포감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무조건적 사랑을 가지고 무신론자들에게 다가가는 아량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신론이 가진 가장 큰 딜레마는 인간에게 있는 윤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무신론자들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인간의 진화하면서 사회적으로 서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윤리라는 것이 발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존재의 명령이 없이는 진정한 가치도 없고 진정한 윤리의 당위성은 생겨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정했을 때 절대 가치를 부인하고, 그리고 절대자를 부인해 버렸을 때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밖에는 남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가치만 있을 뿐이다. 우리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우주적인 도덕성은 무신론자들의 설명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은 진화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인하여 주신 것이다. 이것이 우주적으로 인간의 양심이 존재하는 것을 설명한다.

로마서1장에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또한 로마서 2장에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양심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그 사회는 망한다.

러시아에서 망명한 솔제니친은 러시아혁명사에 50년의 세월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약 6천만명의 러시아 사람들의 생명을 삼켜버린 그 무서운 혁명의 그 주된 원인을“사람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나라일 수록 자살율이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다.

자살 원인으로는 우울증, 생활고 등이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에 희망 잃고 자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이건 구제 불능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회는 허무와 무의미의 사회로 통한다. 무의미는 허무이다. 무의미는 혼란이다. 무의미는 목표가 없고 소망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은 먹고 사는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인간은 의미와 그로 인한 존재감으로 산다. 그래서 무신론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국 망하게 되어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를 지배했던 21개의 문명 가운데 19개의 문명이 자멸했는데, 그 이유는 무신론과 물질주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무신론은 양심의 활동을 억제한다. 그래서 무자비한 결과를 가져온다. 철학자 니이체가 가장 영향을 끼친 정치가는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니이체에게서 영향을 받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 600만명의 유대인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무신론이 성횡하는 곳에서 무자비와 폭력이 횡횡한다. 그동안 공산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 무신론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국은 망하고야 만다. 경제도 도덕적인 사회가 기반이 되지 않고는 제대로 발전이 될 수 없다는 노벨 경제학상을 탄 프레드리히 하이에크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우리는 양심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양심이 하나님을 증거한다. 양심이라는 희랍어는 누구 누구와 더불어 안다는 뜻이다. 영어에 conscience가 거기에서 유래한다.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더불어 안다는 것이다. 양심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본성과 양심의 지시를 따르고 내 속에 내재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윤리적 이상을 제시하고, 개인적, 공동체의 선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역할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아주 귀한 믿음의 체계이다. 우리에게 양심 그리고 선함을 추구하는 본래적인 의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으면 어디에서 왔을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이순증 목사 (기독뉴스 주필 , 새방 교회) sleend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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